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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 485 ] 제 489광수 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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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1-11 18:35 조회4,7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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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 485 ]

 

489광수 정광일

 

탈북자 재판의 성격

 

201928, 지만원이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4시간 동안 열린 대국민 공청회에서 5.18진실을 발표하자, 즉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하태경이 세종시 류재화 변호사를 선임하고 탈북자 12명을 섭외하여 지만원을 집단적으로 고소시켰다. 하태경이 서울중앙지검에 직접 탈북자 일부를 인솔하고 와서 단체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검사는 탈북자들과의 전화 진술을 간단히 마치고, 무조건 탈북자 주장을 진실한 사실로 인정하여 공소장을 썼다. 2021114일 첫 재판이 열렸다.

 

재판 진행은 고소인들을 1회에 1명씩 소환해 증인신문을 받게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검사는 탈북자가 증인으로 나올 때마다 물었다. “증인은 특수군 훈련을 받았나요?” 탈북자가 광주에 왔으면 무조건 특수군으로만 왔을 것이라는 검사의 선입견을 가지고 피고인을 엉뚱한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질문이었다. 게릴라전에는 언제나 군병 숫자에 버금가는 남녀요소 민간 집단이 기본 편제로 동원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광주에서는 연예인, 로얄패밀리, 미술가, 문학인, 엘리트, 사회단체, 공무원 등이 두루 선발돼 특수군의 드러나는 자세와 표정을 감추기 위해 가족인 것처럼 보호하면서 시내 정찰을 하게 하고 시체장사를 하는 사진을 찍어 국내외에 대한민국을 살인을 일삼는 국가라는 딱지를 붙여 남침 명분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600명 이상의 민간 집단을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려하지도 않았다.

 

2022년부터 탈북자 한 사람씩을 불렀지만 모두 다 벌금을 물려야만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에야 증언대에 섰다. 법정에 나오기가 귀찮고, 질문받기가 두려운 것이다. 맨 처음 이순실이 지정됐지만 두 차례나 바람을 맞추고 세 번째 출석해 150분 동안 질문을 받자 그로기 상태가 됐다. 수많은 방송들을 하고 수많은 간증을 하고, 인터뷰를 했지만, 한 가지 한 가지에 대해 말할 때마다 내용이 달랐다. 나중에는 재판부에 나는 북한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성남에서 한의사를 차린 박세현은 법정에 나와 소를 취하하겠다고 했다.

 

이제까지 증인으로 나왔던 탈북자는 이순실 박세현 이민복 강철환 김성민이고 정광일이다. 두 아들와 아울러 함께 브로커가 경비대장에게 뇌물을 써서 두만강을 건넜다는 장인숙은 4차례나 소환했는 데도 칭병하여 나오지 않고 있다. 앞으로 남은 탈북자는 김영순 안명철 김용화 최주활 김정아다. 2025121일 오후 2시에는 안명철이 출석할 차례다. 안명철은 지난 10월에 출두해야 했지만 바람을 맞췄다.

 

탈북자를 신문하는 이유

 

탈북자들이 고소한 이유는 두 가지다. 1980년 당시, 나이로 보나 당시의 자기가 처한 입장으로 보나 광주에 올 수 없었다는 것이고 얼굴이 자기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증인을 부르는 이유는 에 대한 탈북자들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느냐, 과연 탈북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느냐, 피고인이 위장탈북자라고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한 가지 두드러지는 것은 12명의 탈북자들 중 진짜로 탈북자 신분으로 북중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아슬아슬한 스토리를 달고 건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다 동네 개울 건너듯 건너왔다는 것이다. 진짜 탈북자가 안 보이는 것이다.

