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가족 여러분, 설 명절 잘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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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6-02-07 23:22 조회5,9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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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가족 여러분, 설 명절 잘 보내십시오
이제 봄기운이 날아듭니다. 바람도 차지 않네요. 하지만 요사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추태를 보면 거기에서 대한민국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추태들이 멸망의 신드롬처럼 뇌리를 쓰리게 갈고 갑니다. 세계를 상대로 깡 자랑 벌이는 김정은 앞에서 한국의 위정자들과 안보책임자들은 하나마나한 볼멘소리들만 내고 있으니 속이 터집니다.
나라를 위정자들에 맡기면 나날이 망가집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5.18에 대한 역사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광수가 벌써 31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광수 1명을 찾아내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그래도 노숙자담요님팀의 애국열정은 시들 줄 모릅니다.
광수 영상 편집은 본부 능력 한계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래서 그것도 노숙자담요님이 맡아 하고 계십니다. 개념과 화보 지면의 스페이스를 설계하는 데에는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화보를 빨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회원님들이 화보에 대해 많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광수에 대한 열기가 식는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애국의 열정이 크신 분들의 바람들입니다. 하지만 화보제작은 통상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여기에서 시도하다가 손을 들고 노숙자담요님께 무거운 짐을 지워드렸겠습니까? 화보가 나오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것이 나오기 전이라 해도 우리는 5.18전쟁을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명절 연휴에라도 조금씩 틈을 내셔서 우리 홈페이지에 떠 있는 영상들을 요리하여 널리 전파하고 현미경적으로 의미를 부각-확대하여 제2의 작품들을 만들어 전파하는 방안에 대해 여유를 가지고 생각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회원가족들은 애국심 하나로 이 시스템클럽 공간에서 의기와 희망을 나누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래서 귀하고 소중하신 분들이십니다. 5.18역사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바꿀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신 분들이십니다.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시고, 내일의 설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기 간절히 빕니다.
참고로 오늘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조각하는 마음으로 다듬은 화보의 '머리말'을 아래에 전재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다듬을 것입니다만 우선 널리 확산하는 데에는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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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광수화보)
(영상 고발장)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인식돼 있는 5.18 광주사태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민들과 국가 사이에 발생했던 10일간의 무력충돌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18일 09:30분경, 250여명의 학생집단이 전남대 정문 앞에 서있던 20명의 공수대원들에게 돌을 던져 발생한 충돌로 시작됐고, 5월 27일 새벽 05시 23분 주영복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시가 수복되었음을 보고한 순간에 종결됐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5.18광주사태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김대중 추종자들이 일으킨 ‘반국가폭동’인 것으로 인식됐고, 당시의 법관들도 그렇게 판결했다.
우익시대의 폭동사건이 좌익시대에 민주화운동으로 둔갑
5.18에 대한 재판은 1980-81년과 1996-97년 두 번 했다. 1981년의 대법원은 우익판사들로 구성되었고, 1997년의 대법원은 좌익판사들로 구성되었다. 전자는 5.18을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이었다고 판결했고, 후자는 5.18을 전두환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고 판결했다.
1981년에 이미 대법원 판결이 끝난 5.18사건을 1997년에 다시 재판한 이유는 재심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세력이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5.18역사'를 뒤집기 위해 여론몰이로 제정한 '5.18특별법' 때문이었다. 1997년의 재판은 재심재판이 아니라 헌법을 초월하는 특별법에 의한 정치재판이었던 것이다. 이 5.18특별법'은 헌법에서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과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무시했다. 재심 사유가 없는 5.18사건을 좌익판사들이 다시 판결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사법쿠데타였지만, 재판내용은 그야말로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
검찰이 작성한 팩트들은 1980년 것이나 1995년 것이나 변함이 없었다. 단지 1996-97년에 재판을 주도한 판사들의 해석이 상식과 논리를 뛰어 넘는 막무가내였다. 증거도 철저히 무시되었다. 헌법도 법률도 무시되었다. 오직 온갖 허위사실들로 가득찬 여론조작에 의한 북한식 인민재판만 있었다. 1996년에 발행된 이 사건 제2심 판결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법률도 아니고 헌법도 아닌 '자연법'에 의한다. 자연법이란 국민인식법이다". 1996년의 5.18재판은 증거재판도 아니고 법률재판도 아닌 인민재판이었다는 뜻이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측 변호인들이 아무리 팩트와 법률조항들로 어필해도 판사와 검사들은 "이 재판은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 접근방식이라는 게 무엇이냐"는 변호인들의 거듭된 질문에는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이로써 한국사회에는 좌익세력과 무산계급이 5.18역사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대한민국에 반역한 5.18폭동이 갑자기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로써 예전의 ‘내란세력’이 ‘헌법수호세력’이 됐고, ‘내란’을 진압한 국가는 ‘내란세력’이 됐다. 5.18폭동에서 사망한 폭도들이 묻힌 곳은 국립묘지가 되었고, 그 묘지를 가려면 길 한 가운데 묻어놓은 전두환의 동상을 지금도 밟고 다녀야 한다. 전두환은 지금도 살아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묘지 입구에 묻어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짓밟고 다니게 하는 것은 김정은 집단의 잔악성과는 어울려도 거룩하다는 민주화운동과는 어울릴 수 없다.
