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이유 보충서(결정적 증거 42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1-18 22:03 조회6,06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상고이유 보충서
사건 2022도3281
상고인(피고인) 지만원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상고이유 보충서를 제출합니다.
보충 내용
1.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 42개만 따로 묶어 편집하여 제출합니다.
피고인은 원심에서 별책 형태의 [5.18답변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5.18을 북한이 주도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42개 증거입니다. 이 42개 증거는 [5.18답변서] 제50-224쪽에 제시돼 있지만 다른 답변 항목들과 혼합돼 있는 데다 지면 관계상 설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42개 증거만 따로 묶고, 설명을 보충하여 소명의 완전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이를 시판용으로 발행한 것은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갖는 국민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원심은 이 [42개의 결정적 증거]를 탄핵하는 과정 없이 “북한군은 절대로 광주에 오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기에는 3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2019.12.10.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약칭: 5ㆍ18진상규명법)이 시행되었고, 그 3조 6항에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진상을 밝히라는 조항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3과를 설치하여 아직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원심의 판결처럼 “5.18에는 절대로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면 5.18진상규명법 제3조 6항과 조사위원회 제3과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2) 원심이 “북한군은 절대로 광주에 오지 않았다”고 판결한 근거는 “5.18이 사법적 역사적으로 이미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그 평가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 전두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종결되면 북한군이 절대로 광주에 올 수 없다”는 판결인 것입니다. 이는 논리를 초과한 별나라에서나 있음직한 억지에 해당할 것입니다. 또한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종결되었다는 판결도 지극히 자의적인 억지에 해당할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가 종결되었다는 판단이 법에서 허용되는 판단인지 알고 싶습니다.
3) 원심이 [북한군 개입]을 부정하려면 그 법률적 길은 오로지 하나, [42개의 결정적 증거]를 탄핵하는 길입니다. 증거의 성격상 이 42개 증거는 법원이 탄핵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 아닙니다. 법원이 재단할 수 없는 사건은 법원의 판단범위를 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오로지 민주주의의 엔진인 공론의 장에서 각축토록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3. 원심의 법관들은 사법처리의 대상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오로지 피고인에게 2년이라는 중죄를 선고하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고, 상식과 논리를 파괴하여 법 폭력을 감행하였습니다. 망가지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수선해야 하는 존재가 사법부의 임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법부가 사회를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원심 판결문은 법관에게 주어진 신분보장의 범위를 월등히 초과하였기에 피고인은 원심 법관 3명을 고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수선’ 전쟁의 종착역은 헌법재판소일 것입니다. 아래에 원심 법관들의 범법행위를 다시 요악합니다.
1) 2008년 피고인은 [5.18을 북한이 일으킨 게릴라전이었다]는 4부작 책을 냈고, 광주단체들이 이를 고소하였지만 2012.12.27.까지 1,2,3심 모두가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2) 이에 종편방송들에서 피고인을 불러 연구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북한군 개입]이 5개월 동안 전국에 확산됐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광주시장 윤장현은 2013.5.24. 5.18을 왜곡하는 사람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겠다며 광주의 338개 단체와 20명 내외의 민변 변호사를 조직하여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3) 피고인은 5.18에 대해 2003년부터 현재까지 연구를 해서 평균 400쪽 분량의 5.18역사책 13권을 출판하였습니다. 2014년까지 12년 동안은 순전히 남북한 당국의 문헌들과 5.18기념재단이 보유한 문헌들만 가지고 문헌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5.18을 북한이 저지른 게릴라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광주에 북한군이 왔으면 관주 현장 얼굴들이 북한 얼굴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논리에 속합니다. 이에 2015년부터 영상분석 전문가 필명 ‘노숙자담요’가 만 3년 동안 무려 광주현장 사진 속 얼굴 661명이 북한의 아무개 얼굴이라 특정하였습니다. 일일이 세부적인 영상분석을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이 ”기가 막힌다“는 말로 호응했습니다.
