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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서 (서울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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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07-24 23:29 조회6,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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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 변 서 (서울형사)

 

사건2016고단2095.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 훼손 등)

2016고단9358(병합)

피고인 지만원 외 1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지만원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답변 요지

 

1. 피고인측이 접근 가능한 개인자격의 고소인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5명뿐입니다. 5명의 고소인은 피고인측이 판단하건데 완전 위계로 소송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 외의 모든 고소인들도 같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 외의 고소인들도 자신들의 얼굴사진을 고소장에 제시했지만 피고인에게 등사된 문서들은 모두 얼굴이 가려진 채 등사되었습니다. 검사실이 얼굴을 가리고 등사를 해줍니다. 이는 방어권을 원천봉쇄하는 일입니다. 속히 피고인측이 고소인들의 얼굴사진을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획득할 수 있게 명령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최신의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소개된 보도내용 두 가지를 추가합니다. 노숙자담요가 수행한 영상분석 기법과 동일합니다. 모든 정부청사에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신분증 없이 공무원들을 출입시키고 있다 합니다. 고소인이 주장하는 10여개의 광수 얼굴들을 정부청사 컴퓨터에 일시 입력시킨 후 고소인 모두를 청사 앞 출입구에 세우기만 하면 컴퓨터가 판명해 줄 것입니다.

 

3. 북한의 교과서, 북한이 발간한 역사책 4, 북한에 대해 남한이 발간한 기사에 의하면 남한에서의 모든 시위는 북한이 배후 조종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5.18은 그 수많은 소요 중의 최고작품인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5.18에 대해 근거 없이 잘못 형성된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자료라 생각되어 증거자료와 함께 답변에 추가합니다.

 

                            답변 내용

 

1. 고소인들의 위계에 대한 증명

 

                             김진순(86)의 위계

 

김진순은 관 앞에서 울고 있는 제62광수(리을설)를 자기라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붙들고 운 관 속에는 바로 자기 아들 이용충(1954)이 들어있었다 주장합니다. 이용충은 대법원 판결문(59-8)에도 나와 있듯이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5.21. 사망한 사람입니다. 5.18사이버추모공간에는 그의 남동생 이장충의 증언이 기록돼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용충 씨를 찾기 위해 광주와 전남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가방까지 짊어지고 돌아다녔지만 이미 이용충 씨가 죽은 뒤였다. 이용충씨는 광주교도소에서 죽어 망월동에 안장된 상태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광주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는 시체의 사진과 옷가지 금니 등을 보고 이용충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66)

이에 더해 2016.5.17. 한겨레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672쪽 가).  

김씨의 큰아들 이용충(당시 26)씨는 1979년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 양동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했다. 80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해 시위에 참여한 이용충씨는 521일 오후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시위 진압용 페퍼포그 차를 끌고 나왔다. 이용충씨는 522일께 광주교도소 앞길에서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안부맹관창’(3)으로 사망해 암매장됐다가 광주시 북구 망월동 옛 묘지에 묻혔다. 김씨는 그해 630일에야 경찰한테서 장남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 체크무늬 점퍼와 오후 123분에 정지된 손목시계가 아들이라는 증거였다.” 

 

결론적으로 김진순은 아들 관을 본 적도 없고 시체를 본적도 없습니다. 단지 1980.6.30. 경찰서에 전시된 점퍼, 손목시계. 시체사진, 금니를 보고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5.18단체들은 김진순을 앞세워 소송에 나서게 한 것입니다. 이런 고소는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었지만 검찰은 조사조차 하지 않고 기소하였습니다

 

                                  심복례의 위계

 

광주지방법원에서 관할한 2015카합636의 가처분신청사건에서 신청인 박남선 심복례, 곽희성, 백성남은 인용결정을 받았습니다((수사기록 460-462). 당시 심복례는 자신이 제62광수(리을설)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고소사건에서는 주장을 변경하여 본인이 제139광수(홍일천)라 했습니다. 2017.7.7.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위 가처분사건의 본안사건 2016가합51950 손해배상()이 열렸고, 개인 원고 4명이 증언대에 섰습니다. 원고측, 재판부, 피고측 신문이 있었습니다. 피고측 변호인은 반대신문 사항에 따라 신문했습니다. 이 신문 내용들이 법원에 속기되었기에 이를 제출합니다(69). 이 신문 내용에 대한 답변들을 보면 심복례는 위계 소송에 나선 사람입니다. 재판부가 작성한 녹취록을 분석하기 이전에 심복례가 오래 전, 두 개의 공간에 스스로 증언한 자료에 대해서 먼저 석명하고자 합니다.

 

. 객관적 자료가 증명하는 위계

 

1) 67 한겨레신문)에서 심복례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관에 피가 뚝뚝 떨어져 있고. 신하고 시계 봉께 알 것드마. 마지막 얼굴도 못 봤제. 구묏에서 (신묘역으로 주검을) 옹길(옮길) 때 시상에 (뼈가) 황금빛이여.”  (67 1쪽 나)

2) 5.18기념재단이 운영하는 사이버추모공간에는 김인태(1묘역 1-4)란이 있고, 거기에서 심복례는 아래와 같이 증언했습니다(수사기록 413).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남편

