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살인 위해 끝없이 쏟아내는 언론 화살(나의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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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07-18 15:30 조회5,8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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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살인 위해 끝없이 쏟아내는 언론 화살
(나의 산책)
광주인들이 벌이는 집단소송에 신나는 언론집단
광주와 전남에 거주하는 무명인들이 나에게 소송을 걸 때마다 광주의 지만원대책위는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들이 대들었다. 내게 소송을 거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억울한 피해자로 과장하고, 나에 대해서는 광주-전남 지역에 사는 숭고한 5.18유공자들에게 억울한 피해를 입히는 악인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들이야 말로 소송사기 행위를 통해 나를 억울한 피해자로 만든 가해자들이다. 2016년 5월 19일 서울법원에까지 몰려와 백주 대낮에 집단폭행을 가했듯이 이들은 지만원을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는 악담을 하면서 나에게 소나기 소송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광주-전남인들의 증오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선 변호인을 곡 선임하겠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판사에게 “시민운동을 합니다“라고 대답한 것 그리고 나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저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언론들은 지만원이 숭고한 민주화 유공자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했기 때문이 집단 폭행을 당해도 싸다고 했다.
2016년 5월 19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5.18 폄훼 지만원, 멱살 잡히고 머리 맞고”라는 제목으로 낸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극우보수 논객 지만원(74)씨가 재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빠져나오자, 5월 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회원과 시민 40여 명이 지씨를 쫓아가며 거세게 항의했다. 법원경비관리대원들이 지씨와 5월 단체 회원들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씨와 회원들은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회원은 지씨의 멱살을 잡고, 그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 . 5월 단체 회원들은 왜 지씨에게 화가 났을까. 이날 재판은 5분 만에 끝났다. 지씨는 직업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시민운동을 한다고 말해, 5월 단체 회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김영광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집행위원장은 "직접 현장에서 지만원씨를 보니까 5월 단체 회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시민운동가라고 하고, 나중에 사선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임하겠다고 했다. 이런 행위 자체가 5월 단체 회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전했다.”
사선변호인을 선정하겠다고 재판장에 말한 것이 5월단체 회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인가. 저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이 세상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이러한 종류의 의식구조를 가졌기에 저들은 15명의 그쪽 사람들을 소송사기 행위로 내몰 수 있었던 것이다. 각자는 자기가 제 몇 번 광수라고 주장을 하지만 얼굴이 전혀 다르다. 흐린 사진 면 장 내놓고 ‘맨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번 광주임ㄴ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막가는 주장을 한다. 소송문서에 변호사들이 다 그렇게 써 주었다. 상황적 알리바이와 시간적 알리바이가 전혀 입증되지 않는 엉터리들을 내보내 소송사기 행위를 사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광주변호사들이다.
일단 한 언론이 아무개가 지만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보도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이 나에 대한 인격살인에 가담한다. 서울에서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형사재판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저들에 큰 문제가 아니다. 일단 전국단위로 인격을 살해하면 누구도 지만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략만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놓고 한국 사회에서는 노이즈마케팅이라 한다.
2004년에 있었던 2개의 큰일
2004년에는 한국사회에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주사파들의 사기행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의 막가파식 반일-반미 활동이 있었다. 주사파는 김일성 종교를 신봉하면서 남한에서 적화통일 과업을 스스로 이행하는 반역자들이다. 이들은 1980년대에 대한민국을 좌경화시키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고, 대구폭동, 4.3사건, 5.18폭동 등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04년 봄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의 계절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은 한국사회에 우익이 좌익보다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우익의 표를 얻어 한나라당에 대량으로 침투하기 위해 전향의 쇼를 벌였다.
