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시일야방성대곡(Ever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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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6-10-28 10:06 조회6,15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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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장관들, 여당의원들, 청와대 직원들은 최순실이 보다 못한 인간들이었다. 우월감을 가지고 근무했던 청와대 직원들이나 이 정부에서 각료였다는 장차관들은 두고두고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런 마음은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개돼지 취급을 당했다. 우리는 이 못난 대통령의 무능을 경멸한다.
최순실을 믿고 대통령이 된 그녀는 유난히 검사 출신들을 좋아해 그들로 장막을 쳤다. 사고력에 문제가 있는 그녀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영생교 교주 최태민이 최순실의 꿈에 환몽 하여 국가 운영의 교감을 내려주는 가 몰라도 국정을 둘이서 소꿉놀이 하는 저런 인간들은 하야가 아니라 광화문 네거리에 단을 높이 쌓아 만백성이 보는데서 길로틴으로 머리통을 잘라내어야 할 것이다.
영생교 교주 최태민 이후 그의 딸과 대를 이어가며 영혼의 코드를 맞추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 혹시 우리가 모르는 말 못할 큰 약점이라도 잡혀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미친 짓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하여도 청와대의 문건을 밖으로 들고 나가 최순실에게 최종 수정, 점검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최순실을 비롯하여 그의 조카 장유진(장시호,) 차은택, 고영태 등이 바로 보이지 않는 실세 일루미나티였던 것이다. 박근혜는 2014년 문고리 삼인방의 청와대 문건 유출 및 비선 실세 논란과 관련하여 “이번에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는 하루빨리 밝혀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이 문서 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서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속히 밝혀야 한다”며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서 이 모든 사안에 대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와대 바깥으로의 문서 유출은 국가 문란행위이기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엄중처단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근엄하고 단호하게 일갈하였던 박근혜는 이렇게 철저한 이중인격자였다. 문재인이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뻔뻔한 인간이 아니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떻게 박정희의 딸이 저 모양이었단 말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윈저공이라 불리었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조지 5세의 장남으로 1936년에 왕위에 올랐지만 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하고 1년 만에 물러났다. 엄격하고 검소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나 자유로운 삶을 지향했다. 억지로 이혼한 미국 여성을 사랑했으나 왕실과 영연방 전체에서 끝내 미국 출신 왕비를 반대하자 왕위를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평생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영생교의 최태민이나 최순실, 정윤회에게 도대체 무얼 바라는지 40여년 세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영혼이 묶여 있는 채 왕위에 올라서까지 그들을 국정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최씨들은 그런 박근혜를 이용하였다. 이번 일은 최순실을 탓하기 전에 박근혜가 죽일 인간이다. 최태민과 최순실이 요승 라스푸틴과 신돈이라면 그들에 매인 박근혜는 저질 인간이다.
최씨 일가가 박근혜와 연을 이어 득 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두 말할 필요 없이 권력과 권력을 이용한 돈벌이일 것이다. 당시 최태민 문제로 대통령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영생교 교주 최태민, 박근혜의 4자 대면이 있었지만 결국 아버지 박정희가 딸을 못 이기고 넘어갔다. 그러나 오늘날 보니 그의 아버지를 기만하였고 지금의 국민까지 능멸한 것이다.
박정희와 얽힌 사람 중에 심수봉이 있다. 1955년 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1950년생으로 늦깍이 대학생이 되어 명지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8년 29세의 나이로 제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그때 그 사람’으로 당시 배철수, 노사연, 임백천 등과 경쟁을 하였던 1세대 여자 싱어송라이터다. 입상은 못했지만 대학가요제에 처음으로 트로트 장르로 출전하여 주목을 받아 가요계에 데뷔하게 된다.
그 후 1979년 궁정동 10.26사건에 휘말려 방송금지 조치와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기도 하였다. 그녀는 가요계에 알려지기 전 1975년에 이미 유명세를 타 청와대 연회에 초청을 받아 노래를 불렀었다. 드라마 <순자의 가을>의 주제곡 OST도 직접 만들어 불렀으나 전두환정권이 출범하자 노래 제목에 영부인의 이름 ‘순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조치를 당했다. 1983년 후배 가수 방미가 이 노래의 제목을<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로 변경하고 불러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그렇게 무엇이 잘 안 되어 침체기에 빠져있던 심수봉은 심령도사라는 남자와 겉잡을 수없는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심수봉 역시 초능력 끼가 있어 삐삐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 그 남자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텔레파시로 장소를 약속하고 만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토굴생활을 할 정도로 궁핍하였다. 아들까지 낳았으나 결국 몇 년의 칩거 끝에 이별을 하고 83년부터 밤무대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영생교의 최태민과 박근혜의 근끈한 관계가 항간에 계속 회자가 되니 얼핏 나는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최후 목격자 심수봉이 어떤 도사와 얽혔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박근혜와 다소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생교 최씨 일가에 영혼이 얽매인 박근혜는 아들까지 낳고도 조기에 이별한 심수봉과는 달리 대통령이라는 왕위에 올라서서도 그들과의 연을 끊지 못하였다.
그리고 윈저공처럼 권력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갈 용기도 없었다. 그것은 박근혜의 놓칠 수 없는 공주병 때문이리라. 순전히 아버지 때문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카리스마는커녕 영민한 구석조차 없었다. 최순실의 사술에 걸려 병 걸린 공주처럼 모든 소통을 단절하고 구중궁궐에서 그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최순실이 지어주는 옷까지 입고 다니며 행복에 겨워했다. 결국 저 철없는 두 여편네 때문에 온 사회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
박근혜가 하야를 하든 안하든 시간은 흐를 것이고 무시무시한 빨갱이 문재인이 속이 텅텅 빈 깡통 국민들과 수많은 빨갱이들의 지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앞을 보니 늑대요, 뒤를 보니 범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나라꼴을 보니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을사조약을 비판한 주필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댓글목록
체르니님의 댓글
체르니 작성일
그릇된 사상과 철학과 이념에 빠져서,
사이비 종교에 물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 진리이지요.
"향 싼 종이에 향기 나고, 생선 싼 종이에 비린내 나는 것은, 법칙이자 진리일 것입니다."
언제나 늘 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