세계 역사에 이렇게 황당하게 뒤집힌 역사는 아마 이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김일성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충신세력이 되었고, 반공세력이 역적세력으로 내몰렸다. 공산세력이 남한사회의 주인이 된 것이다. 남한이라는 국가가 내용상 북한체제로 체제전환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재판 모두가 다 5.18을 북한이 주도한 침략사건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5.18광주폭동의 주역이 북한특수군 600명이었다는 사실은 검찰기록에 이미 암시돼 있었다.
검찰과 국정원이 작성한 정부문서들에는 광주의 대학생으로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특공작전’ 내용들이 '대학생 시위대 600명'이 수행한 작전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광주에서는 '연고대생 600명'으로 소문나 있던 전설 속의 이 600명이 1980년 5월 21일 오전, 이동 중인 제20사단을 습격해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기록물들에 의하면 이 600명이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빼앗아 타고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3정의 총기와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했다. 도청에 2,100개의 다이너마이트를 순식간에 폭탄으로 조립해 놓았다. 300여명의 10대 광주 소년들과 개념 없는 20대의 도시근로자들을 동원하고, 십여만 명의 광주시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에 가담케 했다. 결국 광주시내에 실탄 없이 투입된 공수부대 4,000여명(3개 여단 소속 10개 대대)을 포위 압박하여 사건 4일 만인 5월 21일 오후에 광주시에서 몰아내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이로써 폭동 4일만에 광주시는 완전히 북한특수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편으로는 신출귀몰하는 자신들의 날랜 솜씨를 발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공작을 수행했다. 유언비어를 전파하고, 잔인한 시체들을 만들어 한국군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우고, 광주시민들을 등 뒤에서 쏘아 쓰러지게 하는 방법으로 광주시민들을 분노케 하여 폭동에 참가시키는 고도의 정치공작을 병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내용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특수부대만이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당시의 수사관들과 판검사들은 순진하게도 그것을 600여명의 대학생들이 수행한 전과라고 판단했다.
계엄당국이 체포하여 군법회의 제1심에서 유죄로 판결받은 폭도들의 숫자는 겨우 328명, 이들은 대부분 10대 및 20대의 개념도 조직도 없는 도시근로자들이었다. 살인과 파괴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폭도들의 수가 600명은커녕 겨우 328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때 광주에서는 물론 전국을 통털어서라도 600명이라는 날랜 학생폭력 집단이 광주에 형성될 수 없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서슬퍼런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광주는 물론 전국의 운동권 출신들과 대학생들은 예비검속을 통해 체포되었거나 공포에 떨며 꼭꼭 숨어 있었다. 따라서 검찰기록에 명시돼 있는 “학생시위대 600명”은 도저히 한국의 대학생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특기해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시 한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328명 중에는 이 600명에 소속된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광주시민 328명은 신출귀몰하는 능력을 가진 600명에 부역한 부나비들이었다.
광주에서 촬영된 폭동현장의 얼굴들은 모두 북한의 고관들
저자는 2002년부터 12년 동안 5.18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18만 페이지, 북한자료, 통일부자료 등을 연구하여 3,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8권의 다큐멘터리 역사책을 썼고, 2014년 10월에 마지막으로 “5.18분석 최종보고서”라는 단행본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5.18은 북한의 김일성이 600명의 병력을 보내 국가를 전복시키고 적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일으킨 게릴라 침략작전이었고, 여기에 김대중을 추종하는 광주의 좌익세력이 동조했던 여적사건이었다”
무려 1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저자는 단호하고도 똑 부러지는 문장으로 이 결론을 냈다. 이 결론을 가장 축복해 준 존재는 하늘이었다. 2015년 5월 5일부터 위 결론을 사실로 입증하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가 이끌고 있는 단체에는 영상분석팀과 전략분석팀이 있다. 이들은 1980년 광주에서 촬영된 폭도들의 얼굴이 북한정권의 핵심 얼굴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어찌 기적이 아니겠는가? 모 언론사의 영상데이터베이스에서는 1980년 광주에서 쵤영된 사진들을 획득하고, 통일부 데이터베이스에서는 북한의 주요인물정보를 획득하여 이들을 대조 분석한 결과였다. 시력을 소진시키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금까지 무려 319명의 북한의 전쟁범죄자들의 얼굴을 특정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직 애국을 위한 신념과 극기와 감동적인 열정이 없으면 이룩할 수 없는 땀의 기적이었다.
