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은 탈북자집단에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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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10-09 21:19 조회6,0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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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은 탈북자집단에 가장 많다
2016년 9월 27일짜 조선일보는 2012-16년 동안 군에 침투한 남파간첩 13명 중 12명이 탈북자 신분이었다는 기사를 냈다. 수만 명의 탈북자들 중 간첩 혐의를 포착하지 못해 지금도 계속해서 간첩질을 하고 있는 탈북자가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7/2016092700320.html
60여명의 광수 탈북자들
1980년 5월 23일경 전남도청 앞에 '시체장사를 위해 구성된 세트장'에 어린이, 20대 전후의 여성들, 남녀 노인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마치 단체사진 찍듯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50명 정도의 얼굴들이 지금 한국에서 유명인들이 되어 있는 탈북자 얼굴들이었다. 이는 불확실성의 세계가 아니라 확실성의 세계에 속한다. 영상분석의 정확도가 백번 양보해 80% 정도밖에 안 된다 해도 이 50명 중 단 1명도 광수가 아닐 확률은 0.2의 50승이다. 소수점 이하 0이 수십 개인 것이다. 정확도가 50% 밖에 안 된다 해도 이 50명 중 단 1명도 광수가 아닐 확률은 0.5의 50승이다. 0.5를 50명 곱한 수치인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제로다. 수학을 한 사람은 그래서 탈북자 광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첩의 생존 방법은 신뢰 축적
1967년 극적으로 넘어온 이수근은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였다. 하지만 그는 고등간첩이었다. 조갑제는 그가 간첩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조갑제가 정보기관보다 더 많은 팩트와 더 높은 분석력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83년 신중철이 양구에 있는 제4땅굴을 가지고 넘어왔다. 당시 그는 이 나라 최고의 애국자였다. 얼마나 그를 믿었으면 국가가 그를 정보사령부에서 근무케 하면서 대위로부터 고참 대령에 이르기까지 진급을 시켰겠는가? 하지만 그는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2001년 김대중 시대에 소리 소문 없이 탈출했다. 그런데 그 신중철이 탈북 3년전인 1980년 광주에 왔었다.
애국자인척 연기하는 탈북자부터 의심해야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시를 가지고 조갑제에 의해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시인’으로 행세한 장진성, 많은 국민들이 그를 사랑해주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왔고, 대남사업부서인 통전부에서 근무했고, “시를 품고 강을 넘다”는 탈북스토리를 가지고 수많은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이름이 위철현이라는 사실,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부인과 아들 위금성을 두고 위장 탈북한 사실, 그의 탈북스토리 모두가 허위로 꾸며졌다는 사실, 김질성종합대학 졸업도 거짓말, 통일전선부 근무 경력도 거짓말임을 밝혀냈다. 장진성은 내가 밝힌 이런 내용에 대해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내 이 글을 삭제시켜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수상한 탈북자 키워주는 사람들도 의심해야
내가 단 시간 내에 분석해서 법정을 통해 밝혀낸 이 사실을 국정원은 그 많은 조사원과 조시기간을 가지고도 어째서 밝혀내지 못했는가? 조갑제는 어째서 그 토록 엉터리 내용으로 쓰인 탈북스토리 “시를 품고 강을 넘다”라는 책을 출판해 주고 그를 '위대한 애국시인'으로 띄워주었는가? 조갑제가 전적으로 띄워준 탈북자 중에는 황장엽이 있다. 황장엽은 죽기 전까지 귀화하지 않고 ‘망명자’ 신분을 고집했다. 황장엽은 나를 여러 차례 불러 함께 일하자 했지만, 나는 늘 그를 의심했다. 지금도 나는 그를 고급 간첩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국립묘지에 묻힐 때 인터넷에서나마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2005년부터 김덕홍씨의 비서가 나에게 가끔 왔다. 김덕홍의 글들을 가지고 온 것이다. 나는 그의 글들을 통해 황정엽을 더욱 더 의심하게 되었다. 황장엽은 여기에서 “인간중심철학”을 강론하고 살았다. 주체사상의 공식 명칭인 “사람중심철학”을 교묘하게 살짝 변형한 것이다. 내가 이를 깨우친 것도 김덕홍씨를 통해서였다.
황장엽이 조직한 탈북자단체는 탈북광수들로 구성
황장엽은 탈북자들을 ‘북한민주화를 위한 가장 믿음직한 핵심역량’으로 생각했다. 그는 또 목표를 달성하려면 탈북자단체들을 한국의 민주수호역량과 동맹케 해야 하고, 남한역량과의 동맹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업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탈북자중앙위원회 직책을 수행할 사람들의 이름들을 기록했다. 상무위원회 명단도 그의 손으로 적었다. 그리고 “친애하는 김성민 동지에게”라는 제목의 자필 편지도 썼다. 김성민을 매우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니 사무국장 과업을 잘 수행해 달라고 당부하는 편지였다.
박승원과 태영호
광수 출신 탈북자들은 북한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핵심적 집단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이들을 잘 괸리해야 한다. 2015년 7월 12-13일, 채널A와 동아일보가 박승원 상장이 탈북해서 국정원 등 합동조사를 다 마쳤고, 곧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박근혜는 북한으로부터 고위직 간부들이 여러 명 탈북해 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후 보도에는 박승원도 다른 고위직 탈북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승원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마자 시스템클럽과 뉴스타운이 인터넷과 호외지를 통해 그가 제37광수라는 영상분석 결과를 내놨다.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보도가 통제되었고, 박승원의 이름은 뉴스에 오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극도의 보안 속에서 연금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의 정치활동과 압력단체 구성은 위험
나는 박승원이 황장엽의 바통을 받아 광수탈북자들로 구성된 조직을 관리할 인물로 남파됐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가 연금생활을 하게 되자 태영호가 황장엽의 바통을 이어받으러 왔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 일부 탈북자들로서는 서운한 면도 있겠지만,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 한국 땅을 밟았는데 왜 의심하느냐”는 상투적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탈북해서 조용히 그리고 착실하게 먹고만 살면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그런데 조직들을 만들고, 단합된 힘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정치활동을 하고, 교회와 정계 그리고 우익세계를 중심으로 포섭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간간히 탈북광수들의 마타도어 내용을 주위에 전파하고 다니는 유튜버 운영자 및 출연자들이 꽤 있다.
황장엽의 자필유서
http://newfocus.co.kr/client/news/print.asp?cate=C06&mcate=&nNewsNumb=201309033
2018.10.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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