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 무지개 증보판, 350쪽에서 530쪽으로(10.8.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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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10-03 12:22 조회3,8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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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무지개 증보판, 350쪽에서 530쪽으로 (정가 20,000원)
납품및,서점용-계좌:국민은행 088201-04-099676
예금주:지만원
‘뚝섬 무지개’ 증보판이 지난 9월 23일 예정대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납품을 받고 보니 인쇄가 흐리고 표지가 스펙대로 제작되지 않아 반품시켰습니다. 이 책은 제가 이 사회에 남기고 싶어 하는 내용들을 글로 조각해 놓은 작품 성격의 글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흐리게 인쇄되면 안 되는 책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시제품을 검사하여 ‘합격된 견본’을 지정해주고 이번에는 실수 없이 잘 만들라 심심 당부하였습니다. 10월 8일 납품될 예정입니다. 그 다음날이 한글날이지만 속히 배달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의 일부를 영문으로 번역한 영문판이 곧 발간됩니다. stalon님이 지금 한창 편집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은 영국에 계신 교포이신 강유빌 선생님께서 자진 번역하여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영문판은 영국인들의 검증을 받았고, 이를 검증한 영국인들이 많은 호평을 해주었다 합니다. 이 번역문을 책으로 편찬하기 위해 편집을 도와주고 계신 stalon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번역문은 매우 서정적이고 문장이 짧고 유려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합니다. 영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고생들에 좋은 학습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영문판이 나오면 일단은 교보문고, 알라딘에 납품하고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들에 보내려 합니다.
프롤로그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고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에
묻혔던 사관생도 시절, 나는 책 속에서 내가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인
간상을 찾아냈다. 출세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었다. ‘영원한 자유인’
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자유인이란 남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기 신념과 소신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20대에 나는 클
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하는 황야의 무법자를 보았다. 인습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스스로 정한 자기 규율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부러웠다. 그 후 영화 속
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 인생의 우상(idol)이 되었다.
세상 바람이 모질게 불어도, 가슴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는 사
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에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출세나 재산 모으기에 최고의 가치를 걸고 좁은 공간에서 각박한 삶
을 살아가는 인생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의 가슴조차 적셔주지 못하고 마른 갈대처럼 쓸쓸히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유명인사(somebody)가 되려고 하지만 정말
로 인생을 아끼는 더 많은 사람들은 무명인(nobody)으로서의 여유와
행복을 음미하며 살아간다. 나도 그런 무명인이 되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혼이 있다. 하나는 자기만 아는 샐러리맨의
영혼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과 국가를 생각하는 영혼이다. 샐러리맨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비록 그가 대통령이 됐다 해도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공인정신을 가진 영혼은 비록 그가 새벽길을 청소하
는 미화원이라 해도 아름다운 것이다. 무명인이 샐러리맨 정신을 갖
는다면 다수에 섞여 사는 하나의 인생이겠지만 무명인이 공인정신을
갖는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천사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도 내가 지향했던 인생은 후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난 속
에서 걸었던 돌밭길 그리고 무명인의 자유공간을 만끽하면서 걸었던
오솔길은 막상 걷고 보니 잔잔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꽃길이었고 대로
였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태어날 때 그림종이 하나씩을 가지고 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비워진 종이를, 부자집에서 태어나면 반은 부모에 의해 채
워진 종이를, 빈 종이엔 그릴 것이 많지만, 반쯤 채워진 종이에는 그
릴 것이 조금이다. 인생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실은 자기가 그린 그
림을 가지고 절대자에게 결산하러 가는 것이다.
지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칫 자포자기로 꿈을 잃기 쉬운 학생
들이 있을 것이다. 꿈을 가꾸고 싶지만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막연
해 하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습작을 읽었던 적지 않은
수의 30대 지식인들이 한 결 같이 했던 말이 있다. “이 책을 대학시절
에만 읽었어도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 한권
의 책이 젊은이들에게 의미 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아울
러 어려운 시대를 필자와 함께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추억을 반추케
하는 사랑방 시절의 이야기 책이 될 수 있다면, 크나 큰 영광이 될 것
이다.
