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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2개 증거 형사사건 답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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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10-16 10:44 조회12,7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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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2개 증거에 대한 재판이 3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처분 사건으로 수원고등법원에 항고돼 있습니다. 민사손해배상 사건은 광주고법에 항소돼 있습니다. 그리고 형사사건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아래 답변서는 형사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답 변 서

 

사건 2025고단4493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위반

피고인 지만원

 

위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무죄 이유를 제출합니다.

 

        결 론

 

1. 피고인에게 적용할 법조는 5.18특별법 81항이 아니라 82항입니다. 피고인은 육사를 나와 베트남에 파견되어 게릴라 전쟁을 4년간 수행한 후, 국비로 5년간 미해군 대학원에 유학하였습니다. 하버드나 스탠포드 학비의 2.5배나 되는 비싼 학비를 대면서, 경영학석사와 사회현상 분석의 최고봉이라는 시스템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박사 논문에서는 이 세상에 없는 수학공식 2, 수학정리 6, 미항공모함 출동 시 적재해야 할 수리부품 적정량을 계산하는 매머드급 알고리즘을 발명하였고, 그 학교 교수로 3년간 봉직함으로써, 동교에서 전설화돼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5.18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22년에 걸쳐 평균 400쪽 분량의 저서 14권을 시리즈로 저술한 행위는 분명한 학술행위이며, 2,3에서와 같이 대한민국 법원과 검찰도 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5.18관련 저작행위는 동법 82항에 해당합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이런 학술행위가 어째서 제82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인지, 어째서 증2,3의 법원 및 검찰의 무죄 및 불기소 판단과 달라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2. ‘북한개입표현이 한창 처벌되고 있을 때인 2024.6-7.경 권영해 전 안기부장 팀이 [북한 개입]을 사실로 인정하는 구체적인 증언을 하였습니다. “5.18은 북한이 통일 차원에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490명의 북 특공대원이 광주에서 사망했다. 그 명부가 인쇄되어 시중에 배포돼 있다. 이는 안기부가 직접 확인함 내용이다.이에 대해 2024.10.31. 광주시장과 5.18기념재단이 공동하여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이 증언에 동조하는 전 국회의원인 민경욱, 이영일 그리고 고영주 자유민주당 대표도 고발되었습니다. 이 고발사건이 경찰과 검찰을 거쳐 사법부에서 종결되기 전까지 [북한 개입] 표현은 허위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공소 내용

 

1. 누구든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서는 아니 되는데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를 통해 사실에 반하는 의견(공소장 23-9)이 담긴 서적을 발행하여 유포시켰다.

 

2.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실5.18은 전두환의 내란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항거한 민주화운동이고 이 항거 과정에 북한군이 개입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주장

 

적용 법조의 오류

 

1) 이 사건 피고인의 저서는 학술서적임으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하 5.18특별법) 81항에 해당하지 않고, 82항에 해당합니다.

 

(1) 82항은 동법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로 규정돼 있습니다.

 

(2) 피고인은 학자이고, 22년에 걸쳐 5.18관련 역사책을 14권 썼고, 법원과 검찰청으로부터 피고인의 저서 및 국회공청회에서의 발표내용이 학문영역의 학설이라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2) 피고인의 저서가 학술서적인 이유

 

