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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0 14:18
박정희는 민족경제지도자였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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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민족경제지도자였다...!

글쓴이: 솔바람

1962년 3월 1일 대통령에 건의하여 독립유공자 대대적 표창, 1962년 12월 20일 숭례문 국보1호 지정, 1963년 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1963년 2월4일 지방문화재육성,1963년 9월6일 동대문 개축준공,1963년 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 1964년 7월1일 경주석굴암복원준공, 1965년 1월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년 8월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년10월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1966년11월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년11월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년11월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년12월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년12월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년 4월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년 4월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년10월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1968년12월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년12월7일 지리산 등 9개지역국립공원지정, 1968년12월11일 광화문복원, 1969년 3월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년 4월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년 4월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70년 6월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공표하여 한글날 공휴일로 지정, 1969년 8월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70년 2월29일 금산사대적광릉 해체 복원, 1970년 7월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1970년11월10일 행주산성 복원 준공,1970년11월19일 세종대왕기념관 준공,1970년12월8일 도산 서원 보수 정화 공사 준공,1970년12월25일 화엄사 대웅전 보수, 1970년12월31일 남원 광한루 보수, 1971년 4월13일 칠백의총 보수 정화 준공,1971년 8월30일 속리산 법주사의 사천왕문 복원, 1972년3월10일 경주 고도개발 10개년획확정,1972년7월4일 한국 개발연구원 설립, 1972년11월4일 육산리 고분군 정화

1973년10월19일 문예중흥5개년계획추진, 1974년 6월10일 낙성대 정화 사업 준공, 1974년12월10일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 1974년12월27일 이경관문 해체 복원, 1975년 4월11일 중앙민속박물관 개관, 1975년10월10일 서울 어린이회관 이전 개관, 1975년10월28일 전국 성곽 보수 사업 추진, 1975년10월30일 정립회관 건립(장애인보호육성), 1976년 1월20일 옥산서원보수, 1976년 1월20일 강화 지역 유적 개발, 1976년 1월20일 신안 해저 문화재 발굴, 1976년 4월10일 밀양 포충사 정화사업, 1976년 4월10일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1976년 4월17일 국어 정화, 순화 운동 전개,

1976년 5월10일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1976년 6월24일 유적지전적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제정, 1976년10월30일 한산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 참석, 1977년 8월0일 남서울대공원 건설, 1977년 7월30일 경주통일전조성, 1977년10월9일 여주 영육 성역화 사업, 1977년10월9일 부석사 정화 작업(1977~1979), 19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1978년 5월3일 월정사복원, 1978년 5월10일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광주), 1978년 5월10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충주), 1978년 6월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1978년 8월15일 해남 표충사 보수, 1978년10월30일 직지사 정화사업,

1978년11월8일 관광산업진흥책 발표,1978년11월30일 곽재우장군유적지 조성 정화사업,1978년12월6일 광주박물관 개관,1979년 4월6일 경주 보문 관광단지 개장,1979년 5월30일 상주 정기룡장군 유적지 정화 사업,1979년10월12일 국제 올림픽대회 서울 유치 등

박정희는 경주 황남대총과 금관총, 백제 무령왕릉 발굴에 4억원의 거금을 투입할 만큼 민족정신문화 발굴과 보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94년 김영삼 정권이 폐지한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한 것도 박정희였고 단군왕검을 국가의 시조로 재조명한 것도 박정희였다. 그보다도 박정희는 우선 민족경제지도자였다고 말할수 있겠다.

박정희는 민족경제주의자였다. 국가의 경제, 국민 경제의 향상을 위해 그는 중공업과 경공업을 강제적이지는 안되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71년부터는 외국 제품보다는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국산품 애용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방적 시장경제 논리에 의하면 외제품을 과소비해도 정부나 개인이 통제를 해서는 안된다. 설령 된장족 국민들이 많아서 외제품을 계속 수입하여 국고가 바닥난다고 해도 국가가 통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계속된 외제품, 과소비, 사치낭비 허용 등은 개인의 경제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 더 나가서는 민족경제까지 파탄내는 동인이 된다. 1988년 이후 불필요한 외국 여행까지 과도하게 허용하여 사치 호화 낭비품, 과소비 등을 하여 1995년말 IMF 국제금융기금을 끌어다 쓰는 하나의 요인을 제공했다.

