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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18 20:49
기종변경 과정에 뛰어 든 필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955  
기종변경 과정에 뛰어 든 필자


                                       기종변경 과정에 뛰어 든 필자

차세대전투기사업(KFP)에 관련된 필자의 행적은 의혹의 덩어리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맨 처음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극히 우연이었다. 1985년 어느 가을날, 상공부 어느 한 과장으로부터 상공부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도록 부탁받았다. 당시 필자는 홍릉에 소재하는 국방연구원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회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대한 회의로 무려 다섯 시간이나 계속됐다.

회의의 주제는 세 팀의 국제컨소시엄 사이의 경쟁에서 어떻게 승자를 결정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 컨소시엄이란 한국 회사 하나와 미국 회사 하나가 한 팀이 되는 것이었다. 대우는 F-16기 제작사인 GD사와 한 짝이었고, 삼성은 F/A-18기 제조업체인 MD사와 한 짝이었으며, 대한항공은 F-5기와 F-20기 제작사인 ‘노스롭’사와 한 짝이었다.

마라톤 회의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경쟁을 컨소시엄 단위로 시킨다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이 일을 관장하고 있던 H라는 비서관을 찾아갔다. 한국 업체를 먼저 선정해 놓고 경쟁은 미국 회사끼리만 붙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미국회사 하나와 한국회사 하나가 한 짝이 되는 컨소시엄 제도를 없애버리고, 3개 미국회사들끼리만 경쟁을 붙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칼자루를 한국이 쥐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는 이 생각에 동의했다. 이 사업은 필자의 소관이 아니었지만 필자는 당시 육군대령으로 소관사항에 관계없이 관심 가는 일이면 모두 뛰어들었다.  

필자의 제언이 받아들여지면서부터 제1단계로 미국 업체들을 제외한 채 기술도입 생산을 담당할 국내 업체부터 선발하기로 했다. 국내업체들끼리의 치열한 이전투구가 시작됐다. 대한 항공은 F-5기와 500MD를 조립한 실적을 가지고 자기네가 가장 적격이라고 했다. 삼성항공은 F-5기의 엔진을 조립했고 엔진기술이 있으면 항공기조립 쯤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우는 당시 F-16기의 몸체일부와 날개를 제조해서 미국에 납품했기 때문에 기계공업은 역시 대우라고 내세웠다. 국방부 사업단은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렸다. 대우가1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점에 승복할 회사는 없었다. 경쟁기업들은 영향력 있는 군인들을 어느 업체가 더 많이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냐에 따라 평점이 달라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율곡 사업에 관여하는 많은 군인들은 예편 즉시 방산 업체에 취직했다. 취직을 하려면 군에 있는 동안 어느 한 업체에 공을 쌓아야 했다. 이는 곧 많은 군인들 중에서 누구는 삼성맨으로 누구는 대우맨으로 역할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방부 수준에서 칼자루를 뺏긴 삼성은 마지막 수단으로 전두환 대통령과 담판했다. 결국 1986년 어느 날 삼성 항공은 미증유의 대 사업권을 따내게 됐다.

1987년2월 필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구소도 그만두고 대령으로 예편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모교인 미해군대학원에서 3년간 근무를 하고 1989년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결정의 문턱에 놓여 있었다. 필자가 두 번째로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귀국한 직후인 1989년12월초부터였다. MD사는 미국에서도 값 올리기에 악명이 나 있었고, F/A-18기는 F-16기의 2배나 비싼 것이기 때문에 F/A-18기가 결정되면 우리 국방비가 거덜 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F/A-18이 선정된 것이 뭇 마땅했다.

F-16기 제작사는 그 훌륭한 전투기를 가지고도 논리와 로비력에서 패했다. 필자는 그들이 패하던 바로 그 날 그들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들은 실망한 상태에서 사무실을 줄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들에게 F-16기가 얼마나 좋은 제품인데 그것을 가지고 패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들이 팔고 있는 F-16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겨우 제원만 달달 외워대고 있었다.