반면 1980년의 광주 사진들 속에서는 광주사람들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5.18에 북한군이 관련돼 있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광주의 5.18단체들, 광주시장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큰 방송국 3개사가 1999년부터 공개적으로 나서서 1980년 광주에서 촬영된 얼굴과 닮은 사람들을 애타게 찾았지만 한국국민들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광주에서 찍힌 폭도사진 속의 319명 모두가 북한사람들이고, 이 319명의 얼굴 중, "이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광주인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북한군 600명의 지휘자는 3성장군 리을설, 총체적 대남공작 지휘자는 김중린
이 영상 분석에 의해 북한특수군 600명은 당시의 인민군 상장 리을설(1921)이 지휘한 것으로 발견되었다. 이와는 별도의 대규모 행정 엘리트, 예술인, 체육인, 소년단, 유아로 구성된 정치공작팀과 지휘부가 활동했던 사실도 영상분석 결과 발견되었다. 후자의 팀은 대남모략 공작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대한민국을 접수하기 위해 필요한 엘리트들이었다. 한국을 살인극의 나라로 모략-선전하기 위해 북한은 사진들을 쵤영하여 세계에 전파했다. 광주의 전남 도청 일대에 북한사람들로만 남녀노소를 골고루 섞어서 집합시켜놓고, 마치 그들이 광주사람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촬영을 한 것이다. 이 사진들이 이 책에 집중 분석됐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5.18광주작전은 군사작전, 모략작전, 국가접수작전으로 구성되었다. 이 통합작전은 북한판 CIA국장인 김중린(1923)이 총 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위장탈북자들로 구성된 트로이목마, 그들도 광주에 왔었다
저자측의 전략팀과 영상분석팀은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319명의 광수들 중 50명은 현재 서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 랭킹의 유명인들이 되어 있고, 사회 심층부에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한 개의 사진에 탈북자들을 빼닮은 사람이 50여 명 씩이나 들어있다는 사실은 확률의 결과가 아니라 팩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이들 50명은 '서울광수' 또는 '위장광수'로 명명하고 있다.
이들이 위장간첩으로 의심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직접 광주에 왔으면서도 이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5.18에 북한이 연관돼 있다는 근본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그들의 영상을 공개한 저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북한 고유의 방식으로 협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보를 제작한 목적
이 화보의 내용은 2015년 5월 5일부터 인터넷에 공개됐고, 각종 인쇄물을 통해 대한민국 곳곳에 전달됐다. 아마도 국민의 60% 이상이 이 사실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진실을 알게 된 많은 국민들은 그동안 속아 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에 침묵하는 정부와 언론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한 애국단체가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정도의 결과를 내놓았으면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규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정부와 언론은 어째서 이토록 무관심하고 냉담할 수 있느냐?"
당연히 정부가 나서야 할 엄중한 국가적 이슈이건만, 매우 기이하게도 오히려 현 정부는 이러한 결과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공권력으로 저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매우 이상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화보집은 언론들의 냉담한 태도와 국가의 방해 속에서 수많은 애국국민들의 격려와 성금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네 가지 목적을 위해 무료로 배포된다.
첫째,1980년 5월,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한국영토에 비밀리에 침투하여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살해해놓고 이를 한국군의 만행으로 뒤집어씌운 침략 및 양민학살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둘째, 1980년 북한이 광주에 데려왔던 북한의 10대 소년들이 김대중 정권 시절에 주로 탈북하여 지금은 수많은 방송국에 고정출연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상당한 규모의 팬-그룹을 키우면서 통일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스스로를 가장 훌륭한 애국세력이라고 자가선전하고 있는 위험한 사실을 고발하고,
셋째, 이들이 김대중이 새로 개조한 국가정보원 대북팀의 적극적인 비호와 지원을 받으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방송인, 기자, 대형교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원세력을 구축하여 매우 위험한 트로이목마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넷째,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5.18역사가 온갖 허위사실들로 포장되어 국가정체성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확산 교육되고 있다는 위험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이 영상고발장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모든 세계인들의 관심을 초대한다. 북한의 이 잔인무도한 악행과 세계를 속이는 허위선전 행위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UN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역량들이 일치단결하여 반드시 응징해야 할 인류 공동의 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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