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 위원이 되기 위한 험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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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12-02 12:49 조회4,1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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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규명 위원이 되기 위한 험난한 길
홍준표와 김성태는 애국의 적
여당 등 다른 정당들에서 추천된 규명위원들은 아주 쉽게 아무런 잡음 없이 내정돼 있는데 유독 9명중 1명이 되자는 나만은 온갖 시련을 겪고 있다. 나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의 적이 한국당에 포진하고 있었다. 홍준표와 김성태다. 2017년 9월 나는 홍준표를 직접 만나 소책자를 주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김영삼을 도와 전두환을 죄인으로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5.18이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데 대한 증거들이 매우 많다. 이 책을 읽어봐라, 이 책을 읽고도 내 말을 부정할 사람 없을 것이다” 그는 “읽어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는 부산 지역에 가서 유세를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5.18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정리했다. 한국당은 김영삼이 만든 당이다. 그 당을 지키는 후신들이 김영삼을 배반할 수는 없다”홍준표에게는 국가가 김영삼 이래에 있는 하찮은 존재다. 김영삼이 그를 출세시켰기 때문이다. 홍준표는 이러한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홍준표는 한마디로 똘만이 영혼의 소유자다.
내가 공청회 발제자가 된 것을 홍준표가 무효처리
2018년 1월 25일, 나는 한국당 간사 경대수 의원실 보좌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월 6일 공청회가 있으니 한국당측 진술자로 발표해 달라” 나는 발표를 위해 “다시 써야 할 5.18역사”라는 컬러 팸플릿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 웬 일인가? 2월 1일, 경대수 의원 보좌관에서 전화가 왔다. “진술자 선정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홍준표의 장난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2월 6일의 공청회는 국방분과위가 주도했고, 국방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은 김학용 의원이었다. 2월 5일, 나와 신기훈 회장이 그의 사무실에서 오후 7시 경에 5분 정도 만났다. 그는 홍준표 이론을 또 꺼내 들었다. 역시 홍준표가 5.18진실을 가로 막은 것이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김학용 의원에 대시했다.
김학용 의원과 이종명 의원의 애국적 콤비 플레이
“진상규명 제3조 6항에는 북한군 개입 조작설을 규명하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 속에는 바로 지만원이 잉태돼 있다. 지만원이 연구한 것을 공식적으로 유린하고 지만원을 정신 이상자로 공식화하자는 것이 지금의 3조6항이다. 이 나라에서 북한군 개입을 주장한 사람은 오로지 지만원 한 사람뿐이지 않느냐. 어차피 시간 상 나는 진술자가 될 수 없으니 두 가지만 부탁하자, 하나는 제3조 6항에 ‘북한군개입 조작설’만 넣지 말고 ‘북한군 개입여부’라는 7글자를 추가로 삽입시켜 달라, 그리고 우리측 세 사람만이라도 공청회를 방청할 수 있도록 해달라”
김학용 의원이 이를 수용했다. 이후 김학용 의원과 이종명 의원의 콤비 플레이가 가동됐고, 제3조 6항에 ‘북한군 개입여부’라는 7글자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만일 홍준표의 방해가 없었다면 2월 6일 내가 15분 동안 북한군 개입에 대해 그 누구도 반론할 수 없도록 설명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사태는 지금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백승주 의원은 15명으로 구성돼 있던 위원 수를 9명으로 줄여 좌의 독주를 어느 정도 둔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김성태의 반란, 김성태와 좌경족과의 단합행위
이렇게 해서 나와 한 조로 짜여진 3인이 한국당 지분으로 이번 10월 31일까지 유지돼 왔었다. 이 3인을 발표해야 하는 날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발하는 9월 14일 이전에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당은 다른 정당들로부터 “출범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침묵해 왔다. 알고 보니 홍준표와 단짝인 김성태의 장난이었다.