해남에서 농사를 짓던 김인태 씨가 광주와 맺고 있는 연이라고는 큰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숙을 하고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김인태 씨는 손이 귀한 집의 독자로 태어나 심복례씨와 결혼해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김인태씨의 큰 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19802월에 졸업했으나 하숙비를 해결하지 못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1980519일이 돼서야 그동안 농사일로 바빠 해결하지 못했던 큰아들의 밀린 하숙비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광주로 향했다. 집을 나선 김인태씨는 열흘이 넘게 소식이 없었다. 심복례씨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5월 말께, 심복례씨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면사무소 직원에게 김인태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인태씨가 사망에 이른 경위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며 심지어는 그가 연행되고 바로 숨을 거뒀는지, 구타에 시달리다가 버려지기 직전에 숨을 거뒀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단지 유골의 상태와 사망추정시각으로 추측해 볼 때, 계엄군이 교도소로 퇴각하는 동안 사망했으며, 극심한 구타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점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증언자: 심복례)  139광수가 촬영된 날짜는 5.23.입니다. 심복례는 증67 한겨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경찰이 진열한 신발과 시계를 보고 남편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3)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구글에서 '망월동 가매장'으로 검색하면 1999.5.에 심복례가 남편 김인태 주검에 대해 증언한 증언록이 나옵니다(70). 시누이 등 동네사람들과 함께 해남에서 목포를 경유, 도청에 도착한 기각이 5.30. 오전 8시였고, 시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곧장 망월동에 가서 가매장 직전의 남편을 처음 보았다는 것입니다.  열흘 후쯤(529일로 추정) 막내아들 동일이를 들쳐업고 농협­면사무소 바로 옆­에 비료를 사러 나갔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유연히 산이면사무소 직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직원이 아주머니 면사무소로 남편의 사망통지서가 왔으니 빨리 가보세요라고 말해 곧장 면사무소로 갔습니다. 사망통지서에는 남편이 망월동 묘역에 가매장되었으니 29일까지 와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주민등록증을 보고 통지서가 해남 산이면사무소로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광주로 나가는 교통편이 많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다음날인 30일 아침 6시경 시누이와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똑딱선을 30만원에 빌려 목포까지 나왔습니다. 목포에서 광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도청 앞에 도착하니 아침 8시쯤 되었더군요. 도청 앞에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시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곧장 망월동 묘역으로 출발했습니다. 망월동에는 이미 구덩이를 파놓았고 관은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하루에 시신을 15구씩 확인 매장한다고 했는데,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고 함께 온 시누이, 동네 어르신들과 장례를 치렀습니다. 관 뚜껑을 열자 남편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고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식구라 남편의 체격이나 형상을 알아보는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시신의 형태는 어떻게 죽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에 피가 낭자하고 부어 있었습니다. 최근 묘를 이장하면서 시신을 재부검해보니 심한 구타로 인한 두개골 압박골절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 광주사건 2016가합51950 신문녹취록이 증명하는 위계 (69)

 

1) 심복례는 가처분사건에서는 자신이 제62광수라고 했다가 1개월 후 돌연 주장을 바꾸어 자신은 제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라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기억을 못한다, 나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고 답했습니다(5).

 

2) 62광수와 제139광수는 모습과 역할이 매우 다른데, 주장을 바꾼 이유가 무언가요하는 질문에 모른다. 바꾸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3) 고소장에서는 5.18기년재단 청년회장의 전화를 받고 자기가 제139광수라라는 사실을 알았가고 했었는데 2017.7.7. 신문에서는 청연회장의 이름도 모르고 혼자 결정한일이라고 답했습니다(5).

 

4) 심복례는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김인태의 얼굴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김인태인가요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6). 1,2,3,4항만 보아도 심복례는 스스로 소송에 나설 처지가 못 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5) 지만원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간첩이다 북한군이다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습니다(6). 지만원으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한 적이 없다는 말일이 됩니다. 계산된 답변이 아니라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6) 피고측 변호인이 사이버추모공간에 심복례 이름으로 기재돼 있는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라는 제목의 글 해남에서 농사를 짓던 김인태 씨가 광주와 맺고 있는 연이라고는 큰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숙을 하고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김인태 씨는 손이 귀한 집의 독자로 태어나 심복례씨와 결혼해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김인태씨의 큰 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19802월에 졸업했으나 하숙비를 해결하지 못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1980519일이 돼서야 그동안 농사일로 바빠 해결하지 못했던 큰아들의 밀린 하숙비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광주로 향했다. 집을 나선 김인태씨는 열흘이 넘게 소식이 없었다. 심복례씨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5월 말께, 심복례씨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면사무소 직원에게 김인태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를 모두 찬찬히 읽어주고나서 이 내용이 맞느냐고 묻자 심복례는 맞다 사실이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7-8),

 

139광수가 촬영된 날은 1980.5.23.입니다. 하지만 심복레가 남편의 관을 처음 맞이한 곳은 망월동, 날짜는 5.30.이었습니다.

 

                                         박남선의 위계

 

. 광주사건 2016가합51950 신문녹취록이 증명하는 위계(69)

 

1) 박남선은 5.18기간에 무장시민의 총지휘관이었다(박남선 녹취 2)

박남선이 무장시민의 총지휘관이었다는 진술은 허황된 허위입니다. 이 내용은 아래에 따로 항목을 정해 석명하겠습니다.

 

2) 71광수는 박남선인데, 피고가 재71광수 얼굴 중 턱 부분을 조작하여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8). 이 증언은 허위입니다. 71광수의 현장사진은 조선일보 사진DB에 지금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를 프린트한 것이 바로 제71광수의 사진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재판부에서 직접 그 사진이 있는 위치로 찾아들어가 확인하시는 방법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위 사진 찾기 경로는 구글에서 '조선일보 사진DB' 그 다음 '광주민주화운동'을 검색해 들어가셔야 합니다. 수많은 페이지들이 뜨는데, 그 중 제47쪽을 찾으면 제71광수의 사진이 제2열 제2째 및 제3열 제1째로 나옵니다. 이로써 위 사진들이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될 것입니다.

 

3) 71광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즉 박남선이 지휘하는 사람들은 당시 신분을 파악할 필요가 없어서 누군지 모른다.(9)

 

4) 황장엽은 코 모양, 입 모양, 뺨에 크고 높게 돌출돼 있는 에스자형 근육, 아래위로 나 있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사마귀접이 있는데 박남선의 얼굴에는 그런 특정점이 없없지요라는 질문에 박남선은 ,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10). 피고인이 변형시켰다고 주장한 부분은 턱선입니다. 그렇다면 얼굴의 다른 부분들은 변형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 변형되지 않은 부분에 나 있는 여러 개의 특징이 박남선 본인 얼굴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박남선은 위계로 소송에 나선 것입니다.

5) 박남선은 M16유탄발사기를 공수부대와 전투 중에 노획한 무기라고 답했습니다(10). 그러나 당시 공수부대는 M16유탄발사기를 소지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공수대원들은 아래 사진이 보여주듯이 M16소총을 등 뒤에 X자 형으로 메고 뛰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좌측 하단에는 무전기를 멘 무전병도 있습니다. 이 무전기가 당시 군의 무전기였습니다.

 

5.18공수대원 소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공수부대 대원들이 멘 소총과 무전기

6) M16유탄발사기 중 유탄과 유탄발사 구성품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박남선은 처음 보는 것이라 모른다고 답했습니다(11). 

M16유탄발사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7) M16유탄발사기 완성품 사진을 보여주면서5.56미리 총탄을 발사할 때와 유탄(수류탄 효력)을 발사할 때 각기 어느 가늠쇠를 사용하느냐고 묻자 M16유탄발사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11). 그 무거운 무기를 들고만 다녔다는 뜻입니다.