 

199011월 압록강을 건넜다는 이민복은 강에 철조망이 쳐지고 탐조등도 비치여 경비가 4배로 강화되었다고 했고, 1992년 강을 건넜다는 강철환은 경비병들에 술을 왕창 먹여놓고 잠든 사이 새벽 2시에 유유히 건넜다고 했다. 이순실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9번을 건넜는데 개울 건너듯, 아기를 배낭에 메고 건넜다고 했다. 19979월에 아들 두 명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는 장인숙은 국경을 4m만 벗어나도 총살시키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경비대장에 뇌물을 써서 건넜다고 했다. 2001년 강을 건넜다는 김영순은 보위부에 한상 크게 차려주고, 건너가면 갚겠다는 말로 구슬려서 보위부원이 전지불을 들고 건네주었다고 했다. 정광일은 199811월 박세현과 그 부모를 청진에서 중국 심양까지 업어다 주었고, 자기가 탈북했던 2003년의 두만강은 경비가 허술했고, 중국에서도 마음 놓고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피고인이 가장 의심했던 국정원의 기획 탈북, 즉 국정원이 북 당국과 짜고 광주에 왔던 북한인들을 기획적으로 탈북시켰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의심이 정광일 신문 과정에서 풀렸다. 국정원이 기획 탈북시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박세현의 탈북 스토리를 보면 199811, 1993년에 먼저 탈북한 둘째형 박수현이 돈을 많이 써서 브로커를 보내 부모님과 막내인 박세현을 강을 건네주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브로커 역할을 바로 정광일이 했다는 것이다. 박세현의 탈북 이야기와 정광일의 이야기가 100% 일치하는 것이다.

 

광수가 내 얼굴이 아니다는 주장은 더 이상 무효

 

노숙자담요는 미 CIA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안면인식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광주현장 얼굴 하나하나를 컴퓨터로 오려서 그것을 북한 인물이 저장돼있는 북한 인물 DB(데이터 베이스)에 연결했고, 연결하면 컴퓨터가 광주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찾아주는 방법으로 모두 661명이나 되는 광수를 3년에 걸쳐 발굴해냈다. 그런데 정규재, 황장수 등을 위시한 거의 모든 유튜버들이 이를 웃기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검사들도 판사들도 웃기는 것이라며 이 방법을 불법이라 했고, 판사가 육안으로 판단한 것이 정확하다며 피고인 지만원에 유죄를 선고했다. 2016년 국과수 문기웅 감정관은 심지어 모든 신체 부위까지 다 감정해야만 본인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고, 1980년 사진은 화도가 낮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본인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모든 판사들은 이 문기웅 감정 결과를 잣대로 노숙자담요의 분석이 신뢰성 없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판결했다.

 

노숙자담요가 갈릴레이로 몰린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는 두 가지 신문 보도가 나왔다. 하나는 두 살 때 사진을 가지고 34세가 된 성인의 얼굴을 찾아내 생부모를 찾았다는 보도와 함께 현재의 얼굴로 25년 전 탈옥한 죄수의 얼굴을 찾아냈다는 보도다. 이것으로 국과수 문기웅 감정관이 생사람을 잡고, 이어서 판사가 생사람 잡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다른 하나는 2024. 10. 21. 조선일보의 만물상 [AI 안면인식] 보도 내용이다. 이 보도 내용은 한마디로 노숙자담요의 컴퓨터에 의한 안면인식 방법이 [두 개의 얼굴이 동일인이냐의 여부를 가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입증시켜주는 기사였다.

 

조선일보의 [AI 안면인식] 기사의 핵심은 두가지다.

[1] 1967년 미 CIA는 과학적 안면인식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수학자이자 컴퓨터 학자인 '우드로 윌슨 블러브 블레드소'에게 과제를 주었다. 블레드소는 눈, , , 눈썹, 입술 등 주요 부위 간의 위치를 데이터화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노숙자담요가 설명하는 '기하학적 도면'인 것이다. 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법집행기관은 피의자의 머그샷을 사진 DB에 연결하여 동일인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활용해 왔다. 손가락 지문인식과 동일한 검색 방법이다. 안면인식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중국은 이 방법을 사용하여 전 국토를 감옥화하고 있다.

