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빨갱이 역사는 뒤집고 우익의 입은 봉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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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6-06-02 08:34 조회6,3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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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빨갱이 역사는 뒤집고 우익 입은 봉쇄하겠다?
1. 김대중의 대변인 박지원이 발의한 5.18조롱금지법안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는 법안이 1일 발의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20대국회 1호 법안이다. 박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은, 신문 방송이나 각종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5.18민주화 운동을 비방ㆍ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2. 김대중 정부가 뒤집었던 빨갱이 사건들
1) 민보상위법: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보상위)는 김대중 정부하의 2000년 8월 민보상법에 의거하여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 발족하여 1969년 8월7일 이후의 각종 공산주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했고 과거의 반역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명예회복하며 금전적 보상도 해 주었다.
민보상위가 지금까지 과거의 불법살인폭력시위관련자 및 반국가사범들에 대해 대법원 판결로써 그들의 불법과격시위,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김일성 주의조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기도 및 간첩행위를 모두 유죄로 판시하였는데, 이들을 모두 민보상위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하고 명예회복 및 보상을 실시했다. 이런 혁명적 조치는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再審절차도 없이 행정부산하의 행정위원회에 의해 뒤집는 사건으로 이는,
첫째, 사법부 권한을 묵살시켜 3권분립의 원칙을 부정하고, 둘째,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반국가적 행태이고, 셋째, 공산주의 활동을 명예회복 및 보상함으로써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했다. 김대중이 어떤 사건들을 뒤집었나?
(1) 반국가단체사건
남민전, 사노맹, 자유민주통일그룹, 전민학련-전민노련, 제헌의회(CA)그룹, 사민청 등
(2) 이적단체 및 이적활동 사건
불꽃그룹 및 민족민주혁명학생투쟁연맹, 삼민투, 자민투, 민민투, 반제반파민족민주투쟁연맹, 서울노동운동연합, 구국학생연맹, 자민투, 애학투련, 노동자해방동맹,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 반미청년회,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안양민주노동자일동그룹, 반제동맹당, 제파PD그룹, 삼민동맹, 혁노맹, 단기동맹, 문화전선, 청주대임시혁명정부쟁취학생투쟁위, 자주대오, 북한영화상영 및 반미애국학생회활동 등
(3) 간첩사건
통일혁명당,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문인간첩단사건 등
(이하 생략)
3. 민주화 광신도와 5.18폭도들이 뒤집었던 1981년 5.18판결
1981년 5.18폭동반란에 대해 대법원의 김대중과 그 추종세력에게 내렸던 내란범죄 판결이, 1994년 정동년 등 321명으로부터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 35명을 내란죄로 고소 당하는데, 김영삼이 1996년 5.18특별법을 만들어 1981년 5.18재판 15년 공소시효의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일사부재리, 소급입법급지, 형벌불소급의 원칙 모두를 팽개치면서 헌법재판소에서 엉터리 합헌 판결한 결과를 근거로 1997년 4월 드디어 대한민국 역사를 시궁창에 쳐 박아 넣었던 세기의 인민재판이 열렸는데, 민주화 광풍에 혼이 나간 어용 사법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세기의 웃음거리 코미디 판결을 남겼다.
첫째, 1997년 대법원 판결문 제3장 5.18내란 등 사건 부분 중 ‘1, 가. 국헌문란의 목적 (2)’ 첫 단락은 2심 판결을 이렇게 인용하고 진술한다: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 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적어도 그 기간 중에는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 행위는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피고인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하게 제지한 것은 강압에 의하여 그 권한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어서 국헌 문란에 해당하며,” (1997. 대법원)
4. 남북 빨갱이들의 난장판 5.18폭동반란의 주역들
1) 남한 빨갱이들
박기순:
지하공산당조직 남민전의 혁명가 “임을 위한 행진곡” 속의 여성 “임”이 바로 박기순이다. 그는 1978년 다니던 대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남민전 여전사가 되었으며, 지령에 따라 광주 광천동 공단에 위장취업 한다. 공단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개설하여 남민전 투쟁의식을 고취시킨다.
1978년 12월26일 자신의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다. 미혼인 채로 5.18발발 1년 반 전에 이미 사망한 남민전 여전사는 후에 5.18민주유공자로 지정되며, 5.18 주동자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치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준다. 5.18거사를 위해 사전에 남민전 전사로 투쟁했기 때문에 5.18민주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윤상원:
1978년 가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광주로 내려가 광천동 한남플라스틱 공장에 위장취업 한다. 물론 남민전 전사로서 지령에 의한 노동현장 위장취업이었다. 광천동 공단에는 군용 무기를 생산했던 아세아자동차공장이 있어서 북한 김일성과 남한 자생간첩단 남민전이 5.18무장폭동에 사용할 무기 탈취를 위한 사전 준비에 최적의 지역이니 박기순과 윤상원의 광천동 위장취업은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다.
1980년 4월부터 김대중의 외곽단체 사무국장을 맡아 내란음모에 적극 가담하고 야학청소년들을 이용한다. 1980년 5월24일 북한특수군(시민군)에 의해 점령된 도청에 들어가 25일 도청을 장악한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도청재진입 전에 이미 자신이 소지한 수류탄에 의해 자폭하여 사망한다.
