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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0 12:14
8. 전두환의 등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676  
 

                                         8. 전두환의 등장

 

보안사가 시해소식을 들은 것은 시해현장에서 총소리가 멎은 지 40분 후, 오후 8시 20분이었다. 김계원이 시신을 싣고 국군서울지구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7시 55분, 병원을 가려면 보안사 정문을 통과해야 했다. 청와대 차량이 병원에 와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을 목격한 근무병이 보안사 당직총사령 이상연 대령에 보고를 했고, 당시 근무를 하고 있던 정도영 보안처장(육사14기)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 요원이 밀착감시를 하기 때문에 병원장의 대답이 엉거주춤했다.“코드원(대통령)이냐, 위독하시냐” 했더니 병원장은 겨우“예”라고만 대답했다. 이때 전두환은 연희동 자택을 떠나 서빙고 수사분실로 부대순시를 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이런 전두환에게 이상연 대령은 대통령이 지구병원에 입원했는데 용태가 위태로운 것 같다는 내용을 무전으로 보고했고, 전두환은 즉시 보안사 중요간부들을 비상소집했다. 8시 30분이었다. 서빙고 수사분실에 도착한 전두환은 청와대 경호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경호실장은 물론 차장과도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 다음의 보고가 전두환에게 들어왔다.“노재현 장관이 보안사령관을 찾고 있습니다. 정승화 총장이 각군 수뇌부를 B-2방카로 소집하고 있습니다.”    


오후 9시경, 전두환이 B-2 방카에 도착했다. 이 때 김계원과 최규하는 청와대에 있었고, 정승화 총장이 혼자서 독자적으로 상황을 처리하고 있었다. 벙커 내의 총장실에는 김재규가 있었고, 상황실에는 노재현 장관과 군 수뇌들이 있었다. 전두환이 노재현에게“대통령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노재현은 “대통령이 서거했다. 자세한 건 모른다”고 일러주었다. 전두환이 대통령 서거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시점이 바로 밤 9시경이었다. 이때부터 전두환은 발 빠르게 육군본부 보안대 사무실에 임시 지휘본부를 차리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11시 40분, 노재현 국방장관은 전두환에게“각하가 서거했다”“김재규를 체포하라”이렇게 지시했다. 반면 11시 50분에 정승화는 전두환에게“국방장관실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있다. 헌병이 체포하면 인계받아 보안사 안가에 정중히 모셔라”이렇게 지시했다. 노재현은‘김재규가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반면, 정승화는 김재규를 안가에 정중히 모실 대상이라고 말해준 것이다. 이에 사태를 어느 정도 눈치 챈 전두환은 보안사 보안처 군사정보과장 오일랑 중령에게 명령을 내렸다.“국방장관실에 김재규가 있다. 육군총장이 찾는다는 구실로 유인하여 보안사 안가로 연행하라.”모시라고 명한 것이 아니라 연행하라고 명한 것이다. 그리고 오일랑 중령은 김재규를 글자 그대로 연행했다. 10월 27일, 새벽 00시 30분이었다.   

   

정동 안가로 연행된 김재규는 누가 묻지 않는데도 제1성을 이렇게 냈다.“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나에게 협력하라.”“내가 박대통령을 시해했다. 내일이면 세상이 바뀐다”수사관들은 김재규의 언행으로부터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이라는 확신을 얻었고, 이는 즉시 전두환에게 보고됐다. 전두환은 정승화에게“대통령 시해범은 김재규입니다. 구속해야 합니다”라며 압박했다. 정승화는 더 이상 저항할 명분이 없었다. 이로써 시해 된지 6시간 후인 10월 27일 새벽 01시 30분에 비로소 김재규가 정식으로 구속된 것이다.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은 정승화는 김재규를 고급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 했고, 안가에 모시라는 이유는 김재규에게 혁명 배후세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진술 했다. 전두환 역시 배후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김재규를 범인으로 지목하자마자 즉시 고급 안가에서 서빙고 수사분실로 호송한 후 김재규를 비호하는 정승화를 압박하여 범인을 정식으로 구속시켰다.    


김재규를 체포하기 직전까지의 사태는 정승화, 김계원, 김재규가 주도했다. 최규하 내각은 무기력했고, 국가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점령하는 세력이 임자로 보였다. 김재규가 이끄는 중앙정보부, 김계원이 이끄는 청와대, 정승화가 이끄는 60만 육군이 단합했던 당시의 상황은 누가 봐도 막강했다. 이런 힘이면 역모를 할 만한 세력이었다. 이 엄청난 세력이 그 힘을 발동하려 기지개를 펴는 순간, 2성 장군에 불과한 전두환이 재빠르게 선수를 쳐서 예봉을 꺾은 것이다.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김재규-정승화가 주도하는 쿠데타 세력이 국가를 지배했을지 모른다. 전두환의 사태파악 속도와 거침없는 행동이, 당시 최규하가 이끄는 국무위원들의 무기력함에 비하면 단연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최규하와 국무위원들은“무엇이 내게 이로우냐”에 따라 눈치를 보고 있었고, 전두환은 “무엇이 정의냐”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천 : 0

십만원 10-05-25 22:30
 
전두환 각하...정말..큰인물이 아닐수가없다.

추진력....빠른상황판단력...

빨갱이들을....모조리 쓸어버릴수있었던.애국자시다.
슈파J 12-02-08 13:42
 
진정한 애국자 전두환 각하..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권10년동안
아이들에게 역적이라고 가르쳐 지금 20대들은 국민을 죽인
역적으로만 알고 있다..
바꿔야한다!
전두환각하를 보호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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