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유골사건에 올인 하면 뭔가 될것 같다.(路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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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路上 작성일16-12-12 09:28 조회5,2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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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보도내용> 제하에 있는 글은 시사저널 출신의 정락인 기자가
지난 2014 년 5 월 16 일 자 정락인 닷컴에 올린 보도 내용이다.
다른 모든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한가지 강한 의문이 드는 요인은
일반적 혹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가도록 유골을 비닐종이에
둘둘 말아놓았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시신이나 유골은 빨리 썩어서 자연으로 산화되도록
하는게 상식이다. 더군다나 무슨 왕족이나 귀족의 후손이 아닌 무연고자
일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누군가가 후일 기회가 되면 되도록이면 부패를
최대 방지하면서 원형 그대로 도로 수거하여 제대로 된 장례식과
매장을 하기위해서 급히 일시적으로 가매장한 것임을 직감할수
있다. 과연 우리시대에 누가 무슨일로 그렇게 많은 430 여구의
시신을 그렇게 급히 처리 해야만 할 사건이 있었다면?
본인 생각엔 그동안 전국민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쏟게 했던 박근혜
탄핵정국을 이제 그만 그 운명에 맡기고 이제 부터는 우리 보수진영 만이라
도 일체단합하여 이 청주유골 사건 하나만 들고 파야하다고 본다.
아무리 두터운 댐도 주먹만한 구멍하나만 제대로 파면 무너지게되어있다.
진실을 가득 담은 저수지의 물이 폭포수가 되어 우리들의 그 지난 36 년동안
이나 엉어리져있던 이 분하고 원통한 가슴을 시원히 씻겨줄 그날을 확신하
면서 우리모두 이 청주유골 사건 진상 규명이란 구멍하나 파기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자. 그러면 우리의 지상과제인 5.18 의 진상규명이
그 밑바닥을 세상에환히 드러나 보이게 할때가 분명히 올것이다.
<보도내용> 정락인 닷컴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림받은 사람 들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 흥덕지구에서는 축구공원 건설공 사가 한창이다.
5월13일 오후 3시쯤 현장소장 조 아무개씨 (45) 등은 굴착기로 흙을 파내고
있었다. 이때 비닐에 싸인 정체불명의 물건이 굴착기로 파낸 흙과 함께
나왔다. 조씨 등은 굴착기 공사를 잠시 멈추고 비닐을 풀어보고는
소스 라치게 놀랐다.
그 안에는 사람의 유골이 있었던 것이 다. 유골은 한 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씨 등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청주시에도 알렸다. 경찰과 청주시가
추가 발굴에 나섰는데, 유골은 파도 파도 계속 나왔다. 발굴을 끝내고 보니
총 420여구나 됐다. 발견 당시 유골은 비닐에 25구 정도씩 묶인 채 싸여
있었다.
청주시는 이 유골들이 지난 1993년 산남 택지개발 과정에서 나온 무연고
분묘 유골을 이곳에 매장한 것 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골이 발견된
축구공원 일대에도 과거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청주시는 지난해 이곳에 있
던 묘 200여기를 이장한 뒤 공사에 들어갔다.
청주시 관계자는 “축구공원을 조성하면서 봉분이 있는 묘는 모두 이장하
도록 했고, 발견된 유골은 무연고 분묘 를 한꺼번에 이장한 것이 남아 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앞으로 관계 법령에 따라 입찰을
통 해 처리 업체를 선정해 화장 처리한 뒤 납골당에 봉안할 계획이다.
필자가 알아보니 1991년 5월 당시 청주시 산남동에는 1만350평의 공동묘지
가 조성돼 있었다. 1992년에 급격히 묘지수용이 증가하자 청주시는
상당구 월오동 산 2-1번지 일대에 48만8090평에 새로운 묘지공원을 조성했
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3년 이곳에는 대단위 택지가 개발된다.