피고인은 미국에 유학하여 수리공학을 도구로 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분석 분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 논문에서는 수학공식 2, 수학정리 6개 그리고 미 항공모함 출동 시 창고에 적재하고 나가야 할 40여만 개의 수리부품 적정량을 계산하는 매머드급 알고리즘을 발명하여 미 해군대학원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로 인정받고, 그 학교에서 3년 동안 교수로 봉직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전설화되어 있을 만큼 국위를 선양했던 사람입니다. 시스템공학은 100% 응용수학이며 미국 사회에서 그 난이도가 낙타의 바늘구멍만큼이나 험악한 학문으로 인식돼 있으며, 최상의 몰두 과정을 필요로 하는 학문입니다. 이 정도의 학문적 업적을 이룩하고, 미국 최고의 귀족학교인 미 해군대학원에서 전설적인 천재로 지금까지도 화자돼오는 응용수학자가 피고인인데 이런 피고인이 학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학자라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더구나 피고인은 1966년 육사를 졸업하고, 베트남에서 소위에서 대위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이나 게릴라 전투를 했기 때문에, 5.18작전 상황일지를 보자마자 5.18이 게릴라전이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두환 대통령 시대의 정보기관이 가장 방대했기 때문에 그때에도 눈치채지 못한 북한군 개입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단 한 사람의 자연인이 무슨 수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겠느냐는 비과학적인 말을 합니다. 하지만 수억만 명의 인구가 지구를 거쳐갔지만 오로지 1600년대의 뉴턴만이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과 숫자를 발견했고, 하얗게 보이는 햇빛이 보남파초노주빨이라는 7색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듯이 새로운 발견은 다수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한 사람이 발견합니다. 천동설이 상식이었던 시대에 지동설을 발견해낸 사람도 수억만의 다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가는 철기시대의 아프리카 종족처럼 자기들과 닮지 않은 사람을 교수목에 매달기부터 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종교권력이 지동설을 발견한 갈릴레이를 탄압했던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2) 법원과 검찰이 피고인의 저서와 발표내용이 학술적 활동이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2011.의 안양지원 판결문(2)에는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이라는 4부작 1,762쪽의 피고인 저서가 연구목적으로 쓰인 책이라 인정돼 있습니다. 2019.2.8.0 국회가 주최한 [5.18진실 대국민공청회]에서 피고인이 발표한 같은 내용에 대해 국회의원 설훈, 민병두, 최경환 등 다수가 고소하였지만, 남부지방검찰청은 2020.11.30.자 결정서에서 공청회에서의 행위가 연구결과에 따른 학문적 논쟁과 생각의 자유경쟁을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표현의 자유범위 내에서 피의자의 연구결과를 의견표명 입장에서 진술하였기에 피의자의 행위를 쉽사리 단정하여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하였습니다(3).고발자들이 재정신청을 했지만 서울고등법원 역시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3) 피고인이 18만쪽의 전두환 내란사건 수사기록을 모두 소화하여 역사의 엑기스를 뽑아내고 이를 당시의 정치사황과 융합하여 발행한 1,762쪽의 4부작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의 목차를 증1로 제출합니다.

 

 

10.26의 밤, 시해현장-대통령 비서실-차속 대화- 국방부 청사-B2벙커-전두환의 등장-김계원의 배신-김재규 연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많은 관련자들의 진술서를 조립하여 실제 현장을 구성하고 묘사하였습니다. 이는 군의 체계와 고위급 군사문화 그리고 시스템적 분석능력이 없으면 구성하기 어려울 만큼 난삽한 환경이었습니다. 또한 정승화가 천하를 다스리던 48일간, 정승화의 수사기록 지우기 행진과 군벌 형성과정이 묘사돼 있습니다. 12.12의 밤, 한남동의 총소리 현장, 대통령 재가 과정, 장태완의 술주정 과정, 피를 튀기는 과정, 군벌간의 내전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5.17의 밤, 김대중 주도의 선동시국이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학생시위, 노동폭력, 위장취업으로 인한 기업도산사태, 김대중의 대국가 선전포고, 24명으로 구성된 김대중의 혁명내각, 5.17 계엄확대와 김대중 내란자 전격 구속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장면들이 묘사돼 있습니다. 5.18. 5.18이 광주에서 발생하게 된 지역감정과 반골환경, 5.18 10일 동안의 사황일지 요약, -검사들의 역사뒤집기 억지와 추태, 공판과정의 묘사, 대법원 판결의 12가지 코미디, 재판의 쟁점 분석 등 10.26으로부터 5.18에 이르기까지 군사-정치-수사-법정으로 이어지는 모든 무대를 분석한 책입니다.

 

5.181981.1.23. 대법원이 이미 김대중의 내란으로 확정돼 있었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표현되는 기판력을 타 넘고 재심 과정 없이 5.18을 전두환의 내란사건으로 뒤집는 경우는 체제가 바뀌기 전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민주화세력은 1995.12.21. 5.18특별법이라는 위헌적 법을 만들어 재심 절차를 밟지 않고 재심을 하였습니다. 2심을 주재한 권성 재판장은 2심 판결문에서 참으로 괴이한 기재를 남겼습니다 광주시위대는 준-헌법기관이다. 이를 무력으로 제압한 것은 내란이다.” 이 사건 재판의 잣대는 헌법도 법률도 아니다.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국민인식법이다.” 여론재판 즉 인민재판이었다는 뜻입니다. 재판과정에서 검사들은 고장난 유성기 바늘처럼 이 사건은 접근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반복했고, 변호사들이 도대체 그 접근방법이 무엇입니까?” 물으면 말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해야 한다"는 접근방법은 권성 재판장의 판결문에 [자연법적 접근]이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해학적인 판결문이 있습니다. ”계엄을 선포해야 마느냐에 대한 판단은 고도의 정치-군사적 판단을 요하기 때문에 사법부가 개입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전두환의 마음에는 내란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내란하려는 마음으로 선포한 계엄령은 내란이다. 계엄령 선포권은 최규하 대통령에 있지만 최규하는 당시 전두화(2성장군)의 바지였기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이 서명한 것은 모두 전두환의 책임이다.“ ”정호용은 12.12 현장에는 없었지만 이후 전두환을 추수하여 요직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부하뇌동죄가 안정된다.“

