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생일전쟁 불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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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6-08-18 16:08 조회5,5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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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일전쟁 불붙었다
국가생일전쟁 시작됐다. 모두 힘을 합치자
박근혜가 이번 8.15기념 행사 경축사에서 8월 15일을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한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연일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를 기회로 새누리당이 8.15를 ‘광복절 겸 건국절’로 법제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다.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국회부의장인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을 했던 정갑윤, 나경원, 조원진, 이정현 등이 차례로 나서서 건전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빨갱이들의 주장: 건국일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4.13
이에 대해 빨갱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뼈 속까지 빨갱이인 인간들이다. 문재인은 건국절을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얼빠진 소리”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대한민국 건국일은 중국 땅 상해에 몇 사람들의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구락부’(클럽) 형 임시정부수립 선언일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국회, 태극기, 애국가도 상해임시정부가 지정한 것이고, 헌법에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촉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고, 1948년 9월 1일 ‘대한민국 정부 관보1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ㆍ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1919년이 건국의 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은 1919년 4월 13일이다. 그렇다면 빨갱이들은 1919년 4월 13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해야 맞다. 국가의 구성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1945년 해방일로부터 3년 동안, 해방된 조선인은 있었지만 국민은 없었다. 국민은 국가가 있어야 존재한다. 주권도 없고 영토도 없었다. 해방 후 북한은 소련이, 남한은 미국이 군정을 실시했다. 주권이 있는 국가에 대해 어느 나라가 군정을 실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천하의 못난 인간들아. 때려죽여도 속이 안 풀릴 잡놈들이 이 나라에를 부정하는 빨갱이 인종들이다.
건국역사의 배경
생일 없는 사람 없다. 생일 없는 국가도 없다. 조선인민공화국의 공식적 생일은 1948년 9월 9일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다 생일이 있고, 건국의 리더가 연년세세 존경과 기림을 받고 있다. 김일성도 북한에서는 건국의 신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독 생일이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빨갱이들 때문이다.
1948년에는 이 땅에 거대한 역사사건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건국을 방해한 제주4.3반란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집요한 폭동과 선동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세운 8.15건국 사건이다. 4.3반란사건을 일으킨 제주 게릴라 사령관은 24세에 불과한 김달삼이었고, 이를 토벌하면서 이 나라를 세운 대한민국 대통령은 73세의 이승만 박사였다,
4.3은 건국 방해 반란, 8.15는 빨갱이를 극복하고 국가를 수립한 날
김달삼은 1948년 8월 2일, 제주를 탈출하여 그해 8월 25일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한 후 1950년 태백산 공비로 이용당하다가 사실됐다. 소영웅심에 개념 없이 날뛰다 26세에 생을 마감한 공산당 청년에 불과했다. 반면 이승만 박사는 한 때 공산주의를 선호했던 70%의 대한민국 국민을 배경으로 한 남로당의 끈질긴 폭동과 저항을 물리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구, 김규식 등 정치적 반대세력의 질투성 방해를 이겨내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김달삼은 영웅, 이승만은 살인자로 묘사하는 자들이 건국절 제정 방해
4.3유혈반란사건과 8.15건국사건, 이 두 개의 사건 중 어느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역사에 포함돼야 하고 어느 것이 반란의 역사로 분류돼야 하는 것인지 국가는 확실하게 정해야 했다. 노무현은 박원순을 시켜 4.3사건에 대한 ‘정부보고서’(‘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냈고, 이 보고서의 건의에 따라 노무현은 2003년 8월 31일 직접 제주도로 날아가 김달삼을 승자로, 이승만을 패자로 선포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증오하는 교육 시키라고 빨갱이들에 세금 퍼주는 국가
과거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 주민에게 불법을 저질렀다고 선포한 후, 제주도 주민과 집단살인자 이승만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1,500-30,000에 이른다는 희생자들에게 정부가 진심으로 무릎 꿇고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천하의 잡놈이 나닐 수 없다. 지금 박지원, 문제인 등 천하의 빨갱이 자식들이 건국절 제정에 저토록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당시 무장 공비들이 전투 훈련장소로 이용했던 제주시 동부 봉개동에서 12만평을 떼어내 ‘제주 4·3 평화공원’을 건립했다. 그 안에는 592억원을 들여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건립하고 거기에 3개층에 걸친 전시공간을 글과 그림과 조형물들로 채워, 4.3반란사건이 애국적인 사건이라고 표현한 반면, 이승만에 대해서는 독재자요 학살자라고 표현했다. 바로 이런 짓을 해온 빨갱이들이 건국절 제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로 기록된 비석은 묘소 땅에 매장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악이라는 것을 선전하는 기념관에 국가가 1,000억 규모의 국가예산을 대주었고, 이에 더해 해마다 여기에 매달린 좌익들의 생계와 운영비 등으로 수십억 단위의 예산을 퍼주고 있다. 반면 이승만기념사업회가 마련했던 비석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라는 글자들이 새겨진 비석은 이승만 대통령 묘지 한 구석에 깊이 파묻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겨우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묘”라고만 되어 있다. 목숨을 걸고 건국을 방해한 김달삼은 제주 평화공원에서 이승만과 미군을 상대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도 그가 건국한 대한민국과 함께 묶여 천대받고 있다.
