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화해방군 민노총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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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3-17 16:25 조회5,4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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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해방군 민노총의 뿌리
아래 내용은 내가 2005년에 연구해 내놓았던 내용이다. 뿌리를 알아야 정체를 안다.
1. 뿌리: 목사집단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
1964년3월, 교회목사 300명이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 약칭 [도산]을 구성하여 도시산업 근로자에 대한 선교를 한다는 구실로 성경 교리를 소위 [해방신학],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근로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선동하여 노사분규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69.9월의 ‘제일물산’, 72.3월의 동일방적, 77.5월의 ‘남영나일론’, 79.8월의 ‘YH’, 80.4월의 ‘반도상사’ 들에 대한 분규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를 배후 조종한 사람들은 지금도 어둠의 공화국에서 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경제인들은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2. 돌파단계: 대학생들의 위장취업
위의 도시산업선교 사업이 탄압을 받게 되자 1976년 11월에 영등포에서 결성된 [사회선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제조업체들에 은밀한 방법으로 지하조직을 심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1년 말, 경기지역에 비밀 지하 교육기관인 [다락원]을 설치하여 4개월 코스로 합숙훈련을 시키면서 소위 [도산이론]을 무장시켜 주었다. 1개 기에 30-40명, 82년 말까지 1년간 배출된 200여명의 전문세포들은 구로, 인천, 부천, 성남 지역의 문제 많은 기업체로부터 ‘위장취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노조]를 [어용노조]로 몰아붙이고 [민주노조]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선량한 근로자들을 선동하여 수많은 직장을 폐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선량하고 순진한 노동자들이 소모품으로 희생됐으며 심지어는 [인간불화살]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데 제물로 이용됐다. 핵심세포들에 의해 포섭-훈련된 급진 노동 해방군은 83-88년간 2,696명에 이르렀다.
3. 혁명단계: [민주노조]에서 [노동해방]으로!
이들은 80년대 후반을 민주화가 꽃피는 시대, [혁명]을 실천할 결정적인 시기라고 판단하여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전력화하였다. 근로조건 향상, 인금인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노조를 어용노조로 매도하면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사장실 점거-협박-린치-파괴-방화-분신 등 온갖 불법-야만적인 투쟁을 연출해 냈다.
학생을 선봉대로 노동자 및 농민을 주력군으로 하는 연대투쟁을 통해 수많은 기업을 무너트렸지만 당시 국민들은 이를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민주노조]의 목표는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같은 것이 아니라 자본가를 몰아내고 노동자에 의한 기업지배를 목표로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통일노동]을 내세워 반미-친북 노선을 선포하면서 전교조 전공노 386정치세력과 연대하여 기업전복-대한민국전복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화]의 부대마크를 단 [386세포]들의 투쟁목표는 대한민국의 전복이다. 이것이 현 민주노총의 정체요 노선이다.
4. 이념적 특성
1) 계급투쟁: "노동자와 사용자는 공존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다". "사용자를 폭력으로 타도하고, 계급해방(노동해방)을 이룩해야 한다". "사용자는 쓸어버려야 할 한 줌의 적이다.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자". "구걸하여 얻느니 싸워서 빼앗자".
2) 폭력투쟁: 공권력은 제도폭력이다. 기업주 및 관리계급은 보조폭력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의 폭력은 정당한 것이다. 지배계급과 자본가는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폭력 사용은 필연적이고 정당하다.
3) 연대투쟁: 노동자는 순수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혁명세력의 주력군이다. 혁명세력은 학생, 농민, 교사, 도시빈민 등의 민중세력들과 연대하여 투쟁한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는 재야단체에 의해 발굴되고 교육된다. 1989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금성사 등의 대규모 분규에는 수 백 명의 재야 인사들이 현장에 가서 배후조종을 하고 분위기를 띄웠다.
4) 정치투쟁: 노동자의 권익의 차원을 넘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 [노동해방]을 목표로 한다. 노조는 재야 혁명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주력군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노동전사, 노동투사요 죽으면 노동열사가 된다.
5. 투쟁의 확산방법
1) 조직화 전술
먼저 운동의 씨앗(핵)이 되는 세포(소련어로 '야체이카')를 발굴한다. 이는 재야단체가 주도했다. 70년대의 [도산], 80년대 중반까지의 위장취업 등은 모두 은밀히 전개된 지하활동이었다. 그러나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사회의식을 지배하면서부터 노동상담소, 민족학교, 민주시민학교, 자주학교, 노동자대학 등 의식화 교육기관들을 공공연히 차려놓고 혁명 인자들을 유인했다.