목 차
가난과 낭만 l 1
지상에서 만난 천사 l 8
운명을 열어준 낯선 소령 l 22
물을 먹여 체중을 늘려준 낯선 대령 l 30
어느 입교생의 첫 마디, “형씨, 장군은 언제 됩니까?” l 35
벌떼 같은 상급생 l 40
푸쉬킨을 읊은 돈키호테 l 45
내무생활과 얼차려 문화 l 50
직각 식사 l 55
공부벌레보다는 균형된 인간이 되라 l 60
탁구치고 나온 여 선생님 l 69
화장실에서는 최후의 한 방울을 l 80
황야에 내던져진 소위 l 89
월남으로 떠나는 군함 l 109
이 순간을 무를 수만 있다면! l 116
살아만 갈 수 있다면! l 128
아름다운 남국의 밤하늘 아래 인분을 베개 삼아 l 134
프롤로그 |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고파
물을 가르던 거대한 구렁이의 신선한 충격 l 141
어느 소대장의 최후 l 147
전장의 이슬들 l 153
내일 이기기 위해 지휘관은 오늘 싸워야 한다 l 161
정보의 가치는 사용자에 따라 다르다 l 170
정인숙과 정일권 l 183
전속부관은 선의의 거짓말도 해야 l 196
인과응보 l 205
군복을 궁둥이까지 잘라 입어라 l 210
자다가 탄 훈장 l 219
군대에도 자유공간은 있다 l 232
문제 있는 곳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l 241
사이공 뎁브람! l 248
지휘관은 전장의 경영인 l 265
생전 처음 밟아 본 미국 땅 l 271
한국에서 맞춘 세 개의 안경. 미국 의사가 버리라 했다 l 279
의사만은 밥벌이 수단으로 택하지 말자 l 285
극기의 계절 l 296
직관력(Intuition) l 313
연구소 생활 l 317
허 공 l 331
파랑의 계절 l 337
1990년 이후의 세상 이야기 l 352
대령 예편 후의 첫 공공 작품, F-16기 l 353
사회를 놀라게 한 처녀작“70만 경영체 한국군” l 360
경영학 책“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 l 362
강릉 스타 l 365
영구분단 통일론으로 아태재단 인기강사 1위 l 367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에 가한 야만 l 378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한 과정 l 388
5·18에 대한 나의 연구 l 399
북한이 주도한 ‘침략작전’임을 증명하는 사실들 l 411
남한의 모든 폭동은 다 민주화운동 l 424
황혼에 드리운 먹구름 l 432
인격 살인 위해 끝없이 쏟아내는 언론 화살 l 450
내 인생 자체가 현대사 l 469
채명신 사령관의 묘 l 502
검찰의 백지 구형 l 508
에필로그
1991년, 나는‘멋’(A Grace Inside)이라는 책을 냈다. 주로 사관학
교와 베트남 전쟁터 그리고 미국 이야기들이었다. 2005년, 버리기에
는 아까운 내용들을 더 추가해서“나의 산책세계”1,2권을 냈다. 이
책을 읽은 연배의 지인들이“매우 특이한 자서전이다, 어떻게 이런 형
태의 특이한 자서전을 낼 수 있느냐”하면서 출판기념회를 공동으로
주선하겠다고 제의하셨다. 2005년이면 내 나이 63, 그때까지 나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여러 개 냈고, 수많은 칼럼들을 썼지만 출판기념
회를 갖는다는 것이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더해 남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났다. 2009년, 나
는 앞 책들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일부 내용들을 추가하는 등 다시
편집하여, “뚝섬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었다. ‘뚝섬 무지개’라
는 제목은 이 책의 앞부분에 수록된‘지상에서 만난 천사’의 이야기
에 상징돼 있는 낱말이다. 그 천사는 달릴 수 있는 궤도 위에 내 인생
을 올려주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이때부터 1990년까지 내가 걸었던 목가적인
산책로들이 그려져 있다. 따로 회고록을 남긴다는 것이 멋쩍은 일이
라, 1990년 이후에 걸었던 여로를 가급적이면 짧게 압축해 여기에 보
태는 것으로 회고록에 갈음하기로 했다. 후반의 내용들은 내 몸이 그
일부로 용해돼 있는 현대사의 일각들이며, 그래서 이 책은 아마 이 시
대에 누구도 쓸 수 없는 생생한 역사책일 수 있을 것이다. 흐르는 역
사의 강가에서 보는 역사와 흐르는 강의 일부가 되어 보는 역사는 많
이 다를 것이다.