 

피고인의 이 기재가 사실인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기적 코미디라 해야 할지 비극이라 해야 할지 참으로 황망합니다. 감히 재판부에 여쭙고자 합니다. 이런 정도의 분석이라면 피고인이 연구를 한 것인지, 범죄행위를 한 것인지 판단이 가시지 않으실런지요? 피고인이 이런 부분을 여기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오로지 이런 분석이 학술 행위가 아니라 범죄행위에 속한다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위와 같은 분석을 하려면 전두환 내란사건 수사-재판 기록을 탐구해야만 합니다. 18만 쪽 모두를 서가에 진열해 놓고 6년 동안 분석한 학자는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피고인 한 사람뿐입니다. 이것이 학술활동이 아니면 무엇이 학술활동이라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책 한 권도 읽기 싫어하는 한국사회에서 그 누가 전두환 내란사건 수사기록 18만 쪽을 모두 구해서 6년 동안 분석하고 엑기스를 추출해 4부작 1,762쪽에 담을 엄두를 낼 수 있는지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래는 피고인의 저작물들입니다. 모두 14권입니다. 이것이 학술행위가 아니라 범죄행위라는 것인지요?

 

 

(4) 5.18역사에 관련하여 피고인이 22년에 걸쳐 저작한 책이 평균 400쪽 분량으로 14권입니다. 이런 저술행위가 연구행위가 아니라 범죄행위라는 것인지요?

 

 

 

2. 이 사건 도서에는 허위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피고인의 이사건 도서에는 허위사실이 단 1개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료출처(data source)가 첨부된 42개 증거가 있고, 증거 각각에 대한 의견이 있고, 42개 증거 전체의 맥락을 짚은 총체적 의견이 있을 뿐입니다. 학문 세계에서는 전개된 사실과 논리들에 대한 총체적 의견을 학설이라고 부릅니다. 법집행기관들처럼 [허위사실]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42개 증거는 출처가 명기된 사실들뿐이고, 그 외의 허위사실이나 출처가 명기되지 않은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건 도서가 허위사실로 엮어진 것이라 법기관이 매도하는 것인지요? 법집행기관이라 해도 내용을 모두 정독했다면 감히 이 책이 광주를 비난하기 위해 허위사실로 엮어진 범죄물이라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피고인은 이 공소장을 쓸 때까지 검찰은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읽어보면 이런 공소장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집행기관의 이런 불성실한 자세는 인권과 학문을 탄압하고 역사의 진실을 함부로 매도하는 처사입니다.

 

[북한군 개입] 표현 그리고 [5.18은 게릴라전이며, 북한군이 지휘하였다]는 표현은 허위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42개 증거 전체에서 풍기는 메시지를 활자화한 것입니다. 이를 놓고 허위사실의 적시라고 하는 것은 학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도단의 억지입니다. 42개 증거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증거는 군 상황일지이며, 산만하게 기록돼 있는 군 상황일지를 통계학적 매너로 정리한 사람은 오로지 피고인 한 사람뿐입니다. 이것이 왜 허위사실이 되고 죄가 된다는 것인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서울에 가본 한 사람이 안 가본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피고인은 감히 역사를 매도할 수도 있는 이 사건에 대해 모든 법 공직자분들이 겸허하고 성실해 주시기를 앙청합니다. 책을 범죄물로 단죄하겠다는 검찰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진영에 매몰돼 도매금으로 덤핑하려 하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감찰은 누구이고 22년 동안 국가를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해온 피고인은 누구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일지 요약>

 

300명의 시위대가 20사단 차량부대의 이동계획을 입수하고, 하루 전에 군분교라는 매복지점에 중장비들을 동원하여 가두리장을 설치한 다음 5.21. 08시에 계획대로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하는 20사단 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한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인근에 있는 군용차량 제조사인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향했고,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5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에 접근하여, 600명이 공장을 점령한 후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400대를 탈취하자마자 곧바로 전남 17개 군에 위장돼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3정의 총기와 8톤 분량의 TNT를 탈취해가지고 전남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그날밤부터 광주교도소를 다섯 차례나 야간공격했다

 

<상황일지 요약>은 피고인이 20084부작 5.18역사책에서 처음 발표한 것이고, 이 요약문으로 인해 세상에는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인식들이 많이 확산됐습니다.