[2] 육안에 의한 안면인식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정원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 장군의 얼굴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A1 안면인식 기술을 동원하였다. 그 결과 우크라 현지 얼굴이 20238월 김정은을 수행했던 미사일 기술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불과 1년 시차로 촬영된 두 개의 얼굴 사진을 놓고 동일인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도 육안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CIA 출신 노숙자담요가 661명의 광수를 찾아낸 방법만이 과학이고, 국과수 문기웅 감정관과 판사, 검사들의 주장이 비과학인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 5.18 기념재단은 661명 중 15명에 개별 접근하여 "000 광수가 당신 얼굴이라고 우겨라. 나머지는 변호사가 알아서 한다'며 지만원을 고소하라 했고, 손해배상도 청구하라 했다. 광주 양아치급 소년들과 80대 노파를 내세웠다. 육안으로 봐도 나이테나 얼굴 판형이 택도 없지만 판검사들은 무조건 광주인들의 얼굴이 광수 얼굴이라 판단했다. 이것이 지만원에 씌워진 가장 큰 형량의 범죄였다. 기가 막힐 법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지금 서울중앙지검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탈북자들의 고소사건은 어떤가? 노숙자담요는 컴퓨터로 탈북자들을 찾아냈고, 노숙자담요가 찾아낸 두 얼굴(광주얼굴, 현재 얼굴)이 얼른 봐도 동일인으로 보이는데도 탈북자들은 자기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담은 컴퓨터로 찾아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무조건 자기 얼굴이 아니라 한다. 노담은 과학이고, 탈북자는 비과학이다. 탈북자가 두 얼굴(광주 얼굴과 현재 얼굴)이 같은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국정원처럼 AI 안면인식 컴퓨터를 통해 주장해야 할 것이다. 지만원도 블레드소처럼 수학자다. 그래서 노담의 기하학적 분석을 과학으로 받아들였다. 과학자들 사이에는 공감대가 넓다.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의 기법을 과학으로 수용한 것이 범죄가 될 수는 없다.

 

정광일의 프로필

 

정광일은 전형적인 국정원이 기획하여 탈북시킨 위장탈북자로 보인다. 정광일의 증언에 의하면 박세현의 4형제와 그 부모인 6인 가족 모두가 국정원이 탈북시킨 위장탈북자들이다. 탈북자 12인이 쓴 탈북 스토리는 모두가 그들의 불완전한 상상력으로 지어낸 4류 소설들이다. 이들이 남한에 와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힌 탈북과정을 보면 현실감이 전혀 없고, 황당하며 이야기들 상호 간에 일관성이 없다.

 

정광일은 1963년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 부부가 낳은 4남매 중 2남이다. 부친은 연길사범 대학교수였는데 문화대혁명 시 간첩으로 지목돼 정광일이 4살이었던 1967년에 감옥에 갔고, 나머지 가족은 홍위병과 이웃의 공격을 피해 야반도주해 북한으로 도망왔다. 중국에서는 반동의 집안이 돼서 유치원에도 가지 못했다. 정광일이 7살 되던 해인 196912, 모친은 4남매를 데리고 북으로 도주했다. 중국에서는 구호테라는 반죽만 먹었다. 콩껍질을 밀가루로 반죽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회령초대소에 오니 쌀밥도 주었고, 고기도 주었다 한다. 꿰맨 옷도 버리게 하고 새 옷으로 주었다 한다. 회령에 와서 어머니는 정광일이 12~13세 때 북한 남자와 재혼을 하여 정광일은 계부 밑에서 자랐다 한다. 재혼하면서 모친은 중국에 있는 부친이 사망했다고 정광일에게 말했는데, 1987년 제대를 하고 나오니까 고모가 부친이 생존해 있다는 말을 해주어서, 계부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고 한다.

정광일의 경력은 1989, 26세에서 탈북한 해인 2004, 41세까지 15년 동안에 화려하게 가공됐다.

 

정광일의 약력.

