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군광수는 광주에서 양아치로 위장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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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5-20 12:50 조회5,6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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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군광수는 광주에서 양아치로 위장해 활동
독립영화 “김군”의 줄거리는 훈련된 매눈의 소유자 김창식이 양아치였다는 것이다. 용병급 전사만이 챙길 수 있는 석면장갑을 끼고, 중기관총을 다루고 도청 내에서 총을 거꾸로 멘 전사들을 지휘하고, 타이어로 요새를 꾸민 군용트럭을 몰고, 광주시내를 주름잡던 제1광수 김창식(북한 농업상)이 ‘광주천 다리에서 생활한 양아치’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2019.5.12. 전남일보는 5.18당시 21세의 여성 ‘주옥’(현60)의 기억을 사실로 인정하는 아래 기사를 “썼다.
“60세 여성 ‘주옥’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사진 속 청년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가 광주천 다리 밑에 살며 종종 집에 밥을 먹으러 온 20대 넝마주이 청년 ‘김군’이라고 기억한다. 1980년 5.18 항쟁 당시 시민군 트럭에 주먹밥을 실어 날랐던 주옥은 트럭 위 김군과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5월 이후, 그녀는 어디서도 그를 만날 수 없었다.”
https://jnilbo.com/2019/05/12/201905121336143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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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은 제1광수가 종종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고 증언한다. 그의 성이 ‘김’이라는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트럭 위에 중기관총을 잡고 있는 김군의 얼굴을 마주쳤다고 한다. 미스 주옥은 그들에게 주먹밥을 열심히 날라주었다고도 했다. 21세 처녀 주옥의 가족사항은 알 수 없다. “종종 집에 밥을 먹으러 왔다”는 표현으로 보면 식당은 아닌 것 같다. 또 있다. 양아치가 집에 밥을 얻으러 오는 경우는 있겠지만 일반 여염집에 밥을 먹으러 종종 왔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누군가 지역유지 정도 되는 사람이 주옥의 부모에게 편리를 보아주라고 부탁했을 가능성이 짚인다. 밥을 동냥한 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러 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마 주옥이네 어른식구들은 그를 부를 때 ‘김군’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아마도 김군을 주옥이네 집에 소개한 사람이 그냥 ‘김군’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을 것이다. 어린 주옥으로서는 그 이상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보도된 기사만을 가지고 추리해 보면 주옥의 가장은 광수들의 스폰서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주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제1광수는 10.26직후 북한에서 내려와 5.18까지 7개월(?) 동안 광주천변에서 그의 부대원들과 함께 광주천 양아치로 위장해 지형정찰과 작전계획 수립에 필요한 활동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밥을 종종 먹으러 왔다는 말은 밥을 먹기 위해 주옥이네 집에 온 것이라기보다는 그 집에서 밀회를 하는 동안 끼니가 되어 종종 식사를 함께 했을 것이라는 상상도 간다. 이는 특수군 광수들이 여러 달 전에 침투해 어떻게 위장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어떤 후원을 받았는지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영화 김군은 매우 중요한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광수들은 침투 후 여러 달 동안 어떻게 들키지 않고, 경찰 등으로부터 의심받지 않고, 버젓이 다니면서 지형정찰을 했을까? 영화 '김군'이 그리고 그 영화 속 미스 '주옥'이 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양아치들은 눈이 무섭다. 김진홍 목사가 양아치였을 때, 감히 그 누가 그 양아치를 건드리려 했겠는가? 그리고 영화 '김군'은 5.18 주역 모두가 양아치였다는 결론까지 냈다. 광수들이 광주에 와서 여러 달 동안 의심받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려면 양아치 신분이 최선의 선택이고 탁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5.18이 끝난 후 미스 '주옥'은 더 이상 그 양아치 김군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양아치 '김군' 여단이 모두 증발했다는 사실을 증언한 것이다. 처음에 나는 미스 '주옥'이 거짓말을 꾸며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의 증언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준 강상우 감독과 미스 '주옥'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2019.5.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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