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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2 12:24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글쓴이 : 동일
조회 : 6,902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박정희 대통령 연구 자료
역사학도 | 조회 11 | 09.11.10 07:06 http://cafe.daum.net/issue21/5NiW/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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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배(周永培)의 말 


19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 과목을 가르치며 박 선생님께서는 "이 글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다. 가정실습 때는 문경에서 1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다.


전경숙(全慶淑)의 말 


박 선생님은 우리 집으로 하숙을 옮겼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를"모친"이라고 불렀다. 식사는가리는 것이 없었고 복장은 단정하였으며 출근은 빨랐다. 언제나 숙제를 내주시고 철저히 검사하여 평가를 해주셨다. 월요일마다공책을 점검하시고 글씨를 바르게 쓰도록 지도해 주시고 일기와 편지쓰기를 장려하였다. 5학년 20명과 2학년40명을 한교실에서복식수업(複式授業)을 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했다.

말은 간단명료하였으며 청소에 신경을 쓰고 유리창, 천정의 거미줄, 화장실 청소를 철저히 시켰다. 그리하여 청소도구를 완비하여 가지런히 정리 정돈되도록 하였으며 책상의 줄이 비뚤어지고 환경이 지저분한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위인전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고 "너희들도 이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노래와 나팔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악대와 합창반도 조직하여 각종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가을운동회 때는 박 선생이 기마전, 기둥 넘기기, 공바구니 터뜨리기, 텀블링을 지도하여 관중들의 박수를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소풍 때 문경새재를 갔을 적에는 제1관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시고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은 선생님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시던일, 발목을 삐어 걸음이 곤란한 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오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영태(李永泰)의 말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황성옛터><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이 야나자와(柳澤)와 말다툼 끝에 그가<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인 순사 중에 오가와(小川)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논쟁을 벌였다. 박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小川)가 무어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전도인(錢道寅)의 말 


하루는 박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그때 일본인 청부업자 한 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와 박 선생님에게 "오이! 교장 계신가?"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일본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 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게 그러한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 국민으로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돼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 해도 무례하기 그지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인간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어서 나가봐!"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황실광의 말 


박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다.

박 선생님이 일제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하다. 학생 한 사람을 복도에 세워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것은 박 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선생님의별명은<호랑이 선생님>이었으나 자주 부르지는 못했다. 나는 졸업 때 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 실었다. 박정희 교사는 사랑과 정열로써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밑바닥에 항상 조선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민족적 울분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parkjunghee&no=8990&page=1&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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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26일, KBS가 朴대통령 서거 20주년을 기념해서 특집 프로를 내보냈는데 웬일인지 그 특집방송을 深夜에 내보냈다.내 기억으로는 다들 잠든 12시에 내보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2시간짜리였나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안 자고 기다렸다녹화하면서 그 프로를 다 봤고 며칠 뒤 다시 한번 더 봤다.

KBS가 왜 방대한 작업끝에 완성한 그 특집프로를 심야에 내보냈는지도 끝까지 보고나서야 알아챘다.

朴대통령과 같이 공부하고 성장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전체적으로 朴正熙라는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민족정신이 강했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증언들이 줄을 잇는데 朴正熙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 인식을바꾸게 할 만큼 人間 朴正熙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제작진이 오랜동안 고생해서 만든 그 특집프로를그대로 내보자니 슨상님이 대통령인지라 내보내기도 눈치보이고 그렇다고 안 내보내자니 그동안 퍼부었던 심혈이 아깝고.......결국 사람들이 대부분 잠든 한밤중에 내보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박정희 특집프로는 문경보통학교 교사 박정희 선생님이학교 뒷산에 올라 트럼펫 부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느 날 어린 여학생이 물에 빠져허우적거리는 걸 본 같이 놀던 아이들이 학교로 달려와 '물에 아이가 빠졌다'고 고함치자 트럼펫을 등에 멘 어느 선생님이 트럼펫을멘 채로 물에 뛰어들어가 아이를 구해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분이 박정희 선생님이었다는 어느 할머니(당시의 문경보통학교 학생)의증언도 나오는데 항상 말이 없고 학생들한테 매우 자상한 선생님이었고 했다.

이런 증언도 나온다.

어느 날 학생들이 박정희 선생님의 하숙방에 놀러갔더니 방에 웬 이상한 서양사람 사진이 걸려있더란다.
한학생이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박정희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나폴레옹이다."고 대답하더라는 기억도 들려줬는데 문경보통학교선생님 朴正熙가 만주 군관학교 학생이 되었어도 이 나폴레옹 사진은 따라다녔다는 걸 나는 다른 기록에서 본 적이 있다.

70년전 그 당시 나라잃은 朝鮮의 박정희학생한테 나폴레옹은 자신이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예시해주는 훌륭한 등대였고 귀감이었다.

아시다시피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강제합병된 엘바왕국의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서 나중에 프랑스로 건너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혁명의와중에 발군의 전공을 세워 영웅이 되고 젊은 나이에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게다가 작은 키까지 닮은 점에서 박정희는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아 민족의 恨을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대구사범학교시절 금강산으로 수학여행가서 박정희학생이 여행소감을 써 놓은 것이 KBS제작진이 이미 작고한 대구사범학교 동기생의유품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는데 기억이 오래되어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내용은 나라없는 민족의 恨을 담아놓았다.

"금강산아, 너의 자태는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데, 우리는 왜 ..................." 무슨 일인지 끝을 맺지 못하고 끝난 박정희학생의 금강산 수학여행 소감문은 이렇게 가슴 아프게 적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민족을 찾았을까해서 나는 놀랐다.

대구사범시절 박정희학생은 일본인 교사에게 반항적이라는 학적부 기록도 KBS는 공개하고 있는데 자신이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교사로 일생을 살아야한다는 자각에서 매우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나폴레옹처럼 일본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생활을 당장 때려치우고 사관학교에 다시 입학하자.

나이가 이미 많아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예외적 입학을 애원하다 결국 혈서로 충성맹세했을 것이라 나는 추측한다.

그 특집프로엔 박정희가 어떻게헤서 남로당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결혼하자 곧 이혼하게 된 사유를 짐작케 하는 진술도 나오는데 아무튼 인간 박정희의 사람 됨됨을 알게 해 주는 좋은 자료였었다.
이에는 당시 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 동기생들, 문경보통학교 학생, 대구사범학교 동기생, 남로당 사건으로 박정희를 수사했던 수사관까지 다 나와서 진술하는데 한결같이 인간 박정희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증언들이 나온다.

(델모나코님 글펌)


http://gall.dcinside.com/list.php?id=parkjunghee&no=9016&page=1&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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