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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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1-07 17:06 조회3,3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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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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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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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좌익들이 2019에 만든 영화 [김군]은 제1광수가 북한의 농업상을 지낸 김창식이였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강상우 영화감독이 광수의 상징인 제1광수를 찾아내기 위해 2015년 3월부터 2018년 8월까지, 3년 반 동안 광주와 전남을 샅샅이 뒤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제1광수라며 나타났지만 이들은 강상우 감독팀이 보아도 어림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1광수라며 나타난 사람들 중에는 이강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강갑은 2016년 ‘5.18기념재단’이 1광수로 언론에 내세웠다가 ‘노숙자담요’가 얼굴분석을 통해 ‘사기행각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하자 꼬리를 감추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김군을 보았다는 부녀가 강상우 감독팀에 나타났다. 2019년 5월 23일 개봉된 영화 [김군]의 주역은 막걸리집 딸 ‘주옥’이었다. 그녀와 그 아버지가 제1광수를 자주 보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김군]으로만 알아달라는 청년이 막걸리집에 자주 왔는데 그는 7-8명의 청년들과 함께 광주천 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양아치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높은 차에 올라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그런 [김군]을 흠모했고, 먹을 것도 차 위에 올려주었는데 사태가 끝나자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7-8명의 북 특수군이 양아치 신분으로 위장해서 게릴라 시가전을 벌이기 위한 정찰을 한 후 시가전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릴라전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도시 게릴라전이다. 그래서 장기간의 정찰이 필요한 것이다. 거리를 정찰하고 빌딩 구조들을 정찰하려면 신분 위장이 절실했다. 양아치는 경찰들도 접근하기 싫어하는 신분이라 북 특수군을 위한 위장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남쪽 사람들에 떠도는 말들 중 하나는 5.18때 갑자기 모든 다리 밑에 양아치들이 들끓다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노숙자담요는 1광수를 북에서 농업상을 지낸 김창식이라 분석했다. 그런 김창식은 막걸리집 주인에게 [김군]이라고만 알아달라 했다 한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송선태의 위계
좌익들은 [광수]를 희화화하지만 5.18이 북한군 소행이었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킨 매체가 바로 [광수]였다. 노숙자담요는 2015년 5월 15년 제1광수를 찾아내기 시작하면서 만 3년 동안 무려 661명의 [광수]를 찾아냈다. 대표적인 광수 얼굴들이 [5.18답변서 11-~282쪽에 또렷한 영상으로 정리돼 있다. 여기에 정리돼 있는 영상은 화질이 좋고, 분석이 뛰어나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5.18기념재단’은 1번 광수가 북한의 농업상을 지낸 김창식이 아니라 광주사람이라는 것을 조작해 내기 위해 2016년부터 ‘가짜 제1광수’를 내놓기 시작했다. ‘5.18기념재단’이 이런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실패하자 2022년 7월에는 장관 대우를 받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송선태가 직접 사기 행각에 뛰어들었다.
2022년 5월 4일, 당시 19세였던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곧 제1광수로 나타날 것이라고 방송 및 신문을 통해 기사화했다.
“5·18 당시 군모를 쓰고 장갑차에 올라탄 청년의 모습으로 사진에 찍힌 김군은 갓 스무 살 나이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김씨 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광주시 남구 송암동 주택가에서 계엄군에게 체포돼 즉결처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신이 수습되지 않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위와 같이 19세의 김씨가 시체에서 환생했다는 요지로 방송을 했던 송선태는 8일 만인 5월 12일, 또 다른 사람을 1광수로 내세웠다. 당시 20세의 차복환이라 청년이 1광수라며 KBS 등 수많은 방송과 신문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2022년 5월 12일,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무장된 페퍼포그차(최루탄 발사 차량)에 올라탄 채 카메라를 날카롭게 응시하던 젊은 시민군. . . 이 사진이 지난 42년간 5·18의 비극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대표적 상징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사진 속 시민군은 그러나 '5·18 내란 수괴'들이 단죄받고 다각적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는 2015년 보수논객 지만원씨로부터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 이른바 '광수 1호'로 지목당했고, 2019년 개봉한 강상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에선 '김군'으로 명명됐다. .”
“12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김군'이자 '광수 1호'였던 시민군이 차복환(62)씨로 확인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한국일보는 차씨가 지난해 5월 처음 신분을 밝힌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반년간 차씨와 계속 접촉하면서 그가 정말 사진 속 시민군이 맞는지를 탐문해왔다. 진상조사위에서도 차씨의 존재를 입증하는 과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된 이달 5일, 광주 모처에서 차씨를 만나 지난 42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 . ”
“그해 만 20세였던 차씨가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차씨는 석 달 전쯤 광주에 와서 광주교대 인근 공장에서 상패를 만들어 군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광주엔 직업군인인 친형이 살고 있었는데, 차씨뿐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형님 집에 의탁하고 있었다. 5월 18일 비상계엄령으로 버스가 끊긴다는 소식에, 차씨는 공장에서 서둘러 상패를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 ”
“차씨는 시위 대열에 합류한 날을 5월 21일로 기억하고 있다. 집을 나섰는데 마침 시민군이 탄 군용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또래들이 트럭에 타라고 해서 올라탔습니다.’ 첫날은 총도 없이 트럭을 타고 광주 시내를 활보했다. . .페퍼포그차를 탄 차씨의 모습이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날은 시민군 가담 이틀째인 5월 22일이었다. 형이 "절대 항쟁에 나서지 말고 동생들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차씨는 이날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거리로 나선 참이었다.”
