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지만원tv, '박정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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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6-20 00:03 조회4,0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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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지만원tv, '박정희 분석'
6.20.은 제가 오후2시부터 영등포경찰서 집중수사팀으로 가서 두 번째 조사를 받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 역사사건에 대해 20년 연구한 사람을 범죄시하여 벌써 두 번씩 불려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북한 말고 어디가 더 있는가요? 지금 이 나라는 완전 빨갱이 나라입니다. 경찰 수사관이 말하데요. 내일은 집에 늦게 가시라고. 아무 스케쥴 잡지 말라고, 그래도 저는 내일 정확히 8:30에 방송을 할 것입니다.
이런 빨갱이들에 엄격했던 박정희, 이런 빨갱이들에는 몽둥이가 약이라 하시던 박정희, 그는 그냥 정치를 잘 해서 이 나라를 잘살게 해주신 대통령 중의 좀 더 훌륭하신 대통령이었을까요? 제 설명을 들으시면 스스로 부끄러워지실 겁니다. 그는 트럼프 이상의 천재였습니다. 맑은 영혼을 가진 엔지니어였습니다. 1990년이었습니다. 그의 혈육들이 다 박정희를 버렸을 때 오로지 지만원 혼자만 그를 빛내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처녀작을 썼지요.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이 책이 소설을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를 7주간 차지했습니다. 그렇게 환영받던 책에 박정희의 업적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여러분들게 설명드릴 내용은 그 후에 더 연구한 내용들입니다.
박근령이 제게 여러 번 찾아와 제 팔을 껴안았습니다. “오라버님” 그리고 이렇게 말하데요. “혈육이 버린 아빠를 박사님이 구해주시니 제 오라비이십니다” 포항제철은 박대통령과 박태준의 합작품입니다. 포항제철을 처음 건설한 OB(Old Boy) 분들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박근혜 시절이었지요. 정치인인 ‘지둘러’가 포항제철의 회장이 된다는 소문에 비상이 걸렸지요. 포항제철을 초기에 건설하신 중진분들이 저를 초대했습니다. 초대해야 중국음식과 빼갈이지요. 결국 제가 쓴 편지를 박근혜에 전달했고, 그래서 정치인 개입이 배제됐습니다. "아버지가 박태준에 써준 종이마패, 딸이 찢을 수 있느냐", 제가 익명으로 쓴 이 편지가 박근혜에 전달됐지요.
그 다음의 제 역할은 채명신 주월사 사령관님을 사병 묘지에 묻히시게 한 것이었습니다. 국방장관 김관진이 규정을 위반할 수 없으니 절대 안 된다 한 것을 제가 뒤집었지요. 제 작은 노력에 의해 채명신 사령관께서 사병묘지에 묻히는 영광을 차지한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분들, 제 숨은 노력들 아시면 눈물 많이 흘리실 것입니다. 채명신 장군의 표지석에 쓰인 글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이 글이 제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가 빠진 것입니다.
오늘 일본의 모 방송과 인터뷰를 했지요. 저도 유튜브 방송을 하지요. 하지만 광고도 없고 계좌번호도 없습니다. 제 방송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5.18을 널리 널리 전파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 방송 기자들이 말하네요. 왜 방송을 통해 돈을 모으지 않느냐고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 유튜브 목표는 돈이 아니라 오로지 5.18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유튜브를 통해 돈을 받으면 5.18의 진실을 전파하는 내 목적이 상업목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나는 5.18진실을 모든 국민에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일 뿐이라 했습니다. 19년 연구한 5.18진실을 내걸고 돈을 모은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 평생소원이 상업 목적인 것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렇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마찬가지로 제가 남이 게을리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왜 나름대로 깊이 했겠습니까? 돈을 벌려구요? 제 이 연구결과는 오랜 동안 땅에 깊이 묻혀 있었습니다. 반박정희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절에 그 누가 제 글을 읽겠습니까. 그래도 제 베스트셀러책 속에 박정희가 있었기에 세인들이 관심을 조금씩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좀 빗나간 이야기지만 박근혜와 박지만은 이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삽니다. 지금은 많은 인재들이 박정희 연구를 하고 있지만, 1990년 당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지만원 혼자였습니다.
그럼 저는 왜 박정희 연구를 했는가요? 연구벌레이기 때문이지요. 빨갱이들이 만든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보셨는가요? 일소가 있었지요. 주인은 일소를 사랑하면서도 등에서 허연 구더기가 나와 기어 다니는 그 순간에도 일을 시켰고, 죽는 그 순간까지 부려먹었습니다. 그 소가 주인을 원망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만원이 바로 그런 일소입니다. 영악하게 이해타산을 따졌다면 일소가 되지 않았겠지요. 저는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인데 어째서 그런 일소가 되었을까요? 그게 글쎄 팔자라 하는 것입니다. 달리는 더 설명이 안 되네요. 저는 영악하게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DNA를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 박정희 대통령도 패러다임 측면에서 설명해 보자면 바로 저와 같이 사나운 팔자를 타고 나셨는가 합니다. 저는 많은 위인전과 영웅전을 읽었습니다. 원래 자서전은 본인들이 쓰지 않습니다. 아니 영국수상 디즈레일리 같은 분은 자기가 문장가이기 때문에 직접 썼지요. 저는 무명인입니다. 하지만 글재주가 있어서 제가 직접 제 일대기를 묘사했습니다. “뚝섬무지개”저는 이를 일대기라고 표현하고 싶지 자서전이라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말이 그 말이지만요.
열 사람이 인솔 하에 똑같은 견학을 했습니다. 견한 후 각자에 물었습니다. “각자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답이 다 달랐습니다. 각자는 머리에 있는 것만큼만 본 것입니다. 내일은 제가 본 것만큼의 박정희 대통령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019.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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