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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 소탕 없으면 적화통일 된다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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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5-09-10 09:41 조회6,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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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敵 소탕 없으면 적화통일 된다

 

 

노무현의 10.4선언 제4항은, “4. 남과 북은 현 停戰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하고 종전선언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뜻이 바로 평화협정이다.

 

 

월맹은 파리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속임수와 위장전술을 펼쳤는지도 알아보자.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의 외무장관이 서명, 미국은 월남과 방위조약을 맺고, 월맹침공 시에는 해군과 공군이 북폭을 하기로 약속했으며, 월맹외무차관과 150명을 인질로 사이공에 체류시키고, 캐나다, 이란, 헝거리, 폴란드 에서 250명의 휴전감시단을 두기로 하며, 월남을 세계 4위의 공군보유국으로 만들어 놓고, 미국은 80억 달러의 지원금까지 월맹에 주었다. 이런 것들로 전쟁을 막았었나? 

 

 

평화협정으로 미군은 철수 되었고, 월남에서는 이제 전쟁이 없어질 것이라는 해방감에 모두 평화에 도취해 있었고 월맹은 철저하게 남침 준비를 하여 평화협정 2년 만에 전격적으로 월남을 공산화시켜 버렸다. 이것이 바로 평화협정의 말로였고 지금 북한 김정일 집단이 평화협정을 미국과 맺어 놓고 한국에서의 평화무드를 조성하여 정신적 군사적인 무장을 해제시켜 2년 후 2012년에 대한민국을 전격적으로 적화해 보겠다고 마지막 발악을 했었다. 전쟁준비 하는 적에게 평화무드는 패망과 죽음을 뜻한다.

 

 

박대통령은 독일이 통일 전에 어떻게 내부의 적을 퇴출하였고 자유민주주의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내부의 적을 소탕하지 않고 국민대통합이라는 멍석을 깔아 주면서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을 방치해 놓고, 한반도통일에 목청 높이는 일은 분명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패망의 역사인 베트남 적화통일을 연상하게 된다. 박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독일과 베트남의 통일 전후 상황을 예로 들고자 한다. 통일 이전에 꼭 알아 두어야 한다. 독일 식 자유민주주의 통일, 베트남 식 적화통일, 박대통령은 어느 역사를 답습하고 싶은가, 반드시 택일하고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1. 독일은 자유민주주의 통일 전에 내부의 敵을 철저하게 퇴출시켰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한 형법, 헌법보호법, 사회단체규제법, 테러저지법 등 다양한 국가안보법제와 함께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확립된 기본 원칙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빌리브란트 총리 재임 당시인 1972년에는급진주의자들에 대한 결의’(일명: 급진주의자 훈령)를 헌법보호 조치로 채택, 위헌(違憲)세력이 공공부문에 침투하는 것을 봉쇄했다.
 
급진주의자 훈령은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옹호 한다는 보증을 제시하는 사람만이 공직(公職)에 임용될 수 있고, 공무원은 직무 내외를 막론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무를 갖는다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훈령에 따라 독일민족당(NPD)과 같은 극우급진정당 및 공산계열의 정당과 사회단체 조직체들의 구성원들은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없이도 공직부문 임용이 저지됐다.
 
일례로 좌익 학생운동 조직이 상당한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1972 8월부터 1976 2월까지 서독과 서베를린에서는 총 428명의 공직지원자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대한 충성심에 의혹이 있다는 사유로 임용에서 배제됐다. 독일은 1987년까지 약 350만 명의 취업희망자의 적격성을 심사해 약 2250명에 달하는 위헌성분 지원자들의 임용을 거부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미 취업한 사람도 반체제(反體制) 성격의 좌익단체나 그 위장단체에서 활동한 사실이 밝혀지면 대부분의 경우 해임 조치를 당했다. 이 같은 조치는 공공 부문의 단순 노무직이나 계약제 사무직에게까지 적용됐다. ‘급진주의자 훈령은 독일 통일 후 동독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좌익급진주의의 위험이 사라지자 1991 1231일 바이에른 주()를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김필재 기자.“국가전복 세력에 대한 미국과 독일의 대응중에서)

 

2. 베트남 적화통일 이전에, 월남은 내부의 敵 소탕에 실패했다

67년 대선(大選)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쥬와,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를 위시한 많은 정치인·관료들이 모두 공산 프락치였음이 알려진 것은 월남 패망 후의 일이었다. 반면 월남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질 때마다 대공(對共) 전문가들이 쫓겨나는 바람에, 월남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은 형해(形骸)만 남아버렸다. 그들은 대()월맹 정보 수집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월남 내부에 침투한 공산 프락치 검거에조차도 무기력했다.

한 나라를 망하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보기관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대공기관이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간첩하나 못 잡는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사실을 나는 너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남 패망 당시, 외적(外敵)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이후 월남은 월맹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그래서 월남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월맹군이 도발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할 것이고 이후 대()월맹 경제 원조도중단하면, (당시)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월남군 기동력과 화력으로 월맹군의 공세에 당연히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오랜 전쟁 후에 온 휴전 체제에서 평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혹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 믿음이 국방을 소홀히 하도록 하였고, 내부적으로도 극심한 정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한편 이 무렵 월남에서는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 불교계의 뚝드리꽝 스님 등이 모여서 「구국(救國) 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산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일종의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반부패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순수한 반부패 운동 조직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반체제 세력으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점이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100여 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 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뒤섞여 반전운동, 인도주의 운동, 순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하여 티우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975년의 월남은 월맹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 좌익 단체의 선전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1974 10, 월남에서는 유전(油田)이 발견되어 온 국민이 흥분에 휩싸였다. 나라 전체가 평화 무드에 젖어 있던 상태에서 석유까지 발견되자 사람들은 더욱 자유분방함과 안일주의에 기울어 갔다.

1975년은 대통령 선거의 해였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과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했다. 고질적인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권의 혼란과 맞물리면서 마치 전염병처럼 전 국토를 휩쓸었다. 정부의 부정부패는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계층 간 갈등이 조장됨으로써 공산 프락치들의 활동공간은 점점 넓어져 갔다. 결국 이 선거가 최후의 자유선거가 되고 말았다. (이대용. 전 주월남 대사관 공사의 베트남 패망의 역사연구중에서). 이상.

2015. 9. 10.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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