4) 이에 위기를 느낀 위 위원회의 핵심 구성체인 ‘5.18기념재단’이 광주-전남에서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등 13명과 80대 및 90대 노파를 소송에 내보내 각기 “내가 광수다” 이렇게 주장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흐린 사진들을 내놓고, 현장사진 속 얼굴이 왜 자기의 얼굴이라는 데 대한 일체의 논리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5) 위 80대 노파 심복례는 전남 해남의 농부인데, 자기의 남편 김인태가 광주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1980.5.29.에 듣고 남편이 가매장된 것을 눈으로 확인한 날이 5.30.입니다. 그런데 소송에서는 1980.5.23.에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자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위 90대 노파는 목포에 거주하는데 그의 아들 이용충이 사망한 사실을 처음 확인한 시점이 1980.6.30.이고, 그것도 경찰서에 가서 진열돼 있는 유품과 사진을 보고 확인한 기록이 있는데도, 1980.5.23. 도청에서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자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26세의 트럭운전수였던 박남선은 제71광수가 자기여야 하는데 피고인이 황장엽 얼굴과 비슷한 얼굴을 만들어 합성시켜놓고 황장엽이라 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하 12명의 주장 역시 이와 대동소이하게 황당합니다.
6) 아래 사진 #1은 북한의 양정성 장관을 지낸 문응조이고, 사진#2는 광주현장 사진 속 인물로 388광수로 지정된 얼굴입니다. #3은 광주의 다방종업원이었던 18세 박철이 제출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2018.8.16. 제4회 공판기일 조서에서 당시 이경진 재판장이 “식별이 불가능하니 다시 제출하라”는 명을 받고도 다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7)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원심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요약 적시하고자 합니다. 이 판결이 이 사건 판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아래의 문장 자체가 역설이고 억지고 그래서 일반 저자거리에도 어울릴 수 없는 지독한 범죄행위라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놓고 그 어느 국민이 부장판사들의 판결문이라 믿으려 하겠습니까?
“광주에는 북한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광주에서 촬영된 사진속의 모든 얼굴은 광주시민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광주사람이 사진 속 얼굴을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진실로 보아야 한다. 피고인이 제388광수 얼굴을 북한의 문응조(1949년생)라고 지정한 것은 당시 광주 다방 종업원이었던 박철(1962년생)을 특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피고인은 허위인지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박철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하였다.”
8) 광주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들이 계엄군을 모략하기 위해 1987년 사진책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에 게재한 15구의 얼굴이 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이 15구의 얼굴이 광주인 사망자 수 154명 중에 누구라고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154개 영정사진 중에도 없습니다. 반면 15구의 얼굴 중 5점의 얼굴은 북괴가 1982년에 발행한 삐라에 기재돼 있었고, 그 삐라에 기록된 7행의 글자들은 북과 당국이 1982년에 발행한 문헌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591쪽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남한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통계수치들입니다. 광주신부들이 1982년 이전에 북한에서 얼굴을 가져다 1987년에 계엄군을 모략하는 사진책에 올린 것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광주신부들과 북괴가 공모 공동하였다고 표현했지만, 위 법관들은 ① 거짓말도 지어내고 ② 광주신부들의 사진을 북에서 가져간 것이라는 실로 황당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위 법관들은 “15구의 얼굴 중 일부는 154명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판결했습니다. 확인된 얼굴이 어느 얼굴이고 그 얼굴의 이름이 무엇인지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판사가 거짓말로 판결문을 쓴 것입니다. 광주사람이 아닌 얼굴을 광주신부들이 무슨 수로 구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있습니다. 판결내용들은 위 판사들의 불법판결 중 극히 일부이지만 이 판결은 아마도 피고인에 부과한 ‘징역 2년 형’의 90% 이상을 치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 론
1. 이 책은 피고인이 5.18을 북한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만 따로 묶은 증거집입니다.
2. 검찰과 재판부가 이 42개 증거 모두를 탄핵하지 못하면 [북한군 개입]론은 학설로 인정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과 재판부는 이 42개의 결정적 증거 모두에 대해 탄핵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3. 원심이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것은 거의 모두 [북한군은 절대로 광주에 오지 않았다]는 자의적 잣대에 근거하였습니다. 42개 증거를 탄핵하지 않고 내린 자의적 결론을 가지고 한 학자에게 2년형을 언도하는 것은 암흑계의 공포에 해당할 것입니다.
4. 원심 판결은 무효일 뿐만 아니라 범행에 해당합니다.
5. 이러한 범행이 저지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더 많은 국민이 황당하게 억울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를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2022. 12.
상고인(피고인) 지만원
대법원 제2부 귀중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