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5.18폭동 원인제공한 내란의 수괴(만토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6-01-29 10:19 조회7,752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김대중은 5.18폭동 원인 제공한 內亂의 首魁
전라도 광주 5.18 단체와 비겁한 대한민국 언론 그리고 정치사기꾼 집단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 대는 목소리가 있다. “전두환 등 유신잔당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주에서 투쟁한 ‘5.18민주화 운동’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선전선동 구호처럼 외치는 문구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세뇌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필자는 이런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 수준의 5.18폭동반란에 대한 왜곡날조 구호에 대한 진상을 추적하여 전두환과 김대중 중 과연 누가 5.18비극의 원인 제공자이고 내란의 首魁인지 밝히고자 한다.
1. 1980년 4월3일, 김대중의 신민당 입당 거부, 신민당과의 결별 선언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 대의원 약 7백50명 중 김대중 계는 과반수에 약 1백50표에 미달, 이 대세를 무너뜨리기는 도저히 곤란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탈당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를 단념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집권 욕에 불탄 김대중은 이날 대통령 문제를 운운하지 않고 민주회복 노력에 전념한다는 명분으로 신민당으로부터 결별 선언을 한 것이다.
신민당 점령에 실패한 김대중은 신민당과 결별함으로써 독자적 집권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진영의 단결’, 신민당 집권태세강화’, ‘재야중심 신당출현저지’라는 김대중 자신이 말한 당초의 원칙과는 반대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의 성명대로 재야세력의 통일이나 민주주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김대중이 그 시점에서 은인 자중하여 신민당에 입당하든지, 고문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대통령 집권 욕에 불탄 나머지 객관적인 정세판단이 환상, 과신, 착각에 의하여 완전히 흐려져 김대중을 초조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비극의 광주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2. 1980년 5월3일, 김대중의 국민연합 학생시위를 부추기는 성명발표
이날 서울대학총학생회는 5월15일에 대규모 가두시위를 실시할 것을 결의한다. 여기에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학생운동은 정당한 저항”이라고 데모를 선동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3. 1980년 5월6일, 전두환 중앙정보부 부장서리의 김대중에 대한 위험성 언급
학생시위가 점점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던 그 해 4월21일 강원도 정선의 사북탄광에서는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하여 경찰 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중경상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4월30일에는 전두환이 중정 부장서리로 임명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태에 언론인 손충무가 전두환을 면담하여 사태진정을 위한 대화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전두환이 김대중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김대중파 들입니다. 나는 김대중을 유능하고 똑똑하며 언젠가는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손 국장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 김대중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측(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경찰)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김영삼과 헤어지고 대학 복학생들과 종교인들을 앞세워 국민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나(전두환)의 예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역시 믿을 수 없는 인간입니다. 손 국장도 조심하세요.”
4. 1980년 5월16일,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민주화촉진 국민연합대회 선언문” 발표
“우리들은 5월19일 오전10시까지 5월5일의 민주화 촉진 국민선언에 요구한 ‘비상계엄령 즉시 해제,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즉시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과 복권, 언론의 자유보장, 유신정우회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정부개헌심의회의 즉시 해체’에 대하여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을 요구한다. 만일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5월19일 정오를 기하여 행동강령에 기초해서 우리 국민은 투쟁에 나선다”
행동강령: 5월20일 정오에 서울은 장충단 공원에서, 지방은 시청앞 광장에서, 민주화 촉진국민대회를 개최한다, 민주화 투쟁에 찬동하는 의사표시로서 시민은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국군은 비상계엄령에 의거한 일체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며, 언론은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고, 전국민은 집회와 평화적 시위를 통한 민주화 투쟁을 용감하게 전개한다.
5. 1980년 5월18일, 0시를 기해 전국비상계엄령 선포
“5.17조치로 5월18일 오전 0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공포된 그 날 광주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놀랄 만큼 신속했다. 광주의 학생집회는 3월 중순 이래 계속되고 있었지만, 15일을 기해 가두시위로 변하고 있었다. 따라서 “5월18일부터 광주사건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고 김대중 조직의 계획적 조직운동이며, 전국계엄령에 대결하는 궐기였음을 알 수 있다”고 계엄사령부가 발표한다. 최규하 대통령의 전국계엄선포에 대한 해명을 미국대사에게 전한다. “한국정부가 걷잘을 수 없는 학생데모로 인해 전복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부득이 전국계엄령을 선포하게 되었다.”
(손충무 저, “김대중 X-파일 제1탄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6. 1980년 5.18폭동반란의 원인제공자, 내란의 首魁는 김대중이었다.
김대중과 그 추종세력은 ‘유신의 심장’이라고 그들이 말한 박정희가 사망한 후에 최규하 정부가 체육관 선거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개헌심의위원회를 발동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정치민주화를 실시하려고 했지만, 당시 제도권 야당인 신민당 내에서 김영삼을 이기고 대선후보가 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재야 정치단체 국민연합을 조직하고 민주화 추진을 위한다는 기만적인 변명을 늘어 놓았다. 정부를 상대로 권력쟁탈을 위한 선전포고를 하였고, 최규하 정부는 김대중의 정부전복을 막기 위해 전국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전국계엄하에서 광주에서는 운동권과 학생들의 불법시위가 계속되어 5.18폭동반란의 비극이 발생한다.
떼 강도가 백주에 집으로 침입하여 주인을 몰아 내고 모든 재산을 강탈하겠다고 시위하는데, 집 주인은 강도를 막기 위해 무장하고 그들을 막아야 한다. 김대중은 여기서 바로 강도의 대장으로 비유되며, 전두환은 떼 강도를 막아낸 경찰인 것이다. 김대중은 명확하게 5.18폭동반란의 원인 제공자로서 내란의 수괴였고, 전두환은 폭동반란을 막아 정부전복에 이어 당시 김일성의 대남적화통일 음모를 최대한 신속하게 막아 냈던 국가유공자임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상.
2016. 1. 29. 만토스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이런 흉측한 롬을 신성한 동작동에 송장을 묻게 금 하용한 쥐박이를 쥑여야,,.
또, '앵삼이'는 또 어떤 인간이었던가?! ,,.
'금 뒈쥬ㅣㅇ'롬도 '앵삼이'롬도 모두 다 공히 동작동 국립 모이에 묻힣 자격이 없어쇼다는데,,. '대통령'을 지냈다고 다 묻힐 자격이 있음은 아니라, '대통령 재임 중'에 뒈져야만 한다거늘,,. 빠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