 

3. 공소장 2쪽의 3-9행에 기재된 글은 사실과 평가로 혼합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허위사실이 명기돼 있지 않고 사실과 사실에 대한 의견이 있을 뿐입니다. 사실과 의견이 왜 허위사실이 된다는 것인지 황당합니다.

 

김대중이 1980.4-5월에 걸쳐 24명으로 구성된 혁명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했기 때문에 1980.5.17. 자정에 24명이 모두 체포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5.17사건이라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국민 공지의 사실입니다. 5.17에 대한 사실을 평가한 것이 어째서 5.18에 대한 허위사실이 된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600명이 광주에 왔다는 표현은 위 요약된 상황일지 내용을 수행한 괴한들의 숫자가 600명이라는 기록이 4개나 있어서 그 행위자가 북한군이라고 해석한 것이지, 근거 없는 숫자가 아닙니다. 600명이라는 숫자는 이 사건 도서의 제32-42쪽에 그들이 수행한 행위와 함께 제시돼 있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허위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는 이 사건 도서의 제32-42쪽을 살피신 후에 600명이 허위사실인지의 여부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서에는 600명을 증명한 과정이 기재돼 있습니다. 무조건 못 들어 본 낯선 숫자이기 때문에 아니라 하지 마시고, 그 증명과정에 무슨 허위가 있었는지 명백하게 적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판단은 이 600명 부분 한 가지만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1개의 증거와 융합될 때 비소로 판단이 됩니다.

 

광주시위 기간 10일 동안 광주는 국가권력이 배제된 해방구였다는 사실은 국민공지의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째서 5.18에 대한 허위사실이라는 것인지 아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군대가 신속하게 시위를 격퇴했다는 것은 [평가]이지 허위사실의 적시가 아닙니다. 시위 기간은 10일이었습니다. 10일 만에 진압되었으면 신속한 진압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이것이 허위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5개 사항은 광주가 싫어하는 내용이지 허위사실이 아닙니다.

 

4. 공소장은 1997년 대법원 판결이 북한군 개입 사실을 배제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하지만 [1997년의 판결][북한군 개입]이라는 주제 사이에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습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평가됐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북한군 개입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던 1997년에는 북한군 개입이라는 가정‘(assumption)이 상상 범위 저 멀리 있었습니다. 판결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학자가 1997년에 알려졌던 사실들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발견해 내고, 그것에 대해 새로운 역사관을 피력했다 해서 그것이 허위사실이 된다면 이 사회에서는 새로운 발견도 새로운 발명도 모두 다 허위로 배척돼야 할 것입니다.

1997년 대법원 판결에는 20개의 판사시항이 있습니다. 대법원 판사들은 판시사항에 대해서만 판결합니다. 20개 판시사항 중, 북한군 개입에 대한 판시 사항도 없었고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인가에 대한 판시사항도 없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1995.12.21.에 통과된 5.18특별법에 정치인들이 명시한 [5.18민주화운동]을 판단과정 없이 그대로 기정사실인 것으로 수용하여 이를 잣대로 신군부의 진압행위를 내란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1990, 3당 합당을 위해 동원한 정치인들의 타협의 산물일 뿐,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네이밍은 오로지 정치인들 사이의 흥정물이었습니다.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진면목입니다.

 

5.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대법원의 잣대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사법부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갖습니다.

 