M16유탄발사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8) 박남선이 들고 있던 무전기는 어디에서 났느냐는 물음에 박남선은 도청에 이런 무전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고 답했습니다(11). 하지만 제71광수가 들고 있던 무전기는 워키토키로 당시 경찰이나 군이 소유하고 있던 장비가 이니거니와 무전기는 발전 속도가 빨라 무기고 자장품목이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무전기와 워키토키는 아래 사진들과 같습니다. .

통신병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71광수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는 주파수를 바꿀 수 있는 밴드가 좁고 통달거리가 작고 보안성이 없어, 자전거 동호인 등 소규모 조직이 사용하는 민간용 워키토키입니다. 무기고에서나 군에서 나온 장비가 아닙니다.

워키토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9) 박남선은 일주일동안 광주가 피바다였기에 (낮에는 물론) 잠을 잘 때도 워커를 신고 잤다고 답했습니다(13). 그런데 제71광수는 검정색 사제 단화를 신었습니다(수사기록 17-18). 참으로 황당한 거짓말로 5개 사건(본 사건, 호외지 및 화보집 각각에 대한 가처분 및 손배소)에 대해 소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김청길, 김종배, 정상용, 허유정(:5.18영웅) 등은 523일에는 광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도청을 장악했다고 진술하는데 맞는가요?라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아래에 따로 석명하고자 합니다.

 

. 박남선이 무장시민군의 총지휘관이라는 증언도 허위

 

아래 5개의 사진은 모두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하여 촬영된 것들입니다.









 

시민군


 

1번 사진은 도청 앞에서 다부진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군대식 전투복장을 갖추고 집총을 하고 서 있습니다. 콩가루처럼 흩어져 있던 광주의 10-20대 껌팔이 구두닦이 등 59개 종의 최하층 노동에 종사했던 아이들이 5.18의 주역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과연 이 20세 전후의 풋내기들이 이렇게 전투프로처럼 보이는 전투복장을 갖추고, 총을 가볍게 들고,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2번 사진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다부진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도청 정문을 굳게 닫고 군대만이 챙길 수 있는 전투장구로 무장하고 총을 한 손에 가볍게 쥐고, 광주사람들이 도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비를 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광주의 20대 아이들의 모습인지 살펴주십시오. 3번 사진은 도청 안을 점령하고 있는 다부진 어깨들이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 총을 가꾸로 메고 도청 내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작전하러 나가는 병사들, 작전을 수행하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날랜 몸매로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북한군은 총을 거꾸로 메고 한국군은 총을 바로 멥니다. 좌측 사진에서 날랜 몸매로 팔을 쭉 뻗어 지휘하는 사람에게도 소형 무전기가 쥐어져 있습니다. 박남선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제71광수가 쥐고 있는 무전기와 같은 것입니다. 만약 박남선이 제71광수라면 그가 가진 무전기로 이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어깨와 통신을 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상황 상 어림도 없는 거짓입니다. 4번 사진은 도청을 장악한 집단이 광주사람들을 도청으로 범접하지 못하게 해 놓은 상태를 말해줍니다. 작전하러 나가는 트럭은 다른 사진에서 제10호 감시반이라는 명패를 번호판에 달고 3인의 어깨들이 기관총을 거치하고 다니는 차량입니다. 5번 사진은 광수의 로고, 1호 광수입니다. 이런 다부진 모습이 광주의 20대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제1광수가 끼고 있는 흰색 장갑은 석면장갑입니다. 기관총을 많이 발사하면 총열이 뜨거워지고 그라면 총열이 휘어집니다. 그래서 교체를 합니다. 이 석면장갑은 뜨거워진 기관총 총열을 갈아 끼우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장비입니다. 광주의 어린 사람들이 이런 특수장갑까지 챙긴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벌써 제1광수가 2010.5.17. 평양노동자회관에서 열린 5.18 30주년 기념행사장 로열석에 앉아있는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5.18영상고발”(18) 화보 제204쪽을 꼭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객관적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면 제1광수가 광주사람이라 주장할 사람 드믈 것입니다. 이상 5개의 사진이 5.22부터 5.24.까지 도청을 장악했던 "시민군본부"의 모습입니다. 5.18항쟁증언자료집I 에서 증언자들은 그들이 시민군본부의 위엄 있어 보이는 고위공직자처럼 생긴 사람에 의해 도청출입이 거부됐다고 증언했습니다. 모습을 보나 상황을 보나 증언집을 보나 위 사진들의 주역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진들이 곧 신기루처럼 전설로만 여겨져 왔던 시민군본부의 정체인 것입니다(596).

 

박남선은 그가 들고 있었다는 총기를 계엄군과 전투를 하는 도중에 노획했다고 주장하나(68, 반대신문사항 제16), 59-6에 그가 증언한 내용과도 일치하지 않고, 그가 상황실장자격으로 소속했던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위원장 김종배, 내무담당 허규정 외무담당 정상용 등의 증언들(59-6))을 보아도 '학생수습대책위원회' 팀들은 계엄군과 전투를 한 적이 없습니다. 5.18 하면 항쟁본부라는 말이 있고, ‘시민군본부라는 말이 가장 많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여기에서 항쟁본부라는 말은 1980.5.26. 아침부터 가동된 학생수습대책 위위원회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위원회의 구성을 증71로 제출합니다.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일명 항쟁본부) 5.25 자정에 구성(71)

위원장 김종배 (26, 학생무기징역)대변인 윤상원 (윤개원30, 위장취업 도청 앞서 자상으로 사망)외무담당부위원장 정상용(30, 사원 무기징역)내무담당부위원장 허규정 (27, 학생15년형)기획실장 김영철(32, 사원 7년형)민원실장 정해직 (29, 교사 5년형)상황실장 박남선(26, 골재운반운전수 무기징역)보급부장 구성주 (26, 건재상 2년형) 홍보부장 박효선 (29, 교사, 전남대 국문과 졸)조사부장 김준봉 (21, 사원5년형)기동타격대장 윤석루 (19, 양화공 무기징역)경비담당 김화성 (21, 종업원5년형

 

박남선은 5.25. 밤중에 즉흥적으로 구성한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입니다. 2010.5.11. 경향신문(72)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시민군 총지휘관이었다는 박남선의 주장은 허위입니다. 결론적으로 위 5개의 사진은 25세의 화물자동차를 몰던 박남선 정도가 지휘할 군번이 아니었습니다. 5개의 사진은 도청을 배타적으로 장악한 북한특수군이었습니다. 이를 한층 더 증명하고자 합니다. 5.18유공자의 최고 반열의 인물들은 모두 위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소속인들입니다. 이들 스스로가 증 59-6에서 5.1-21까지는 모두 숨어다녔다고 진실했고, 자기들은 25일 이후 도청에 하나씩 모여들었다 시국수습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5.25.밤 온건파를 몰아내고 강경파로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를 구성하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 박남선 등 5.18 최고 유공자들은 5.18.-21. 폭동에 가담하지 못했습니다.

