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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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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8 21:07 조회7,43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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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와 비전


리더십 제1의 역할은 목표선정(goal setting)이다. 손에 잡힐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선정해야 한다.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면 비전을 주지 못한다. 비전이 없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단지 따르는 척 할 뿐이다. 그래서 리더는 부하들에게 "아, 그렇게 하면 정말 되겠구나!" 하는 믿음을 줘야 한다.

소니의 이부카 회장이 포케북을 책상위에 던지며 바로 요만한 사이즈의 캠코더를 만들자고 목표를 제시했다. 아키오모리타씨가 워크맨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박대통령이 M-16소총과 박격포를 청와대 마루에 내놓으며 똑같은 것들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목표가 뚜렸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성공했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를 유치하고 최고의 시설과 대우를 제공하면서 막연히 "무엇이든 좋으니 기업에 유익한 것들을 개발해 주시요"라고 주문하면 수십년이 가도 신제품이 개발되지 않는다.

최고 경영자는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예리한 판단을 해야 한다. 소니가 자석 테이프 방식을 이용해 VTR을 만들고 있을 때 RCA는 비디오 디스크 개념에 몰두하다가 수백만 달러를 날렸다.

발명의 대가였던 피터 골드마크는 필림식 녹화기를 만들다가 빛을 보지 못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일본인들은 같은 상품이라도 작고 얇고 짧고 가볍게 만드는 데 연구개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역시 확실한 연구개발 목표였다. 이 한가지의 목표로 인해 일본은 제품의 소형화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소련이 스프트닉을 지구궤도에 올렸다. 이에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아풀로 계획을 세워 소련과 똑 같은 위성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모든 것이 백지 상태에서 이루어 졌다. 만화를 그리는 기분으로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미국은 소련보다 더 정교한 위성을 개발해 냈다.

위성은 한번 쏘아 올리면 실패가 없어야 했기 때문에 아폴로 계획은 무하자(Zero Defect) 프로그램이어야 했다. 제조과정 하나하나에 하자가 있으면 안되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노력에서 일본인들은 무하자 개념을 제조공정에 응용했다.

그러나 정작 무하자 개념을 창출해낸 미국인들은 무하자 개념을 제조공정에 도입할 줄 몰랐다.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의 당시 목표는 아폴로 위성을 띄우는 것이었지만 일본인들의 당시 목표는 미국을 배우는 것이었다.

박대통령은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 작은 숙소를 마련해놓고 유도탄 개발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그 숙소는 파티장으로 변해 버렸다. 아무도 그 곳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한국과학기술 정책의 상징이었다. 박대통령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에는 뚜렷한 목표가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유익한 것을 만들어 국방에 기여하라"는 식의 지시만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그 연구소는 존립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만큼 망가져 버렸다.

남한은 북한에 대해 심리전을 수행해 왔다. 심리전 목표는 "북한보다 우수한 심리전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하루에 5시간 방송할 때에 남한이 6시간 방송하면 그것이 우위로 평가됐다. 더 많은 전단을 북한에 살포하는 것도 우위로 평가됐다. 목표가 애매했기 때문에 돈만 많이 들고 결과는 엉뚱했다.

심리전 목표는 "북한 인민의 마음을 남한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 병사가 남한을 동경하게 되면 전쟁이 나도 그들은 하늘에 대고 총을 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체제를 욕하고, 선전기가 철철 넘치는 장면을 질낮은 인쇄물에 담아 보내는 것보다는 훌륭한 옾셑 기술로 제작된 인쇄 광고물들을 수집해 보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방송 내용에 감정적이고 뾰족한 어투를 담아 보내는 것 보다는 멜로 드라마나 병상일기 같이 북한인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것들을 담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귀순한 북한 장교들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흑색 전단이 아니라 라면봉지였다. 이와 같이 목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행동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극대화인 것으로 고착돼 있다. 중간경영자들은 단기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왕왕 기업 이미지와 운명에 역행했다. 정경유착, 오페수 방류, A/S 및 클레임 경시, 연구개발 기피, 턱없이 비싼 가격 등은 기업의 장래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고, 도덕적 해이를 만성화시켰다.

