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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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29 15:22 조회2,2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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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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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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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청주 유골 430구가 475구 중 가장 큰 일부
시체를 광주 근방에 묻으면 광주시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굴이 쉽게 될 것이기 때문에 광주로부터 멀리 떨어진 으슥한 곳에 가매장했을 것이다. 그 곳이 어디였을까? 청주였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27일 만인 2014년 5월 13일, 청주 흥덕지구에 축구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430구의 유골이 군대식 대오를 갖추어 1m 깊이의 넒은 운동장에 가매장돼 있는 것을 한 인부가 발견했다. 이곳은 광주로부터 200km 떨어져 있는 밀림지대였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청주를 선택했을까? 청주지역에는 문경새재가 있다. 그곳에는 간첩들의 소굴이 있고, 간첩 침투의 가장 큰 길목이 있다. 이곳을 지키는 간첩이 청주에 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청주 간첩들이 관리하고 감시하기 가장 좋은 곳이 청주지역인 것이다. “청주 유골 430구 발견”, 5월 14일 수많은 뉴스들이 떴지만 세월호 쓰나미에 묻혀 주의를 끌지 못했다. 이 430구의 유골은 북한 시체 475구 중 일부일 것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닐로 시체를 포장하는 방법은 오로지 1980년 광주에서만 있었기 때문이다. 5월 하순의 더위, 시체가 상해 악취 나는 체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비닐 포장이었다. 아래의 우측 사진에 나타나 있듯이 실제로 광주 도청에는 비닐로 시체를 포장하는 작업장이 있었다. 430구의 유골은 규격이 일정한 칠성판(나무판) 위에 얹혀 있었고, 두꺼운 흰색 비닐로 감겨 있었으며, 비닐에는 지워지지 않는 매직으로 군번처럼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이 430구의 유골은 모든 정황을 보아 광주에서 사살된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남대의 5.18연구소가 소장한 2개의 자료가 있다. 하나는 최봉희라는 당시 43세의 여교사의 증언이다. 시체를 총 정리한 광주시립 공동묘지 작업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5월 29일까지 기록한 시체의 총 수가 594구였다고 했다. 이 594라는 숫자는 430과 164를 보탠 숫자다. 당시 광주에서 발생한 총사망자 수가 164명, 청주에서 발굴된 수상한 유골이 430구다.
안병복이라는 60세 여성의 증언도 있다. 5월 27일 새벽에 시체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 여러 대가 포장을 휘날리면서 달리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이다. 이 430구의 무연고 유골은 2014년 10월 4일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온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이 컨테이너 박스에 실어갔을 것이라는 과학적 정황증거들이 [5.18답변서] 107-112쪽에 영상들과 함께 생동감 있게 정리돼 있다.
보도들이 이어지자 청주시는 즉각 보도를 통제해면서 이름도 없는 장례업체(현대장묘개발)의 수의 계약하여 증거를 인멸했다. 당시 화장 단가는 구당 1,000,000원 내외였는데 이 430구에 대해서는 화장해서 컨테이너박스에 안치하기까지 구당 단가 20.930원씩을 지불했다. 그리고 2014년 충북에 존재하는 4개의 화장터에서 화장한 무연고 유골은 모두 합쳐 18구였다. 2015년 9월 9일자 Dailymedi 기사에 의하면 2014년 충북에서 처리한 무연고 유골 화장처리 건수는 불과 18구, 비용은 13,627,000원이었다. 조달청 홈페이지에는 이장 업체를 찾는 입찰공고도 없었다. 그냥 증발한 것이다. 청주시는 법원에 430구를 화장했다는 데 대한 [화장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5월 단체들이 번개처럼 나서서 광주와는 무관한 유골이라며 선을 그었고, 이후 이 유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정은 전용기에 실려 간 진달래 430송이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아시안게임 회원국은 모두 45개국,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일찌감치 참가 의사를 통보했는데 유독 북한만은 시큰둥했다. 그러다 5월 24일, 갑자기 호들갑을 떨면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고 대시해 왔다. 2014년 8월 17일,북한은 전례 없이 김대중 사망 제5주년을 맞아 조화를 보낸다며 박지원, 임동원, 김홍일을 지명해 조화를 가지러 개성으로 오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개성에 가서 북한 스파이 사령관 김양건을 만났다. 이 순간에 아마도 청주 유골 처리에 대한 모의를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2014년 8월 19일, 8명의조 추첨 북한대표단이 인천에 왔다. 유골을 가져가기 위한 사전 정찰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2014년 10월 4일,북한 최고위급 3인방인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갑자기 인천에 왔다.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오려면 개막식에 와야지 왜 폐막식에 오는가? 그것도 김정은 호위무사 3인방이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국제스포츠 행사에 참석하는 외국 귀빈들은 개막식에 오지 폐막식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폐막식에 참가한 다른 나라 귀빈은 일체 없었다. 김정은 전용기는 남한에서 최상의 치외법권을 누리는 공작용 도구다. 430구가 적재된 컨테이너 박스는 아시안게임 조직위 청산실(실장 권경상)을 통해 북으로 갔을 것이다.
