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클럽
 
 
작성일 : 09-11-19 17:14
통계의 의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727  
 

                  

필자는 월남전에서 중위로 진급하자마자 대대상황실에서 포병사격지휘 장교로 일했다. 상황실에는 매일 수많은 첩보가 접수됐다. 첩보의 신뢰성에 따라 A급부터 D급까지 분류돼 있었다. 이들 첩보들은 접수되는 순서대로 두꺼운 첩보일지에 기록됐다. 한 달이면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200쪽이 넘는 책이 됐다. 하루에도 7~8쪽이나 되는 첩보내용을 장교들이 일일이 읽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상황실 선임하사가 중요하다고 표시해주는 첩보만 대강 훑어봤다. “응, 그렇구먼. 이 지역이 늘 말썽이군.” 일단 날짜가 지나면 모든 내용들이 두꺼운 첩보철 속에 묻히고 만다. 하루 이전의 첩보 내용, 열흘 이전의 첩보 내용을 다시 들춰내 읽는 사람은 없다. 자료는 많지만 모두가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보석의 원석이 땅 속에 방치돼 있듯이!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 첩보일지 속에는 모든 첩보가 다 들어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첩보를 즉시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필자는 중사에게 똑같은 지도판을 3개 만들라고 했다. 중사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급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중위님, 상황판을 3개씩이나 만들어 무얼 하시게요?” “나도 몰라. 일단 한번 만들어 봐.” “합, 옛~써~ 즉각 대령하겠습니다.” 중사는 다섯 손가락을 꼬부려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가려했다. “김중사. 하나는 초저녁용, 또 하나는 밤중용,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새벽용이야. 상부로부터 첩보 내용을 받아 적을 때마다 상황판을 골라 표정을 하라구. A급은 적색, B급은 청색, C 및 D급은 노랑색으로. 알았어?” “아! 존경하는 중위님, 이제야 감이 옵니다. 돌아가겠습니다”


첩보를 받아 적는 노력이 10이라면 지도판 위에 점 하나를 표시하는 노력은 1도 안됐다. 하나하나의 점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여러 날에 걸쳐 표시된 수많은 점들은 일련의 분포와 추세를 나타냈다. 시간대별로 베트콩이 어떻게 이동해 다니는지에 대해 훤히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통계의 묘미였다. 매일 밤 필자는 이 상황도에 따라 사격을 가했다. 며칠 후부터는 구태여 필자가 사격을 가해야 할 좌표를 찍어줄 필요가 없었다. 누구라도 상황판만 보면 언제 어디에 사격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잠이 들더라도 병사들은 정해진 시스템에 의해 포를 날렸다. 얼마 후, 체포된 베트콩의 진술이 나왔다. “한국 포병에는 눈이 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필자가 해야 할 일들을 병사들이 점점 더 많이 메워 줬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대위 두 사람이 해야 할 업무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매일 아침, 필자는 밤새 있었던 상황들을 손바닥만 한 쪽지에 요약하여 대대장 숙소로 가져갔다. 구두로 보고를 하지 않아도 그 쪽지만 읽고도 만족해했다. 무섭기로 소문난 대대장이었지만 필가 가면 언제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응, 응, 알았어. 그래그래, 수고했어. 어서 가봐. 아니 우유 한잔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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