김성태와 좌경 매체들이 한편이 되어 지만원을 성토한 날은 10월 31일, 먼저 좌경 매체들이 “지만원이 들어가면 촛불 이상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고, 이를 가다렸다는 듯이 김성태가 나서서 마치 지만원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지만원은 고려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국방부 시행령 속 제3과가 ‘북한군개입여부’ 조사 전담
그의 이 표현과 태도는 공당의 원내대표가 지켜야 할 품위와 도리를 매우 많이 일탈했다. 그가 지만원을 반드시 배제시켜야 한다고 내놓은 이유는 “지만원이 신성한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북한군 개입을 주장한 황당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5.18진상규명법”에서 한국당이 기여한 것은 오로지 3조 6항 중 “북한군개입여부” 이 7자를 집어넣은 것뿐이다. 국방부 시행령에는 진상규명을 일선에서 연구할 ‘과’가 제1,2,3과로 설치돼 있다. 제3과는 오로지 제3조 6항만을 연구하는 과로 지정돼 있다. 제 3과에는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지만원과 내가 준비해놓은 10여명의 과원들이 들어가야 하고, 이에 대항하여 조작설을 주장하는 광주 안종철과 그 팀이 모두 들어와 논리와 팩트로 겨루게 돼 있었다. 그런데 안종철은 위원장으로 예약돼 있는 반면 지만원과 그 팀원들은 여기에 들어오지 말라 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횡포인가?
김상진 총장 등 애국단체들의 피 끓는 시위
이에 김상진 총장이 앞장서서 김성태 지역구 사무실 앞과 아파트 앞에서 밤과 낮으로 텐트를 쳐놓고 시위를 했다. 김성태는 간단한 짐을 싸들고 어디론가 피난을 갔다. 이에 김성태는 공모를 통해 규명위원을 새로 모집했다. 공모기간은 11월 9(금)부터 11월 14일(수), 나는 마지막 시각에 신청서를 냈다. 여기에서 지만원을 배제시키려던 김성태 의도에 걸림돌이 생겼다. 그런데 공모 내용이 매우 부실했다. “5.18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사람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제3조6항(북한군개입여부)을 조사할 수 있는 사람만 응모하라는 지침이 일체 없다. 한국당이 내놓은 응모의 스펙이 엉터리인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모두 12명이 신청했는데 5명은 자르고 7명에 대해서만 11월 28일(수)에 면접을 했다고 한다. 그 7명 중에는 내가 포함돼 있는 반면, 나와 한조로 공모에 응했던 조우석 주필은 탈락됐다.
면접시험에서 내가 한 발언들
나는 내가 왜 반드시 위원회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했다. 만일 내가 제외된다면 첫째 이번 법령에서 가장 중요시한 ‘승복력’이 타격받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막심한 권익의 침해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가처분신청이라는 소송을 해야 할 입장이라는 것도 설명했다. 나는 미해군대학원에서 수학공식 2개와 수학정리 6개를 발명해서 전설이 돼 있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18만 쪽에 달하는 수사-재판 기록을 가져다 10년이든 20년이든 연구하겠다는 자세로 이제까지 18년 동안 연구를 했다. 이 나라에서 이런 사람 나 말고 또 누가 있느냐. 북한군 개입을 증명한 시점은 한두해 연구한 시점이 아니다. 13년 연구해서 비로소 확신했다. 나는 한국판 갈릴레오인 셈이다. 갈릴레오는 1600년에 지동설을 주장해 수년년 동안 유지됐던 천동설을 뒤집었다. 나도 셰계 반열에 속하는 과학자다. 38년 동안 유지돼 왔던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 정도의 갈릴레오가 탄생하면 안 된다는 것이냐.