필자는 F/A-18기가 그 비싼 가격 때문에 도저히 끝까지 성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F-16기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해 주었다. 그들은 그러는 필자를 조금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보는 듯했다.

F/A-18을 생산할 때의 삼성지분은 F-16을 생산할 때의 삼성지분의 2배였기 때문에 삼성은 드러내놓고 F/A-18기의 편을 들었다. F/A-18기의 로비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했다. 바로 그 소문대로 노태우가 F/A-18기로 기종을 결정했다. 필자에겐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한국이 F/A-18기의 가격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미국에서 가져온 자료로 47쪽짜리 보고서를 정리해서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설득하려 다녔다. 1990년2월20일 당시 육군총장이었던 이종구 장군을 대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F/A-18 기종 선택이 크게 잘못된 것이며 F/A-18기를 선정하더라고 국산화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머리 회전이 빨랐다. 그는 전투기 사업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심증은 갖고 있었지만 타군 사항이라서 간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자는 F/A-18기로 결정되면 곧 값을 올려 갈 것이며 당시의 50억 달러 사업은 100억 달러 사업으로 종결될 확률이 많다고 했다. 그 후 얼마 안 돼서 이는 사실로 증명됐다. 미 해군은 F/A-18기를 대당 1억 달러에 사 쓰고 있었다. 120대면 120억 달러인 것이다.

필자는 육군 총장에게 육군 예산까지도 공군 사업에 흡수돼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청와대 김종휘 안보 수석에게 전화를 했다. 안보 수석은 그 날 동아일보에 필자의 의견이 인용된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F/A-18기의 선택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그는 김 수석에게 “만나서 손해 될 것이 무엇 있느냐”며 필자를 만나 보라고 윽박지르듯이 강요했다.

이틀 뒤인 2월 22일(토) 필자는 김종휘 씨와 청와대에서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일방적으로 말했다. 성능 분석, 경제 분석, 군수 지원 분석의 세 가지 분석을 모두 철저히 했는데 F/A-18기가 역시 타당한 선택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이 결정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했는데 당신이 뭔데 참견하느냐는 식이었다.

필자는 그에게 “당신들이 사용한 자료는 객관적 쏘스에서 나온 자료가 아니라 업체가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제공한 자료"라고 항의했다. 그는 빨리 외출해야 한다며 필자를 그의 보좌관인 하나회 출신 소장에게로 인계했다. 그 장교는 ”대통령이 누군데, 대통령이 한번 결정한 일을 가지고 일개 개인이 왈가왈부하느냐“고 필자를 힐난했다.

“공군 전체가 8년간이나 연구한 결과를 놓고 당신이 뭐 그리 많이 안다고 이 사람 저 사람 쑤시고 다니느냐, 좀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필자는 전투기 사업단에 있는 장교들이 군인 신분으로 이러한 복잡한 과제를 분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그에게 말해 주었다. 공군 사업단이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사실은 형식적으로는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으나 그들이 사용한 자료들이 모두 객관적 자료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양개 업체에서 주는 자료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른다고 하며 필자를 실무자인 그의 후배 김희상 준장에게 인계했다. 필자가 가져간 보고서에는 객관적인 자료원에서 인용한 자료명과 페이지가 표시돼 있었다. 그는 매우 꼼꼼하고 깨끗해 보이는 실무자였다. 그는“왜 이런 자료를 이제 갖다 주느냐”고 원망하듯 말했다.

1990년 6월 이종구 장군은 총장에서 전역했다. 필자는 그의 오피스텔에서 그를 세 번 만나 KFP사업의 본질과 방산 업체 기술 도입의 허구성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90년10월 이종구 장군은 당시 보안사 윤석양 사건으로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채 장관이 되었다. 그가 취임한 지 불과 18일 만에 군은 MD사와 계약을 해야 했다. 이종구 장관은 MD사의 값 올리기 작전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확정가 계약’을 하자고 했다. 필자가 자세히 설명한 그대로 한 것이다.