 

정광일의 약력은 두 가지다. 본인이 밝힌 약력과 북한 매체가 밝힌 약력이다. 약력은 군복무 기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본인이 주장하기로 그는 1979 ~1989 사이에 군복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매체는 그의 군복무 기간이 1981.4~1987.1까지라고 한다. 어느 쪽 말이 더 타당한가? 그가 196912월에 회령으로 도망왔을 때 그는 7살이라 했다. 녹취서 29쪽에서 그는 196912월에 회령에 도착해 유치원에 다녔다고 했다. 1970년인 8살 때 유치원을 졸업했다고 했다. 1971년에야 인민학교(초등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그는 녹취서 29쪽에서 인민학교를 8세에 입학했다고 했다. 북한은 인민학교가 5, 중고등학교가 6년이다. 8세에 11년을 보태면 19세가 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17살에 고교를 졸업하면서 곧장 군대에 간다. 인민학교를 6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광일은 북한인보다 2년 늦게 학교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졸업도 2년 늦게 졸업했기 때문에 군에 간 해는 1981.4월이 맞다. 경력 부분의 첫 줄이 거짓인 것이다. 군복무 시작일은 1979년이 아니라 1981년이 맞다. 북한당국의 발표가 맞고 정광일의 이야기가 틀린 것이다.

 

정광일이 밝힌 경력에서 정광일은 1989~1992까지 3년이 블랭크로 비어있다. 북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정광일의 주장으로는 1989년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에 당이 모친에게 애국물자 상납을 은근히 압박해서 모친이 연길 부친으로부터 40~50만 달러를 받아 그 돈으로 철도 차량으로 돼지 1차량, 밀가루 5차량, 옥수수 10차량을 당에 바쳤고, 그 대가로 모친이 1급 국기훈장을 받았는데 그 헌납 덕분으로 정광일이 노동현장에 가지 않고 고향으로 귀가해 쉬었다고 했다. 2012년 스웨덴이 북한에 45만 달러어치의 식량 지원을 했다. 이 국가 단위의 엄청난 돈을 그것도 야반도주해 북한에 가서 재혼해 사는 여자에게 전남편이 주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정광일은 아버지가 나중에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어 중국 정부가 아버지에게 거금을 보상해 주었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큰 식당을 운영해서 거금을 주었다고 했다. 이 내용은 2018.7.9.자 오도신문에 기사화 돼 있다.

 

북한에는 은행도 없는데 40~50만 달러를 어떻게 송금할 수 있으며, 북한에는 시장도 없는데 어떻게 화차 16차량분에 해당하는 대용량의 물건을 한 아낙이 살 수 있는지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피고인이 이에 대해 법정에서 질문하자 정광일은 이 부분 모두를 기자가 함부로 쓴 것이라 발뺌을 했다. 그러면 이 덕분으로 집에 가서 쉬었다는 3년의 경력 펑크는 더욱 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광일이 주장하는 정광일 경력>

 

1979~1989 군사복무

1989~1992 집에서 휴식

1992~1994 824 연락소 통신정보담당

1994~1996 강원도 문천 분소

1996 1998 청진 분소 종합지도원

1998~1999 조선 평양무역회사 청진 지사장

1999.7~2004.4 9개월간 간첩혐의로 체포돼 고문 당함

2000.4~2003.4. 요덕수용소 혁명화 구역 반장

 

<북한 매체가 발표한 정광일 경력>

 

1981.4~1987.1 군사복무

1987.2~1992.5 회령 기계 수리 공장 노동자

1992.6~1997.2 회령 모피공장 노동자

1997.3~1997.7 청진시 기계공장 노동자

1997.8~2000.1 평양시 무역국 청진 농수산물 가공사업소 노동자

2000.2~2003.4 로동 교화소(밀수, 인신매매 혐의. 7차례 국경을 넘어 유색 금속 밀매. 남한 사람에 군사기밀 제공 등)

 

정광일은 조선족이라 신분상 대학을 가지 못했다. 조선족은 잘해야 '복잡군중'이다. 그런데 그는 종합지도원도 했고, 무역회사 천진 지사장도 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신분 체계상 있을 수 없다. 말단 노동자였다는 북한 매체의 발표내용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요덕 수용소 3년의 뻥튀기

 

정광일이 중국에 자주 다녔다는 것은 본인도 북측 당국도 공히 인정한다. 정광일의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1999.7.22. 2명의 보위부원이 청진 숙소에 들어와 간첩 혐의로 체포해 9개월 동안 비둘기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몸무게가 75kg에서 36kg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는 녹취서 22쪽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 몸무게가 75kg에서 35kg으로 줄었다고 했지요?