내가 18년간 연구한 내용을 단 시간 내에 옳은가 그른가를 평가하는 것은 월권이다. 한국당은 제3조 6항을 제정했고 그 3조6항에서 북한군개입여부를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보내주면 되는 것이다. ‘판단자’가 되려 하지 말고 ‘공정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취지로 의시를 충분히 전달하였다. 3조6항은 한국당이 열은 것이고, 이는 목장의 결투장을 연 것이다. 한국당은 지금 결투장은 마련했으면서도 한 사람에게는 총을 가지라 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총을 갖지 말고 쏘면 쓰러지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처사를 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를 공정하다 잘한다 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관들의 질문: “공수부대가 강간을 자행했는가?”
질문도 하나 받았다. “계엄군이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다녔다는 내용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5월 18일, 시위 첫날, 진압작전은 공주에 주재한 제31사단 사단장 정웅이 지휘했다. 그는 특수전 부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다. 5월 18일 오후 3시 경 그는 헬기를 타고 전남대학에 와서 7공수여단 2개 대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남로와 충장로 골목골목을 모두 막고 젊은 사람들을 모두 제압해 31사단 헌병대로 인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0여개 길목에 공수대원을 찢어서 배치하다 보니 1개조가 3명도 되고 4명도 되었다. 젊은 시위대는 수가 많고 공수대원 수는 적으니 자연 곤봉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모습이 촬영되어 공수부대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있다.”
“5월 19일이 되면서부터 공수대원들은 수가 적어 매타작을 당하게 되었고, 그후 곧 350명 단위의 대대단위로 집결해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이것이 선무작전이라는 것이었다. 민간인들은 긴 막대기에 낫을 매 가지고 공수대원의 목에 걸고 이걸 당겨 말어, 어떤 민간인은 가위 끝을 공수대원 눈 동자 앞에 대고 이걸 찔러 말어 하고 조롱했다. 이때 공수대원들은 눈동자 하나 굴리지 못했다. 온 몸에서 땀이 나지 않았겠느냐, 이런 조롱도 잠시, 시위자들은 드럼통에 불을 붙여 집합해 있는 공수부대를 향해 굴리고, 대형차량을 지그재그로 돌진시켜 공수대원들을 공격했다. 많이 다치고 사망했다. 이런 마당에 그 어느 공수대원들이 대열을 이탈해 여성들을 사냥하러 다니겠느냐? 이탈하면 그 순간 가루가 되는 세상이었다.”
“광주 현장 사진들 중에는 유명한 사진 하나가 있다. 군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10명이 광주청년 6명을 엎드리게 해놓고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이다. 10명 모두 장발인데다 철모도 없다 그 중 6명은 M1소총을 들었고, 3명은 막대기를 들었다. 얼룩무늬 옷을 입은 이도 있고, 그냥 재래식 군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전문가가 보면 공수부대가 아닌 사람들이지만 여성들이 보면 계엄군으로 보일 수 있다. 당시 치안본부 상황일지를 보면 폭도들이 강간하고 금품을 훔치고 많은 범죄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대부분의 광주사람들이 ‘속았다’고 뉘우치며 계엄당국에 전화를 해서 빨리 수복시켜달라고 애원을 했다.”
“전일빌딩에 나 있는 5.56미리 M16탄흔과 기관총 탄흔이 185개 나있다고 하는데 이는 상황일지를 보면 다 나와 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30명 정도로 구성된 4개의 특공팀을 투입했다. 도청, YWCA, 광주공원, 전일빌딩에 각 1개 팀씩 투입했다. 특히 전일빌딩에서는 폭도 45명이 카빈과 기관총을 가지고 저항해 1층으로부터 10층까지 쫓겨 올라가다가 마지막 층인 10층에서 결전을 했다. 이 과정에서 폭도 3명이 사살 당했다.”
여기까지 설명했다. 이후의 결정은 한국당의 몫이다. 김성태 규탄 시위에 참여한 애국국민들의 바람은 김성태가 여기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당에서는 김성태 자리를 놓고 겨루는 의원들이 여러 명 있다. 그 중의 한명이 김학용 의원인 모양이다.
이후부터는 애국국민 제위께서 열심히 노력하여 주시기 바란다,
2018.12.2.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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