당시까지의 조립 사업은 모두 ‘사후 원가 정산 계약’이었다. 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업체가 합법적으로 발생시킨 비용이 얼마라고 증빙서를 제출해 주면 이 비용을 100퍼센트 보상해 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확정가 계약은 일단 가격을 정해 계약하면 차후에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계약이었다. 국방 장관이 MD사에 확정가 계약을 제안하자 MD사는 매우 당황했다. 원래 F/A-18기는 F-16기보다 2배나 비싼 것이기 때문에 값을 올리지 않으면 밑지는 장사였다. 그래서 MD사는 괘씸죄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측 가격을 48퍼센트나 올렸다. 경쟁시의 제안 가격으로는 F-16기보다 24퍼센트만 비쌌던 것이 83퍼센트(1.24 x 1.48)나 더 비싸지게 된 셈이었다.

MD사는 ‘발부터 들여 놓고 보자’(Foot in the door)는 해묵은 가격 상승 전략을 한국에서도 써먹으려다 따끔한 맛을 보게 되었다. 일단 조립공장이 들어서게 되면 미국 업체와 삼성항공은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성능을 개량했느니, 설계를 변경했느니 하면서 가격을 올려 나갈 수 있었다. 미국정부도 MD가에 그런 식으로 당했다. 1977년 미 정부에 대한 F/A-18기의 제안 단가는 900만 달러였다. 그러나 막상 5년이 지나가 단가는 3,200만 달러로 상승했다. 이는 당시 <타임>지를 비롯해 많은 언론 매체로부터의 비난의 화살이 됐었다.

1989년 말 당시의 청와대 실무 장군은 서동열 총장이 F/A-18기에 대해서는 장점만 부각시키고 F-16기에 대해서는 단점만 부각시켰다고 노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화를 냈다. 그러나 김종휘 수석이 이를 무마했다. 김 수석은 “사용군 총장이 저토록 F/A-18기를 갖고 싶어 하니 가격과 기술 이전 내용을 확실히 못 박고 F/A-18기로 결정해 주십시오”라는 취지의 건의를 했다. 김 수석이 F-16기를 봐주기 위해 군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비인격 사회를 상상하면서 쓴 소설에 불과하다. F/A-18로 기종을 경정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김종휘가 F/A-18기 제작사로부터 로비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 이회창과 안강민은 김종휘가 F-16기 제작사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를 했으니 대한민국의 감사원과 검찰, 대한민국 최고의 판사출신과 최고의 현역검사가 얼마나 가벼웠으며, 이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전달한 언론들이 얼마나 무책임했는가!      

차세대 전투기에 관한 한 김종휘 안보수석은 문외한이었다. 대통령에게 기술적인 문제를 보고할 때는 늘 그의 보좌관격인 K준장이 직접 보고했다. 드디어 노 대통령은‘만일 저 가격과 기술 내용이 보고된 것과 상이할 때에는 장관과 공군 총장을 처벌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놓고 F/A-18기로 결재해 주었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누가 누구에게 강압적인 압력을 행사했단 말인가.

필자는 당시 F/A-18을 선호했던 공군 측 책임자들로부터“지만원은 미국에 한밑천 장만해두었다”는 말까지 들었다. 나중에 F-16기 제작사의 미국 측 간부로부터 ‘달리 감사를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납품권을 하나 마련해 줄 수 있으니 받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는 했다. 이때 필자는“나는 F/A-18기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했지만 F-16을 도입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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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머루 11-07-31 15:07
 
정권유지 혹은 퇴임후 비자금을 위해 무기를 도입한것이 사실일터 과연 국방력 증강을 위해 사심없이 무기를 도입했다는넘이 있다면 내가 평생 업고 다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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