이 에필로그 공간은 내가 나를 정리해 보는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나는 1942년 음력 11월 20일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도곡리 271번지,
호랑이 나오는 높은 산 중턱에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채 경기도 양평
군 영화마을 구둔으로 왔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13세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고학하느라 고생을 했지만 부모에 대해서는 보고 싶어
하는 마음만 있었지 원망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잠시
라도 헤어졌다 만나면 어머니의 눈매는 온통 나를 빨아들이려는 듯
해보였다. 정을 듬뿍 주시고, 어디를 가나 귀염 받게 낳아주신 것만으
로 나는 늘 부모님께 감사한다. 지금의 안사람 역시 그런 식으로 나를
사랑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도 나를 사랑한다. 이렇게 보면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 와서 나는 무엇을 남겼는가? 가장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사논문이다. 기나 긴 수학공식 2개가 들어 있고, 수학정
리가 6개가 있고, 미해군에 선사한 ‘함정수리부속별 수량’을 계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들어있다. 만일 내가 장교가 아니었다면 나는 수
학의 새로운 경지들을 개척하는 일에 생을 묻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
는 수학을 좋아했다.
그 다음에 내가 남긴 것은 1981년부터 5년 동안 윤성민 국방장관과
함께 국방예산개혁을 주도한 일이다. 이 개혁으로 인해 군수물자는
자유재가 아니라 각 관리책임자에게 부과되는 회계항목이 되었다. 사
단과 같은 독립 부대들에는 자원관리 참모가 새로 생겼고, 비용을 계
산하는 전산시스템이 새로 생겼다. 이 개혁은 지금까지의 국방 역사
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내가 남긴 가장 큰 것은‘5.18의 진실’을 담은 9권의 책일 것이다.
나는 이 나라를 완전 장악한 빨갱이 세력, 이 땅 전체에 뿌리를 내리
고 있는 빨갱이 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
했다. 그 무기는 쿠데타 식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5.18의 진실을 전
국민에 알려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5.18마패를 치켜 들고 국가 위에
군림해 온 빨갱이들’에 ‘사기당하고 농락당해 온 것’에 대해 분노하
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끌어 낸 결론은‘5.18 이 북한
의 게릴라전’이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다윗의 무기다. 이 무기를
만들어 내는 데 무려 18년이 걸렸다. 사랑하는 아사녀를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하고 오로지 다보탑 조각에만 몰두했던 아사달의 모습이,
아마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등지고, 몰매 맞고, 감옥에 가고, 끝없이
소송에 휘말리고, 가족들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안겨주면서 20년에
가까운 황혼의 나이를 쏟아 부은 나의 모습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98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만 20
년 동안 150개 내외에 이르는 소송을 하면서 빨갱이들과 싸웠다는 사
실이다. 지금 나는 5.18 반역자들과도 13개의 재판을 벌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을 주사파라 했다 하여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418호 검사 홍성준이 뉴스타운과 함께 나를 기소했
다. 위안부를 내걸고 반국가활동을 하는 정대협과도 2개의 소송을 벌
이고 있고, 내 글을 함부로 검열하고 삭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소송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이외수라는 이상한
소설가도 소송을 걸어왔다. 김대중 이전에는 국가경영이라는 전문분
야를 놓고 기득권들과 싸웠지만, 김대중 이후에는 나라를 빼앗기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슈에 매달려 더러운 진흙탕에서 인간 이하의 것들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여왔다.