나머지 45송이는 이삭
475구의 유골 중 나머지 45구는 미처 5월 22일 먼동이 트기 전까지 추수하지 못한 이삭들일 것이며, 이들 중 12구는 5.18묘지에 묻힌 신원불상자일 것이다. 5월 23일 도청에서 촬영된 관들 중에는 하얀 찔레꽃이 얹혀 있는 관들이 있었고, 그 주위에 북한 간부들의 무거운 얼굴들이 촬영돼 있다. 찔레꽃 관들이 아마도 신원불상자로 알려진 12구에 해당할 것이다. 1997년 12월 20일, 종로서적이 발행한 [시민군 계엄군]이라는 책에는 저자인 이양우 국제신문 기자 일행이 보았다는 북한군 시체 2구가 소개돼 있다.
광주교도소 근방인 담양군 창평에서 5월 22일 오전, 리어카 두 대에 관을 하나씩 싣고 각 리어카 당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장정 4-5명이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야산으로 급하게 밀고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두 개의 관에는 하얀 찔레꽃이 얹혀 있었고, 리어카 뒤를 따르는 가족 같은 존재는 일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광주 야산에 묻힌 시체들이 더 있을 것이고, 나머지는 살릴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중상자들로, 북으로 철수하는 대형 선박에 실린 후 선박에서 사망했거나, 북한에 가서 사망했을 것이다.
도청에 놓여진 여러 개의 관들에는 하얀 찔레꽃이 놓여있었고, 그 관을 둘러싸고 30-50대 어깨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저자가 2016년 중국의 켐핀스키 호텔에서 저자와 같은 나이로 3일 동안 가깝게 지냈던 원동연(대남사업부 부부장)도 있었고, 당시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왔던 북한 적십자 대표 장재언도 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체는 중상을 입은 자들을 북으로 수송하는 과정에 배 안에서 또는 북에 도착해서 발생했을 것이다.
북경에서 저자가 3박4일 만났던 북 간부 2명, 광수사진에 있다.
이 장면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저자가 1997년 당시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게시했던 글 일부를 전재한다.
“1997년 한국일보가 북경에서 3박4일간의 남북 세미나를 주최했습니다. 북한에서 8명, 남한에서 12명이 갔지요. 저는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터라 무슨 선물을 살까 하고 백화점에 갔습니다. 생각 끝에 커다란 바퀴 가방 2개에 사탕을 가득 채워 가기로 했습니다. 북경 켐핀스키 호텔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아침 2층으로 갔습니다. 로비로 걸어가는데 저와 동갑인 북한의 원동연 선생이 저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아이 이거 지만원 선새이 아이십니까?” 하더군요. 그렇다 했더니 모두가 나서서 웃으면서 악수를 청해 왔습니다. 제 책들과 컬럼들을 거의 다 읽었다 하더군요. 글을 읽으면 마음과 인격을 읽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오전 세미나가 끝나고 점심을 했습니다. 원선생이라는 사람이 저와 함께 걸었습니다. 그 사람들 방은 2층, 저는 3층에 있었는데 제 방으로 따라 오더군요. “원선생님, 제가 외국에 나갔다 오면 집사람이 가장 먼저 제 손을 봅디다. 화장품이 뭐 있는가 하고” 마음 편하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원선생 부인이 무슨 화장품을 좋아하는지 나는 모르니 내 대신 맞는 화장품을 사서 선물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100달러를주었습니다. “아 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 ”
“선생님, 제가 떠나면서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문득 신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북한 어린이가 배가 아파 구르다가도 사탕만 먹으면 금방 낫는다는 내용이 생각나서 사탕을 저기 저 가방 두 개에 잔득 가지고 왔습니다. 불편하시면 그냥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지선생, 잠시만 가다려 주시지요. 제가 2층에 가서 의논을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올라왔습니다. “지선생 참으로 고맙습니다.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가방 두 개를 끌고 그의 뒤를 따라 2층으로 갔습니다. 그의 자존심을 위해서였습니다. 북측 단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서열 6위라 하더군요. 장제언이었습니다. “지선생, 참으로 고맙소. 다른 사람들은 시계 같은 걸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거운 짐을 아이들을 위해 사오시니 지선생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소. 참으로 고맙습니다” 북경에 있는 동안 저녁 식사를 할 때면 제 양 옆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와 보안요원이 앉았습니다. 제게 너무 살갑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리영희 교수가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너무 늙었습니다. 우리는 지선생을 더 훌륭한 민족주의자로 알고 있습니다” 북측단장 장재언은 제게 여러 차례 술을 건네면서 호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 북측 단장은 저를 한동안 포옹했습니다. “선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정감이 들어 있소”
2022.10.2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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