배우고 싶어서, 또는 자문을 받고 싶어서 학교나 상담소를 찾아간 순진한 근로자들을 감언이설로 현혹시켜 인자들을 모집한 것이다. 저들은 이런 방법을 [거미줄작전]이라고 자랑한다. 거미줄(상담소 및 학교)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작전이라는 뜻이다.
1989.6.30일 당시 재야단체가 운영하는 노동상담소는 72개, 민족학교 등 지하 의식화교육기관이 52개였다. 노동상담소는 서울 20개, 경기-인천 33개, 부산-경남 11. 대구-경북4, 광주-전남 4개였다. 의식화교육기관은 서울 18, 부산-경남 8, 인천-경기 9, 대구-경북 1, 대전-충님 1, 광주=전남 5, 강원 3, 충북 4, 전북 2, 제주 1개였다. 이들 조직들은 공단지역에 자리를 잡고 매일 수천명씩의 근로자들을 [노동해방]이라는 달콤한 선동으로 의식화시켰다.
이런 노동운동은 세포조직인 단위조합에서 지역별, 업종별 조직으로 확대됐고, 드디어 1990년1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 결성되었다가 다시 1995년 11월에 오늘의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확대되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노동조합 연맹체가 바로 오늘날의 [민노총]인 것이다.
2) 위장 전술
처음부터 자본론, 계급투쟁론, 민중운동사 같이 어려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이고 정열적인 20대의 노동자이면 누구든지 공감하는 쉬운 내용을 가지고 입맛을 들이게 했다. 현장 근로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수집-정리하고 기업주와 기존의 순수한 노조집행부의 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공분을 갖도록 했다.
1970.11.13일,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한 가난한 노동자 전태일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신케 한 후, 그의 죽음을 극도로 활용했다. [전태일 수기]를 제작하여 전태일을 노동계의 영웅으로 미화시킨 후, 이를 교육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일반 국민에게는 군부독재에 대한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활용했다. 그 외에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노동의 새벽],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빼앗긴 일터] 등 노동자의 삶을 비참하고 절망적인 내용으로 노래한 소설, 수기, 시 등을 읽게 하여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투쟁의 눈을 뜨게 한 다음, 서서히 근로기준법, 노동조합관계법 등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 다음엔 민족모순, 계급모순, 민중민주주의 등 좌경역사를 교육했다. 독서서클, 애인 만들어주기, 친목서클 등을 통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여기에 이르게 되면 어제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순진한 근로자들도 "1,000만 노동형제의 해방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노동전사"로 둔갑한다. 현 사회를 문제 투성이로 보고, 정부를 타도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마치 자기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영웅이라도 되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소영웅주의라고 표현하면 저들은 가장 싫어한다.
이러한 의식화 작전과 병행하여 저들은 노조의 민주화, 권익향상 등을 바라는 순수한 근로자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그리고 사회로부터 용공분자라는 명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해 [노조의 민주화], [참노동], [노동해방] 등의 명분있어 보이는 구호를 내걸어 오고 있다.
3) 투쟁확대
이들은 기존의 순수한 노조를 어용노조로 매도하면서 대부분의 일반 근로자들이 좋아할 구호를 만들어 투표를 통해 기존의 노조 간부자리를 장악해 나갔다. 일단 노조가 장악되면 재야 세력과 연대하여 극한투쟁을 전개했다. 사용자에 대한 극한투쟁의 면모를 보자.
""김XX 개새끼 불고기 해먹자", "사람잡은 김XX 새끼 X를 잘라 버리자"(89년 5월 대우조선 분규에서) 등의 구호를 내걸고, 사용자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목을 매달거나 태우고, 사용자의 관을 만들어 파묻고, 사용자를 화장실에 가둔 채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고, 사용자를 크레인에 묶어놓고 날이 선 칼로 배를 긁어가면서 약간씩의 피를 내면서 하루 종일 욕하고 협박하는 등 그야말로 살벌하고 섬뜩한 투쟁을 벌여 왔다.
한편 순진무구한 근로자를 [불화살투사]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풍물이패를 동원하거나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등의 기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몇 명의 몸에 신나를 뿌리고 칼을 높이 들게 하여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 후, "개돼지로 사느니 차라리 죽자", "내 한 몸 불살라 천만 노동형제를 해방시키자" 등 끔찍한 구호를 외치다가 누군가가 그어 댄 성냥불에 의해 불화살이 됐다. 1980년대에 발생한 인간 불화살이 된 노동자는 17명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1호가 전태일이었던 것이다.
2019.3.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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