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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朴正熙 前 대통령이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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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4:18 조회12,36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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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朴正熙 前 대통령이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
[秘話] 朴正熙 前 대통령이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
낡은 농촌 주택 한 채에 숨은 사연

자신이 직접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에서 실제로 천 삽 뜨고 한 번 허리 편 朴正熙 대통령

  
일요일인 지난 7월 6일 낮 12시, 10명의 대학생들이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국제농업개발원의 李秉華(이병화ㆍ63)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농장을 찾았다.
경부고속도로 신갈 IC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농장의 정식 명칭은 ‘재단법인 국제농업개발원 부속 기흥농장’이다.
  이 원장의 자택은 故(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설계한 농촌 새마을 주택 1호로, 박 전 대통령이 일종의 ‘주말 농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병화 원장은 이 농장이 만들어진 1972년부터 지금까지 농장의 관리 책임을 맡으며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 생산된 무공해 농산물은 1972년부터 1997년까지 26년간 청와대에 공급됐고, 주한 미군에는 지금도 계속 납품하고 있단다.
  박정희 대통령이 설계한 새마을 주택 1호인 이 원장의 집은 안채(122㎡ㆍ37평)와 아래채(76㎡ㆍ23평), 창고(59㎡ㆍ18평) 등 3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에 사용된 자재는 당시 담벼락이나 주택을 지을 때 많이 사용하던 구멍 뚫린 일반 시멘트 블록이었다. 이 원장은 “2006년 개•보수 작업을 했는데, 건물 원형은 그대로 남겨 놓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 주택은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농촌 지도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하고자 지은 집”이라고 설명했다.
  “새마을운동은 처음엔 정확한 명칭 없이 ‘농촌 소득증대 사업’으로 불렸어요. 그러다가 1971년 4월에 ‘새마을운동’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농촌 소득증대 성공사례 발표를 자주 했는데, 난생 처음 청와대에 불려 온 새마을운동 지도자들과 농민들은 얼어붙기 일쑤였습니다. 대통령은 농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어요.”
  이 원장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평택의 어느 새마을 지도자가 청와대에서 농촌 소득증대 성공 사례를 발표하는데 박 대통령이 가만 들어보니 발표 내용이 도저히 농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정부 담당기관에서 이 새마을 지도자를 사례발표 1주일 전에 서울로 불러다 호텔에 투숙시키면서 발표 준비를 시켜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람은 호텔에 머물면서 원고를 쓰고, 발표 연습도 한 겁니다.”
  이 내용을 보고 받은 박정희는 “이렇게 형식에 치우쳐서 어떻게 농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농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공간이 필요하니 어디가 좋은지 한번 살펴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陸英修(육영수) 여사도 ‘우리도 주말이면 갈 곳이 없다. 주말에 우리도 직접 농사도 지어보고,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도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며 농장 건립에 적극 찬성했다”고 말했다.
    
  막걸리 먹고 취한 새마을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은 주말에 농장 인근에 있는 관악 골프장(現 리베라 골프장)을 이용할 때를 맞추어 주로 농장에 들렀다고 한다. 평소 만나고 싶던 새마을 지도자나 농촌 지도자들의 이름을 신문을 보고 메모해 놓았다가 대통령이 골프를 치러 오기 전 비서실 등을 통해 이병화 원장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이 원장은 “대통령을 만난다고 사전에 소문 내면 안 되니까 농촌 지도자들에게는 주로 농림부 차관이나 장관을 만나는 자리라고 전했다”고 한다. 농민들은 대통령을 만나 때로는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어느 농민은 군수가 정부가 지원한 시멘트를 자기 처갓집에 주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마을 지도자를 농장에 불러 놓았는데 그날 대통령이 두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어요. 그사이 장관이나 차관을 기다리는 줄 알았던 새마을 지도자는 막걸리를 몇 잔 기울였고, 대통령이 도착했을 쯤 취기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새마을 지도자는 막 도착한 박 대통령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을 많이 닮았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런 소리 많이 들었소’ 하고 응수했어요. 하지만 얼마 안 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새마을 지도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양동이 물을 자기 머리에 퍼 부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목적으로 실시한 ‘천리마 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 운동의 세부 실천 내용 중에는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라는 항목도 있었다. 어느 날 농장에 온 대통령은 비서진과 함께 농장에서 실제로 천 삽 뜨고 허리 펴기를 해보았다. 대통령이 천 삽을 뜨는 데 63분이 걸렸다고 한다.
  이병화 원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1년이다. 군대를 제대한 이 원장은 경남 김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는 당시로선 최고 선진 농법인 비닐 하우스에 원예작물과 채소를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1971년 어느 날 이 원장은 농림부 차관을 지내던 집안 형님으로부터 “청와대에 근무해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원장이 농림부 차관 형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때마다 농가소득 증대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며칠 전 대통령께서 ‘경남 김해는 하늘에서 보면 평야가 전부 비닐 하우스로 은빛 물결이다. 이곳에서는 고등 채소를 재배하여 일본에 수출도 하고 미 8군에도 납품도 한다. 어떤 젊은이는 농사지어 번 돈으로 자동차도 타고 다닌다고 한다. 전북 부지사가 그곳에 전라도 농촌 젊은이를 원예기술을 배워 오게 보냈다고 하더라’ 등등의 말씀을 하셨다. 듣고 보니 네 이야기 아니냐.”

박정희와의 인연  
이 원장은 “당시 김해에서 농사 지으면서 자동차 타고, 미 8군에 농산물 납품하고, 전라도 농촌 청년들 원예교육을 시키고 있던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형님을 통해 대통령께서 서울 근교에 자그마한 비닐하우스 농장을 만들어 직접 농사를 지어 보고 싶으니 적당한 원예기술자 한 사람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청와대 경제담당 특보에게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72년 2월 이 원장은 농림부 차관인 집안 형님으로부터 “대통령 각하를 모시게 됐으니 빨리 상경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안내 받은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기흥 IC옆 시범농장 개설 현장이었다. 그곳에는 대통령 명으로 농장개설을 준비 중이었던 박진환 경제특보가 와 있었다.
  “박 특보가 ‘농장 개설에 소요되는 자금은 국가 예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개인 자금으로 충당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곳이 국유지였기 때문에 농업진흥청의 협조로 농장 개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이 원장의 대통령 시범농장이 성공하자 1973년 한 해 동안 전국의 공무원들과 농민들이 선진 비닐하우스 기술을 배우겠다며 이 농장으로 몰려들었다. 미 8군 사령관도 이곳을 방문했고, 곧바로 미 8군 농산품 납품을 전량 한국산으로 대치한다는 공고를 내렸다. 덕분에 대관령, 김해, 양산, 안양 등 미 8군 납품 농가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
  1976년 12월 이 원장은 새마을 훈장을 받았다. 이 원장은 이 집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이곳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생전 머물렀던 집 중의 하나입니다. 신당동에 있는 박 대통령 저택은 대통령께서 군복무 시절 살던 집이고, 구미에 있는 집은 生家(생가)이지만, 이곳은 박 대통령께서 새마을 운동을 위해 ‘安家(안가)’ 형식으로 사용한 집입니다. 저는 이 집을 경기도나 용인시에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 집이야말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李相欣 月刊朝鮮 기자 (hanal@chosun.com) - 월간조선 8월호

댓글목록

holy님의 댓글

holy 작성일

문화재로 지정되는 일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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