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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절약생활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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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3:53 조회6,8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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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절약생활 (김진환)

박정희 대통령의 절약생활

고 박정희 대통령은 공짜를 매우 싫어하였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통령 경호차가 요금을 내지 않고 지나가면 경호실장을 혼냈다. 그 뒤로는 반드시 경호 선도차에서 대통령 일행의 통행료를 한꺼번에 지불하곤 했다. 박대통령은 옷가지와 구두를 꼭 돈내고 맞추어 신고 있었다. 와이셔츠는 삼도물산, 트레이닝복은 한일합섬, 양복은 세기양복점, 구두는 금강제화의 제품을 썼다. 박대통령은 말년에 축농증 수술을 받고 담배를 끊었다. 몸무게가 4kg쯤 불어 64kg쯤 되었다. 헌바지의 허리쪽을 늘리는 수리를 해서 계속 입고 다녔다.

꼼꼼한 성격의 박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자로 허리를 잰 다믐 부속실 직원을 불러 『요 만큼만 늘리라』고 지시했다. 박대통령은 단순한 스타일의 복장을 좋아했다. 양복 웃옷은 뒤에 한 줄로 가른 것을 입었으며 구두도 고전적인 투박한 형식이었다. 늘 국산시계를 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박대통령은 칼국수를 즐겨 먹었다. 점심의 태반은 국수로 때웠다고 한다. 반찬이라야 김치, 깍두기 정도로 단출한 칼국수점심이었다. 박대통령에게 초대받아가면 배고프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서 요리사들이 칼국수에 새알크기의 쇠고기덩어리를 서너개씩 넣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어린 시절 선산에서 즐겨 먹었던 비름나물 비빔밥을 그리워하였다. 청와대직원들은 비름나물을 구하기가 어렵자 청와대 터밑에 비름나물을 심었다. 박대통령은 간식을 거의 먹지 않았으나 커피를 좋아했다. 박대통령은 우유나 스테이크 같은 양식을 싫어하였다.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했다. 그의 체질이나 취향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농촌적이었다. 박대통령이 최후의 반찬자리에서 양주를 마셨기 때문에 시바스 리갈과 같은 양주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오해다.

박대통령은 경기도 고양군 원당 양조장에서 만든 빽빽한 막걸리를 가장 즐겨 마셨다. 대통령부속실직원들은 대통령이 막걸리를 과음할까봐 신경을 썼다. 대통령이 『더 가져오라』고 하면 『준비한 것이 다 떨어졌습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박대통령은 아쉬운 듯 『거, 좀 더 받아놓지. 지금 차 보내면 안 되나?』라고 불만스레 했다. 부속실 직원은 내친 김에 『지금 차를 보내도 두 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교통도 막히고요』라면서 버티었다. 물론 대통령의 건강을 위한 고집이었으므로 통했을 것이다.

박대통령은 말년에 가서는 골프를 자주 치지도 않았다. 대통령 행차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고 수십명의 직원들이 후일에 동원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베드민턴으로 바꾸었다. 박대통령의 에너지 절약은 몸에 배어 있었다. 집무실에 붙은 화장실의 전등을, 화장실 사용시에만 켰고 변기 물통 안에다가 벽돌 한 장을 집어 넣게 하였다. 벽돌 한 장 만큼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1979년에 제2차 석유파동이 밀어닥치자 박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의 에어컨 가동을 중단시켰다. 그 더운 한 여름에도 창을 열어두고 부채와 선풍기로 견뎠다. 겨울의 청와대는 대통령의 지시로 난방기 가동이 제한되어 늘 한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박대통령은 생활의 지혜를 알고 있는 이였다.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부속실 직원과 함께 집무실을 회담장으로 바꾸는 의자배치를 직접 했다. 탁자를 옮기니까 탁자에 눌려 있던 카피트가 보기 흉하게 흔적을 드러냈다. 직원들이 난감해하고 있으니까 박대통령은 물주전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카피트의 눌린 자국을 따라 물을 주었다. 조금 있으니까 물을 먹은 카피트가 되살아나 보기 흉한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박대통령의 몸가짐도 늘 절제돼 있었다. 차를 타고 갈 때도 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집무실에서도 소파에 잘 앉지 않고 ㄴ자 모양의 회의용 의자에 꼿꼿이 앉아 일을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대통령의 머리에는 자나깨나 국정에 관한 구상이 들어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건설, 포항종합제철 건설, 그린밸트 설치, 제주도 개발, 경주개발 등은 순전히 박대통령의 개인적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업적이었다. 우리는 지금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건설에 반대했던 정치인들의 과오에는 관대하고 박대통령의 치적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한 그런 분위기에 살고 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에만 남은 국토에다가 이 정도의 스케일과 통찰력으로 현대한국의 터를 듬직하게 잡아놓은 박대통령의 개발전략을 요사이는 동구권에서 더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은 탐모원려(探謀遠慮)의 인간이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고민을 진지하게 했었다는 점이다. 어떤 주제를 붙들고 고민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고 길도 뚫리게 된다. 절약생활도 쇼로서가 아니라 진실되게 함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같이 느껴보려고 애썼다.

한국 민중의 정서에 늘 밀착돼 있었던 박대통령은 단점도 공유하였다. 그 단점을 용기있는 지식인, 학생들, 정치인들이 과감히 지적하였고, 그리하여 박대통령의 더 큰 실수를 막아주기도 하였다. 그런 견제가 없었던 북한에서는 「혼자만 즐겁고 만인이 괴로운」김일성신정(金日成神政)체제가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망쳐버렸다. 거의 10대 1로 벌어진 남북한의 국력격차는 바로 박정희와 김일성이 했던 고민의 크기 차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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