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없는데 적이 있겠는가 (Ever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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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5-09-10 14:44 조회6,1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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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EBS에서 지역감정에 대한 여러 정치인들의 개별 인터뷰를 방영하였다. 그 중 이정현과 김부겸이 5.18을 들먹였다. 이정현이는 “한 손에는 몽둥이를, 한 손에는 착검을 한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장갑차로 밀어부치니 광주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고 말하였고, 김부겸이는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산 증인‘이라고 하였다. 민간을 상대로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르는 군인들에 맞서 맨손으로 독재에 항거한 많은 광주 시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뉘앙스였다.
결론은 경상도 전두환이 전라도 광주시민에게 그런 천인공로 할 만행을 저질러 지역감정의 골이 더욱 패였다는 뜻이다. 그들은 광주 5.18에 대해 붉은 악마 황석영이 지은 ‘죽음을 넘어 어쩌구...’ 하는 책은 읽어도 저자가 지만원인 책이면 그들의 정서엔 불온서적이라 읽지도 안했을 것이다. 이런 한국 정치인의 내공은 광주 정의평화위원회나 정의구현사제단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여야 할 것 없이 그토록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슴 아프게 부르는 것이다.
나는 전두환이 5.18광주사태에 대해 찔리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계엄군과 직접 관계가 있든 없든, 환각제를 먹여 만행을 저질렀든 안 저질렀든 나중에 자서전을 통해 구구한 변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사실 여부를 죽어라고 연구하면서 싸우고 감옥가고 하는데 정작 키를 쥐고 있는 당사자는 입을 굳게 다물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였다. 북괴군의 침투 확인에 자신 없으면 계엄군 만행의 진실만이라도 단호히 밝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의외로 겁이 많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1983년 10월 북한의 ‘아웅산폭탄테러’로 각료들이 몰살당하여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데도 경제를 핑계로 전쟁을 우려하여 보복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긴박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을 달래러 박철언을 밀사로 보내었다. 이 정치군인들, 전두환과 노태우는 박철언을 무려 6년 동안 22차례나 대부분 밀입북 시키고 박철언이 남북회담 수석대표가 되어 무려 42차례의 회담을 한 것도 거의 밀담이었다.
어찌 북한이 우리를 우습게보지 않겠는가. 군인 출신도 그 모양들인데 민간 출신 대통령들이야 오죽 통일 타령하며 남북회담에 전 임기를 걸다시피 하겠는가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시절 좋아하지 않았던 박정희는 군인답고 군더더기 없는 지도자였다. 우리 민족에게 과분한 사람이다. 산업을 일으켜 무기를 자력 생산하고 과학을 장려하여 창의력을 키웠던 개혁가 박정희가 국민을 독려하던 구호인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는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공산당이나 독재자들의 잔치였던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자유 민주국가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만 노란 옷을 걸치고 천안문 성루 높은 곳에서 참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결혼하였다는 박근혜가 과연 조국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못 갈 곳에 갔던 것일까? 나는 신뢰프로세서에 매여 있는 그녀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긴 말도 필요 없이 그녀의 행보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의 배치마저 멀어지고 말았다.
친일을 생산하고 역사를 뒤집는 것이 진실을 탐구하는 일이 되어 있는 작금, 좌익의 친북 사상 교육으로 청소년들은 주적을 미국으로 알고 있는 웃지 못 할 세상이 되어있다. 주사파가 꿈틀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 이전의 박정희, 이승만 시절에 공산주의 친북사상의 준동은 바로 자살행위였다. 지금 ‘남조선공화국’화 되어 있는 이 현상은 분노하기 보다는 업적을 남기기 위해 적에게 매달리는 이 나라 역대 지도자들의 반역적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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