최홍재 홍진표 하태경 등 대표적 얼굴마담들이 이제부터는 애국자가 되겠다며 전향을 공표했다. 전향 발표와 함께 이들은 ‘뉴-라이트’라는 조직을 만들어 지지층을 확대했다. 모든 언론들이 이들을 프리마돈나로 띄웠다. 모든 우익들이 탕아가 돌아왔다며 환호했다. 12명이 국회의원이 되었고, 150여명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가 국회를 사실상 장악했다. 지금도 여야 없이 보좌진 세계는 주사파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사파들의 전향은 치밀한 전략이었을 뿐이다. ‘한번 걸레는 영원한 걸레’다.
2004년 11월, 노무현은 뜬금없이 ‘한반도균형자론‘을 내세우며 위안부 문제를 앞세워 반일감정을 유도했고, 유럽과 남미 여러 나라에 다니면서 미국을 비방했다. 네오콘의 마이클 호로위츠는 “다른 나라 대통령은 국가를 번영시키기 위해 정상외교를 하지만 한국대통령은 하루에 40억원씩 쓰고 다니면서 국가에 유익한 친구를 버리려 하고 있다.”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2005년 3월 4일, 오마이뉴스가 한승조 교수가 일본 정론지 4월호에 썼다는 논문 한편을 들추어내 반일감정을 부추기기 위한 마녀사냥감으로 던졌다.
한교수의 논문은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합병을 재평가하자”는 제목으로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정론> 4월호에 실렸다. 그의 논문 요지는 흠잡을 데 없었다. “말기의 조선은 일본, 중국, 러시아의 각축장이 되었고, 약육강식 시대에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조선은 이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 먹히게 운명 지어져 있었다. 만일 조선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먹혔다면 지금쯤은 중국이나 러시아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 먹힌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여기에서 “축복”이라는 단어만 따서 “한교수가 일제강점을 축복이라고 주장했다”라는 취지로 모략을 했다. 이에 조선일보를 위시해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들이 한교수의 논문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베껴서 보도했다. 한승조 교수에게 돌을 던지지 않은 매체는 단 한개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 알량한 대한민국의 언론인 것이다. 언론의 이러한 막가파식 마녀사냥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들이 미쳐 날뛸 때는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통하는 세상사는 방식이다.
하지만 부당한 공격을 당하는 노교수를 못 본 체 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다. 이튿날인 3월 5일, 나는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한승조 교수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잘못 된 글도 아닌데 무조건 집단적으로 돌을 던지는 행위는 원시인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승조 교수를 향해 날아가던 돌이 나에게 집중됐다. 나는 여러 개의 방송사에 나가 빨갱이들과 논쟁을 했다. “당신들처럼 못난 행동 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일본에 먹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말을 듣는 빨갱이들의 약이 바짝 올랐다. 나는 이들에게 퍼부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원자탄 세례를 받고도 전쟁이 끝나자 잘난 미국을 배우자며, 미국으로 몰려가서 배웠고, 미국 품질이론의 대가들을 모셔다 배워 가지고 오늘날의 품질 1등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 당신들은 뭐냐, 사실 조선은 먹힐 짓을 해서 먹힌 것 아니냐, 갓 쓰고 댓님 매고 기다란 담뱃대 들고 헛기침하던 사람들이 사회를 호령했던 어른들인데 그들이 언제 기차를 만들고 철로를 놓고 터널을 뚫고 지금까지도 단단히 견디는 교량을 세우고 전기발전소를 건설하고 고층건물을 짓고 공장을 건설하겠느냐,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배우는 그 자세를 배워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 그야말로 저들에게는 막말로 들리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나를 두 번 마녀사냥 하고, 두 번 무릎 꿇은 SBS
어느 빨갱이든 나랑 논쟁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TV에서 몇 시간이고 토론하자 했다. 그랬더니 진중권이 톡 튀어나와 자기가 빨갱이라며 토론을 하지 했다. 그와 상대하는 것이 나의 무게를 허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토론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은 시청자들에 전해주고 싶어서 그와 상대했다. 그와 1시간 동안 토론했다. 그리고 며칠 있더니 원희룡이 또 자기도 빨갱이라며 토론을 붙자고 했다. 원희룡과는 90분 동인이나 토론했다. 토론이 빨갱이들에 유리하지 않았던지 SBS의 PD들이 내가 주최하고 있는 월례 강연장에 들어와 회원들의 입장 모습 정도를 담아가지고 갔다.
