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관련 글을 쓰면서 사망자를 거론한다는 것이 사실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망자의 사망 원인이 잘못 알려져 있다면 언론은 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특히 <뉴스타운>이 이번 [제8탄]에서 밝히는 조사천씨 사망의 경우는 광주 5.18의 역사 전체를 진단해 볼 수 있는 위험한 팩트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조사천씨의 죽음을 영화, 서적, 언론, 정치권, 역사 연구가들이 그동안 얼마나 왜곡 해 왔는지 그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꼭 이래야만 했는가. 아빠 영정을 들고 있는 다섯 살짜리 소년, 즉 ‘오월의 꼬마상주’를 통해 공수부대의 잔혹상을 세계만방에 알리려한 의도 보다 그 내용을 왜곡해 알리려 했다는 점에서는 비난을 받을 일이다. 국민의당 38명의 국회의원은 과연 조사천씨 사망의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5.18 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을 발의 했는지 이 기사를 똑똑히 보기 바란다. 과연 이걸 보고도 ‘왜곡’이라 할 수 있는지 답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편집자주>
조사천씨는 계엄군 ‘M16’ 아닌 시민군 ‘카빈총’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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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아들 - 오월의 꼬마 조사천씨의 사인은 ‘카빈 총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계엄군이 소지한 총은 ‘M16’, 시민군이 소지한 총은 ‘카빈총’ 이었다. 즉 조사천씨는 계엄군의 M16이 아닌 시민군이 발사한 카빈총에 맞아 사망한 것임을 정확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타운 |
‘오월의 꼬마상주’로 불리며 광주 5.18의 상징처럼 돼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5.18 당시 사망한 조사천씨의 영정사진에 턱을 괴고 있는 아들 조천호 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당시 다섯 살 꼬마의 천진난만한 눈빛은 광주에 대한 진압군의 만행을 증폭 시키는데 충분 했고, 특히 광주의 비극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광주 5.18이 발생한지 36년이 됐으니, 사진 속 아들 조천호군은 이제 41세의 장년이 됐다.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가 마음 속에 새긴 아버지 묘비 뒤쪽에 글자를 생각한다면 이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조사천씨 묘비 뒤쪽에는 ‘세상 무수히도 많은 가르침의 말들도 아버지께서 말없이 온몸으로 보여주신 그 가르침 만큼 위대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도 그 가르침을 새기며 살 수 있게 노력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천호씨가 세상 모든 이들에게 부친의 ‘가르침’을 새기게 하려면 왜곡되거나 잘못된 기록을 이제라도 진실의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518 묘역의 묘지석엔 조사천씨의 사망과 관련 ‘시위 중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씨의 부인 정동순씨의 증언록에는 ‘남편 일행이 시위차량(운행하는 정규버스가 없던 때라)을 타고 금남로에 도착해 걸어서 전일빌딩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더니 그와 동시에 남편이 “어이 나 총 맞았나 보네” 하면서 쓰러졌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망 과정은 차치하고 조사천씨의 사인은 ‘카빈 총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계엄군이 소지한 총은 ‘M16’, 시민군이 소지한 총은 ‘카빈총’ 이었다. 즉 조사천씨는 계엄군의 M16이 아닌 시민군이 발사한 카빈총에 맞아 사망한 것임을 정확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뉴스타운>만의 주장이 아니다. <뉴스타운>이 채록한 각종 증거자료의 대부분에서 “카빈 총상에 의한 사망”으로 밝히고 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보수진영 인사들의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이는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먼저 광주기독병원 병원기록에는 ‘조사천씨는 칼빈 총상으로 오후 2시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국가기록원의 사망조서 파일, 보안사, 광주지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조사천씨 사망원인은 시민군이 가지고 있었던 CAR(카빈) 총상에 의한 사망’임이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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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카빈총 사망' 국가기록원(사망원인) ⓒ뉴스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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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사망자료.보안사(상), 광주지검(하) 공식자료이다. ⓒ뉴스타운 |
뿐만 아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 사이트에서도 ‘조사천씨 사망 원인은 칼빈 총상’임이 명시되어 있으며, 심지어 당시 광주대교구 사무국장 유팔동씨의 ‘5.18의 기억과 역사-5 천주교편’에도 이런 정황을 확인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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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카빈총 사망' 사망원본(5.18 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 ⓒ뉴스타운 |
“길 가다 맞았다” VS “장갑차 위에서 맞았다”
조사천씨 사망 기록에는 ‘조사천 33세, 일시 21일 14시, 목공, 광주기독병원, 카빈총상, 사망경위불상’으로 되어 있다.
조사천씨의 사망경위에 대한 주장은 둘로 나뉜다. 전남대 5.18 연구소 증언록에는 부인 정동순씨의 증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남편이 길을 가다 총을 맞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광주 5.18을 모티브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조씨가 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에서 우는 아들을 피신시키려다 총에 맞은 것으로 되어 있다.