: , 맞습니다

: 그때의 몸 상태가 어땠나요?

: 계단도 못 올라가서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몽둥이에 맞아서 아랫니가 다 부러졌습니다.

(그는 증90에서 '수감자들은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수감자들은 걸어 다니는 해골 같았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을 상대로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면 요덕수용소의 강도가 높은 완전통제구역으로 가지, 강도가 낮은 '혁명화 구역'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탈북자들이 알려준 상식인데 정광일은 간첩죄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도 통제가 약한 '혁명화 구역'으로 갔다고 한다.)

녹취서 22쪽이다.

: 증인은 요덕수용소에 2000.4~2003.4.까지 3년 있었나요?

: , 2000.4.6부터 2003.4.12까지 있었습니다.

: 거기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반장을 23개월 했다 했지요?

: 24개월 정도 했을 겁니다.

: 처음 6개월은 일반 수용자였는데 증인이 일을 너무 잘해서 당 간부인 장군이 증인을 신임해서 13개월 동안 반장직을 했다 했지요?

: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 계단도 못 올라가는데 어떻게 열심히 일해서 반장으로 발탁이 되었나요?

: 했다니까요.

: 반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 반원을 관리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요?

: 대열을 세워서 숙소에서 작업장까지 인도하고, 작업장에서 분조별로 작업을 배치합니다.

: 남한 같으면 그런 일은 교도관들이 하고 수용자들이 하지 않는데요.

: 여기는 농장입니다.

: 수용소에서 수용자에게 지휘를 맡겼다는 건가요?

: 저 이제 답변 못 하겠습니다. 제가 취조받는 느낌이 들어서요.

: 중인이 극심한 고문으로 75kg에서 35kg으로 체중이 줄었다면 누워있기도 힘든데 어떻게 성과를 다른 사람보다 엄청 더 내서 발탁이 되었는지 불가사의한데요?

: 답변 거부하겠습니다. 저를 험담하기 때문에 저는 답변을 거부할 거예요.

: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3년 동안 증인의 반에 몇 명이나 있었나요?

: 수백 명 있었습니다.

: 증인의 반에는요?

: 100명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 40명인데?

: 40명이지만 죽게 되면 또 채워지고, 합니다.

(참고: 수용소 밖에서 요덕의 혁명화 구역에 인력을 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도 아닌데 죽어 나가면 계속 보충한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3년 동안 40명 집단에서 100명씩 죽었다면 평균 1년에 40명 중 25명씩 죽어 나갔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사망률이 62.5%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높은 사망율 가운데서 계단도 기어다니고, 몽둥이를 맞아 이가 다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면 온몸에 어혈이 져서 사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터인데 정광일이 날고뛰어서 최우수 노동자가 되어 반장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과장이다.)

: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무슨 대화를 하나요?

: 왜 들어왔는지 물어봅니다.

: 이름, 생년월일, 입소 이유를 다 물어서 외웠다는 것인가요?

:

(91, 시사경제 등에 의하면 정광일은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180명의 동료 수감자에 대해 이름, 나이, 수감 이유를 다 외워가지고 한국에 와서 이를 문서로 작성해 2015년에 유엔 북한인권 사무소에 제출했다는 기사가 있다. 요덕에서 풀려날 때는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설사 필기를 해놓았다 해도 출소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다. 180명의 이름, 나이 수용된 이유를 기억한다는 것은 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 남조선 국정원 직원을 상대로 한 간첩 혐의를 가지고도 3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만 수용 생활을 시키고 내보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에 대해, 증인의 설명으로는 '당이 믿어주었다!' '누군가가 밖에서 무고함을 증명해 주었다.' 이 두 가지인데 맞나요?

: , 맞습니다.

: 이 정도는 남한에서도 있기 어려운 일인데요?

