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위장보수 프락치 (fraktsiya) ” 종결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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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리경 작성일19-02-02 09:34 조회4,970회 댓글7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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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위장보수 프락치 (fraktsiya)
” 종결
증거
조갑제는만 29세인 1974년도에“ 중금속오염실태 ”취재보도(부산국제신보)로 한국기자상(7회)을 받아주목을 받았고, 한국기자협회 부산지부의 회원으로 반박정희, 반정부기사로 그 반골적, 반체제성 으로 많은독자의관심을끌었다.
그의 심층취재기법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의 다치바나다카시(立花隆) 기자 방식의 모방에 불과했으나 당시 일반 국내 독자에게는 한차원 깊은 기사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반정부적 성향에 두번씩이나 해직당한 조갑제기자를 공작목표에서 빠트릴 멍청한 수준의 북한 대남공작기관이 절대 아니다.
공작담당자가 누구였든 조갑제를 포섭하지 않았다면 혁명과업 나태로 처형감이다.
그러한 공작임무에 대한 철저한 성과물이 오늘날 주사파의 청와대점령인것이다.
이러한 당연성위에 조갑제가 북한에 동조가담한 시기가1980.5.18이전인가 이후인가를
살펴보고자한다. 판단은여러분의몫이다.
1986년 조갑제는 월간조선2월호에‘ 한국내 미국 CIA의 내막’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CIA한국거점의 구성, 활동내역, 영향분석, 사무실 전화번호까지 까발렸다.
이 보도로 조갑제는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전한나라당국회의원정형근(鄭亨根) 검사)의 조사를 받았고
그가 석방되었을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 사건 이후 조갑제는 많은 [박정희전기물]의 저술, 찬양 언동으로 보수의 선봉장으로 행동한다.
그러한 행동은 일반 보수층의 지지를 받게하여 순식간에 보수언론인으로 자리매김되고,
많은 보수엘리트들은 자신의 관심 이슈를 “월간조선” 조갑제 이름에 의한 여론화 목적으로 조갑제와
면담하며 상세 의견및 관련자료를 제공하게 된다.
조갑제의 취재 기사내용들은 이들 보수엘리트들의 제보였으나 일반독자들에겐
조갑제의 지적능력으로 착각시키기에 충분한 글 재주를 그는 발휘했다.
조갑제는 이들의 제보자료를 자신의 이름으로 특종화시켜 명성을 더 높이며 확고한 보수임을
각인시키기에 성공해 왔다.
그러나 조금 디테일한 논란이 제기되면 모순적 응답이 발견되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 아니므로
디테일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지적한계가 그렇다.
1990년대 조갑제의 주 면담장소는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이었고 그와 면담을 기대하여 무작정
기다리는 제보자들이 항상 서너테이블이나 되었다.
실례로 1993년 5~8월호의“남침땅굴탐색” 특종은 정지용(鄭趾龍)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남굴사”대표; 2002년 12월의문사)의 제보였고
조갑제는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보수 이미지강화에 이용하며 최종에는 장거리 남침땅굴 존재를
의문시하여 오히려 국민관심을
호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즉 장거리 남침땅굴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는 역할에 기여한것이다.
정지용씨는 베테랑 대공 수사관으로 즉각 상황분석에 집중했다.
그가 조갑제에게 강하게 항의하자 조갑제의 변명은
조선일보 사주 방상훈사장( 1948년생, 경복고, 미국 오하이오대, 조갑제2년년하)이 땅굴문제 보도에반대했고 향후 조갑제에게 월간조선 편집장과
독립할 월간조선 사장직을 언급하며 회사의 미래에장애물이 됨을 걱정했다는것이었다.
조갑제는 사주의 욕구도 만족시키고 미래의 자리도 보장받는 교활한 선택을 하며 장거리남침땅굴
자체를 국민에게 불신케 했다.
사실(事實) 보다 사익(私益)이 우선인자가 조갑제로 믿을 인물이 아니라고 정지용씨는
한탄분개했다.
그후 조갑제는 정지용씨의 말데로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고
월간조선이 독립법인이 되자 대표이사도 겸임했다.
4. 1980년5.18광주폭동시 행적에 나타난 증거들
조갑제 광주진입 의문점:
독일인 위르겐힌츠피터는 북한군에 안내되었음이 그의 기록영상물에 나타난다.
그러나 조갑제가 어떻게 광주에 진입했는지 불명확하다.
당시 전국해안이 완전봉쇄(유병현 장군 언급 인용)되어 북한군의침투가 불가능했으므로 북한군
개입불가에 목숨건다는 조갑제는 정작 전국 해안선 길이의 백분의 일도 못되고 게엄군에 의해
완전봉쇄된 광주시 외곽 봉쇄선을 5월 23일 어떻게 통과했는지 설명이 없다.
독일인 위르겐힌츠피터처럼 누구의 안내를 받았든지, 많은 간첩들이 사용하는 비표내지
암구호등의 통과방법으로 광주에 들어갔을 것이고, 황장엽의 반탐조가 감시하는 서슬퍼런 감시공간내에서 활동 가능했던 것이다.