그리고는 2005년 3월 13일 밤 11시, 임성훈이 진행하는 쎄븐데이즈 프로에서 집중적으로 나를 모략했다. 내가 강연에서 “위안부는 은장도로 자결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방송이 전국 방방곡곡에 다 나갔으니 나는 그야말로 범국가 차원의 친일파요 또라이가 된 것이다. 과연 내가 이런 강연을 했는가? 내가 했던 강연내용은 “은장도로 성을 지켰던 시대에 살았던 아녀자들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으니, 이제 와서 정치적 목적으로 그 할머니들을 부끄럽게 거리에 내돌리지 말고 국가가 먼저 배상해야 한다” 이런 것이었다. 이 모략 프로를 조작한 범인들은 SBS의 윤정주 PD, 이광훈 PD였다.
나는 이 두 PD에 전화를 걸어 시정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기세등등하게 법대로 하라 했다. 내용증명을 보내 시정을 요구했지만 대답은 전과 같았다. 언론중재위에 회부했지만, 이들은 중재위의 권고도 무시했다. 서울지방법원에 정정보도 소송을 냈더니, 법원은 SBS에게 사과와 정정의 뜻이 들어 있는 재판장의 글을 사회자 임성훈이 세븐데이즈 프로에서 낭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SBS는 재판장 앞에서 합의해 놓고도 그 합의문 대로 지키지 않았다.
나는 3천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제1심은 "SBS는 지만원에 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때의 판결문이 SBS의 무법성을 잘 나타내 줄 것이다. “피고는 세븐데이즈 프로에서 진행자가 평상속도로 이 사건 보도내용을 낭독하는 방법으로 방송하기로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행자인 임성훈이 프로그램에서 사라진 뒤 무명의 나래이터가 이 사건 보도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위 합의 내용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보도내용을 조정 원안대로 방송하지 않음으로써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원고의 사회적 지위와 피고의 위반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위자료는 20,000,000원으로 정하는 게 합당하다.”
졸지에 당치도 않은 친일파 딱지가 달린 한승조 교수는 그 동네에서 한동안 살지 못하고 피신을 했었다. 1930년생인 그는 2017년 7월 세상을 떴다. 나무위키에는 “급사했다” “인과응보다” “쌤통이다” 이런 험악한 문구들이 보인다. 언론이 얼마나 몰인간적이고 몰지각하고 얼마나 살인적인 존재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후 누군가가 만들어 확산시킨 플래시게임 ‘불멸의 이순신 게임’이 수천만의 클릭을 기록했다. 이 게임은 내 얼굴을 붙인 한 일본 장군이 이순신의 칼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영상물이었다. 나와 내 가족을 다 죽이려고 저지른 악행이었다. 나의 아이들은 그 때 어려서 학교에만 갔다 오면 엉엉 울었다. 그 때의 내 심정은 매우 표독했다.