: 제가 만약 간첩이라면 김정은을 ICC에 제소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간첩이라고 몰아가는 목적이 뭐예요.

: (녹취록 27) 요덕수용소에 가면 자기 살기 바쁘고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고, 살아남기에도 벅찰 텐데, 증인은 187명에 대해서 오로지 김정일을 국제사법 재판소에 회부시켜야 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187명의 이름, 나이, 사연을 전부 암기하였다는 것은 슈바이처 이상이고, 예수님에 가까운 경지일 텐데요, 또 중인은 중국에 가서까지 700명이나 되는 사람을 탈북시켰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인물일 텐데 어떤가요?

: 그런데 왜 저를 그렇게 모함합니까?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그리고 저는 더 의심스러운 것은, 그 사건이 제가 유엔사무소에 이 명단을 제출한 다음에 바로 북한에서 저를 헐뜯고 험담하는 동영상이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를 광수라고 하는데 제발 멈춰주세요. 여기까지만 하세요. 저는 절대로 광수가 아니고요.

 

탈북 과정

 

92, 오도신문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 그는 2003412일 요덕에서 석방되어 인터뷰 13일만인 2003425일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고, 곧장 연길로 가서 9개월 동안 700여 명의 탈북자들을 남한에 보내는 브로커 역할을 했고, 이후 3개월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고 한다.

 

아래는 녹취서 26쪽 내용이다.

: 2003년에는 강변에 모래 흔적선, 지뢰, 철조망 이런 것이 없었나요?

: 없었습니다. 경비대만 있었습니다.

: 2003년인데 경비병밖에 없었다는 것인가요?

:

: 그런데 다른 탈북자들은 그 이전에도 철조망도 있었고 다 있었다고 하던데요.

: 아니요. 거짓말입니다. 정확히 없었습니다.

: 그러면 경비병은 피하기가 쉬웠나요?

: , 그때는 쉬웠습니다. 순찰만 돌고, 지금처럼 잠복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 중국에 가면 중국에서 공안이 눈 뜨고 아무것도 안보나요?

: 아니요. 중국은 중국말만 어느 정도 할 줄 알면.....

: 막 돌아다녀도 되나요?

: 막 돌아다녔습니다.

: 증인은 연길에 9개월 동안 있으면서 은신해 있었다고 했는데, 은신해 있었다는 얘기가 무슨 뜻인가요?

: 중국에 왔으니까 당연히 중국 신분증이 없고, 그때 당시 제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나올 때 지장을 다 찍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보고 듣고 한 것을 나가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까지 하고 나서 탈북을 했으니까. 저를 체포하려고 체포자가 파견되어서. 그것을 아니까 제가 아무래도 숨어 있어야 되겠지요. 한국에 오려고 하는데 기회가 마땅치 않으니까 중국에 숨어 있었습니다.

: 숨어 있는 상태에서 700명을 남한으로 보내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요?

: 맞아요.

: 9개월 동안 700명이면 매월 평균 80, 하루 평균 2-3명인데 이것을 본인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탈북시켰다는 것인가요?

: 탈북은 제가 직접 시키지 않고 목사님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오도신문 인터뷰 보도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 연길 시내에는 떠돌이 탈북자 무리가 많았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7-8명씩 떼를 지어 다니는 북한에서 넘어온 꽃제비들, 여자들, 할머니들이 쉽게 눈에 띄였다. 대부분 남한행을 원하는 사람들로 그들을 동남아로 안내해 주었다. 9개월 동안 모두 700여 명의 탈북자들을 남한에 보내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 이후 북한 보위부와 중국공안의 합동 체포조가 나를 검거하기 위해 움직였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20044월에, 남한에 왔다."