사람들은 매우 기이하게 생각한다. “일생에 단 한 개의 재판사건만
걸려도 머리가 아프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20년 동안 그 많은 재
판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인생은 수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존재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민하는 사람이 있
고, 수학문제를 풀 듯이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고민을
하면 몸이 망가지고, 문제를 풀면 건강이 증진될 수 있다. 나는 늘 재
판을 문제 풀 듯이 대해왔다. 어떤 사람들은“판사들이 다 빨갱이들일
텐데 싸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런 말도 한다. 이렇게 생각
하면 싸울 힘이 사라진다. 나는 언제나 내가 만나는 판사는 공의로운
판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머리를 논리적으로 점령하기
위한 글을 쓴다. 이것 자체가 많은 노력을 요하긴 하지만 일종의 창작
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
긴다는 심정으로 세상을 산다.
나는 군사평론가, 시스템전도사 그리고‘극우-또라이’라는 꼬리표
를 달고 살았다. 시스템 전도사를 하면서 나는 시스템에 대한 내 나름
의 정의를 만들어 냈다. “시스템이란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
라 그렇게밖에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 은행객장에는 질
서가 없었다. 이를 놓고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의식이 잘못돼서 발생
하는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했다. 1990년 은행객장에 순번대기번호표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 간단한 시스템 하나 생기니까 은행객장 질서
가 선진국처럼 좋아졌다. 그것은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었다”
나에게는 특기가 두 개 정도 있다. 토의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토의주도 능력과 경영진단 능력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발생하는 모든 병리현상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걷던 길에서 일부 내가 남보다 앞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세 가
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조각난 시간을 이어 썼다. 길을 걷는 순
간, 차를 모는 순간에도 나는 늘 생각할 거리를 마련한다. 조깅을 하
면서도 수학문제를 머리에 담고 다니면서 풀었다. 둘째, 늘 자극을 스
스로 만들어 냈다. 사람이나 조직은 자극이 없으면 나태해 지고, 나태
함은 퇴화의 병균이다. 늘 채찍을 만들어 자신에게 채찍을 가해야 한
다. 셋째는 목표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오로지 내가 정한 목표
를 향해 내 길을 곧장 가는 것이다. 내가 매 열흘 동안 걸어온 길은 목
표를 따라 걸어 온 길인 것이다. 그 목표는 빨갱이 세력을 격퇴시키
는 것이다. 그 격퇴의 무기가 바로 5.18의 진실, ‘5.18은 북한이 저지
른 게릴라전’이었다는 사실을 이 나라 모든 국민에 알리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빨갱이들에 매맞고, 감옥가고, 줄기차게 소송을 당하면서도
소형 책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애국국민들에 나누어 주는 일을 하
고, 다른 한편으로는 빨갱이들이 벌이는 음모에 대비해 불침번을 서
며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오리를 가다 쓰러지든 10리를 가다 쓰러지
든 내가 가야할 길이 오로지 이 한 길 뿐이기에 야만의 벌판 위에 솟
아난 가시들을 오늘도 밟고 나아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인간적 속성이 있다. 인습과 통념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
분방하며, 몰두하는 시간들로 삶을 채웠다. ‘무엇이 내게 이로우냐’
를 생각하지 않고‘무엇이 정의냐’에 따라 몸을 던졌다. 내가 전자의
잣대로 길을 걸었다면 그 많은 소송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가 걸었던 길들은 넓고 편한 길,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아
무도 가지 않았던 가시밭길이었다. 나는 왜 이랬을까. 절대자가 내게
짜준 ‘팔자의 길’을 걸었다고 밖에는 달리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2018.10.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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