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시체장사, 얼마나 더 봐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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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2-18 12:55 조회6,3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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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시체장사, 얼마나 더 봐줘야 하나?
시체장사의 유구한 역사
빨갱이들은 시체를 만들어 시체장사를 하는 것은 77년이라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46년 10월 대구폭동에서는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남의 시체들을 행여에 올려놓고 시체장사를 했다. 1970-80년에는 위장취업자들이 기업에 들어가 민노총을 만들고 순진하고 어린 노동자를 구워삶아 신나를 뿌리는 데까지 꼬인 후 바람잡이를 하면서 성냥을 그어대 불을 지른 후 그 시체를 가지고 장사를 했다. 18명이나 이렇게 빨갱이들의 희생물이 됐다. 전태일이 그 1호다.
전태일, 미선이 효순이 시체장사의 희생양
2002년, 시야가 지극히 좁은 미군 공병장갑차가 교차하는데 미선이 효순이가 끼어들어 사망했다. 그런데 빨갱이들은 두 시체를 부모로부터 빼앗아 반미공작에 사용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미선이 효순이 부모는 빨갱이들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 있다고 한다. 5.18때에도 카빈총에 맞은 시체를 난자한 후 그걸 리어커에 싣고 다니면서 공수부대를 모략했다.
5.18사망자 수, 154명, 이태원 158명
세월호는 시체장사의 대박이었다. 그 다음이 이태원의 주검들이다. 이태원에서는 불과 10분 안에 158명이나 죽었다 한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폭동 10일 동안에 겨우 154명 죽었다. 포장된 민주화운동의 규모에 비해 사망자수가 너무나 초라하다. 그래서 광주족들은 지금도 2천명 이상이 떼죽음당해 어딘가에 암매장되어 있다며 시체장사를 한다. 실종된 자가 겨우 80명 정도로 신고 되었는데 무슨 2천명인가? 광주교도소를 공격하다가 사실된 북괴군 수가 475명이다. 전라족들은 이 475명을 놓고 특유의 뻥튀기를 하여 2천명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사망자 이름 밝히는 것을 불명예라 하더니
이태원 부모들은 처음 한동안 사망자의 이름도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이름을 밝히는 것이 명예를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민변 것들이 달려들고 빨갱이 선동자들이 달려들더니 대통령더러 사과하고 물러나라 외친다. 아마도 보상금까지 받고 싶은 모양이다. 세월호의 재탕이 될 모양이다. 유가족을 회유하여 빨갱이 세력에 동참시키려는 빨갱이수법인 것이다.
시체장사의 성공비결은 양심적이고 솔직한 국민으로 하여금 양심의 소리를 말하지 못하게 협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론의 마녀사냥이 무서워, 침묵한다. 이런 침묵을 이용해 벼라별 억지를 창조한다.
솔직함을 여과없이 드러내자
이태원에서 죽은 청춘들이 국가나 사회를 위해 공익차원에서 그곳에 갔던가? 사진들을 보면 반나체의 모습들이 눈을 찡그리게 한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들도 많이 보인다. 가면 뒤에서 미친 척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거룩한 청춘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익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향략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게 왜 대통령 책임이라는 것인가?
향락을 위해 거리로 나간 청춘들이 만들어 낸 무질서가 사고원인
향락을 추구하다 죽은 것이 어째서 본인의 책임도 아니고 부모의 책임도 아니고 꼭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것인가? 사리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의 빗나간 소리를 어째서 모든 국민이 입 다물고 조용히 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여기에 뛰어든 이념에 취한 붉은 선동꾼들이 두드려대는 요란한 꽹과리 소리를 언제까지 참고 들어야 하는가? 국민들도 시체장사에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니다. 이제는 국민들이 할 소리를 제대로 했으면 한다.
2022.12.1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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