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실체 (최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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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성령 작성일16-06-19 02:43 조회5,597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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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광주5.18을 단편적으로 알고 지내 왔다가
이제 와서 보니 그 전모(全貌)가 눈에 들어온다.
결정적인 증거로 人物사진들이 나타나서 그것을 말해준다.
사진은 造作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증거로 충분한 것이다.
우선 結論부터 말하면 이것이다.
아니기를 바랬지만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광주5.18은 북한군이 사주(使嗾)한 暴動이며 叛亂이다.
그러니까 북한군 약 1개 대대 6백여 명이 광주에 내려와
광주시민을 부추겨서 함께 일으킨 국가전복(顚覆) 반란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들이 참 많다.
延高大生 6백여 명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國軍을 상대로 광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사건이 全南大 정문에서 投石戰으로 돌발했다?
처음 이틀 동안은 군인이 시민에게 쫓겨 市 외곽으로 도망갔다?
시민이 무기고를 털어 重武裝을 하고
장갑차와 트럭을 몰고 기관총을 亂射하며
진압군을 몰아내고 교도소를 습격했다?
다이나마이트 수 십 톤에
뇌관(雷管)을 장착하고 시청 지하실에 보관했다?
그들은 바람 같이 나타났다가 연기 같이 사라졌다?
그들은 같은 광주시민인데 왜 복면(覆面)을 해야 했을까?
義로운 일이라면 얼굴을 가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家宅수색을 하니 人共旗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유언비어와 怪談은 극심한데 實體는 없다?
위와 같은 사건들이 事實이라면
그들에게 협력자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광주는 그들에게 남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協力조직이 구성되어
그들과 함께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사전에 情報수집을 해야 한다.
수 십 번의 圖上훈련도 해야 한다.
그들은 단체생활을 해야 하므로
누군가 그들에게 宿食 및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북한군이라면 광주는 적진(敵陣)이다.
立場을 바꿔 국군이 평양에 가서 그 같은 작전을 한다면
평양시민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것이 가능할까?
또한 평양까지 침투하기 위해선 북한 누군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현지에서 무기를 調達하려면 군사기밀정보를 알아야 한다.
그 정도의 군사작전이라면
그들을 돕는 지원세력은 그 보다 몇 배는 많아야 한다.
그 세력을 구성하려면 순수 민간인만이 아닌
어떤 公的세력이 가담해야 한다.
이상을 根據로 해서 씨나리오를 만들어 보자.
그들 6백여 명은 어느날 갑짜기
북한 정규군 복장으로 行進해서 광주에 들어오거나
군용기를 타고 낙하산으로 공중침투를 할 수는 없다.
몇 명씩 組를 짜서 여러 경로로 시간을 가지고 틈틈이 들어온다.
여러 곳에 지원세력의 도움으로 잠복해 있다가 D데이를 기다린다.
밤이 되면 모여서 작전을 계획하며 숙지하고
行色을 변장하여 現地에 적응한다.
그들은 첫 작전으로 전남대 정문을 타겟으로 삼았다.
학생으로 위장한 이들은 가방에 돌을 준비하고 국군과 是非를 건다.
이것이 發端이며 名分이다.
다음이 그들의 武裝이다.
국군의 지휘차량을 탈취하고 防産업체 자동차공장으로 돌진하여
위압적으로 국군 장갑차와 군용 수송차를 넘겨 받는다.
4대의 장갑차와 370여 대의 군용트럭을 타고
그 일대에 散在해 있는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기와 폭탄을 奪取한다.
그들은 경찰서를 습격하여 시위대 제압용 복장으로 갈아입고
무기와 장비를 갖춘 사실상의 正規軍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국군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한다.
이제 그들이 국군이고
진압군은 국군에서 반란군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그들은 얼굴이 드러나면 不利하므로 복면을 한다.
그리고 국군이 그들의 공격에 쫓겨 외곽으로 물러나자
그들은 경찰 파출소와 방송사를 불태우고 교도소를 공격한다.
軍警을 무력화 시키고 교도소 罪囚를 방면하여 자신들의 편으로 만든다.
무시무시한 유언비어와 怪談을 유포시켜 광주시민을 흥분케 한다.
이것은 종합하면 後方지역을 교란시키는 典刑적인 게릴라 전술이다.
後日談이지만 그곳에 출동한 진압군 특전사장병들은
광주에 자신들의 모습만이라도 나타나면
無抵抗으로 시위는 진압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군사작전이 아니고
시위진압 정도의 수준에서 출동했다고 한다.
이제 진짜 本質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들을 도운 세력이 누구인가다.
제일 먼저가 남한에 있는 固定간첩들이다.
대략 그들을 4~5만 명으로 推算한다고 한다.
그들의 일부가 광주에 集結하여 도왔을 것이다.
그 다음이 이 고정간첩들을 누가 지휘했느냐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그 조직을 지휘한
남한의 最上級 책임자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들 알면서 쉬쉬하며 그리고 모른 체한다.
왜냐하면 그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은 현충원에 애국 先烈들과 함께 누워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극적인 反轉이 일어난다.
그동안 36년을 베일에 가려졌던
그날의 북한군이 사진으로 드러난다.
소위 ‘광수’라는 인물들이다.
3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것으로 감추지 못한다.
댓글목록
지만원님의 댓글
지만원 작성일
훌륭한 글입니다.
단 약간의 사실이 오인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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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군이 그들의 공격에 쫓겨 외곽으로 물러나자
그들은 경찰 파출소와 방송사를 불태우고 교도소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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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는 5.18. 공수부대를 공격하고 곧바로 금남로와 충장로 길로 달려가
온갖 유언비어를 날리면서 파출소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파괴하고 불태우고
경찰은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방송국들, 세무서가 불탄 날은 5월 20일,
무기를 턴 날은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시에서 외곽으로 도망친 날도 5월 21일입니다.
수정이 되면 더욱 빛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