1) 5.185.18-21의 전투작전과 5.22-27.의 수습과정으로 양분됩니다. 전자의 주인공은 북한특수군이었고, 후자의 주인공은 광주인들이었습니다. 광주인들은 총기반납을 위주로 하는 수습대책을 놓고 갑론을박하였습니다.

 

2) 5.18사건의 초동단계에는 광주인들이 가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5.18항쟁주역들로 알려진 김창길, 김종배, 정상용, 허규정, 박남선의 증언에 의하여 인정됩니다. 이들은 당시 제1심 군법회의에서 사형 및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5.18 최고 반열의 유공자들로서(59의 제78) 이들의 증언은 2002. 12. 전남대학교 출판부가 발행한 "5.18항쟁증언자료집I"(59 98-175)에 수록돼 있습니다.

3) 김창길(온건파 학생)의 증언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522일 아침에 도청에 들어가 시민수습위원회 만들어 계엄군과 협상하기 시작했다(소을2호증의 6 103). 생면부지의 장인홍씨가 나에게 물었다. 자네 누구냐? 저는 전남대 3학년 김창길입니다. 그러자 장인홍씨는 그럼 잘됐다. 지금 계엄사와 협상하러 가는데 학생 대표 1명이 필요하다. 자네가 같이 가자(같은 제108쪽 가, ). 학생수습위원회에 학생은 서너 명뿐이고 나머지는 일반인들이었다(같은 제109쪽 가). 시민군 조직은 도청에서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자생적 조직이었다. 이런 조직이 무기를 회수하러 다녔다(같은 제110쪽 가). 시민수습위원회 사람들은 아침에 넥타이 매고 출근했다가 딱 시간 되면 퇴근했다(같은 제111쪽 가). 윤상원(: 이른바 5.18의 영웅,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과 정상용 등은 5. 24. 오후에 도청에 처음 들어왔다(같은 제112쪽 가). 시민수습위원회의 헤게모니가 조비오, 김성룡 신부들로 완전히 넘어 간 시점이 5. 24. 저녁이고, ‘항쟁지도부가 생긴 시점은 5. 26. 아침이었다(같은 제113쪽 제14행 나)라고 합니다.

 

4) 강경파 학생 김종배(1심 사형)의 증언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상원, 정상용, 김종배 셋이서 이전의 수습위원회를 엎어버리고 25일 저녁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같은 제114-115쪽 가). 수습위원회에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었다. 온건파는 무기를 반납하자는 파이고 강경파는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이었다. 25일 밤 강경파가 온건파를 몰아내고 투쟁위원회만들었다(같은 제116쪽 나). 25일 밤, 박남선이 총으로 위협해서 온건파 김창길 등을 추방했다(같은 제119쪽 가). 기동타격대는 실내장식업을 하는 이재호가 조직하고 윤석루(19세 구두공, 1심 무기형)가 대장을 했다. 윤석루는 대장이긴 해도 어리고 뭘 몰랐다(같은 제121쪽 가). 21일 저녁에 총이 나왔다. 22일 총기를 반납하자는 수습방안들이 나왔다(같은 제123쪽 가). 박남선은 도청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같은 제125쪽 가). 투쟁위원회에 모인 정상용 등 몇 몇 사람들은 다 끼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련반대, 긴급조치위반, 민청학련 빈민운동 문화운동 등을 했던 사람들이었다(같은 제127쪽 가)라고 합니다.

 

5) 정상용(1심 무기형)의 증언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항쟁지도부는 급조된 조직이다. 나는 외무위원장을 맡았다. 그 이전에는 시민학생수습대책위가 있었는데 총기를 반납하자 해서 이를 거부하고 만든 조직이다(같은 제128쪽 가), 그날이 25일이다(같은 제128쪽 나). 시민학생수습대책위의 기본 골격은 무기반납이었다(같은 제130쪽 가). 23일부터는 무기반납 쪽으로 선회했다(같은 제131쪽 가). 항쟁지도부의 활동기간은 525일 오후부터 27일 새벽이었다(같은 제131쪽 나). 26일 우리가 재무장을 하기로 결의하고 발표하고 조직을 짜려는 순간 진압 당했다(같은 제132-133쪽 가). 519일부터 윤상원 등 투사회보 사람들이 녹두서점(: 윤상원이 점원으로 있는 서점)에 모여 작업도 하고 전략회의도 했다. 21일 총격전이 나자 모두 흩어져 각자 도생했다. 이날 수시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보성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숨어 다녔다. 본격적인 재집결은 22일부터였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YWCA를 계속 활용했다(같은 제136쪽 가). 김종배와 허규정은 조선대 학생일 뿐 운동권은 아니었다(같은 제137쪽 가)라고 합니다.

 

6) 허규정(1심 무기형)의 증언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처음 박관현이 전남대 총학생회장인줄도 몰랐다(같은 제143쪽 가). 투쟁위에서는 누가 나서서 주도하는 사람도 없었고 리더도 없었다(같은 제145쪽 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장악한 사람들이 도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분을 다 확인했다. 우리가 도청에 들어간다고 하자 높은 사람들로 보이는 관료들이 계엄군이 들어오니 나가라고 명령했다(같은 제148쪽 가, ). 25일 도청에 모인 사람들은 맨날 회의만 하고 대안은 못 내고,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다(같은 제151쪽 가, ). 도청에 모인 사람들은 고등학교학생들과 나이 어린 사람들이었다. 광주의 운동권들은 계엄 검거령이 내려져 모두 잡혀갔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같은 제154쪽 가)라고 합니다.

 

7) 박남선(1심 사형) 증언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위에서는 식당종업원, 구두닦이 등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제일 앞장섰다. 소위 운동권들은 다 도망갔다가 5. 23.-25.경에 도청에 들어왔고 지식인들은 수습위원회나 만들어 가지고 얼굴 세우는 일만 했다(같은 제163의 가). 도청 내에 남아 있는 인력은 100명 정도였다(같은 제172)라고 합니다.

