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원수인가? 친구로 삼아야 하나? (김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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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7-11-05 02:47 조회6,136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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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원수인가, 친구로 해야 하나?
김피터 박사
1904년 2월 8일 밤, 요동반도 남단의 ‘뤼신’(旅順, Port Arthur)항을 조차하여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 극동함대 함선들 밑 바다속에서 어뢰들이 터졌다. 몰래 쳐들어 온 일본함대가 기습적으로 어뢰 공격을 가한 것이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다.
그 이튼날 제물포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함정 2척을 침몰시킨 일본군은 곧이어 3천명의 군대를 상륙시켜 수도 한성에 진주시켰다. 만주 등에서 러시아가 밀리게 되자 러시아는 그 위용을 자랑하던 발틱 함대를 출동시켰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서, 장장 3,300Km(1800해리)의 먼 거리를 운항해 온 발틱 함대는 1905년 5월, 쓰시마 근해에 도착했다.
5월 27일 밤, 대기하고 있던 일본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향해 일제히 맹렬한 기습공격을 가했다. 그날 밤 러시아가 자랑하던 발틱 함대의 전함들 및 승조원, 전투병 5천여 명이 모두 동해 바다 쪽에서 수장되고 말았다. 결국 일본이 승리했다. 그리고 조선은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만일 일본이 패하고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이후 조선반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그때 조선은 500년간 종주국 노릇을 하던 중국이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등 서구 열강 앞에 무릅꿇게 되므로, 일종의 ‘무주공산(無主空山)’같은 땅이 되어 있었다. 조선은 자체적으로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국방력이 전혀 없었다. 이런 한반도를 먹으려고 눈독을 들이는 두 야수가 있었다. 하나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일본 세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시아에서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러시아였다. 이 두 세력이 충돌한 것이 러-일전쟁이었다.
러시아는 일찍부터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쓰면서 조선반도에 대한 야욕을 들어내고 있었다. 1860년 블라디보스톡 지역을 확보한 러시아는 그후 동해상에 함정을 보내 수로를 탐사하기도 하고, 원산만에 러시아 함정이 들어와 조선과의 통상과 러시아인의 조선 거주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1884년에 ‘조-러 통상조약’이 체결됨으로 러시아는 조선에 공식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896년에는 조선왕이 정동의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 사건이 생길만큼 러시아의 조선에서의 영향력이 컸었다. 당시 주일 러시아 공사였던 로젠 남작 등은 러시아의 조선 합병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1903년에는 만주를 점령했던 러시아군이 한만 국경을 넘어와 용암포를 점령하고 러시아 해군기지 건설을 시도하는 사건이 생겼다. 일본이 강력히 철수를 요구하자 러시아는 한반도를 39도선 남북으로 분할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지배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이 이를 거절했지만 이때 일본이 이 제안을 수락했다면 한반도는 그때 이미 남북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이 없는 조선은 그때 불가피하게 망하게 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어느 세력에게 먹히게 되는가였다.
러시아와 일본 둘 중에 어느쪽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 그래도 나은 것이 되었을까?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쳐올 때, 그리고 두 상황이 다 ‘나쁜것’이라면 ‘최악(worst) 보다는 덜 나쁜(bad)쪽이 그래도 낫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 그때 러시아가 조선반도를 침탈 지배하게 되었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그것은 ‘최악’이다. 왜냐면 결국 조선은 소련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공산국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지금의 북한같은 김씨 왕조 독재 하의 비참한 나라같이 되었을 것이다. 무슨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렇지만 불행중에도 다행히(?)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고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행한 나쁜 일, 악행만 기억하고 일본에 대하여 ‘원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은 일본의 조선 통치가 그때 ‘야만국’수준 같았던 조선 반도에 개화와 ‘문명화’를 가져왔다는 사실(史實)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조선조 말 때의 상황을 ‘야만국’ 수준 같았다는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여행가 헤세-바르텍(조선 1894년 여름 저자)등 외국인들의 눈에도 그때 조선의 수준은 정상적 국가가 아니고 일종의 야만국 같은 수준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결코 ‘식민지 근대화론’ 국사관에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다. (일부 주장들은 수긍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새로운 근대 국가의 기틀을 잡은 신진 세력들이 산업혁명으로 발전된 서구 문명국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드려 일대 혁신과 개혁으로 부국강병 및 문명화를 이루었다. 그런 개화된 일본이 조선을 지배 통치하게 됨으로 그들의 그 개화 및 근대화를 조선에 이식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지배 통치로 한반도는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산업 인프라로 철도, 도로, 통신, 항만등 기반 시설들의 건설, 경 중공업단지 조성, 농경의 혁신으로 농산물 생산증가, 산림정책으로 자연재해 감소, 시장 경제의 활성화, 금융제도의 정착 등 경제의 성장, 현대 교육제도, 일본 등에 유학의 문호를 열어 테크노크라트, 인재 양성 등이 이룩되었다.
