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유골사건은 아직도 화약냄새 진동하고 연기가 폴폴나는 smoking gu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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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路上 작성일16-12-14 09:57 조회6,602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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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량 유골 발견당시 각 신문지상에 발표된 내용을 요약하여 그에 따른 합리적
인 해석을 아래와 같이 첨부해본다. 우리 시스템클럽의 모든 두뇌를 동원해서
우리모두 나라를 살리는 마음으로 각자가 의로운 탐정 셜록홈즈가 되고 형사
콜롬보가 되어 이 청주유골사건을 현미경으로 샅샅이 뒤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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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신문지상 발표의 요약>
지난 14일 청주시 휴암동 축구공원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430구의 유골은 택지개발 과정에서 이장된 무연고 분묘의 유골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곳이 축구공원으로
개발되면서 이곳에 있던 무연고묘 200여기는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전에 옮겼 던 420구의
유골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주시는 “이번에 발굴된 유골은 매장 당시 이장
공고를 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매장됐다”는
입장이다.
의문-------> 200 여구의 확실한 무연고 유골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무연고묘 표지가
있었고 또한 그 지역주민들이나 묘지관련 잡역인부들도 평소에 다 알고 숙지해오
던 장소였을 것이고 420 여구가 암매장된곳은 극히 소수의 관련자만 알고 비밀에
붙여져 왔기에 공원개발업자들이 무심코 현장을 굴착하다가 대량의 유골을 발견케
되었다고 보여진다.
경찰은 이 유골들이
1994년 10월
봉명.신봉동 준공업개발사업
등에서 나온 유골들을 강서면 신동 공동묘지로 이장한
것으로 확인했다. 충북
청주흥덕경찰서는 25일
발견된 유골에 대한 조사 결과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해 내사 종결했다고 밝혔다.
시는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경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유골을 화장 처리한 뒤 봉안할 계획이다
의문----------> 1994 년에 발견된 무연고 유골이라면 발견된 유골중 사망시기는 그
보다 훨씬 오래 전인 유골도 있었을 것이고 시신발견 직후 1 개월간의 연고자 물색
을 위한 중앙지 공고를 거쳐야 하고 그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로 부터
10 년동안 무연고자 분묘에 가매장 되어 연고자 출현의 시간을 주었다가
그래도 아무도 찾는 이가 없으면 빠른 시일내에 관할 화장업체를 선정하여 화장후
납골당에 봉안되었어야 한다. 즉 1994 년에 발견된 무연고자 유골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그로부터 10 년 혹은 11 년 후가 되는 2004-2005 년 경에는 화장하여 납골당
에 봉안되어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유골이 비닐에 싸인채로 20 여년이 지난 2014 에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억지로 이해 할려고 한다면 우리의 지능지수를 무던히도 까내려야 한다.
그리고 맨 아래에 첨부된 참고도표에 보면 2014 년도 충청북도 전체 지역의
무연고자 유골 처리 건수 통계가 총 18 건수로 나와있다. 이 건수라는 개념은 발견
된 유골 1 구당의 처리 건수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한꺼번에 수백구의 유골
이 발견되어 한꺼번에 화장 처리한 것을 1 건으로 기재한다면 수천구의 유골이 발
견되어도 1 건으로 기재 된다는 말이 안되는 결론이 나온다. 즉, 2014 년도에 충청
북도(당연히 청주시를 포함 한것으로 보아야함) 전체의 무연고자 시신처리 건수에
429 구의 유골처리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있다. 혹 도표에 나와있는 시신처리 건
수라는게 그냥 무연고자 시신을 수습하여 분묘에 매장하는 건수 및 그 비용을 산출
한 것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18 건의 시신 수습 및 매장 비용이 약 1천 1백 6 십 만원정도 소요되는 걸
보면 이건 당연히 화장 및 납골에 소요된 비용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이다.
즉 만약 이 도표의 통계가 확실하다면 적어도 2014 년도에 있어서는 경찰 및 청주
시 관계자가 발표한 것처럼 429 구의 무연고 유골이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지는
않았고 그 어떤 다른 형태로 처리되었다라는 합리적인 의혹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과 그 이전에 있었던 유골자 수가 일치하고 나무판을 대고 비밀을 씌워 매듭이 지어있고 일련번호가 있다"며 "암매장한 것이라면 유품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옷이나 신발, 시계 등이 발견되지 않아 종합한 결과 정황상 5. 18 희생자 시신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고 말했다.
의문---------> 북괴 특수군의 시신을 급히 가매장할수 밖에 없었다면 비닐에 시신을
포장하여 추후 식별이 가능하도록 포장에 일련번호만 붙였을것이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신분노출의 단서가 될만한 모든 지참물이나 옷가지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거의 알몸으로 포장을 했을 것이다.
그로 부터 마땅한 시신 반출의 기회를 잡지 못한채 그렇게 약 34 년의 시간이 흘러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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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위든리버님의 댓글
위든리버 작성일
자료를 모으니 해석이 보입니다.
路上님의 애국충정에 존경을 보냅니다.
路上님의 댓글
路上 작성일
이러한 저의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정의와 진실이 대한민국땅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존재할수 있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밤을 뜬 눈으로 지새도 조금도 안 피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