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에게 총을 난사한 시민군 대장 박남선(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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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6-04-28 16:53 조회6,5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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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에게 총을 난사한 시민군 대장 박남선
1980년 5월25일 저녁 늦게 도청이 윤상원을 위시한 광주 빨치산 운동권 세력에 의해 온건파 학생수습위원회를 물리치고 무장투쟁조직으로 그 모습을 바꾼 후, 5월26일 박남선은 시민군 상황실장 자격으로 무장투쟁파에서 활동하는데, 그가 그날 도청 안에 확보하고 있는 무기들에 대한 현황을 기록한다.
“우리가 도청을 점령한 후 도청의 구내식당이던 민원실의 지하실을 반으로 나누고 한 쪽은 탄약고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무기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탄약고와 무기고에는 실탄 약 20만 발과 TNT 2천여 상자 그리고 LMG와 캐리버50 기관총과 몇 점의 M16소총(실제로는 34정), 약4천여 점의 카빈 소총이 있었다.” (박남선 1988, 376-377)
(광주시를 초토화 시킬 무기들을 도청 안에 가득 쌓아 두고 있었다. M16소총은 모두 34정이었다고 밝혀졌으니, 21일 무기고 습격 후에는 시민군은 카빈소총, 계엄군은 M16소총이라는 무장 공식도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박남선은 5월26일 밤 자신도 모르는 예비군대위 가명 황두일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을 접선하고 그로부터 작전도 배우고 그에게 YMCA 시민군 사격훈련을 맡으라고 지시한다.
“나의 말이 끝나지 예비군 차림의 한 사람이 나와 나에게 ‘실장님! 고생이 많습니다.. 저는 예비군 대위 황두일이라고 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오늘 밤 놈들이 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저희동네 예비군 몇 사람과 같이 왔습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도울까요?’라고 물었다. 그 사람의 키는 작달막 했지만 약간 검은 얼굴이 다부지게 보였으며 나보다 서너 살 위처럼 보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들을 잠시 기다리게 한 후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후 도청으로 인솔하겠으니 기다리라고 하고 황대위를 데리고 강단을 나와 주위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현재의 상황 설명과 함께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도청에는 기돌력을 갖춘 타격대 8개 조와 순찰대 병력 약1백 여명이 있고 경비병력 50여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장하지 않는 대학생과 민원부서의 사람들이 70-90명 정도 있으며, 공원에서 1개 중대 정도의 무장병력이 있습니다. 지원동과 방림동 쪽에도 예비군들이 자체 방어에 들어가 있어 우리와 협조는 합니다만 확실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박남선, 1988, 371-372)
(박남선은 자칭 시민군 대장이라는 사람이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북한특수군과 합세하여 군사적 정보를 주고 받으며 계엄군에 맞설 작전에 참여했으니, 총살을 면치 못할 여적 죄를 저지른 셈이다. 법은 몰랐다고 면책되지 않는다.)
북한의 유언비어 선동선동 책자를 베껴 5.18역사를 왜곡 날조한 악질적 범죄자 황석영과 이재의 또한 어쩔 수 없는 정체불명의 LMG기관총 설치 무장병력에 대해 실토한다. 모두 북한특수군임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전일빌딩……… 40여 명 (LMG 기관총 설치)
전대병원 옥상… 수 미상 (LMG 설치)
서방시장 ……… 수 미상
학동, 지원동, 학운동 ……. 30여 명
(황석영 1985, 232)
5월27일 새벽3시 어둠 속에서 북한특수군 황두일이 YMCA로부터 도청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물론 도청 앞을 지키던 시민군을 향한 총격이었다. 그 총 소리를 듣자 박남선은 반사적으로 그것이 계엄군의 사격으로 오인하고 총격을 개시하는데 방향은 도청 앞을 지키는 시민군 쪽이었으니, 당시에 총격으로 사망한 어린 학생 시민들이 누구의 총으로 희생되었겠는가? 계엄군은 그 시각에 도청 뒷담을 넘어 침투를 시도하고 있었으니, 계엄군 총격은 있을 수 없는 헛소리다.
“나는 분수대 건너편 어둠의 도시에다 총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고, 분노에 대한 절규였으며, 이 학살 극에 뛰어든 나의 역할이었다. 나는 총알을 다 쏜 다음 탄창을 갈아 끼우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만은 동지들이 나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가서 복도의 유리창을 모두 깨라고 고함을 질렀다. ‘쨍그랑-탁!’, 유리창은 파열음을 쏟으면서 조각들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나는 총구를 유리가 없어져 텅 빈 창 턱에 올려 놓고 금날로를 내려다 보았다. 분수대 근처와 정문 앞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몇 걸음 안 되는 곳이지만 그들은 이미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아득한 죽음의 땅에 쓰러져 있었다. 거리에는 노란 섬광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면서 날아 다니고 비명소리, 총소리가 범벅이 되어 떠 다니고 있었다. 나는 계속 긁어대기 시작했다. 총의 약실에서는 탄피가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다.” (박남선, 1988, 380)
(죽음을 넘나드는 전투 상황에서 자신들의 실수로 부하들을 총으로 희생시킨 시민군 대장 박남선이라는 자의 문학적 미사여구를 통한 상황 설명은 참으로 파렴치하고 반인륜적이다. 북한군 황두일이라는 자의 꾀임에 넘어가 앞 뒤 분간도 못하고 총을 난사했던 미치광이 대장에게 혼을 빼앗겼던 아이들과 함께 발사한 실탄은 무려 12만 발이었고, 단 2시간 사이에 쏘아댔던 것이다.)
박남선, 자칭 시민군 대장은 고작 방위병 출신이었고, 황두일이라는 북한특수군에게 꼼짝 없이 이용당하여 적군과 함께 도청 사수 전투를 감행했던 자로서 대한민국 군법상에서는 총살형을 면치 못할 중범죄인이다. 그래서 그들 5.18폭도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폭동반란 행위를 민주화 운동이라고 둔갑시키는데 목숨을 걸었던 것이고, 종북 빨갱이 세력은 이를 1997년 달성하게 됐고 지금까지 불안 초조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5.18 민주화 유공자라면서 세상에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들은 머지 않아 반드시 그들이 지은 죄만큼 대한민국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상.
2016. 4. 28.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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