이 자를 잡아달라 경찰에 신고했더니 무려 8개월이 자나서야 범인을 찾아냈다. 고향은 의성, 1980년생인 서울대 경제학과 안경상이라는 학생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지역 군에 입대해 있어서 군법회의는 그에게 벌금 50만원만 물렸다. 그리고 수원지방법원 여성 판사는 군복을 입고 재판정에 나온 그에게 400만원의 손해배상을 선고했다. SBS의 윤정주 PD, 이광훈 PD로 인해 유발된 비극이었다. 나도 죽으면 나를 친일파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급사했다’ ‘인과응보다’ ‘쌤통이다’ 이렇게 적을 것이다. 나는 양력으로는 1943년 1월생이다. 내가 어떻게 친일파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과응보, 이 무서운 말은 윤정주 PD, 이광훈 PD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신이 살아있다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나에게 몹쓸 짓을 해서 무릎을 꿇었던 SBS는 제 버릇 못 버리고 2008년 또 디시 나를 모략했다. 2008년 11월 13일, 모든 언론들이 다 소란을 떨었다. 광주 출신 여배우 문근영이 이름을 드러나지 않고 6년에 걸쳐 무려 8억 5천만 원의 기부를 했다며 그녀를 “기부천사” “국민여동생”으로 띄웠다. 번개가 치자 재빨리 그 불에 콩을 구워먹는 사람이 있다 하듯이 꽤 많은 언론들이 문근영의 선행을 이용해 빨치산을 애국자로 띄웠다. 문근영을 이렇게 반듯한 ‘엄친딸’(엄마친구 딸)로 키운 것은 그의 외조부인 류낙진 옹이 손수 길렀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서 언론들은 그의 외조부가 류낙진이었는데 35년 동안 옥살이를 한 독립 운동가였다고 소개했다. 사실 류낙진은 악질 간첩으로 죽기 전까지 전향하기를 거부한 비전향장기수였다. 이에 나는 일부 언론들이 문근영의 선행을 내세워 빨치산을 선전하고 있다는 글을 시스템클럽에 올렸다.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SBS가 나서서 나를 모략했다. “문근영이 기부를 한 것은 빨치산을 선전하기 위해 한 것이다” 내 글을 이렇게 왜곡해 저녁 8시 뉴스에 방송했다. 한승조 교수 사건 때처럼 모든 언론들이 무조건 SBS가 보도한 내용 그대로를 기사화해 내보냈다. 자체 조사를 생략한 채 남의 기사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언론일 수 없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도 언론 자격이 없었다.
나는 허위사실로 나를 모함한 매체를 상대로 만사소송 12개, 형사소송 12개를 소나기식으로 걸었다. 이때 매우 놀라운 현상을 경험했다. 2명의 판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질 낮은 빨갱이 판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SBS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서울남부지법 김성곤 판사가 먼저 판결문을 썼고 조선일보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법 이수진 판사가 판결문을 썼는데 김성곤 판사가 쓴 판결문 그대로를 긁어서 썼다. 결국 SBS는 서울고등법원에 와서야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SBS는 아침 뉴스 시간에 2회에 걸쳐 아래 내용을 방송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본 방송은 2008년11월17일 8시 뉴스에 배우 문근영의 기부와 관련하여, 우익논객 지만원 씨가 문근영 씨의 기부에 색깔론을 들고 나오면서 손녀인 문 씨의 선행은 빨치산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지만원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은 ‘문근영 씨의 선행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행을 이용하여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일부 언론을 비판한 내용’ 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12개의 형사 고소를 했지만 단 1명의 검사만이 기소를 했고, 민사사건이 2심까지 가는 동안 24명의 판사가 있었지만 나에게 승소를 선고한 판사는 2명뿐이었다. 형사사건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김시철 부장판사는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썼다. 한마디로 원고의 글은 비난받을 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고의 글을 판단하건데, 문근영은 얼굴 예쁘고, 연기 잘 하고, 마음도 예쁘고, 집안까지 훌륭하니 엄친딸에 딱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의 여동생이고, 그녀의 외조부는 통일운동가, 작은 외조부는 민주화투사, 외삼촌과 이모도 경찰 조사를 받을 반큼 애국자라는 뜻으로 선전을 한다. 빨치산은 통일운동가이고, 빨치산 가족은 집안 좋은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하고 엄친딸을 키운 집안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빨치산 집안은 아주 훌륭한 집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빨치산들의 심리전이며, 문근영의 선행이 선전되는 것만큼 빨치산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는 선전도 동시에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저들은 문근영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놓고 빨치산에 대한 혐오감을 희석시키고,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근영과 신윤복 프로를 띄워주는 조중동은 이런 심리전에 착안하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문양의 선행을 문제 삼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녀의 선행을 등에 업고 ‘보아라 문양은 훙륭하다. 그런데 그 가문은 빨치산 가족이다. 빨치산이란 통일운동가이고, 그래서 문양의 가문은 명문가문(좋은 집안)이다. 