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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0 12:11
2. 만일 김재규가 정권을 잡았다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559  
 

                                    2. 만일 김재규가 정권을 잡았다면?


김재규가 정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자신이 대통령을 죽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정권을 이양하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는 대통령을 시해한 살인자라는 비난, 그것도 자기를 끔찍하게 챙겨준 박대통령을 시해한 패륜아라는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억압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아주 가혹한 독재자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실제로 진술서에서“반혁명분자를 처단한다”는 혁명 계획까지 실토했을 만큼 과격한 사람이었다. 1979년 11월18일, 계엄군법회의에서 김정섭은 YH사건에 대한 김재규의 과격한 상황처리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1979.8.9.10:00시경, YH회사 200여명이 회사 내 문제를 해결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 집결하여 농성을 벌임으로서 발단이 됐습니다. 8.10.10:00경, 김계원과 김재규가 강재해산을 결의했습니다. 사람들이 투신을 하면 그물망, 매트리스 등의 안전장구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는 숫자가 부족함으로 며칠간 연기하자는 실무자들의 건의가 있었지만 김재규 부장의 강행 지시로 안전대책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8.11.02:00에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 해산한 적이 있습니다.


이어서 김정섭은 김재규가 학생, 근로자, 종교인 모두에 대해 박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탄압 수단인 긴급조치10호를 건의했다가 대통령에 의해 거절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1979. 8월 중순 경, YH사건의 후유증과 도시산업선교회 및 가톨릭 농민회의 등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청와대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때 김재규 부장은 ‘긴급조치 9호는 칼날이 무딥니다. 아주 강한 10호를 주십시오’라고 건의했습니다. 그 후 10월 하순경, CPX기간 중 B-1방카에서 같은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에도 김재규 부장은 ‘각하, 긴급조치 10호를 주십시오. 그래야 정국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하고 건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각하는 ‘학생, 근로자, 종교인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 정국수습이 되겠느냐, 당분간 9호를 가지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라고 지시하셨고, 그 후 10호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김재규의 범행동기를 물었을 때, 김정섭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산 계엄사태로 부산에 다녀온 김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부산에 가보니 300만 시민 중 70% 이상은 유신에 호의적이더라. 시가와 항만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30% 이하의 반대세력은 행정기관이 잘만 선도하면 회복될 것 같더라.’김재규는 소영웅주의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그를 따를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1979년 11월 9일, 계엄군법회의에서 있었던 김계원의 진술과 일치한다. 김계원은 위 김정섭의 진술을 뒷받침해주는 보다 제세한 진술을 했다.


1979.8.10. 10:00경 YH 노무자 200여명이 신민당 당사에 집결, 계속취업을 요구했습니다. 배후에는 도시산업선교회가 있었고, 장차 노동계와 종교계가 합세, 강력한 대정부 투쟁 세력으로 진전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수습대책을 논하기 위해 8.10.10:00경 청와대 제 사무실에서 김재규, 유혁인 정무1수석, 고건 정무2수석, 김정섭 등이 모여 논의를 했습니다. 중론이 나왔는데 그것은 보사부장관이나 노동청장이 신민당사에 가서 해명과 시책을 설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는 정부 고위 관리가 신민당사에 가서 사과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전례가 될 것이다. 금일 중으로 경찰을 투입해 강제해산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그날 야간에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을 시킨 바 있습니다.


이 계엄군법회의에서 김계원은 긴급조치 10호에 대해서도 진술을 했으며 그 진술 내용은 김정섭의 진술과 정확히 일치했다.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보다 더 강한 10호를 강구했고, 박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정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김재규가 다방면의 민주화 인사들과 만나 민주화를 의논한 바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증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 두 사람이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들이 정확히 일치하고, 그 진술 내용들은 한 결 같이 김재규가 박대통령보다 오히려 더 강경하고 탄압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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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극우 15-07-11 14:27
 
욕심에 눈이 멀고 좌파에게 현혹당해 모시던 분을 죽이는 등신은 시루떡이 되어 비참히 벌받으며 뒈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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