그가 세운 이 넓은 대한민국에 그의 동상 하나 설 자리마저 잃어버린 천덕꾸러기 이승만 박사, 그리고 그의 덕분에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5천만 국민, 부끄럽고 원통한 이 나라의 못난 생김새다. 이런 그림을 만들어 낸 빨갱이들은 누구이고 이런 반역의 빨갱이들과 야합한 정치꾼들은 누구인가.
빨갱이 잡놈들아, 건국일이 1919년 4월 13일이면 초대 건국대통령은 누구냐?
기록을 찾아봐라.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 박사다. 김구는 건국을 끝까지 방해했고, 건국 후에도 건국을 부정하여 안두희 소위에게 정의의 실탄을 맞고 죽었다. 이런 무식한 질투자가 빨갱이들의 영웅이더냐? 이 이 빨갱이 종자들아, 1948년 4월 19일, 김구가 북한 간첩 성시백의 꼬임에 넘어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 정권 세우는 행사에 아부하는 찬조연설했다. 그래서 빨갱이들이 이토록 김구를 띄우고 TV까지 장악해 김구가 국가를 세운 것처럼 사실을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전한 김구의 평양 발언
“실제로 평양회의는 1948년4월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4.19일, 김구는 “못 가십니다. 가시려면 우리의 배를 지프차로 넘고 가십시오” 줄줄이 누운 부하들을 피해 담장을 몰래 넘어 4월20일에 평양에 갔지만 4.22일에야 비로소 회의장에 초대됐다. 22일 회의에서 김구, 조소앙, 조완구, 홍명희가 주석단에 보선됐다.“
이 자리에서 김구는 이런 축사를 했다. 조선일보 1948.4.24. 보도에는 김구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돼 있다.
“위대한 회합에 참석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조국이 없으면 국가가 없으며 국가가 없으면 정당이나 사상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공동목표는 단선(남조선만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남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을 막론하고 그것을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조선일보 1948.4.24)
북한의 역사책에 기록된 김구
1982년 평양의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114쪽에는 이런 글이 있다.
"남조선의 우익 정객 김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전 민족의 유일 최대의 과업은 통일 독립의 전취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하에 있어서 통일독립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는 소위 ‘단선단정’입니다. 그러므로 현하 우리의 공통한 투쟁목표는 단선단정을 분쇄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김구)
이어서 115쪽에는 또 이런 대목도 있다.
"특히 김구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와 넓으신 도량, 우리 당의 통일전선 정책에 깊이 감동되어 수령님께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맹세하였다. 그는 자기가 평양에 와서 느낀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산주의자도 공산주의자 나름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국애와 민족애가 없는 사람은 무슨 주의든 나는 반대요. 그러나 장군님의 공산주의는 절대 찬성입니다. 나는 이번에 여기 와서 그분처럼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고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분을 처음 보았습니다. 조선을 바로 잡고 이끌어 나가실 분은 그 분밖에 없는 데 그분의 공산주의를 내가 왜 반대하겠습니까! 장군님의 공산주의야 말로 누구나 절대 찬성할 공산주의요, 내가 일찍이 장군님을 알았던 들 벌써 그분을 받들어 왔겠는데 이제야 참된 애국자를 알았으니 나는 늦게나마 장군님을 받들어 나의 여생을 바쳐나가겠습니다.” (김구)
위 두 가지 김구의 발언은 1948년 4월 19-23일간 평양에서 열린 ‘사회단체대표련석회의’에서 했던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 문헌들에도 기록돼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_T9d5Mh2Kw
2016.8.1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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