 

                            곽희성(당시 20)의 위계    

 

. 상황에 대한 허위성(69 녹취록

  

1) 곽희성은 자기가 제184광수라고 주장합니다. 당시 본인은 YWCA 옥상에서 카빈소총을 메고 보초를 서고 있으면서 도청에서 부르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가 촬영되었다고 주장합니다(2). 총은 그냥 들고 있었고, 총 다루는 방법은 몰랐다고 증언합니다(7). 그러나 이 진술은 이치에 맞지 않고,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2) 10층짜리 전일빌딩 마즌편 건물인 YWCA는 고층건물입니다. 184광수 얼굴 사진은 매우 선명하고 화질이 좋아 누군가가 바로 근접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고층건물 옥상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사진이라면 사진사가 옥상에까지 함께 올라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가 특별히 옥상에까지 올라와 근접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 위험한 상황 속에서 고층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보초서는 사람의 얼굴을 찍을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3) 곽희성은 도청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제184광수 얼굴은 애국가를 부르는 얼굴이 아닙니다.

 

4) 알리바이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도청에서 애국가를 불렀다면 영화 화려한 휴가가 핵심장면으로 묘사한 바로 그 오후 1시이고, 이제까지 널리 알려진 바의 그 오후 1시입니다. 오후 1시에 계엄군으로부터 무차별 사격을 받고 우리도 총이 있어야 한다며 나선 것이 무기고 탈취로 이어졌다는 것이 5.18측의 정설입니다. 수사기록에도 무기가 일반시민에 배포된 시각은 5.21.15:00경입니다(59, 14쪽 하단). 그런데 곽희성은 오후 1시 그 유명한 시각에 총을 메고 도청 앞 인파를 내려다보면서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주장합니다. 알리바이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5) 그는 또 입대 전이라 소총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 채 그냥 메고만 있는 상태로 보초를 섰다고 주장합니다. 무기를 사용할 줄도 모르면서 무기를 들고 있는 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또한 작전의 중요한 지형지물인 고층 빌딩을 총도 쏠 줄 모르는 이런 어린 사람에게 일임할 조직은 없습니다. 5.21 당시는 총알이 가장 활발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매우 위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없다. 또한 보초를 서려면 반드시 통신수단을 가동해야 합니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보초를 선다는 것은 시야가 좋은 높은 곳에서 주위상황을 잘 내려다보고 시기각각 변하는 상황을 무전병처럼 보고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곽희성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 얼굴 생김새에 대한 허위성

       ​ 

        184광수(수사기록 64)                               곽희성(수사기록 66)         

 

1) 피고측 변호인이 질문했습니다. “카빈총을 든 인물은 얼굴이 길고, 광대뼈가 크게 돌출돼 있고, 코가 매우 크고, 눈썹이 일자이고, 턱선이 뾰족하고, 이른바 아구 부분이 강하게 튀어나왔고, 당시 남한에서는 드물었던 장발에다 화이버 모를 썼고, 콧수염을 길렀고, 얼굴형이 좀 험악해 보이는 30-40대 얼굴로 보이지요?” 이에 곽희성은 생김새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고, 단지 당시에는 장발이 유행이었다는 답변만 하면서(6) 얼굴 특징을 따지는 질문을 동문서답으로 회피하였습니다.

 

2) 곽희성이 고소장에 첨부해서 제출한 얼굴들은 매우 어려 보이고, 광대뼈가 없고, 눈썹이 초승달처럼 동그랗고, 얼굴형이 곱상하고, 턱선이 완만하게 둥글어 보이지요?”라는 질문에 곽희성은 고소장에 제출한 사진은 1982년 사진인데 그 때는 면도도 하고 머리도 짧게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5.18때는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세면도 못한 상태라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6). 그러나 두 사진의 차이는 면도와 두발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 구조와 생김새에 대한 문제입니다. 184광수의 특징은 두툼한 입술, 힘 있는 광대뼈, 긴 얼굴, 묵직한 코, 매서운 눈매, 일자 눈썹, 뽀족한 턱선, 단련된 뼈대 등이며 이 얼굴을 30-40대의 얼굴이지 20세의 얼굴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곽희성은 법정 신문을 통해 왜 본인이 제184광수와 같은 얼굴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고,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설명 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남의 위계(69)

1) 백성남이 제출한 그의 작은 아버지 백용수의 사진 3매는 5.18 전후에 촬영된 사진들이라 합니다(3). 백성남은 백용수의 목 부위가 빨간색으로 변해 있어서 금방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5), 피고인의 변호인은 제184광수 사진들(수사기록 39)을 보여주면서 목 부위 어디가 어떻게 빨갛게 되었다는 것이냐 질문했습니다. 이에 백성남은 백용수가 늘 음식을 먹으면 목에 고여 저희들보고 만져달라 해서 빨개졌다고 답했습니다(5-6).

                                                 

           

                   176광수(수사기록39)                   백용수(수사기록 43)  

 

2) 재판부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영상을 틀어 백용수가 나오는 화면을 정지시켜 보여주었으나, 백성남은 목부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6). 사진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즉 목부위를 가지고 제184광수가 백용수가 틀림없다고 주장했었는데 그것이 확인되지 못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백성남은 제176광수가 백용수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것입니다.

 

3) 이어서 피고측 변호인은 제 176광수를 보여주면서 176광수와 북한의 김진범은 두 얼굴 모드가 하관이 뾰족하게 바르고, 매우 특이한 모양의 코가 두 사람 사이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고, 눈썹, 눈매, 인상이 동일해 보이지 않느냐 물었지만 백성남은 닮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다릅니다이렇게 답했습니다(6). 답을 회피한 것입니다.

 

4) 176광수와 김진범의 사진을 보고 두 사람이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백성남은 비슷하기는 한데 아니라고 답했습니다(6). 이어서 코 모양, 턱 모양이 전자의 2사람에게는 일치하는데 백용수(수사기록 41.42.43)의 경우에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물음에 백성남은 인상을 가지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턱이 뾰족하냐 동그라냐고 물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라 대답을 회피했고(6), 전자의 두 얼굴은 삼각형 얼굴이지만 백용수의 얼굴은 직사각형의 얼굴이 아니냐고 묻자 백성남은 잘 모르겠다, 인상에 대해 자꾸 몰어보시는데 제가 의사도 아니고 그것은 정형과 의사에 물어보십시오라고 답했습니다. 백성남의 능력을 가지고는, 얼굴 사진을 놓고 176광수가 백용수라고 주장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근거 없이 소송을 한 것입니다.

 

5) 피고인의 변호인은 전자의 두 사람은 얼굴의 여려가지 특징들 즉 코, , 이미지, 아구, 얼굴형태(3각얼굴)을 공유하고 있지만, 백용수의 얼굴에는 그와 같은 특징이 전혀 없다고 일일이 열거하여 물었지만, 백성남은 이 질문내용을 뒤집는 답변을 하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는 요지로 일관했습니다.