이렇게 선전하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기재하는 등 문근영의 선행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정리한 다음 일부 언론매체가 문근영의 기부행위에 관하여 그 가족사를 결부시켜서 빨치산을 미화시키는 보도를 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보도의 배경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 내용을 주로 적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4명의 판사들 중 우리의 일반 상식 그대로 판결한 판사가 오직 두 사람뿐인 것이다. 이에 비해 서울남부지법 김성곤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판사의 손가락에 빨갱이가 달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고는 언론매체들이 문근영의 기부행위를 보도한 것이 빨치산 선전의 음모라 보면서 문근영의 기부행위에 빨치산선전 등의 어떤 목적이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음이 인정된다. 피고의 방송은 허위라거나 글의 의도를 왜곡하였다거나 원고를 비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원고가 우리 사회의 이념적인 문제와 관련된 공적인 의견을 표시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고의 각 글이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위 보도는 원고 스로 수인해야 할 범위 내의 것이라 할 것이어서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도 없다.”
이 판결문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긁어다 판결문을 쓴 판사들이 서울중앙지법 이수진 판사를 위시해 거의 대부분이다. 김시철 부장판사의 판결문과 김성곤 판사 등의 판결문은 극과 극이다. 판사들 중에 빨갱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 김성곤 판사의 1심 판결을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뒤집어 준 것이다. 2009년 11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이상원 판사가 서기호 판사의 판결문 2쪽 분량을 모두 마우스로 긁어서 판결문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상원 판사는 혼자서 내가 원고로 되어 있는 3건을 도맡아 재판했다. 동아일보 김상경, 시사신문 김태혁, 데일리NK 박인호를 상대로 하는 소송사건 3개가 모두 한 사람의 판사 이상원에게 배당된 것이다. 3개의 사건을 한 사람의 판사에게 도매금으로 배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배당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그대로 참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원 판사는 이 3개의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모두 똑같이 썼다. 다른 글은 불과 몇 줄 안 되었다.
날아가 버린 "좌익들의 연말 대목"
2008년은 역사적 이정표들이 매달린 해다. 2008년 2월에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5월 6일,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는 첫 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집회는 100일 동안 지속되면서 이명박 몰아내기 집회로 접근됐다. 6월 4일에는 김대중이 광화문 촛불집회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 이후 초유의 직접민주주의라며 이명박 독재정권을 몰아내라며 좌익 총 동원령을 내렸다. 이에 동조하여 북한에서도 노동신문 등을 통해 좌익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명박 퇴진 집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연말은 기부의 계절이다. 빨갱이들은 연말 대목을 보기 위해 문근영을 이용한 것이다. 기부금 잘 내는 배우등 돈 있는 사람들의 경쟁심을 유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연말모금을 대대적으로 유치하고, 문양에게 광고 모델료가 쇄도하게 해서 많은 자금을 유치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문양에 대한 사회적 입지가 굳어지면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바위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문양이 뜨면 그의 간첩 외조부 류낙진도 함께 뜨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수많은 언론들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각오하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기부금의 계절인 연말특수 계획이 탄로 났다고 생각해서인지 좌익들이 땡삐 떼처럼 일어난 것이다. 언론이 소리를 키울수록 국민들이 깨어났다. 그래서 저들의 연말대목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것이 내가 공격받은 데 대한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문근영 여파로 기부금 모으는 단체 복마전 드러나
문근영을 기부천사로 띄우는데 도구로 이용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가 문근영 사건의 반작용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공금유용, 장부조작 등 각종 부정행위의 온상이 되어 있다는 구체적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빨강색 ‘사랑의 열매’로 상징돼 왔다. 그 열매가 주는 메시지는 신뢰와 훈훈함 그 자체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을 목말라하는 곳곳을 부지런히 찾아내 실시간으로 사랑을 베푸는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천사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존재로 부각돼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가 엄청 썩었다. 구글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검색어를 치면 ‘공금 유용’이라는 단어들이 도배돼 있다.
