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사 하니 양말 한 짝이라도 나오든가? (Ever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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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7-11-09 19:06 조회5,759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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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재조사 한다고 난리법석 피우더니 결국 유야무야 되어 가는 모양이다. 발포 명령자, 전투기 대기 명령, 헬기 기총소사 등 뭐가 있어야 조사가 되지. 문재인 정부 같으면 김일성의 솔방울 수류탄처럼 능히 조작해 낼 마술사가 많아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나 국방부 캐비넷에서 차원의 벽이 뚫려 5.18 문서가 마구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헬기사격과 발포 명령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약속한 대통령 문재인이 재조사의 특명을 내리면서 8월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도 주인공 송강호와 힌츠페터 마누라와 함께 관람하는 쑈판을 벌였다. 그가 그토록 영화광인 줄 몰랐다. 탁현민이 시켰을까? 임종석이 시켰을까?
그들은 조사해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화를 만들어 요란을 떨고 언론을 통해 이슈로 부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헌법에 5.18정신을 넣고 호남 몰표에 감사 인사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조사는 1980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37년 동안 무려 6번 째 조사며 5번 째 재조사다.
TV방송은 전일빌딩 탄흔을 보여주면서 진압군이 헬기에서 기총소사를 하였다고 신바람이 났다. 아놀드라는 목사 부부가 헬기 3대가 850명 죽이는 거 당시 광주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제시한 헬기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며 그를 ‘사탄’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사탄이라고 했겠나?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 발언을 듣는 순간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진실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가 다소 우직하고 독재적으로 나가긴 했지만 성품상 사탄을 들먹거리며 화를 낼 만큼 교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과묵하게 지키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은 매국행위에 다름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이번에 제창으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개념 없는 인간들 때문에 우익이 정권을 잡아도 재조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강력한 우파 논객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도 즐겨 부른다 하고, 김무성은 제일 크게 부르겠다고 문재인에게 약속까지 하였다. 5.18 당시 김진은 어렸지만 김무성은 그 사태를 감으로도 느낄 나이였다.
비록 5.18의 내막을 잘 모른다하더라도 그 피비린내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 마지막 구절 ‘산자여 따르라’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전투 행위이며, 피 흘리는 투쟁이며, 세상을 뒤집는 혁명을 말한다. 그런 정신이 오늘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우익을 구속시키는 숙청행위일진데 그것을 우파가 부르면 축하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그때 정치를 잘 몰랐던 나였지만 당시 김대중과 호남이 약간은 이해가 가면서도 사태가 도를 넘는 것이 몹시 언짢았고 싫어하지도 않았던 김대중이 문득 정권욕에 얼룩진 얼굴로 크게 오버랩 되며 다가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상도 말을 하면 죽인다는 소문만 들었지 장갑차가 동원되고 기관총을 쏘고 교도소를 습격한 줄은 몰랐다는 사실이다.
광주가 저 난리인데 3김 김영삼의 부산은 왜 가만있고 김종필의 충청도는 왜 가만있을까? 제주도, 경기도는 왜 가만있는 것이며 최규하의 강원도나 윤보선의 충청도는 군인에 밀려 잠시잠깐 누린, 안 하니만 못한 대통령의 자리였다고 울화통을 터뜨려야할 입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대통령을 도별로 돌아가며 할 수 없는 것이며 과도한 불만은 역심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5.18 사태가 돌연변이 ‘민주화 국가’가 된 것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와이셔츠에 팔짱을 끼고 수심에 찬 표정으로 청와대 집무실 창밖을 내다보며 애국자의 모습을 코스프레 하던 김영삼이 ‘광주사태’를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개명하였을 때 5.18의 망령이 부활하며 카오스의 문이 열렸고 이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화의 면죄부가 발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5.18 영화에 세뇌 된 젊은이들은 시간 감각이 없어 5.18 때부터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지만 그런 분위기는 1960년 4.19를 시발로 노태우의 87년 6.29 선언 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군인 출신 노태우는 서류가방을 들고 ‘저는 보통사람입니다’를 얼마나 강조하였던가. 그는 ‘물태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재하고 거리가 먼 대통령이었다.
다시 말해 5.18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군인이 정권을 탈취한 것이 국가적 수치라면 장갑차를 몰고 찝차에 기관총을 달고 폭동을 일으킨 것도 국가적 수치를 가져왔다. 그리고 아무리 오늘날 ‘민주화’가 장땡이라도 조사를 그 따위로 하면 안 된다. 헬기 기총소사를 조사할거면 폭동 군이 뿜어대었던 기관총 탄흔도 같이 조사해야 한다.
댓글목록
진리true님의 댓글
진리true 작성일
김조필? 김조용필? 이젠 죄짐에 눌려서 저승가는 귤 한개도 못들고 갈텐데...
기회주의를 양산하니 서산 갈매기가 삼각산에 머리박고,
주사파 도지사가 황성옛터를 지켜주니, 아직은 살만하겠지!
그러나, 이죽거리는 스타일은 자한당에도 전염되어
똥인지/된장인지 국민이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무엇때문에 오늘 하루를 더 살아야 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안되더라~
같은 세대라고 반드시 같이 가고 싶지도 않더라~
국가존망인데, 5/18 민주운동 자서전은 안쓰고 가시는가?
오리수님의 댓글
오리수 작성일
흥!!
그 잘난 김종필이????
이상한 말은 침 잘도 만들어 내더니.....
그 백미가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던가?????
그럼 노을이 붉지 푸른 노을도 있었남????
지가 나가고 나면 금방 빨갈 줄 알았남????
하긴 그 때 이후로 더 붉어지긴 했지.....
맛이 간 늙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