6) 마지막으로 피고측 변호인은 녹취록 제7쪽에서 노숙자담요가 제176광수와 북한의 김진범이 어째서 같은 인물인지에 대해 기재한 게시물 자료를 인용하여 결정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영상분석가인 노숙자 담요는 눈썹, 미간, 눈의 외선형, 눈아랫두덩, 콧대, 산근, 인중, 입술, , 귀 모두 일치합니다. 특히 김진범 만의 부인할 수 없는 특징적인 일치점은 왼쪽 눈 미간쪽 눈썹 아래에 보이는 눈안쪽 끝 바로 위 직경 약 1Cm정도의 넓이로 갈색의 옅은 사마귀 기미점이 3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일치하며, 왼쪽입술 끝 아래에 있는 잔근육의 융기면적과 융기정도가 똑 같이 일치합니다.’ 이렇게 분석을 하였는데, 원고는 이 설명 중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지 지적할 수 있는가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에 백성남은 눈매가 다르고 눈 크기기 다르다고 답했습니다. 노숙자 담요는 12개의 얼굴 특징을 열거했는데, 백성남은 단지 눈매와 눈의 크기가 다르다는 대답만 하였급니다. 백성남은 그가 가장 크게 내세운 백용수의 목부위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백성님은 게시글에 대한 아무런 분석 없이, 그리고 근거 없이 5.18기념재단의 권고에 따라 무조건 제176광수는 백용수라는 주장만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생활일상에 다가온 얼굴인식 프로그램(73)

 

. 많은 매체들이 2017.7.19.자로 범인 잡고, 결제하고일상으로 들어온 '얼굴 인식'”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노숙자담요가 가진 시스템과 그 과학적 로직이 동일한 것입니다.

미국 경찰들은 조만간 가슴 한쪽에 손바닥만 한 인공지능(AI) 카메라를 달고 다닐 것이라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17(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인공지능 카메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 모토롤라 솔루션이 개발한 Si500으로, 수백명 이상의 얼굴을 동시에 인식한 뒤 미리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의 얼굴 사진과 비교해 범죄 용의자나 미아(迷兒)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다. 모토롤라 솔루션은 AI(인공지능) 스타트업인 뉴랄라와 손잡고 수십만명의 얼굴을 저장해 원하는 얼굴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카메라 시제품을 만들었다. 뉴랄라는 스마트폰처럼 상대적으로 용량이 작은 IT(정보기술) 단말기에서도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대부분 고성능 수퍼컴퓨터가 있어야 가동된다. 모토롤라 솔루션은 "Si500의 인공지능은 기계학습으로 더 많은 얼굴을 동시에 인식하고, 사람을 찾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범인 검거·모바일 결제실생활 파고드는 얼굴 인식

 

가장 도입이 빠른 분야는 보안이다. 지난 531일 영국 경찰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카디프 스타디움에서 CCTV로 범죄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50만명의 전과자 사진 자료와 실제 영상을 비교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경기장에 입장하는 용의자를 체포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일본 통신·전자기업 NEC이 개발한 것으로 10m 이상 거리에서 촬영한 영상도 인식할 만큼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보행자의 걸음걸이를 보고도 신분을 확인할 정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선글라스나 모자로 얼굴 일부를 가리더라도 인식이 가능하다. . . 안면 인식 기술 상용화가 가장 빠른 곳은 중국이다. 시장 규모가 큰 데다 개인 프라이버시 규제 장벽도 낮기 때문이다.

 

국내서도 기술 도입 활발

 

국내 기업·연구기관들도 얼굴 인식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갤럭시 S8에 스마트폰으로는 처음 얼굴 인식 기능을 탑재했다. 카메라가 1초 만에 사용자 얼굴을 인식해 잠금 상태를 해제할 수 있다. 벤처기업 오이지소프트는 PC나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를 할 때 인증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얼굴 인식 기술 '오이지FR'을 개발해 지난 4월 금융 당국 인증까지 받았다. 보안 솔루션 벤처기업 파이브지티는 집 구성원 얼굴을 인식해 문을 열어주는 얼굴 인식 로봇을 개발해 전국 3000세대 신축 아파트에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는 한걸음 나아가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가까운 CCTV가 용의자나 사고 차량을 자동으로 식별해 경찰에 알려주는 지능형 영상 보안 시스템까지 개발하고 있다. 김건우 ETRI 책임연구원은 "교통사고 발생 후 3초 안에 사고 발생과 차량을 감지해 경찰에 알리는 시스템을 내년 말까지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KBS 보도: “25년 전 탈옥수, 안면 인식 기술에 덜미’ (75) 

2017.7.13. KBS25년 전 탈옥한 죄수가 신분증을 위조해 잘 피해다녔는데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려고 DMV(면허증 취급부처)에 가서 운전면허증용 사진을 찍다가 컴퓨터에 의헤 발각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보도에는 얼굴의 주요부위와 특징 그리고 주요 부위간의 거리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감옥에서 탈출한 한 남성 탈옥수가 25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 신분증으로 잘 지내왔는데, 그만 자동차 면허증을 갱신하려다 최신 얼굴 인식 장치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최동혁 특파원 보도입니다. <리포트> 로버트 프레드릭 넬슨은 지난 1992년에 미국 미네소타 연방교도소에서 탈출한 탈옥수입니다. 25년 동안 위조한 신분증으로 도망다니며 잘 지내왔습니다. 수많은 폭행죄로 중범죄자 였던 넬슨, 하지만 이번엔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려다 얼굴 인식 장치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 .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귀나 코, 그런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귓밥과 코 사이의 거리, 이마의 넓이 등 세밀하게 인식하고 있던 컴퓨터가 과거 사진들과 금방 대조해 낸겁니다.”

 

이 사건 제2차 공판에서 공판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검찰청 규정에는 3년이 지난 사진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조항이 있다. 노숙자 담요가 분석한 광주 현장 얼굴은 30년이 넘은 사진들이다.” 안양경찰서의 얼굴분석 의뢰를 받은 국과수는 이렇게 감정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잣대로 노숙자담요의 첨단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검찰이 과학에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매우 엄중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수사에 과학무기가 없다는 것은 검찰에 과학적 사고방식이 결여돼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이는 과학인들에 대한 인권유린으로 직결될 것입니다. 비과학으로 과학을 재단한다는 것이 이 사회의 수사현실이라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 범인 검거의 컴퓨터 로직: 컴퓨터는 어떤 과정으로 25년 탈옥수를 잡아냈겠습니까?   