(참고: 중국 연길에 9개월 동안 숨어 은신해 있었다면서 몰려다니는 꽃제비, 여성, 할머니들을 9개월 동안 매일 평균 2-3명씩을 찾아내 동남아로 안내하고 다녔다는 것도 허황된 말이고, 위험한 일을 돈 안 받고’ (녹취서 27) 헌신적으로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에 꽃제비와 여성, 할머니들이 2-3명씩, 7-8명씩 떼를 지어 다녔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법정에서는 꽃제비 등을 목사에게 소개했다고 했고, 오도신문에서는 직접 동남아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탈북한 지 9개월이 지나서야, 정광일을 잡으려고,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의 합동 체포조가 연길이라는 하나의 자치구에서 가동되기 시작해서, 베트남으로 도망갔고, 이어서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는 것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베트남-캄보디아-태국-한국으로 온 과정이 일체 설명돼 있지 않다.

 

위장 탈북의 덜미

 

녹취서 30~33 쪽 내용이다.

: 증인은 박세현 식구를 안다고 했지요?

: 제가 한국에 보내줬습니다.

: 언제 보내셨나요?

: 1998년도요

: 몇 식구를 보냈나요?

: 아버지. 엄마, 박세현 3명을 보냈습니다.

: 언제요?

: 199811월에요.

: 199811월에 중인은 어디 있었나요?

: 청진에 있었지요. 19997월에 잡혔으니까요

: 증인이 업어다가 보냈나요?

: 구체적으로 다 이야기하기는 힘들고, 제가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세현의 형 박수현이 어떻게 저를 알게 되어서 전화가 와서 자기네 식구를 한국으로 구출해 줄 수 있느냐고 해서. 그러면 비용이 드는데 어떡할 거냐고 하니까, 길주군 대동리까지 가서 온 가족을 데리고 오면 얼마까지 돈이 드느냐고 해서, 길주군 대동리까지 가자면 2만 불 정도는 들어야 되고, 온 가족을 데리고 오자면 차를 하나 대여해야 된다고 제안하니까 그러면 데려다 달라고 해서 그해 11월에 제가 직접 차를...

: 그러면 박수현과 직접...

: 중국에서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대동리에 가서 쟤네 아버지, 엄마를 업어다가 청진까지 차로 모시고 와서. 199811월에 두만강이 얼어서 제가 박세현의 아버지를 업고, 강을 건너 심양까지 데리고 와서 국정원 직원들이 나와서 넘겨주었고...

: 국정원 직원에게 넘겨주었나요?

: , 옛날 안기부 직원들이 나와서 넘겨주고 나니까 그때 당시 저보고 가겠느냐고 자기가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을 저는 안 간다고 넘겨주고 갔습니다.

: 안기부 직원이 박세현과 박세현 부모를 데려다 달라고 얘기했다는 것인가요?

: 박수현이 부탁을 했고, 제가 심양까지 데리고 가니까 국정원 직원이 나와 있더라구요.

: 심양이 중국 땅 아닌가요?

: 맞아요.

: 그러면 얘기가 이상하잖아요. 안기부가 데려갔다는 얘기 아닌가요?

: 안기부 직원이 심양까지 와서 저를 만나서...

: 아버지가 못 먹어서 엉덩이가 삐죽해서 앉지를 못하는 것을 증인이 업어다 준 것이지요?

: , 맞아요. 설사를 너무해서 걷지 못해서 업어다 주었습니다.

: 그러니까 박세현이 브로커라고 한 게 바로 증언이지요?

: 예 맞아요.

: 분명히 안기부 직원이었지요?

: , 넘겨준 것은 그랬어요.

 

총정리

 

1. 정광일의 군복무 이후의 경력은 남한 국민들에게, 본인의 왕년 시절을 미화함으로써 상당한 경력과 상당한 능력을 갖춘 인간 승리자로 행세하기 위해 꾸며낸 가공품으로 보인다.

