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조센진의 유치한 야만질, 여기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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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2-08 13:32 조회4,7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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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센진의 유치한 야만질, 여기서 멈춰라
군함도, 세계인에는 경이의 섬, 빨갱이들에는 지옥섬
일본 땅 남쪽 끝자락에 ‘하시마’라는 바위섬이 하나 있다. 일본의 전설기업 ‘미쓰비시’는 이 섬의 해저 1km가 넘는 곳까지 양질의 석탄이 매장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1,800년경에 이 바위섬를 사들였다. 그리고 주변의 바위들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연결하여 동서 160m, 남북 480m, 둘레 1.2km의 섬을 만들었다.
1941년에는 41만 톤의 석탄을 수출했고, 이때의 섬 주민이 5,000여 명에 이르러서 당시, 세계적으로 가징 인구밀도가 높았으며, 동경 인구밀도의 9배나 되었다고 한다. 이 작은 콘크리트 섬에 5,000여 명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미쓰비시는 현대판 고층아파트들을 세웠다. 광부의 가족이 함께 살았고, 소학교와 중학교가 있었고, 빠친코, 영화관, 이발소, 병원 등 문화시설도 있었다. 군함 크기에 울뚝불뚝 솟아난 건물들과 굴뚝이 형상하는 앙상블이 마치 군함 같이 생겼다하여 ‘군함도’라고 불렸다. 이는 일본사람들이 지은 별명이었다. 이 섬을 놓고 조센진 후예들은 '소름 돋는 지옥섬'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일본, 위안부, 강제노동, 5.18, 4.3 등에 대한 증언은 대부분 가짜
이 조센진 후예들은 북괴의 아오지 탄광에 대해 무슨 탄광이라 불렀을까? 이들 빨갱이들은 일본 미쓰비시가 조선 청년을 강제로 끌어다가 하루에 12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시킨 후 남는 시간에는 가혹행위를 가했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증언]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모략물이다.
1800년대 일본 기업은 공자의 도덕률에 따랐다
5.18에 대한 증언, 전두환에 대한 증언,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증언, 월남인 학살에 대한 증언, 노근리 학살에 대한 증언, 이 모두가 다 가짜였다. 1840년대의 [시부사와에이치]는 모든 일본기업들에 “한 손에는 공자의 도덕률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주판을 들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것이 일본 도덕경영의 바이블이 됐다. 이 사부사와의 초상이 2024년부터 일본 1만엔 권에 등장한다. 1920년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송하전기‘(파나소닉)를 [인간을 제조하는 회사]라고 명명했다.
세계인의 눈에는 군함도가 경이로운 문화유산, 빨갱이들만 찐따붙어
여기까지를 보면 군함도는 인류역사의 뛰어난 이정표이고, 일본의 진취적이고 과학적인 기상을 상징할 만한 문명의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서기 1,800년이면 조선은 사도세자를 한여름에 뒤주에 가둬놓고, 쪄서 죽이고, 굶겨서 죽였던 야만의 시대였다. 조선이 야만의 극치를 걷고 있던 동 시대에 일본은 작은 섬 바위 해저 1,000미터 아래에서 석탄을 캐내고 10층에 이르는 고층 아파트를 건설해, 광부들에게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필자는 ‘내편, 네편 갈라놓고 내편이 한 일이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만인이 아니다.
영화 군함도와 교과서 모략은 모두 창피한 조선의 진면목
세계의 모든 지식인들은 사물을 관찰할 때 ‘세계시민’(코스모폴리탄)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의 후예 중 가장 썩은 영혼을 가진 빨갱이들은 언제나 [남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원시적 행위를 찾아서 자행하고 있다. 1944년에 군함도에 500명 가량의 조선청년이 악의적인 학대를 받았다고 모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오로지 없는 증거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일본을 증오케 하고 있다.
1800년,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영조의 만행 이상의 일본인 만행은 없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만행은 사초에 기록돼 있는 것이지만 조선청년에 대한 탄압은 기록 자체가 없다. 사도세자가 유린당한 인권과 조선청년이 일본 땅 탄광갱도에서 당했다는 인권을 비교해보라. 사도세자의 역사를 알고 있는 조선인이면 부끄러워서라도 일본인들을 비방하지 못할 것이다.
대리석 글자는 영화 제작진이 조작한 글씨
문재인 때, 영화 [군함도]도 제작됐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장면은 대리석 돌판에 “어머니 보고싶어”, “배가고파요”, “고향에 가고싶다’!!! 라는 글씨다. 조선청년이 광부생활을 하면서 대리석에 썼다는 이 3개의 말은 세 사람이 각기 썼다고 설명돼 있는데, 글자체는 한 사람의 것이다. 표현에 3개 말이 각기 다르다. ”보고싶어“는 하댓말, ”배가고파요“는 존댓말, ”가고싶다“는 혼잣말로 느낌표까지 3개나 달았다. 한 시에 똑같이 똑같은 글씨체로 썼는데 내용은 3인이 각각 쓴 말이다. 대리석은 일본의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찾아내 그 대리석이 마치 군함도에 있는 대리석인 것처럼 조작도 했다. 기록들을 보면 글씨를 조작한 행위자는 영화촬영팀이었다고 자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