 

미국의 자동차 면허관장청인 DMV는 어떤 과정으로 탈옥수를 찾아냈겠습니까? 고소인 모두가 주장하는 것처럼 맨눈으로 잡아낸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잡아낸 것입니다. 광수를 찾아낸 것이 죄라면 바로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죄인 것입니다. 광수를 잡아낸 컴퓨터 로직은 25년 탈옥수 넬슨을 잡아낸 로직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 DMV 컴퓨터에는 무엇이 걸려 있었겠습니까? 잡아야 할 수십만 범인의 얼굴들이 걸려 있었을 것입니다. ‘항의 보도내용 대로라면 50만명입니다. 탈옥수 넬슨의 얼굴이 DMV 카메라에 잡히자마자 이 넬슨의 얼굴이 50만 범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1 1로 대조됐습니다. 50만 얼굴이 넬슨의 얼굴과 1 1의 대조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그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그 속도와 정확도는 맨눈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넬슨은 그 50만 범인 얼굴들 중 하나였고, 그 범인파일 속의 넬슨이 금방 쵤영된 DMV 얼굴과 매치되었던 것입니다. 의 보도 내용 그대로 이렇게 많은 범인의 얼굴 하나 하나를 금방 촬영한 얼굴과 1150만 번이나 대조하려면 슈퍼컴퓨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50만이 아니라 1만 명 정도라면 PC보다 몇 단계만 더 큰 용량의 컴퓨터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소 결

 

광수의 발견은 노숙자 담요가 주도했습니다. 물론 여러 정보 매니어, 얼굴인식 매니어들의 도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소인들의 주장은 노숙자 담요가 고소인들의 얼굴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시킬 목적을 가지고 고소인들의 얼굴을 광수로 지정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거주하면서 중국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노숙자담요가 광주-전남 지역에 가서 고소인들의 사진을 다 찍어가지고, 그 얼굴들과 닮은 5.18현장사진을 꼬집어내서 북한의 얼굴이라고 지정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어이없을 뿐입니다.

 

이 사건은 과학이 정확하게 작동했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재판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정부청사에는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합니다. 본 사건에서 정말로 고소인들의 얼굴이 광수의 얼굴과 동일한지를 과학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라면 검증방법은 매우 단순할 것입니다. 고소인 14명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광수 얼굴 14개를 정부청사 전산팀에 제공하고, 전산팀으로 하여금 그 14명의 광수얼굴을 얼굴인식 컴퓨터에 걸어놓게 한 후, 14명의 고소인들을 한 사람 씩 통과시켜보면 게임이 끝나는 것입니다.

 

3. 5.18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의 일부

 

이 사건 재판에는 5.18에 대해 그동안 널리 형성돼 온 왜곡된 고정관념이 무의식중에라도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 부분 답변서는 5.18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깨는데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출합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당대의 세계사와 연결 지어 공부를 해야 이해가 빠르고 우물안식 독선적 해석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8.의 제주 4.3사건은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제주도 상황만 고립시켜 설명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했고, 1919.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이 결성되어 전 세계 노동자 농민을 향해 노동자 농민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공동의 공산국가를 만들자며 선동하였습니다. 전 세계가 이런 공산주의의 확산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안동공고 출신 김재봉이 코민테른의 지령을 받고 서울에 와 1924년 조선공산당을 지하에 결성하였고, 그 때부터 남한 공산주의자들과 일본경찰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지하에서 싸워나가는 과정, 거짓선동과정, 폭력과정, 시체팔이과정 등을 시계열에 의해 정리해야 비로소 역사의 공간에 제주4.3의 좌표가 균형감 있게 찍히게 됩니다. 5.18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의 많은 국민들은 황석영의 넘어 넘어’(죽음을 남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위시해 북한의 모략물들로 채워진 광주비디오’ ‘화려한 휴가등의 거짓 선전 선동물만 접하였기에 역사공간에서 5.18이 차지하는 좌표를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5.18은 오로지 환각제를 마신 경상도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2015.10.14. 연합뉴스는 교과서 민주화운동은 모두 김일성 교시 따른 것"이라는 제하에 5.18은 물론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민주화운동은 김일성의 영도 하에 수행된 것들이라는 내용, 그런 내용들이 북한 교과서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이 11월 출간할 예정인 저서 '북한 교과서 대해부'를 통해 현대사 부분의 왜곡·날조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북한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반파쇼 투쟁 중에서 5·18광주인민봉기는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 주장한다. . .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누나의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5.18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누나를 잃었다는 '남철'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

 

대한민국의 역사는 북한의 모든 역사책들이 밝히는 것처럼 진보와 보수반동과의 모순 전쟁입니다. 아래에 제시하는 책은 피고가 2008.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 등이 피고를 고소했을 때 재판장님의 허락을 받아 통일부에서 복사한 내용들입니다. 이 책들에는 일반국민이 알고 있는 역사들, 알지 못한 채 지나친 역사들이 모두 소상하게 현장 위주로 기록돼 있습니다.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 내용들이 모두 김일성이 창안한 전략과 전술들에 의해 지도되었다는 내용들이 설득력 있게 전달돼 옵니다. 남한에서 발생된 모든 시위에는 북한이 창안한 전략과 전술이 있었지만 그 존재를 국민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아래의 북한 역사책들을 보니 남한의 학생운동 노동운동들이 북한의 전략 전술 그대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북한책. 광주의 분노(59-4)

 

1985. 조선노동당 출판사 발행 책입니다. 35쪽 중간에는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 ”이라는 표현이 있고, 같은 쪽 하단에는 21일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 폭동군중이 탈취한 무기는 칼빈총 2,240. . . 장갑차 4, 군용차량 400여대 . . .“라는 구체적 표현이 있습니다. 남한의 정보요원들이 밝히지 못한 통계를 밝힌 것입니다. 과장과 왜곡이 들어 있지만 객관적 줄거리와 현장감각을 보면 북한의 누군가들이 현장에 있어야만 쓸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북한책. 전후 남조선청년학생운동(77)

 

1977.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한 책입니다. “차례만 보아도 일반 국민이 알고 있는 사건들, 모르고 있던 사건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사실 피고인은 제1쪽 머리말에 있는국대안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 책을 읽고서야 그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188-214쪽에는 1973.10. 유신반대를 위한 남조선학생들의 투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네이버나 백과사전 등에서 얻을 수 없는 상세함이 기록돼 있습니다. 남한당국보다 북한당국이 더 자세한 현장을 전합니다. 233-270쪽에는 부록입니다, 부록의 제목은 전후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주요투쟁일지입니다. 무려 38개쪽에 걸쳐 1954년부터 1974.까지 21년의 역사적 사건들이 일지 형태로 요약돼 있습니다. 남한의 학생운동은 북한 김일성이 지휘했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한 내용들일 것입니다. 5.18에 대해서도 북한책들과 황장엽은 광주학생운동이라고 표현합니다. 남한보다 북한이 남한 역사를 더욱 소상하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학생들에 전달되는 역사가 거의 북한이 쓴 역사인 것입니다.