박정희는 강력한 정부통제 주도형 경제를 채택하였다. 기업과 기업의 거래에 공정거래인가 부당한 거래가 없었는가를 관공서에서 체크하고 부정한 거래가 확인되면 적발하여 단속하거나 시정권고, 수정조치 하였다. 기업이 경영을 하다 보면 항상 윤리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부정행위와 약육강식의 불투명한 기업경영과 과도한 구조조정 등은 기업의 자율재량권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가 나타난다. 특정기업의 독점과 과점 그리고 대기업 재벌들의 부당한 세습과 관행 등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 경영의 큰 부조리이고 모순이다. 책임의식의 부재, 의무이행의 부재, 기업윤리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내포할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공기업의 민영화만이 답이 아니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93년 유공과 대한항공, 93년부터 95년 사이에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국민 기업은행, 주택공사, 외환은행 등, 95년~2004년 MBC, EBS 등 방송국 98~2000년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한국종합화학, 송유관공사, 한전, 2006년 도시철도공사 등이 민영화되었다.

민영화가 되면서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직원 고용불안정, 민영화로 개인 사업자의 과도한 임금인상, 질낮은 서비스, 가격의 수시 인상 등 고액화 등이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정희가 교통, 철도, 도로, 해운항만, 건설, 복지, 서비스, 전매산업 등 많은 기간산업을 민간주도형 모델보다는 국유화를 고집한 것도 이런 민간 자본가들의 비정상적인 폭리행위,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무책임하게 해외자본에 매각(김대중 정권에서 하이닉스, 기아차, 대우차, 외환은행, 제일은행 등을 매각한 것처럼)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내지는 국영기업화로 국민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국민의 소비촉진과 가계안정을 위해서라도 기업이나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려고 반사회적, 반도덕적 야합이나 밀실거래, 담합행위 등을 할때 정부와 관공서가 적극적으로 통제, 조정해야 할 이유가 있다.

1973년에는 국민연금복지법을 74년 건강복지보험을, 78년 7월에는 부가가치세와 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하여 소득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주의임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수출 장려, 국산품 애용, 복지, 기간산업의 국유화 내지는 국영기업화로 염가에 최상급 서비스를 제공하게 한 것은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는, 1960,70년대 한국만의 독특한 시장경제 체제였다. 이 체제가 박정희 사후에도 86년 이전까지는 꾸준히 지속되었다. 법과 규정으로 이것을 성문화하여 그만큼 튼튼하게 내실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박정희는 민족경제주의자! 민족주의자였다. 유항산 유항심, 무항산 무항심이라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것이 곧 민족중흥과 민족자주를 달성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국내 효자산업인 황우석 줄기세포를 포기한 노무현과 근태, 유씨와 기술하나 지키지 못한 외교부장관 반씨, 구조조정 핑계대고 하이닉스,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극동건설, 외환은행, 동화은행, 제일은행 등을 외국계 자본인 GM과 혼다, 론스타 등에 팔아치운 김대중과 매각의 중개역을 한 김&장 변호사사무실, 삼일회계, 이헌재 등은 저질적인 패륜 매국노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는 분명 보수임에도 시장경제논리를 무조건 따라가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으로 배척했다고도 볼수도 있다. 국가 경제기반을 외국계 자본가에 팔아치운 김대중, 노무현 보다도 더 진보적인 경제관을 가졌다고도 할수 있겠다.

박정희는 일단 개인의 소유재산은 인정하였으니 자본주의자라고 볼수는 있겠지만 시장경제논리를 수용은 하되 복지논리와 정부의 강력한 주도와 조정적 경제를 수립했다. 그리고 과도한 사치나 낭비보다는 근검절약과 국산품 애용운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이는 박정희가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생각하는 민족경제주의자로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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