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번 광수, 박상권 그는 북파간첩일까 자생간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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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6-04-19 08:17 조회5,8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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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 374번 광수, 평화자동차 사장 박상권
1. 안개 속 인물 북한 평화자동차 설립자 박상권의 화려한 이력서
주간조선 2013년 8월26일 발간 2271호 잡지사가 인터뷰한 평화자동차 사장에 대한 기사에는, 그가 1991년에 남미에서 뱃사람들을 부리며 수산업을 했으며, 1994년에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진출하여 평화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였고, 2001년부터는 평양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평양에서 보통강호텔도 같이 경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3년 초에 문선명의 생전 유언에 따라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을 모두 북한 김정은에게 양도하고 자신은 명예만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보다 앞서 한겨레 신문 2013년 1월22일자 기사에는, 박상권이 2012년 2012.12.18일에 평양에서 “평양시명예시민증”을 받았다고 한다. 박상권은 또 평양에서 문선명, 문형진과 함께 북한이 수여한 “조국통일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상은 김일성 시절에 쟁쟁한 종북 인사였던 김구, 여운형, 오익제, 문익환 등에게 수여했던 북한 김일성 집단의 영예로운 상으로 알려졌다. 박상권은 2011년 12월24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사망 후 영결식과 추모대회를 참여했다. 이희호, 현정은도 그 영결식에 있었다.
2. 1980년 5.18광주 시체놀음 한 박상권, DMZ평화공원 미끼 박대통령에게 던지다
그런데 시스템클럽에서는 북한에서 평화자동차 공장을 지어 북한 제 자동차를 생산했고 호텔을 지어 경영했던 박상권 전 사장이 1980년 5.18광주에서 시체놀음 현장에 참여한 374번 광수라고 발표하였다. 당시에 그는 30세의 청년나이였는데, 언론에서는 그의 출생지와 성장환경이 밝혀진 곳이 없다. 다만 그가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선택을 받고 남미에서 북한에 들어 간 이후부터 그의 활동행적만 언론에 밝혀져 있다. 이를테면 1980년 30나이였고, 북한에 첫발을 들일 때는 1994년 44세요, 2013년에는 63세가 된다.
박상권은 북한을 드나들 때,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졌고, 2013년 북한에서 벌인 사업체를 모두 김정은에게 양도하고 떠날 때까지 총 200번을 북한에 출입했으며, 남북 대화의 역할도 해 왔는데, 같은 해 7월27일 북한 평양의 60회 전승절에 참가하면서 김정은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개성공단이 잘 돼야 DMZ평화공원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김정은의 뜻을 듣고 국내에 들어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같은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5.24조치 이후 중단된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해 박근혜에게 DMZ평화공원 미끼를 던졌다.
3. 박상권, 그는 북파 간첩인가 자생간첩인가 출생부터 오리무중
374번 광수 박상권, 그는 30의 나이에 5.18광수였는데 그 후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았고 1991년에 남미에서 수산업을 시작했다고 했으니 1980년부터 11년간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의문이다. 혹시 남미 체류 주장도 거짓이 아닐지 참으로 궁금하다. 미국시민권을 언제 취득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온통 수수께끼인 셈이다. 그런 그가 2010년에는 지금 국방장관 한민구를 그가 합창의장 일 때 만났었으니, 남북한의 실세는 모두 만났고 명실공히 남북한의 대화창구 역할을 하여 2중 간첩이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그가 김정일, 김정은을 모두 만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일을 상기하면, 우리는 그가 1980년 5.18광수로서 북한특수부대 역할을 했던 과거를 근거로 할 경우, 박상권 그를 북한 김일성 왕국에 고용된 간첩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평양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은 우리가 유일하다. 내 좌우명이 ‘남과 다르게 살고 남보다 먼저 행동하자’이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다. 북한만의 독특한 문화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쓰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북한 정부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것보다 강성노조와 사업하는 게 더 어렵다. 북한 편을 드는 걸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노조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툭 하면 고공시위와 파업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북한 정부는 외국 기업에 그렇게 하진 않는다.” (주간조선, 2013.8.26 발매, 2271호, 북 김정은 만나고 온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4. 김구, 여운형, 오익제, 문익환, 박상권 모두 김일성의 조국통일상 받은 자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여 년간 북한에서 자동차와 호텔 사업을 했다는 박상권은 미국시민권 자였으니,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속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김일성 왕국의 충실한 심복 문선명과 함께 북한체제의 심부름꾼이 되어 남북관계에 개입했던 역사는 실로 1980년 5.18로부터 시작되었고, 북한에서 “조국통일상”을 받았으며 “평양시명예시민증”까지 하사 받은 명실공히 영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으로 변신한 사람이다.
30의 나이인 1980년 5.18광주에 나타났다, 1991년 마흔의 나이에 남미에서 수산업이요, 이후로 미국시민권 자로 변신한 그가 북한을 200여 차례 출입하면서 북한 자동차공장의 원조가 되고, 남북대화의 숨은 창구 노릇을 해낸 그에게 조국통일상과 명예평양시민증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 할 것이 못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은 박상권이 북한인민인지 대한민국 국민인지부터 시작해 그의 66세 인생 전반을 철저하게 파헤쳐 국민 앞에 밝혀야 할 것이다. 이상.
2016. 4. 19.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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