한국적십자회 역시 부지런히 발로 뛰어다니면서 불우한 이웃을 찾아내 우리를 대신하여 챙겨주는 깨끗한 영혼들이 일하고 있는 존재인 것으로 부각돼 왔지만 세상이 원체 부패하다보니 이 곳 역시 썩었다. 보도에 의하면 불쌍한 아이티를 돕는다며 국민으로부터 100억원에 이르는 성금을 걷어놓고 아이티를 위해서는 쓴 돈이 별로 없다. 남은 돈을 가지고는 은행에 장기적금을 해놓기도 하고 호강이나 하고 다녔다.
아이티 성금을 주는 기부자들의 마음은 아이티 인들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성금을 유용하고 빛나게 써달라는 것이었지 그 돈으로 적십자사 사람들이 호강이나 하고 66억원이나 되는 돈을 은행에 장기적금 해놓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급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타이밍이 생명이 아니던가? 그런데 조사를 당하자 “나중에 차차 도와주려고 했다”고 변명했다. 썩은 것만 아니라 대한적십자회는 북한에 쌀을 대주고 세멘트를 대주는 조직이 되었다. 강원도가 태풍피해를 집중적으로 입어 모 방송사가 나서서 성금을 걷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돈의 극히 일부만 강원도에 간 모양이다. 성금을 걷어 기금을 만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제는 믿을 단체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길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는 왕왕 성금을 달라고 성금함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구세군이 나와 딸랑이를 흔들며 성금을 호소한다. 이제 이들을 보는 눈들도 싸늘해 졌다.
세월호 폭침은 북의 시스템적 공작이었을 것
2014년 4월 16일, 발설하기조차 역겨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국정원이 폭침시켰다, 미국 잠수함이 격침시켰다, 등 온갖 음모론이 판을 쳤다. 한국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미친 사회였다. 정말로 합리적으로 제기해야 할 의혹은 북한의 공작이다. 세월호 폭침 보름 전인 3월 31일, 북한은 서남전선사령부 명의로 해군 2함대에 전화통지문을 발송해 “오늘 중” 해상사격훈련을 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통지문에는 백령도 NLL 북쪽에서 연평도 북쪽 대수압도 인근까지 7개 구역에 사격을 할 것이니 이 구역에 남측 선박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있었다.
