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과 5.18은 한 세트의 기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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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5-10-12 18:16 조회9,1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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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과 5.18은 한 세트의 기획물
지금 와서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니 10.26과 5.18은 한 세트로 기획됐다는 생각이 든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정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되었다. 1980년 3월, 일본 통일일보는 북한이 남한의 정치적 불안상태를 이용해 남한에서 본격적인 대남게릴라전을 수행할 것이라 보도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5.18은 원래 3월로 기획돼 있었는데 늦어졌다고 했다.
요사이 발굴되고 있는 영상자료에 의하면 당시 대한민국 땅은 북한의 안방이었다. 김일성 가의 로열패밀리가 대거 광주에 온 것이다. 김일성의 딸 김경희가 왔고, 그의 남편 장성택과 3살배기 딸 장금조까지 광주 도청 안으로 데려왔고, 김일성의 여동생 김정숙도 왔고, 김정일의 처형 성혜랑도 왔다. 이 정도라면 이들 로열패밀리는 사태 한참 전에 광주 땅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5월 21일 계엄군을 광주시 외곽으로 내몰 때까지 있었던 엄청난 군사작전은 수사기록과 검찰보고서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대학생 600명”이 수행한 업적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그 무섭다는 예비검속이 시행되고 있어서 대학생 600명이 모일 수도 없었고, 설사 대학생들이 모였다 해도 4시간동안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 수도 없었다.
이들 600명은 북한군일 수밖에 없다. 북한군은 5월 21일 밤 광주교도소를 6차례 공격하다가 많은 희생을 치뤘다. 그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 중에 장성택이 있고, 현재 북한태권도 위원장인 김경호가 보인다.
북한군인 600명이 도청을 점령하자 5월 22일부터 23일까지 북한의 로열패밀리를 포함한 기라성 같은 북한 인물들이 도청을 점령했다. 이들은 북한이 매수한 푸른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카메라에 담기도록 연기들을 했다. 시체가 담긴 관을 놓고 통곡하거나 슬퍼하는 모습들을 연기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한국은 양민을 마구 학살한 악귀의 나라요 제거돼야 할 나라라는 여론을 확산시킨 후 해주에 대기하고 있는 10만군으로 남한을 공격하여 남한을 접수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해주에 있는 10만군으로 남한을 어떻게 접수하느냐? 그런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 어디 있느냐?” 모두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우리가 발굴한 204명의 광수 중 85명은 장군 광수, 나머지 119명은 관민 기관의 인물들이다. 로열패밀리와 북한의 각계 두뇌들이 이렇게 대거 미리 내려와 있었다는 사실에는 분명 대한민국의 접수목적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접수하려면 신의주 10만으로는 안 된다. 남한 쪽의 내통세력이 있어야 하고 사회혼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와 그에 호응했던 정승화 세력 그리고 김대중 세력일 수 있다. 만일 김재규와 정승화가 당시에 권력을 잡았다면 이들은 북한의 요리 대상이 되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어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자가 정권을 잡는데 대한 사회적 혼란”은 매우 크고 오래도록 지속되었을 것이다.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져 내전을 했을 것이다. 내전, 이는 김일성이 노린 공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면 박대통령 시해는 북한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김대중 세력이 역할을 한다면 대한민국 접수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김대중은 무엇을 믿었던지 당시 정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10.26과 대한민국 접수작전을 한 세트로 기획했다면 탈북자들의 증언대로 거사는 3월에 실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3월을 놓치게 된 것은 느닷없이 나타난 2성장군 전두환 때문이었다. 북한은 김재규-정승화 조가 집권할 것으로 믿고 전략을 짰을 것이다. 전두환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끼어들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전두환이 찍어죽일 웬수가 된 것이다.
전두환은 당시 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김계원이 김재규를 순간적으로 배신하는 바람에 전두환이 박정희 시해자가 김재규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알자마자 오일랑 대령을 시켜 국방장관실에 있는 김재규를 유인해서 서빙고로 데려가게 된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의 시나리오에 돌출적 이변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돌출적 이변이 바로 김계원과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그 후 전두환이 국민적 여망을 받게 되었고,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안정이 되자 3월의 거사계획이 5월로 미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의 지혜를 부탁한다.
2015.10.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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