근로자도 이윤극대화의 도구요 고객도 이윤극대화의 도구로 취급됐다. 경영진과 근로진간에, 그리고 기업과 고객간에 적대관계가 형성됐다. 우리가 그토록 당연시해온 이윤극대화라는 기업목표는 알고 보면 한국기업을 퇴화시긴 가장 큰 병균이었다. 이윤을 목표로 하면 회사의 운명이 파괴된다. 이윤은 개선에 열리는 자연스러운 열매여야 한다. 따라서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하지 말고 개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1970년대에 미국은 어드미랄 냉장고를 일본에 팔려고 압력을 가했다. 이에 대해 한동안 일본인들은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미제 냉장고가 수입되자 그 냉장고는 좁은 일본인들의 주택에서 엄청난 소음을 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약점을 개선해서 미국제보다 더 훌륭한 냉장고를 만들었다,

미국 냉장고가 더 이상 일본에서 버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우리에겐 아쉽다.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한 한국의 냉장고 제작사가 외제냉장고를 수입해서 높은 마진을 얻었다. 일본인은 개선을 목표로 했지만 한국인은 이윤을 목표로 했다.

경쟁에 가장 훌륭한 무기는 이미지다. 1957년 아키오모리다씨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가지고 허허벌판 미국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미국 유통업계에는 일본 제품을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생각 끝에 그는 광고를 생각해냈다. 유통업계라는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은 광고를 통해 낙하산 식으로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이 광고를 보고 브로바사에서 20만개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주문해 왔다. 라디오에 브로바 이름을 새겨달라는 OEM 조건이었다. 당시 소니사 건물은 판자집이었다. 재정적으로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20만개의 주문은 사막의 오아시스요 횡재였다. 모리다씨는 본사에 이 사실을 타전했다. 본사에서는 즉시 주문을 수락하라고 했다.

그러나 모리다씨는 하루밤을 고민한 후 자신의 직권으로 이를 거절했다. 눈이 둥그레진 브로바사 중역이 말했다. "브로바사는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소니사는 지금 회사라고 불릴 수 없을 만큼 작은 모임에 불과합니다. 소니사 제품에 브로바 상표를 넣으면 이는 소니사의 횡재가 아닙니까?"

모리다씨가 말했다. "브로바사도 50년전에는 우리 소니사와 같은 처지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브로바사가 50년만에 오늘과 같은 기업을 일으켰다면 앞으로 50년후에 우리 소니사도 그만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니사 제품은 소니의 이름으로만 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결국 모리다씨는 장래의 이미지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이익을 포기했다. 그후 40년이 지난 지금 이 두개 회사의 프로필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그의 마음속에 이윤극대화라는 단기적 목표가 자리했더라면 오늘날의 소니는 없었을 것이다.


2000. 5. 21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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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man님의 댓글

dollman 작성일

목표와 비전

리더십 제1의 역할은 목표선정(goal setting)이다. 손에 잡힐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선정해야 한다.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면 비전을 주지 못한다. 비전이 없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단지 따르는 척 할 뿐이다. 그래서 리더는 부하들에게 "아, 그렇게 하면 정말 되겠구나!" 하는 믿음을 줘야 한다.

소니의 이부카 회장이 포케북을 책상위에 던지며 바로 요만한 사이즈의 캠코더를 만들자고 목표를 제시했다. 아키오모리타씨가 워크맨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박대통령이 M-16소총과 박격포를 청와대 마루에 내놓으며 똑같은 것들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목표가 뚜렸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성공했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를 유치하고 최고의 시설과 대우를 제공하면서 막연히 "무엇이든 좋으니 기업에 유익한 것들을 개발해 주시요"라고 주문하면 수십년이 가도 신제품이 개발되지 않는다.

최고 경영자는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예리한 판단을 해야 한다. 소니가 자석 테이프 방식을 이용해 VTR을 만들고 있을 때 RCA는 비디오 디스크 개념에 몰두하다가 수백만 달러를 날렸다.

발명의 대가였던 피터 골드마크는 필림식 녹화기를 만들다가 빛을 보지 못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일본인들은 같은 상품이라도 작고 얇고 짧고 가볍게 만드는 데 연구개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역시 확실한 연구개발 목표였다. 이 한가지의 목표로 인해 일본은 제품의 소형화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소련이 스프트닉을 지구궤도에 올렸다. 이에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아풀로 계획을 세워 소련과 똑 같은 위성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모든 것이 백지 상태에서 이루어 졌다. 만화를 그리는 기분으로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미국은 소련보다 더 정교한 위성을 개발해 냈다.

위성은 한번 쏘아 올리면 실패가 없어야 했기 때문에 아폴로 계획은 무하자(Zero Defect) 프로그램이어야 했다. 제조과정 하나하나에 하자가 있으면 안되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노력에서 일본인들은 무하자 개념을 제조공정에 응용했다.

그러나 정작 무하자 개념을 창출해낸 미국인들은 무하자 개념을 제조공정에 도입할 줄 몰랐다.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의 당시 목표는 아폴로 위성을 띄우는 것이었지만 일본인들의 당시 목표는 미국을 배우는 것이었다.