조갑제가 자기 발로 그냥 광주로 들어갔다면 전국 해안선봉쇄가 허구가 되고
해안선 완전봉쇄가 진실이라면
평범한 신문기자 조갑제는
광주에 들어갈수 없다.
그러나 조갑제는 들어갔고 5월 23일 도청앞 사진에 찍혀있다.
정체가 보이지 않는가?
도청 정문앞 조갑제사진이 설명하는것:
광주 학원강사 김중식이 반탐조에 의해 연행되는 도청정문사진에 찍힌 조갑제는
김중식의 발이 밟고 지나간 행적의 바로 앞 2미터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다.
일반군중에 섞여 서있었으나 반탐조의 허가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황장엽의 허락없이 도청 앞의 취재 내지 탐문행위가 불가능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평양 고위층 집단사진 (김경희 포함)내의 황장엽시선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다른 방향의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시선이었다.
그런 반탐조 황장엽의 눈을 피한 순수한 기자의 취재였다면
학원강사 김중식의 피살 특종 기사깜을 지난39년간 숨긴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특종 좋아하는 조갑제가 김중식 학원강사가 누구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39년간 입다문다는게 정상인가?
기자인가? 간첩인가?
이 사진은 그 시각 조갑제와 황장엽간의 인지관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5. 박원순비호:
박주신의 병역비리 문제를 조갑제가 어설픈 궤변으로라도 비호해야하는
조갑제의 초라한 조직내 위상을 읽을수 있다.
그는 박원순
호위정도에 쓰이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6.전 CIA 요원 마이클리의 회고록 조작사건:
마이클 리의 회고록 원고 중에 5.18 북한군 관련 부분을 통채로 빼버리고 출판한 행위는
단순누락 실수가 아닌 고의적 원고조작 범죄행위이다.
이런 범행을 할 수밖에 없는, [5.18북한군개입]을 목숨걸고 부인해야하는 절박성은
그의 모든 실체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기에 필요 충분하다.
이런자를 쉴딩하는 어리석음은 후일 프락치 은폐죄에 처벌될 것이다.
[마감] 이자를 관찰해온지 이미 25년이 흘렀다.
조갑제의 과거행적은그가 프락치일 가능성을 높혀 왔지만
5.18 현장에서의 조갑제 사진 한장이 없었다면 이자의 정체를 종결짓지 못한다.
이제 완벽한 결론:
조갑제= “위장보수
프락치(fraktsiya)” 탕탕탕 끝 !!!
[지만원 박사님의 5.18 연구]가 선행되어 문헌적 결론이 종결되고
일반독자에 의한 우연한 제 1 광수의 사진이 제기되고
노숙자담요라는 영상분석가의 애국적희생이 뒷받침 되어
[완벽한 현장증거 사진]이 제시되는 이 과정이
“하늘이 박사님과 함께한다는 확신” 이외의 설명할 길이 없다.
하늘에 감사 드리고
지만원 박사님께 감사 드리고
제1 광수를 제기한 독자분께 감사 드리고
노숙자담요님께 감사 드린다.
댓글목록
진리true님의 댓글
진리true 작성일
글자판을 바꿀 필요!
분간이 안됨.
소낙비님의 댓글
소낙비 작성일
조갑제는 위장보수로 간첩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여기 게시판에도 세작으로 의심되는 자가 몇 명 보인다!
bugle님의 댓글
bugle 작성일조갑제 박원순 같은남한광수로 차출된 간첩게릴라일수도
wlvudtjs0117님의 댓글
wlvudtjs0117 작성일
만리경님 - "조갑제를 25년 관찰 했다"
조갑제의 본말 전도된 어거지(5.18 북한군 개입 절대반대 )글로 자신의 발목을 잡혔습니다.
단지 어리석은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활용할줄 아는 조갑제 -
열심히 홍보를 해서 많은 이들이 조갑제의 물타기 숫법 글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겠습니다.
감성팔이 애국 팔이 글들을 이용하여 애국세력으로 잘 포장된 그의 정체를 잘~설명 해 주셨습니다.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조갑제가 박정희에 관한 글을 써서 열심히 광고를 할때 나는 오랜기간 혼란스러웠다
조갑제가 반 박정희 성향의 기자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부터 박정희를 따르는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과 함께
동명이인 이었나, 내가 착각했나, 하고 오랜기간 혼란스러웠고,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 그의 반 박정희 활동은 잊고 있었다.
그런데 600명의 광수가 발견되었음에도 과학적 증거를 부정하며, "오지 않았다"로 일관함에 의심을 품었고, 예전에 내가 조갑제
에게 내혼자 혼란을 겪었던 생각들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오늘 알게 되었다.
(그때는 조갑제가 널리 알려진 시대가 아니었음에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내혼자 착각인가 혼자서 혼란스러워 했다)
오리수님의 댓글
오리수 작성일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있다고 다 우리의 우파가 아니라는 점이 이상하죠?????
그래서 친중파를 골라내고, 또 그래서 좌파들을 골라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지요
그저 단순하게 지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파라고 한다면, 이렇게 까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죠
그들이 살아온 과거를 한번쯤 곱씹어 보시는 것도,
좋은, 그리고 옳은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팝나무님의 댓글
이팝나무 작성일
만리경 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