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위로곡 표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6-21 15:32 조회589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프롤로그
나를 옥에 가둔 존재는 하늘이었다
나는 21년 동안 5.18 진실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다. 2년 징역형이다. 국가안보를 위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21년 동안 수행했던 5.18 연구는 분명 애국행위였다. 국가를 위한 연구가 광주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범죄라는 것이다.
현대사의 핵은 [1980년 전후사]이고, 전두환의 역사다. 10.26, 12.12. 5.17, 5.18 역사는 낱개 역사가 아니라 전두환의 역사를 구성하는 4단계의 시리즈 역사다. 그래서 5.18 역사는 그 뿌리가 1979년 10.26역사에 박혀있다. 이들 모두에 대한 진실은 오로지 전두환 내란사건 수사기록에만 담겨있다. 이 방대한 기록은 지금도 검찰청 지하창고에서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이 문서를 역사연구를 위해 국민에 공개하라고 명했다. 그래서 누구든지 검찰청에 열람 복사 신청을 내면 수사-재판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의 열람복사 절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수사기록을 열람한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5.18이라는 주제는 금단의 주제였고, 분량이 방대하며 내용이 법률, 군사 등 전문분야인데다 가독성이 없는 원재료만으로 구성이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18만 수사기록을 총정리한 사람은 오로지 나 한사람뿐이다. 혼자서 21년에 걸쳐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이 5.18세력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5.18은 북한 소행]이라는 내 학설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2023년에는 김경재 전의원이, 2024년에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증언했다. 황장엽과 김덕홍도 동일내용을 밝혔고, 2020년 5월 11일 미국이 비밀 해제하여 한국정부에 이관한 비밀문서에도 동일한 취지의 내용들이 기재돼있다. 내 연구가 성실한 연구였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 사람인지는 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내가 억울해하면서 감옥에서 화병이 나 죽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하고 저주했다면 나는 감옥에서 폐인이 됐을 것이다. 라틴어에 Amor fati(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짜놓은 운명을 거스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고 거기에 순종하기로 했다.
건강은 체력이 아니라 마음
내 운명이 이러했기에 꼭 그들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가 그 악역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하늘이 짜놓은 운명에 따라 내게 해코지를 했을 것이다. 나를 해코지한 사람들은 하늘이 돌리는 연자매에 의해 인과응보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희망 그대로 내 체중은 1개월 사이에 10kg나 빠졌고, 가슴이 답답했다. 거친 파도에 떠있는 조각배처럼 정신적 배멀미에 시달렸다. 이대로 갔다면 나는 폐인이 됐을 것이다.
지만원A가 지만원B를 위로했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한 사람밖에 없었다. 지만원을 두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만원A가 지만원B를 위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시작된 여로를 한 장면씩 소환하면서 장면 각각에 숨어있는 ‘자아’(ego, self-esteem)를 찾아내서 클로즈업시켰다. 독서에 몰입해 있던 사관생도 시절, 청년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고민했던 인생의 의미에 대해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하늘은 내게 백지 한 장을 주셨다. 그 백지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절대자에 가져가 결산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는지 회상하기 위해, 수많은 돌틈 속에 숨어있는 잊혀진 ‘자아’를 발견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인 자산이었다. 감옥은 자아발견의 공간이었고, 자아를 생산해내는 공간이었다. 나는 감옥에서 매일 쉴 틈 없이 책을 썼다. 5권을 써서 그 중 3권은 출간했다.
감옥은 창작의 작업장
위로곡을 쓰면서 또 다른 4권의 책을 썼다. 감옥에는 볼펜과 종이만 있고, 자판기는 없다. 사과 박스 2개를 포개놓은 것이 책상이고, 플라스틱 휴지통을 거꾸로 엎은 것이 의자였다. 옥에서 쓴 5권의 책 중 3권은 이미 출간했다. [다큐소설 전두환], [일본의 의미], [다큐소설 여로]. 마지막 책, [5.18연구의 종착역]이라는 책은 사진들을 수록해야 하기 때문에 보류돼 있다.
자아 발견의 동기가 되기를
인생은 누구나 외롭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그 족적을 알고 싶어 한다. 자기의 족적을 자기 손으로 직접 써서 남긴 사람들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두꺼운 자서전을 남긴 벤자민 프랭클린과 더 두꺼운 참회록을 남긴 장자크 루소 등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책은 나처럼 극한적 환경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자유공간에서 자기를 묘사한 책들이다. 자존감의 원동력인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 사람은 행복해진다. 하늘의 뜻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런 절대자에게 가져갈 소중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인생은 행복하다. 그래서 건강은 체력에 있다기보다는 마음에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자기 사랑의 길이고, 여기에 건강도 있고, 행복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동안 잊고 살아온 자아(self-esteem)를 새롭게 발굴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5.6.21.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