2. 요덕 이야기는 자신을 위대한 인간 승리자로 포장할 신화다. 남조선을 위한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9개월 동안 비둘기 고문을 당했다 했다. 비둘기 고문은 수갑을 채워 쇠창살에 매달고 대소변을 옷에 보게 하면서 풀어주지 않고 몽둥이 고문을 하는 것이라 했다. 9개월 동안 몽둥이로 맞아서 아랫니가 다 부러져 나갔고 75kg 체중이 35kg으로 줄어들어 계단도 기어 올라갔다고 했다. 이렇게 당했으면 죄가 무거운데 수용소에서는 혐의가 가벼운 사람들이 가는 '혁명화 구역'으로 갔다고 한다. 간첩 혐의로 9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가했다면 그런 사람은 당연히 죽어서나 나온다는 '완전통제구역'으로 갔어야 했다. 요덕수용소에서는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며, 모든 수용자들이 걸어다니는 해골이었다는 것이 본인 정광일의 말이었다. 그런데 35kg이 될 때까지 몽둥이 고문을 당했다면 어혈이 들어 회복 자체가 불가능했을 텐데 남들보다 더 노동을 열심히 해서 모범자로 발탁이 되어 반장 노릇을 했고, 반장 노릇을 하면서 수용자 187명에 대해 이름, 나이, 입소 이유를 파악해 기억했다가 2015년에 북한인권 사무소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이렇게 암기력이 높은 사람은 아마 정광일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도록 기회를 주선해주고, 거짓만을 허용하는 국정원도 이해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정광일의 요덕 스토리는 자신이 지어낸 어설픈 신화다. 김일성이 낙엽으로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어 싸웠다는 항일신화와 유사하다.

3. 국정원이 위장탈북의 주역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의사 박세현 가족은 6, 가장 먼저 탈북한 사람이 둘째 아들인 박수현이다. 박수현은 그의 탈북 스토리에서 1993, 안기부 홍 선생이 중국에서 배에 태워 데려왔다는 점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이후 1남과 3남을 19984월에 데려왔고, 199811월에 막내인 박세현과 부모를 데려왔다. 이때를 묘사하는 과정이 박세현의 이야기와 정광일의 증언이 일치한다. 박세현은 세 식구를 수현 형이 보낸 브로커가 데려다 주었다고 했고, 정광일은 그 브로커가 바로 자기였다고 진술했다.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두 사람의 스토리가 일치한다. 국정원이 기획 탈북주모자인 것이다.

 

중국에서 안기부 직원은 한국에 있는 박수현과 중국에 넘어온 정광일을 전화로 서로 통화하도록 했고, 박수현과 정광일 사이에 탈출 계획을 짜도록 했다. 이에 따라 정광일은 청진에서 길주까지 차로 가서 박세현과 그 부모를 태우고 청진에 왔다. 다시 청진(동해안)에서 서북쪽 끝단인 두만강까지 차로 수송한 후, 두만강 얼음 위로 부친을 업어 세 식구를 심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청진에서 두만강까지 가려면 여러 개의 군()을 거쳐야 한다. 북에서는 군 경계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여행증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곳에 설치돼있는 그 무섭다는 10호 초소를 여러 개 통과해야 했는데 4사람이 무사통과했다. 북한 보위부와 안기부와의 결탁이 없다면 불가능한 길이었다. 두만강에서 심양에까지 4식구가 가는 과정도 사전에 공작이 없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4. 정광일의 탈북과정도 가공된 스토리로 보인다. 20034월에 두만강에 경비가 없었다는 것도, 옷을 입고 강을 쉽게 헤엄쳐 갔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중국에 9개월 있으면서 700명의 탈북자를 남으로 보내는 선행을 베풀고, 정작 본인은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거치면서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왔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스토리다. 그 역시 기획 탈북 대상이었기 때문에, 탈북과정 모두가 지어낸 소설일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서의 신분 상승을 위해 요덕의 신화를 가공해 냈을 것이다.

5. 국정원은 왜 하필 광수 탈북자들을 데려왔을까?

한마디로 남한에 트로이 목마를 구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광수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달변에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잘해서 남한 국민들을 쉽게 사로잡아 포섭해왔다. 광수 탈북자들 중 인기인이 아닌 사람 없다. 언변과 구라와 임기응변이 모두 다 뛰어나다. 한마디로 사람 홀리는 기술이 뛰어나다

나는 믿는다. 이들은 트로이 목마다. 국정원의 일부 조직이 트로이 목마 양성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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