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까리 등불' 노래 작사자 '조 명암'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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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nf247661 작성일24-12-08 12:45 조회3,6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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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조 명암'작사, '이 봉룡'작곡; '최 병호'님 노래 '아주까리 등불'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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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자 '조 명암'의 본명은 '조 령출(趙 䉹出)'이며 고향은 충남 보령군.
고향에서 국민학교 졸업 후 서울로 중고등학교 유학하고부터 대중가요 작사가로 활동,
여러가지 필명; '무적인' 등 수다함. 대중가요 작사를 레코드 회사 1개소와만 전속 계약 맺으니
타 회사에서로부터,,. 그래서 필명이 많은데, 해방전 대중가요 작사의 약 1/3 이상일 터.
레코드 히트한 가수들로는; '김 정구, 이 인권, 이 해연, 이 난영, 장 세정, 백 년설, 남 인수,
고 운봉, 이난영.이은파, 최 병호, ,,.' 등 數多함.
'고향초'{송 민도 원창, 장 세정 리바이벌}을 작사한 '김 다인'{박 영호}처럼, K.A.P.F. 출신인 것도 같고, 일본 와세대{조도전}대학 출신 것도 같으며.
대중가요 작사로 유명함도 공통이고, 빨갱이에 속아 해방 후 6.25전에 자진 월북한 점도 같다. ,,.
다만 '김 다인'{박 영호}는 자진 월북이로되 죄인으로 도피한 게 아니나
'조 령출'은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 사건' _ 주범 ) _ _'박 헌영 남로당 당수'의 공범으로,
고향 충남 보령에 나 어린 딸을 남기고, 허벅 지, 마누라 대동 월북 도주함 점이며,
월북해서는, 눈치 보면서, 북괴 금 일쎄이 롬의 문화부 차관을 죽을 때까지 철밥그릇 지내다가
'금 일쎄이' 롬보다 몇 년 더 살다 뒈졌는데, ,,.,
고아 아닌 고아로 고향 '충남 보령'에 남겨졌던 나어린 딸은 세월이 흘러, 빨갱이 '로 무혈'롬때
서울에서 실시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대회'에, 북에서 새로 낳은 장성한 딸을 대동한 마누라만
서울에 불쌍한 나어린 딸을 만나고자 온 것이 조선일보에 1면 기사로 크게 보도되기도! ,,,.
"상관에 지은 죄는 사함이 가능치만, 아랫것에 지은 죄는 사함받지 못한다!" _ _ 고인(古人) _ _
♬ 김 정구 : 뒤져본 사진첩
#김정구#.# 뒤져본 사진첩#.# 강사랑 #.# 작사 #.# 이봉룡 #.# 작곡 #.# 만요의 대부 #,# (나의 소장용 레코드 판)# (youtube.com)
♪ 이 인권 : 꿈꾸는 백마강
꿈꾸는 백마강 1940 이인권 (youtube.com)
♩ 장 세정 : 역마차
♬ 이 해연 : 제주 뱃사공{소주 뱃사공}
♬ 백 년설 : 고향설
♪ 이 화자 : 어머님전 상서
어머님 전 상백 1939 이화자 (youtube.com)
♩ 이 규남 : 진주라 천리길
♬ 박 향림 : 쓸쓸한 여관방
♪ 경성부르스. 쓸쓸한 여관방. 이인권. 대사 - 검색 이미지 (bing.com)
♪ 이 은파. 이 난영. : 꽃 피는 浦口(포구)
♩♪♬ 고 운봉 : 船艙(선창)
https://www.youtube.com/watch?v=zdr8wKRguPA
https://www.youtube.com/watch?v=hdZ1OSYqM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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