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즉시항고이유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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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8-31 22:17 조회2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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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심 결정서 다-2)-(6) 내용에 대해서입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004년, 5.18은 북한이 통일차원에서 주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490명의 인민군들이 광주에서 사망했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힌 대형 묘비를 안기부 차원에서 북한에 공작원을 보내 확인했다는 내용을 한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 한 해 전인 2003년, 1999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경재는 그해 12월 김대중의 비밀특사로 8박 9일 동안 북한에 갔을 때 노동당 간부 김학철로부터 동일한 취지의 말을 들었고, 광주에 와서 사망한 인민군 렬사묘에 안내되었다는 사실과 이 사실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 보고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밝혔습니다. 북한의 대남비서 황장엽 역시 5.18은 북한이 주도하고 그 책임을 남한에 전가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세 가지 사실에 대해 원심은 위 3인의 증언이 단지 5.18조사위의 평가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이를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사법부에 위 3인의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들의 공개증언을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할 권한 이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채권자는 이 3인의 발언자 중 권영해에 대해서만 허위사실 공표혐의로 2024년 10월에 고소하였니다. 이에 대해 10개월 정도가 지난 이 시각에까지 기소행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권영해 발언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사법부가 나서서 권영해의 증언을 허위사실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이 또한 여쭙고자 합니다.
사법부는 누구의 역사적 주장이 옳고 누구의 주장이 틀리다는 판결을 하는 곳이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는 ① 채무자의 연구행위가 공익목적의 것인가의 여부와 ② 책의 표현이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느냐의 여부를 가려 범죄의 유무를 가리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부는 정부보고서와 개인 학자의 연구서 중 어느 내용이 역사적 진실인가를 가르는 기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채무자의 연구 결론인 [북한 개입]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 아니라 남북한 정보기관 최고자들에 의해 진실한 사실로 공증(notarize)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①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장이 정보기관 총수 자격으로 증언한 내용과 일치하고, ②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에 갔던 김경제 당시 의원의 증언과도 일치하고, ③ 북한의 대남비서 황장엽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무게 있는 학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소증하게 생각한다면 이는 허투루 내칠 사안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가 이 세 주요인물들의 증언을 무력화시키려면 먼저 채권자가 권영해를 고소한 사건부터 판결한 후에 무력화 판결을 내는 것이 합당한 이치일 것입니다. 이런 절차도 없이 사법부가 단지 107명의 광주인 조직의 말만 믿고 그것을 잣대로 ‘무시할 수 없는 세 인물들’의 증언을 허위라고 판단하는 것은 람보 천국에서나 가능할 현상일 것입니다.
원심이 위 세 사람의 증언을 허위라고 판단한 이유는 3인의 증언내용이 ① 5.18 당시의 역사자료와 ② 5.18조사위의 발표내용에 반하기 때문에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①에 대해 반론합니다. 5.18당시에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100이라면 그 중 얼마가 알려졌는지 재판부는 확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이 훗날 새롭게 밝혀진다 해도 그 새로운 사실이 수십 년 전인 사건 당시에 알려져 있던 사실과 다르면 허위라는 판단입니다. 이 억지는 자유민주주의적 판단도 아니고 논리적 판단도 아닐 것입니다. 당시까지에 알려진 사실이 무엇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아마도 1997.4.17.의 대법원 판결일 것입니다. 채권자들이 항상 내거는 판례가 1997년 전두환 내란사건에 대한 판결이며, 판결서로부터 추출한 인용 구절이 “전두환이 헌법을 유린하면서 준헌법기관인 5.18시위대를 무력으로 제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내란이었다는 것입니다. ‘내란’이 곧 ‘북한군 불개입’이란 뜻입니다. 