만일 그때 러시아가 조선을 지배했다면 일본이 조선에 했던 위와같은 근대화의 일들을 했을까? 대답은 ‘아니’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일본은 그들의 한반도 지배때 압록강에 4450 제곱미터의 거대한 ‘수풍땜 및 발전소’를 7년간에 걸쳐 건설했다. 그 당시 단일 발전소로는 발전량이 세계에서 가장 큰것이었다. 그런데 1945년 8월, 한반도의 북단을 점령하러 온 소련군이 제일 처음 한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그 수풍땜 발전소의 발전기 7기중 5기를 약탈해 간것이었다. (소련은 그것을 가져다가 이르타시강 땜 발전소에 사용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조선을 지배 통치했었다면 아마 한반도의 모든 자원을 다 수탈해 갔을 것이고, 또한 지도층, 지식인층 등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했을 것이다.
윤치호씨 등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에 행한 문명화는 일본인들을 위해 한것이지 조선인들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때 한반도 땅 및 한국인을 일본에 영구 합병하여 일본으로 만들려고 했으므로, 그들의 문명화 작업을 ‘일본인들을 위해서만 했다’고 판단할수는 없다.
1910년의 한일합병 사태는 100여년 전의 ‘역사’다. 1945년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지도 벌서 70여년이 흘렀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아직도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지금 세계 모든 것이 급속하게, 매일 매일 새로운것으로 매일이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달려 있을것인가? ‘군 위안부’, ‘강제 징용’문제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것인가? 지금 미국 각도시에 한인들이 ‘위안부’ 동상들을 세우고 있는데, 그것이 한국이 미국과 세계인들에게 보여 줄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일본에게서 한국보다 더 심한 피해와 고통을 당했었다. 난징학살 사건만 보아도 30만명이 잔학한 방법으로 학살당했다. 생체실험용으로 적어도 1만명이 고통당하다가 죽어나갔다. 물론 군 위안부로도 끌려 나갔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그런 과거가 대국의 자존심 문제이고, 또 중국인 자신들의 수치이기 때문에 역사에 묻었다. 한국인들처럼 위안부 동상 같은 것 세우지 않는다.
결국 우리의 선조들이 잘못해서, 나라를 지키지 못해서 당한 것 아닌가? 우리 자신들의 책임이고 잘못이 크다. 그런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 미국 도시들에 위안부 동상들을 세우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차라리 어떤 ‘상’을 세우려면 6,25때 한국을 위해 희생된 미군 영웅들의 동상이나 ‘참전비’같은 것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무라야마 토미이치 수상 등이 일본군의 관여 인정 및 반성과 사죄를 한 것을 비롯해서, 각료급, 수상들 그리고 천황까지 포함해서 적어도 20번 이상 유감, 반성, 사과, 사죄, ‘통석’등의 표현으로 한국에 대해 사죄를 표현하였다. 이제 한국은 일본의 그 사죄를 받아드리고 더 이상 ‘과거사’에 매달리 말아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이제는 ‘미래’ 지향적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계속 피해 의식을 가지고 ‘과거사’를 ‘현재형’으로 붙들고 있는 한 대한민국은 계속 일본에게 ‘약자’가 되고, 일본을 뛰어 넘을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자유 시징경제 제도 및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대한민국과 같은 체제 및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에는 대한민국과 다른 체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들이 있다. 한국은 어느 쪽과 친구가 되어야 할까?
한미일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안보, 군사 및 경제 부문에서 공조, 협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미일 삼각 동맹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도 부합되는것이고, 한국이 작은 나라지만 ‘강국’으로 살수 있는 길이다. 70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한일 관계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계속 ‘현재형’으로 몰고 가는 세력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바로 이 한미일 공조 내지 동맹을 못하게 하거나 저해시키려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문제로 초긴장상태다. 국가지도자들은 또 다시 100여년 전의 과오를 범하지 말라. 한미일 공조를 더 강화하여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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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님의 댓글
Long 작성일
한미일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안보, 군사 및 경제 부문에서 공조, 협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미일 삼각 동맹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도 부합되는것이고, 한국이 작은 나라지만 ‘강국’으로 살수 있는 길이다.
70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한일 관계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계속 ‘현재형’으로 몰고 가는 세력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바로 이 한미일 공조 내지 동맹을 못하게 하거나 저해시키려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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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한국의 장래를 위한 좋은 글입니다.
퍼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湖島님의 댓글
湖島 작성일同感입니다.
멸공공수님의 댓글
멸공공수 작성일
위안부 동상은 김일성 동상과 동급,
1개 만들때마다 8천만원씩 주는 정치와 예술유착질, 서울역 신발 쓰레기 1억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