반면 목격자들의 증언에서는 ‘80년 5월 21일 오후 1시 반에 시민군 장갑차를 타고 도청을 향해 돌격하던 중 등 뒤에서 시민군이 쏜 카빈총 탄환이 목 아래 흉부에 박혀 오후 2시에 광주기독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조씨가 사망한 날의 기억을 증언 한 일명 ‘광주 장여사’(조사천 씨 옆집에서 초원사 문방구를 하던 충북 보은 출신의 광주시민 장재님 여사 증언 참조. 2015년 7월3일, 7월13일 두 차례에 증언. 유투브서 확인 가능)는 “도청에서의 소요가 한창일 때, 옆집에 사는 학생이 숨 가쁘게 뛰어와 광천동 문방구 아저씨(조사천)가 도청 앞 장갑차 운전석에서 목에 총을 맞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말한 사실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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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카빈총 사망 - 광주 장여사 증언 ⓒ뉴스타운 |
조씨의 경우는 얼굴에 고양이 털이 있어서 ‘고양이털 아저씨’라는 별명도 있었으며, 광천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모나미문구 아저씨’로도 학생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 조씨가 왜 그날 갑자기 장갑차를 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조사천씨의 사망경위와 관련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거짓말 또는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뉴스타운>은 당시 정황증거에 주목했다. 조씨가 사망한 21일은 전남 지역의 무기고가 털린 날이었고,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쫓겨나는 날이었다. 그날 그 시각엔 공수부대의 집단발포도 없었다. 따라서 <뉴스타운>은 그날 조씨를 사망케 한 카빈총의 향방을 추적했다.
여러 목격자들 중 당시 광주대교구 사무국장 유팔동씨의 증언을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유씨의 증언은 ‘5.18의 기억과 역사-5 천주교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5.18 기념재단에서 출간한 책으로 이 책 527쪽에서 면담자가 “무장을 했으니까 시민군이죠”라고 묻자, 구술자는 “시민군들이 이렇게 총을 가지고 우리 (가톨릭)센터 옥상으로 올라갈라 그랬어요.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옥상에서 봐야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 센터 건물이 그때는 광주 금남로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 거기서 도청을 향해 총질을 좀 하겠다. 그 양반들이 총을 들고 그러니까 그래 가지고 그분 말릴 수도 없고… 직원들만 지하 보일러실에 이렇게 ‘전부다 거기에 있으라’ 그러고 ‘나오지 말라’ 그랬죠. 그래 가지고 저 혼자 바깥을 내다 봤는데 그때 시민군하고 저쪽(공수부대)하고 교전이 조금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본 것 중에 하나는 뭐냐 하면 그때는 총소리가 나니깐 시민들이 (금남로에) 없었는데 어디서 장갑차 비슷한 차를 몰고 그 위에 태극기를 들고 그냥 금남로에서 도청으로 가는 것을 가톨릭센터 바로 앞에서 봤는데 근데 몇 분 후에 태극기를 날리고 하던 젊은이가 거기서 쓰러져 가꼬 그 차가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을 봤어요 (유팔동 2013, 527쪽).”
유씨가 분명하게 목격한 것은 시민군 저격수들이 가톨릭센터 옥상에서 도청을 향해 총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장갑차 해치 위에서 태극기를 날리며 도청 쪽으로 가던 조사천 씨가 금남로에서 누군가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는 중언이다. 조씨의 총상은 모든 기록에서 ‘칼빈총상’으로 나와 있다.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은 조씨가 공수부대가 쏜 총(M16)에 맞은 것인지, 아니면 시민군이 쏜 ‘칼빈총’에 맞은 것인지 정확한 판단을 하기 바란다.
만약 조씨 부인의 증언대로 ‘남편이 길을 가다 총을 맞은 것’이라면 518 묘역 묘비 기록인 ‘시위 중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은 잘못된 것이다. 부인의 증언대로라면 조씨는 돈을 받기 위해 금남로에 도착해 걸어서 전일빌딩 근처를 지나다 총을 맞은 것이지 ‘시위 중 총을 맞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씨가 맞은 총은 ‘카빈‘이다.
조사천씨 ‘카빈총상’ 기록 왜 ‘총상’으로 바꿔 버렸나?
조씨의 사망원인은 광주기독병원 병원기록, 국가기록원 사망조서 파일, 보안사, 광주지검에서 발표한 자료, 국립 5.18 민주묘지 사이트 등 수많은 자료에서 통일된 기록은 ‘칼빈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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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천 '카빈총 사망' 사망원본(5.18 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 ⓒ뉴스타운 |
그런데 최근 ‘5.18 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의 기록들이 무더기로 변조되고 있는 것이 확인 됐다. 이미 상당수 사망자들의 기록에서 ‘칼빈총상’이라는 기록이 변조됐다. <뉴스타운>이 확인한 바 김재하, 임은택, 나홍수, 문제학 등은 물론 주목했던 조사천씨의 사망원인도 ‘칼빈총상’에서 ‘총상’으로 변조됐다(5.18 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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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조된 조사천씨 사망기록 내용 ('카빈총상'에서 '총상'으로) ⓒ뉴스타운 |
조씨의 사망 경위는 광주 5.18 역사를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조씨가 사망한 시점을 두고 보면 M16의 경우는 공수부대, 카빈총은 시민군으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씨가 시민군이 쏜 카빈총에 맞아 사망 했음에도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 것처럼 왜곡하려는 의도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5.18 기념재단이 왜 조씨 등의 사망기록에서 ‘칼빈총상’을 ‘총상’으로 바꿔 버렸는지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미 수없는 자료에서 ‘칼빈총상’으로 판명 난 사실을 굳이 이제 와서 ‘총상’으로 바꿨는지 국민적 해명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5.18 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도 이유를 밝혀야 할 대목이다.
조사천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꼬마 사진은 전세계인에게 광주 5.18의 비극을 알리는 대표적 아이콘처럼 돼 있는데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모티브가 됐다, 이런 점에서 조씨의 기록 변조는 유네스코에 등록한 5.18의 역사기록을 무단 변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면, 결국 광주 5.18의 역사왜곡은 <뉴스타운>이 아닌 광주단체와 국민의당 임을 국민들 앞에 확인해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