박대통령은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 작은 숙소를 마련해놓고 유도탄 개발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그 숙소는 파티장으로 변해 버렸다. 아무도 그 곳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한국과학기술 정책의 상징이었다. 박대통령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에는 뚜렷한 목표가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유익한 것을 만들어 국방에 기여하라"는 식의 지시만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그 연구소는 존립 자체에 의문이 제기될 만큼 망가져 버렸다.

남한은 북한에 대해 심리전을 수행해 왔다. 심리전 목표는 "북한보다 우수한 심리전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하루에 5시간 방송할 때에 남한이 6시간 방송하면 그것이 우위로 평가됐다. 더 많은 전단을 북한에 살포하는 것도 우위로 평가됐다. 목표가 애매했기 때문에 돈만 많이 들고 결과는 엉뚱했다.

심리전 목표는 "북한 인민의 마음을 남한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 병사가 남한을 동경하게 되면 전쟁이 나도 그들은 하늘에 대고 총을 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체제를 욕하고, 선전기가 철철 넘치는 장면을 질낮은 인쇄물에 담아 보내는 것보다는 훌륭한 옾셑 기술로 제작된 인쇄 광고물들을 수집해 보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방송 내용에 감정적이고 뾰족한 어투를 담아 보내는 것 보다는 멜로 드라마나 병상일기 같이 북한인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것들을 담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귀순한 북한 장교들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흑색 전단이 아니라 라면봉지였다. 이와 같이 목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행동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극대화인 것으로 고착돼 있다. 중간경영자들은 단기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왕왕 기업 이미지와 운명에 역행했다. 정경유착, 오페수 방류, A/S 및 클레임 경시, 연구개발 기피, 턱없이 비싼 가격 등은 기업의 장래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고, 도덕적 해이를 만성화시켰다.

근로자도 이윤극대화의 도구요 고객도 이윤극대화의 도구로 취급됐다. 경영진과 근로진간에, 그리고 기업과 고객간에 적대관계가 형성됐다. 우리가 그토록 당연시해온 이윤극대화라는 기업목표는 알고 보면 한국기업을 퇴화시긴 가장 큰 병균이었다. 이윤을 목표로 하면 회사의 운명이 파괴된다. 이윤은 개선에 열리는 자연스러운 열매여야 한다. 따라서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하지 말고 개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1970년대에 미국은 어드미랄 냉장고를 일본에 팔려고 압력을 가했다. 이에 대해 한동안 일본인들은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미제 냉장고가 수입되자 그 냉장고는 좁은 일본인들의 주택에서 엄청난 소음을 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약점을 개선해서 미국제보다 더 훌륭한 냉장고를 만들었다,

미국 냉장고가 더 이상 일본에서 버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우리에겐 아쉽다.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한 한국의 냉장고 제작사가 외제냉장고를 수입해서 높은 마진을 얻었다. 일본인은 개선을 목표로 했지만 한국인은 이윤을 목표로 했다.

경쟁에 가장 훌륭한 무기는 이미지다. 1957년 아키오모리다씨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 가지고 허허벌판 미국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미국 유통업계에는 일본 제품을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생각 끝에 그는 광고를 생각해냈다. 유통업계라는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은 광고를 통해 낙하산 식으로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이 광고를 보고 브로바사에서 20만개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주문해 왔다. 라디오에 브로바 이름을 새겨달라는 OEM 조건이었다. 당시 소니사 건물은 판자집이었다. 재정적으로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20만개의 주문은 사막의 오아시스요 횡재였다. 모리다씨는 본사에 이 사실을 타전했다. 본사에서는 즉시 주문을 수락하라고 했다.

그러나 모리다씨는 하루밤을 고민한 후 자신의 직권으로 이를 거절했다. 눈이 둥그레진 브로바사 중역이 말했다. "브로바사는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소니사는 지금 회사라고 불릴 수 없을 만큼 작은 모임에 불과합니다. 소니사 제품에 브로바 상표를 넣으면 이는 소니사의 횡재가 아닙니까?"

모리다씨가 말했다. "브로바사도 50년전에는 우리 소니사와 같은 처지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브로바사가 50년만에 오늘과 같은 기업을 일으켰다면 앞으로 50년후에 우리 소니사도 그만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니사 제품은 소니의 이름으로만 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결국 모리다씨는 장래의 이미지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이익을 포기했다. 그후 40년이 지난 지금 이 두개 회사의 프로필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그의 마음속에 이윤극대화라는 단기적 목표가 자리했더라면 오늘날의 소니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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