 

북한책.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밝혀주신 남조선청년운동에 관한 사상과 그 구현을 위한 투쟁(78)

 

1973. 북한의 사로청출판사가 발행한 책입니다. 머리말 중간에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밝혀주신 남조선 학생운동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과 전략전술 방침들을 구현해 나감으로써 남조선 학생은 세계 반동의 두목이며 가장 포악하고 음흉한 미 제국주의와 그와 결탁한 반동세력을 반대하는 간고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인수 있었으며. .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33쪽부터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남조선청년학생운동의 앙양을 위한 방침이 기록돼 있습니다. 50쪽에는 1946.9월폭동, 10월대구폭동을 위시하여 1947-48년의 역사들을 약술하면서 투쟁방침을 교시하고 있습니다. 81쪽에는 이승만 정부를 전복시킨 학생들의 주동적 역할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82쪽 중간에는 1960년대의 남한 학생운동의 역사적 패러다임을 조감하였습니다. 전후 첫 시기 남조선청년학생운동은 그 내용과 성격 및 발전과정으로 보아 크게 3개 단곙로 구분하여 불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정전직후부터 19604월 인민봉기 직전까지의 기간으로서 주로 청년학생들의 낮은 형태의 투쟁인 수학처지를 개선하여 학원의 민주화를 위한 학원투쟁을 적극 벌리면서 자기의 투쟁역량을 끊임없이 카워나간 것으로 특징지어지며, 둘째 단계는 남조선청년학생들이 영웅적인 4월인민봉기에서 자기들의 선구적 투쟁으로 리승만 괴로정권을 무너뜨린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셋째 단계는 4월 인민봉기 이후 군사정변까지의 기간으로서 청년학생들이 반미, 반정부 투쟁과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려 남조선에 보다 유리한 혁명정세를 조성시킨 것으로 특징지어진

142-143쪽에는 학생운동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는 교시로 마감돼 있습니다. 우리가 보아온 학생운동이 바로 이러한 교시 그대로 실천돼 왔던 것입니다.

(표지, 차례, 머리말, 33-34, 50-58, 81-82, 142-143, 끝 인쇄부분)

 

남한책, 중앙일보의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월간 통일경제”(79)

 

1997. 9월호입니다. 97-101쪽에는 평양시 신미리 애국령사릉에 한국의 어떤 인물들이 들어 있는지 소개한 자료입니다. 초대의 빨치산들, 4.13폭동의 주역들, 남한의 거물간첩들 즉 성시백 최영도 김달삼 최백근. 김삼룡, 조봉암, 이현상 등 북한을 위해 투쟁한 거물급 남한 인물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이 남한에는 남한을 위해 애국한 북한사람 단 1명도 없습니다. 남한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사는 것입니다.

 

북 한책, 민족과 하나(80)

 

2003. 북한의 금성출판사가 발행한 책입니다. 책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민족은 하나라는 점을 역사적 사례를 담아 강조한 책입니다. 통일을 위해 북한에 기여한 남북한 인물들을 매우 영웅적 신분으로 띄워주고 있습니다. 137쪽부터는 1등 간첩 성시백에 대해, 165쪽부터는 려운형, 171쪽부터는 홍명희, 242쪽부터는 김구, 367쪽부터는 조봉암 등 개인들의 공로고 높이 평가돼 있고, 그 외에는 통일을 시도한 역사적 사건들이 기술돼 있습니다. 248쪽의 4월남북련석회의, 315쪽의 납북의 정당화(납북이 아니라 구원한 것이다), 348쪽의 뉴델리 신힉희-조소앙 밀회사건”, 353쪽의 남반부 각계 인사들에게 보내는 6인공동성명”, 367쪽의 봉암과 진보당 사건”, 411쪽의 력사적인 7.4공동성명”, 420쪽의 광주인민봉기”, 457쪽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10대강령“, 473쪽의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공동선언등이 적화통일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 결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해방직후부터 수도 없이 이어져 온 학생운동은 북한이 간첩들을 통해 배후 주동한 소요행위들이었습니다. 간첩의 배후 조종 없는 학생들만의 시위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5.18이라는 거대한 소요는 간첩들만의 배후조종만을 가지고는 그 구모와 성격이 너무 거대했습니다. 19656.3시위도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일국교정상화를 가로막으려는 정책파괴 차원의 소요였습니다. 5.18은 국가전복과 남침을 연결시키려는 거대한 게릴라 전쟁이었습니다. 그 규모와 성격이 간첩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게릴라전쟁용 특수군과 남한정부를 모략하기 위한 대규모 정치공작조의 직접적인 참여가 절대로 필요했던 대남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결 론

 

1. 광주 5.18단체가 대표 소송행위자로 내세운 박남선, 심복례, 김진순, 곽희성 백성남은 위계에 의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고인이 피고인을 방어하려면 다른 고소인들의 얼굴정보와 정황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 노숙자담요의 광수찾기는 공익을 위한 과학행위였고, 이는 최근 얼굴인식 과학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공익을 위한 과학해위를 범죄로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3, 5.185.18사건에만 초점을 맞춰 고립 분석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공작 일환으로 바라봄이 균형 있는 역사연구 방법일 것입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대남공작을 주도해왔고, 그 엄청난 대남공작 사건 중에 5.18이라는 특수사건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이는 5.18을 광주사건으로만 고립시켜 인식해온 편협하고 비과학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증거가 없는 모략들에 의해 세뇌되어온 사회일반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증거자료

 

66. 이용충 사이버참배 기록물

67. 한겨레신문 우릴 간첩으로 몰면 쓰냔 말여

68. 피고인 변호인이 광주법원에 제출한 원고신문 내용

69. 광주지방법원 변론조서

70. 심복례 증언록

71.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 압축본

72. 경향신문 [광주항쟁 30]

73 조선 Biz

74. KBS 뉴스

75. 연합뉴스

76. 북한책. 전후 남조선청년학생운동

77. 북한책.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밝혀주신 남조선청년운동에 관한 사상과 그 구현을 위한 투쟁

78. 남한책, 중앙일보의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월간 통일경제

79. 북한책, 민족과 하나 

 

017.7.24.

피고인 지만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1단독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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