여러 날도 아니고 하루 동안만, 그것도 며칠 전에 통보한 것도 아니고 당일 통보한 것이다. 잠수함을 잘 잡는 존재는 다량의 어선들이다. 어선들을 이날 못 다니게 한 것은 잠수함이 인천지역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3월31일, 나는 이 보도가 나오자마자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북한이 공작용 잠수함을 보낼 것이라고 경고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정확히 보름 만에 천안함이 폭침 됐다. 그 침몰은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작성된 정밀한 시스템에 의해 매우 조직적으로 발생했다. 침몰 후에 대량 피해가 날 수밖에 없도록 짜인 정밀한 시나리오도 있었다. 북한이 1,200명이 넘는 특수군과 공작요원들을 광주에 침투시켜, 광주와 전라남도 17개 시군을 동시에 게릴라전으로 몰아넣는 작전을 벌이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한국군과 전두환에 뒤집어씌운 것에 비하면 세월호를 폭침시켜놓고 이를 박근혜에게 뒤집어씌우는 일 정도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로 쉽고 간단한 일이다.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을 보자. 사고가 발생하자 이 땅에 입 달린 빨갱이들이 다 나섰다. 미국의 소행이다, 국정원의 자작극이다, 연연히 반복해온 레파토리로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이명박까지도 북한을 의심하지 말라며 “내가 선박을 지어봐서 아는데 철판의 피로에 의한 침몰일 것이다” 이런 희한한 말까지 했다. 이 한심한 모습을 지켜 본 오바마가 순발력 있게 나서 주었다. 미국 전문가 15명을 포함하여 영국, 호주, 핀란드 등에서 총 24명이나 되는 잠수함 기술자들을 파견해 주었다. 그 결과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인 것으로 명백히 규명됐다. 오바마가 이렇게 발 빠르게 앞장 서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명박이 정치적 코너에 몰렸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을 위한 북한의 침몰작전도 ‘해상사격구역 설정’으로 시작됐다. 해상사격구역! 이 6개의 글자는 군 수뇌들의 머리에 각인됐어야 할 글자였다. 2009년 11월 10일, 김정일은 고속정을 보내 우리 해군함정에 선제 사격을 가했다. 마침 현지 지휘관이 소신껏 적함을 대파시켰고, 적함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연기를 뿜으면서 예인돼 갔다. 김정일은 이 수모를 반드시 ‘천백배’ 갚아주겠다고 공언했다. 천안함 공격 계획은 이런 동기로 유발된 것이었다. 북괴는 2010년 1월 25일부터 3월 29일 까지 65일 동안 백령도와 대청도 바로 북방에 여러 개의 사격구역을 설정해놓고 사격훈련을 하겠다고 선언해놓은 후 심심하면 사격을 했다. 우리 어선들과 함정들이 65일 동안 발이 묶였다. 북괴는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가? 천암함 폭침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해군을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이 2개월 동안, 이 지역은 바로 북한의 잠수함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공간이었으며, 2개월이 바로 폭침을 위한 수중 정찰과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기간이었다. 천안함 침몰은 사격시한이 마감되는 3월 29일의 3일 전에 발생했다. 천안함이 백령도 근방에서 제2함대 사령부의 진로통제를 받으면서 저속으로 움직인 데에는 작전 목표가 없었다. 당시 보도된 상황처리 내용들을 보면 제2함대 사령부에 간첩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내 생각이다.
세월호가 북한의 작전이라면 그 작전에는 반드시 대대적인 시체장사가 뒤따르고 뒤집어씌우기가 따라야 한다. 5.18로 인해 북한이 가장 재미를 본 것이 바로 시체장사요 뒤집어씌우기였다. 이 땅에서 발생한 대규모 위들은 모두가 시체장사를 통해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빨갱이 이론을 알고 있기에 나는 세월호 사고 직후 곧 대대적인 시체장사가 있을 것이라는 글을 써 저들의 의표를 찌르려 했다. 2014년 4월 22일, 나는 시스템클럽에 “박근혜, 정신 바짝 차려야”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중에는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 선장과 선원들의 당당함을 보면서 그리고 마치 사전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는가?”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매우 고맙게도 이번에도 모든 언론들이 이 문장을 걸고 늘어지면서 나를 공격했다. 서울경찰청 간부도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나를 ‘내사’할 것이라 했고, 언론들은 이 내사라는 단어들을 대서특필했다. 내가 곧 구속될 것이라는 소문들이 파다하게 퍼졌다. 사실이야 어떻든 나부터 죽여 놓고 보자는 것이 빨갱이들의 작전인 것이다. 그렇게 대서특필됐던 내사였는데도 막상 사건을 배당받은 수사관은 ‘웃기는 일’이라는 듯 나를 부르지도 않고 무혐의 종결 처리 해버렸다. 시체장사에 대해 언론들의 떼거지 공격이 있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시체놀음이라는 빨갱이 수작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18.7.1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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