내란에는 절대로 위장한 북한군이 개입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론과 원칙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란‘이라는 주제와 ’북한개입‘이라는 주제는 상호 인과관계가 없는 별도의 독립된 주제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5.18이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을 무조건 ’인정‘한 후 그것을 판단의 잣대로 삼았습니다. 그 ’인정‘은 ’판단‘을 발판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1990년 당시 노태우가 3당 합당을 하면서 합당의 조건으로 부각된 주제였고,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정치집단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 흥정의 결과였을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결과도 아니었고, 사법부에서 판단한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1997년 대법원 판결은 ’북한개입‘ 이라는 사안에 대해 판단한 바 없습니다. 그 대법원 판결서에는 [판시사항]이 20개 있습니다. 대법관은 판시사항에 대해서만 판결합니다. 그런데 20개의 판시사항 중 [북한 개입]에 대한 판시사항은 없습니다. 도대체 대법원 판결과 북한군 개입 사이에 무슨 과학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법부는 논리를 배제하고 재판하는 곳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②에 대해 반론합니다. 법원은 국가기관입니다. 5.18조사위는 107명의 광주사람들로만 꾸려진 한시적 국가조직이었습니다. 5.18조사위에는 크게 객관성을 잃는 하자가 몇 가지 존재합니다. 첫째, 보고서에 [발간사]가 기재돼있습니다. 그 발간사에는 [이 보고서를 5.18민주화운동의 영령들에 헌정합니다]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보고서는 국민을 위한 보고서가 아니라 국민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5.18영령들만을 위해 작성되었다는 자기고백입니다. 둘째 5.18조사위는 5.18로 먹고사는 이해당사자들인 광주시민들로만 꾸려졌고, 그 위원장은 5.18유공자인 송선태가 맡았습니다. 5.18은 광주시민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역사인데, 어째서 국가위원회를 이렇듯 낯 뜨겁게 광주인들로만 위원회를 꾸려야 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 위원회에 채용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오로지 광주사람들 뿐이라는 것입니까? 타 지역 국민들은 자질 없는 무녀리 계급이라는 것입니까? 셋째 학문적 소양이 갖추어졌는지의 여부가 공개되지 않은 107명의 광주사람들에게 1급으로부터 9급까지 임시 공무원 직급을 부여한 후, 이들로 하여금 한 학자가 21년 동안 줄기차게 연구해온 대한민국 역사연구 결과에 불온문서라는 도장을 찍는 처사가 사법부가 보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는 것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 있습니다. 역사연구는 학문의 영역입니다. 국가가 학문의 공간에 침입하여 학자의 학설을 검열하고 단죄하는 것은 헌법을 유린하는 국가폭력입니다. 학문의 영역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룰(rule)이 있습니다. 하나의 학설이 나타나면 다른 학설들에 의해 시장경쟁 원리에 의해 도전받게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방식입니다. 이를 부정할 법관도 국민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올바른 길을 외면하고 이 사건에서처럼 입법-행정-사법부 기관들이 총동원하여 한 학자가 21년 동안이나 연구한 방대한 역사서를 불온문서로 규정하는 것은 참으로 낯 뜨겁고 품위 없는 위헌 놀음입니다.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은 서로 상충하는 역사관들이 공론의 장에서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경쟁하도록 살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부가 끼어들어 누구의 역사관이 옳고 누구의 역사관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이고 전제주의 문화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만행일 것입니다.
채무자가 역사연구 내용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면 그 판단 영역은 연구에 범죄 의도가 있었는가에 대한 것에 국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학설에 범죄의도가 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한 권영해, 김경재, 황장엽에게도 범죄의도가 있어야 말이 됩니다. 하지만 권영해와 김경재 증인이 범의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는 판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세 국가적 인물들의 증언이 채무자의 연구결과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외국인인 노숙자담요에게 무슨 범죄 의도가 있어서 일면식도 없는 광주사람을 모략하겠습니까? 노숙자담요는 광주 현장 사진 속 얼굴이 북한인 얼굴이라 했을 뿐, 소송인들의 얼굴이라 한 적 없습니다.
이처럼 사법부가 역사적 쟁점 하나하나에 대해 법정에서 따지는 과정을 생략한 채, 광주의 주장만 진실이라 여기고, 학자의 말도 허위다, 전 안기부장의 증언도 허위다, 전 김대중의 비밀특사가 북에 가서 확인한 내용도 허위다, 북한의 대남비서였던 황장엽이 한 말도 허위다, 이렇게 재단할 수 있는 권능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인지 여쭙고자 합니다. 아울러 법원이 역사적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학문적 매너로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연구시간을 인정받고 있는 기관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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