김대중:
국민연합대표, 1980년 5.18 민중봉기 계획, 최규하 임시정부 전복을 위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 1971년 일본에서 한민통 활동자금으로 북한 부주석 김병식으로부터 20만 달러 받았고, 1988년 간첩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아 온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았으며, 2000년 김정일에게는 5억 달러의 대한민국 國富를 김정일에게 진상하였다.
황석영:
황석영은 광주에서 1980년 극단 광대를 운영하며 5.18 불법시위 선동에 단원들을 적극 참가시킨다. 그는 1989년 3월 20일 북한에 밀입국하여 같은 시기에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을 만났던 윤이상과 5.18광주를 주제로 한 대남-반미의식 고취를 위한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해 줌으로써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호와 함께 25만 달러라는 공작금을 받았었다.
서경원:
서경원의 카톨릭농민회가 1980년 5월15일 5.18폭동을 선동하며 주도했고, 동신실업전문대학 학생회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명의로 제2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핏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 북한 김일성의 꽃 진달래를 흠모했던 그는 1988년 북한에 밀 입북하여 김일성으로부터 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던 간첩.
윤기권:
5.18광주 유공자 윤기권이 대한민국 민주화 발전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 보상금도 챙기고,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평양시 교수강습 및 학생답사견학소 지도교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 5.18광주 정신은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에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어떻게 반박하고 부정할 것인가? 5.18측이 유기권을 버리면 그와 함께 싸웠던 시민 군도 북한을 위해 싸웠던 반란군으로 내쳐야 하고, 윤기권을 껴 안으면 5.18정신은 피할 수 없이 북한의 적화통일 운동이 된다.
5.18무장폭동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그는 공산주의 혁명가요 남민전 전사였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당사자 박형선의 처남이 윤한봉이요 노무현의 측근 박연호도 그 사건 관련자이며 대부분 광주일고 동문들이다. 5.18기념재단설립자 윤한봉은 동지 8명과 함께 박정희 암살을 계획했으나 5.18 직전에 꼬리가 잡혀 결국 미국으로 피신한다. 미국에서 1989년에는 전대협대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를 김일성 평양축전에 밀 입북시키는 일을 성사시켰다.
문익환:
김일성의 충실한 심부름꾼 문익환은 안재구 등 남민전 간부들이 출옥하자마자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가서 지령을 받아 ‘구국전위’를 결성한다. 국민연합 중앙위 상임위원장이었으니 5.18광주 무장봉기의 선봉장이었다. 5월8일 폭력시위를 결의하였고, 남민전 전사 안재구와 그 가족을 극진히 돌봐 주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대통령 이전에 매달 500만원씩 받았었고, 간첩 이선실로부터도 수천 만원 단위의 공작금을 지원 받았었다.
장기표:
국민연합 조직국장 장기표, 심재권과 함께 5.18당시 서울 쪽 행동대장이었다. 윤상원을 김대중에게 천거한 장본인이니 윤상원은 사실상 장기표의 꼭두각시인 셈이다. 있지도 않은 신 군부라는 이름으로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억지를 부렸던 5.18세력의 사령탑이 바로 장기표인 셈이다. 그는 훗날 북한 여간첩 이선실과 접선하였고 그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숨겨 주었으며 그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았었다. 자생간첩 활동을 한 셈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노선에 목숨 걸고 반대한 인물.
2) 북한빨갱이들 (북한특수부대 일명 광수들)
지금까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서 밝혀낸 5.18광주 침투 북한특수부대(전투조 및 선동공작조)는 총 477명이다. 그들 모두는 36년 전 5.18 당시 광주에서 찍힌 사진과 근래의 사진들을 각각 비교 분석하여 동일인으로 판명되었다. (시스템클럽 사진자료 참조) 결국 5.18사태는 북한 김일성의 인민군과 남한 김대중의 빨치산들이 어우러져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고 일으켰던, 북한의 침략전쟁이요 남한 폭동반란이었던 셈이다.
5. 박지원 의원 똑똑히 들으시오
당신이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이라고 가장 먼저 발의한 5.18조롱금지법안은, 당신들의 정신적 지주 김대중이 집권했던 시절에 대한민국 건국 이후 빨갱이 역사를 민보상위법에 의해 모두 뒤집었을 뿐만 아니라, 빨갱이들이 날뛰면서 민주화 광풍을 일으켰던 1994년부터 시작하여 1997년 대법원의 인민재판을 통해 뒤집었던 5.18특별법에 의한 역사 뒤집기라는 과거를 망각한 자유민주주의 파괴의 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명심하라.
당신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붉은 정부하에서 과거 빨갱이들의 반 대한민국 이적 범죄 사건들을 모조리 뒤집어 놓고서, 지금 벌어지는 5.18역사 재조명을 위한 비판과 비방을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배짱과 소신은 대체 무슨 근거로 생겨난 것인가? 그것이 당신이 외치는 5.18민주화운동의 본질인가? 당신들의 빨갱이 세력 세탁과 국가보상은 마음대로 자행하고 빨갱이들의 5.18역사를 과학적으로 뒤집겠다는 우익의 입을 틀어 막겠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논리도 법적 근거도 상식도 벗어난 빨갱이들의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공산주의 식의 발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5.18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로 작정했는가? 이상.
2016. 6. 2.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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