운동(movement)이라는 것은 새마을운동이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운동처럼 지휘자들이 있고, 조직이 있고, 목표와 슬로건이 있고, 오랜 기간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런데 광주 10일간의 시위는 총이 불을 뿜는 충돌사건이었지,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충돌사건에는 광주 쪽의 지휘자가 전혀 없습니다. 지휘자 없는 [운동]이 있다는 말은 코미디입니다. 민주화라는 목표도 없었고, 민주화를 의미하는 구호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찢어죽이자 전두환” “석방하라 김대중이런 구호가 전부였습니다. 이 두 구호가 민주화 구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정치인들이야 이해타산에 따라 신념을 바꾼다지만, 사법부가 이런 10일간의 무장 폭력 충돌사건을 운동(movement)이라 규정한 것은 대법원의 보편타당한 양식 자체를 의심케 합니다. 이러한 지적도 피고인이 학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지적일 것입니다. 피고인은 솔직히 사법부의 이런 양식에 의해 재판받는 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6. 권영해-김경제-황장엽-미 국무부 장관-CIA문서로 이어지는 증언들이 한결같이 5.18은 북한 소행이라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5.18진상규명법은 2019.3.에 입법화되었고, 39항에는 [북한군 개입] 여부를 규명하라는 명령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 산하에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2024.6.1,246쪽의 [5.18진상조사보고서]를 발행하였습니다. 2024.6. 이전까지는 [북한군 개입]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북한 개입] 표현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수십년 동안 탄압을 받고 있던 시기인 2024.6-7.,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정점으로 하는 3인의 안기부 팀이 매우 구체적인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5.18조사위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회피했습니다. 5.18조사위가 다루지 않고 회피한 쟁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밀해제된 미CIA문서들입이다, 이 문서들에는 5.18을 절대로 광주시민이 주도했다고 볼 수 없는 결정적 증거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2024.7.경 권영해 전 안기부장-최명재 안기부1차장-대북공작원으로 구성된 3인의 안기부 팀이 일간지 스카이데일리에 2회에 걸쳐 증언한 내용이 있습니다(4,5). “5.18은 북한이 통일차원에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북한특수군 490명이 광주에서 사살됐다. 490명에 대한 명단이, 생년월인, 출생지, 소속부대, 계급, 사망일(1980.9.16.) 항목으로 작성돼 있고, 시중에 명단이 발행돼 유통되고 있다는 내용이 전 안기부 수뇌부 팀에 의해 증언되었습니다.


같은 취지의 증언을 1999.12.경 김대중 전대통령 비밀특사로 북을 89일 일정으로 방문했던 김경재 전 의원도 2023. K-news에 한 바 있습니다(6). 1997-1999년 당시 최상의 국가정보를 다루던 두 사람이 황장엽-김덕홍 팀이 증언 했던 내용을 보다 더 자세하게 구체화시켜 입증한 것입니다.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도 이 두 인물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5.18은 북한이 사주해놓고 그 책임을 남쪽에 전가했으며, 5.18사건이 종결된 후 북한의 대남공작부 소속 간부들이 줄줄이 훈장을 받았다는 증언입

니다.


미국이 2020.5.11.에 비밀해제하여 한국정부에 이관한 미CIA보고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하지만 5.18조사위는 이 내용도 보고서에 담기를 회피하였습니다.

 

 

CIA보고서에는 ”5.18을 주도한 550명의 극렬분자들은 인민재판을 열어 즉결처형을 하였고, 북과 연계돼 있다는 결정적인 내용이 이사건 도서의 168-169쪽에 있습니다. 피고는 이 사건 도서 168-172쪽에 비밀해제된 CIA보고서 내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4장의 사진을 수록하였습니다. 4명의 광주시민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즉결처분장으로 끌려가는 장면들입니다. 아래 4매의 사진은 이사건 도서 172쪽에 있습니다.

 

즉결처분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카터정권 당시의 미국무장관 머스키가 위 CIA보고서 내용을 사실로 확인시켜준 발언이 담긴 기사가 있지만 5.18조사위는 이마저 보고서에 담기를 회피하였습니다(7).

 

당시 카터 정부의 에드먼드 머스키 (Edmond Muskie) 국무장관은 그 525일자 전문에서 "광주상황이 악화되었다. 온건파 시민위원회는 상황 통제력을 상실하고 과격파가 도청을 장악했다. 인민재판소가 설치되고 몇 건의 사형 집행이 실시되었다. 학생 시위대는 혁명정부를 세우겠다고 말하는 정체불명의 무장난동자들로 대체되었다고 하여 인민재판소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The situation in Kwangju has taken a rather grim turn. The moderate citizens committee has lost control of the situation and the radicals appear to be in charge. Peoples courts have been set up and some executions have taken place. Student demonstrators have been largely replaced by unidentified armed radicals who are talking of setting up a revolutionary government.

 

6에는 아래 4개의 사진이 있습니다. 피고인이 도서에서 소개한 내용을 시사저널이 미국무장관의 발언과 CIA보고서를 증거로 들어 사실로 확인해준 것입니다. 피고인의 학설이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6에서는 이들이 모두 극렬분자들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2019.5.17.자 뉴데일리 기사가 있습니다.

 

 

“1980525일자 기록을 보면 당시 카터 정부의 국무장관 에드먼드 머스키(Edmond Muskie)정체를 알수없는 무장 괴한들이 온건한 시민위원회를 대신해서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전문을 보냈다. 다음 날인 526일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Gleysteen) 주한 미국대사가 광주사태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온건 시위자들이 반납했던 무기를 과격분자들이 도로 찾아 가져왔으며 인민재판을 열고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