공동묘지가 포함된 산남2지구(산남, 수곡동 일원)가 택지개발예정지로
지정된 것은 1990년 3월이다. 월오동 일 대의 묘지공원 조성이 주민들의
반발로 진척이 없다가, 92년 8월부터 실시계획 마련에 착수, 93년 초부터
택지 를 공급했다. 그 후 10만7000평에 2710가구의 주택이 들어섰다.
청주시에 따르면 이때 산남동의 묘지에 매장돼 있던 분묘에 대해 이장공
고를 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무연고묘 420여기를 당시 묘지가 있던
지금의 휴 암동 축구공원 건설부지에 옮긴것이 된다.
그리고 이곳이 축구공원으로 개발되면서 이곳에 있던 무연고묘 200여기는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전에 옮겼 던 420구의 유골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
다고 한다.
청주시는 “이번에 발굴된 유골은 매장 당시 이장 공고를 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매장됐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시신을 거둘 사람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나 유골이 발견되면
한 달 동안 공고를 통해 유족을 찾고 그래 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립묘지 무연고자 묘역에 10년간 가매장 된다. 이때까지 연고자가 나타나
지 않 으면 각 시도가 정하는 대행업체를 통해 화장한 후에 납골당에 봉안
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필자가 뉴스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당시 무연고자 이장과 관련한 기사를 검색해 봤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루트를 통해 검색해 봤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청주시는 적법한 절차를 지켰다고 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다. 공고절차는
지켰을 지 몰라도, 관리를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 다. 묘를 이장한 후에 봉
분도 만들지 않았고, ‘무연고 묘’라는 표식도 하지 않았다. 시신을 매장할
때는 관 대신 비닐을 사용했다.
알다시피 시신이나 유골을 비닐로 덮는 것은 금기시 돼 있다. 사람은 죽은
후에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관을 포함한 장의용품은
빨 리 썩는 재질을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도 청주시는 잘 썩지도 않은 그것도 25구의 유골을 한곳에 묶은 후
매장했다고 한다. 묘를 이장하고도 이를 방치해 무려 19년 동안이나 420여
명의 원혼을 구천에 떠돌게 했던 것이다.
‘무연고자’는 말 그대로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가족이나 친척이 없거나 있
더라도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등 시신이나 유골을 인수해 갈 수 없는 상
황에 있다는 말이다. 즉 가족이 해체됐거나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지 못했
거나, 또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소외계층이었을 것이다. 죽어서는 이름
석 자 새겨진 비석하나 없었고, 그 나마 개발에 밀려 봉분도 없이 쓸려다니
다 비닐에 아무렇게나 씌워 땅속에 방치됐다. 이들은 살아서는
세상으 로부터 소외받았고, 죽어서도 최소한의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들은 이런 문제의식은 갖지 않았다. 한결같이 유골 발
견을 단순한 흥미 거리로 전락시켰다. 아래 제목만 봐도 선정적인 것을
넘어 엽기적으로까지 묘사하고 있다.
*청주 유골, 전두환 정권 시절 실종자설 확산…
*삼청교육대 끌려간 사람들?
*청주 유골 발견, 건설 현장서 400여 구 유골이...
*이유가 오싹하네 청주 유골 발견..
*이유가 '소름' 청주 유골 발견, 축구공원서 420여구…
*한 구씩 비닐로 ‘오싹’ 청주 유골 발견, 무려 420여구가 주르륵…
*'섬뜩' 청주 유골 420구 무더기 발견 ‘오싹’ 비닐에 한구씩 잘 싸여..
* "축구공원 공사 현장이 예전 공동묘지터였다?
언론까지도 이들의 억울함을 폄하하고 있으니 420여 명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아도 한참을 떠돌 일이다. 경찰은 이 유골들의 사인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청주시가 적법한 공고절차와 매장절차를 지켰는지도 철저하게 조사
해 야 한다. 현재 관할 흥덕경찰서에서 맡고 있으니 한치의 의혹도 없이 유
골이 왜 저런 상태에서 발견됐는지 명 확한 결과를 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만 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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