“그날 차씨는 군용 트럭을 타고 화순경찰서 앞 예비군 무기고로 가서 다른 시민군들과 무기를 탈취한 뒤 광주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닝복 차림이던 차씨는 도청에서 군복과 군화를 받아 갈아입고 차량도 페퍼포그차로 갈아탔다. 머리엔 '석방하라. 김군'이라고 적힌 띠를 둘렀다. 김군은 당시 야당 유력 정치인으로 신군부에 의해 연행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에둘러 쓴 것이었다. 차씨는 차량 상단 사수 자리에 섰다. 다만 그는 차량에 설치된 자동 소총을 다룰 줄 몰랐고 소총 또한 기관총 탄띠를 걸쳐만 놓은 빈총이었다. 이것이 '김군 사진'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 .”
“사격 연습장에 있던 중학생쯤 돼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차씨의 정신을 퍼뜩 깨웠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집에 두고 온 동생들 얼굴과 함께 "동생들 잘 돌보라"는 형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동생들 걱정에 총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급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니까 동생 두 명이 벌서고 있더라고요. 제가 군복 차림에 총까지 들고 오니까 형님이 더 화가 나서 심하게 혼을 냈어요. 형님이 상무대에 잡혀온 사람들은 다 죽어 나간다고, 제발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형님도 울컥해 하더라고요.’ 형이 집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차씨는 더는 시민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제1광수가 광주에서 촬영된 장면은 아래 사진들과 같이 7개 장면이다. 그런데 차복환은 <1>번 장면에 대해서만 자기라고 주장했다. 그냥 차에 올라타 보고 곧장 내려왔는데 그 사진이 카메라에 포착되어 <1>번 사진이 나왔다는 것이다. <2>~<7>번 사진에 대해 차복환은 아무 설명이 없다. 군대도 가기 전의 20세 아이, 장흥에서 올라온 지 3개월 동안 상패 만드는 가내수공업 업체 종업원으로 있다가 주인 없는 페퍼포그에 잠시 앉았다 곧장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6개 장명의 사진은 누구들이라는 것인가? 사기를 쳐도 엉성하게 친 것이다.
차복환과 송선태는 차복환의 얼굴사진만 내놓고 아무런 얼굴분석 없이 무조건 1980년의 차복환 사진과 2022년의 차복환 사진을 내놓고 그가 제1광수라 주장한다. 하지만 노숙자담요는 1광수가 어째서 북한의 김창식 얼굴인지 그리고 차복환이 어째서 1광수가 아닌지에 대해 전문적인 영상분석을 했다. 이 두 가지 영상분석 자료를 증거로 하여 저자는 2022년 6월 26일 송선태를 위계에 의한 직권남용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등으로 고소했고, 경찰이 이를 수사하고 있다.
반면 송선태는 그 엄청난 국고를 사용하면서 이 정도의 전문 분석가를 찾아내지 못하고, 강상우, 주옥, 당시의 촬영기자가 공동으로 확인했다며 그의 주장이 진실한 것이라고 못박아 발표했다. 이는 논리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 그냥 횡포다. 얼굴분석의 일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좌측 코끝은 눌려서 아래로 쳐져 있지만 제1광수의 코끝은 위로 들려 올라붙어 있다.
* 좌측 콧대는 둥그렇고, 우측 콧대는 날이 세워져 있다.
* 좌측 콧볼(벌렁벌렁 움직이는)은 뾰족하게 각이 져 있고, 우측 콧볼은 평편하다.
* 좌측 콧구멍은 눌려서 터널 높이가 낮고, 우측 콧구멍은 코가 올라붙어서 터널 높이가 높다.
5.18진상규명위원회의 또 다른 사기행각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사실상 5.18유공자들이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 위원회 역시 저자가 제시한 42개 정황증거 하나하나에 대해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광수]를 희화화시킴으로써 저자 지만원을 희화화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5.18조사위원회는 또 무직자로 있던 ‘이동욱’이 문재인에 의해 비상임위원으로 발탁되자 그를 이용해 [보랏빛 호수]와 지만원을 집중 공격케 했다. 2021년 4월 이동욱은 [보랏빛 호수]의 주인공 정명운을 성남시의 한 모텔로 불러 4시간 동안 공갈 협박 회유하여 그가 “보랏빛 호수의 저자 이주성에게 5.18때 광주에 직접 왔었다고 이야기 해준 모든 스토리는 사실이 아니라 지어내서 말해준 것”이라는 자백서를 쓰게 했다. 이어서 이동욱은 2021년 4월 14일 밤 10시, 책의 저자 이주성을 성남시 인투모텔로 불러내 1시간 동안 공갈-협박-회유하다가 거부당했다. 회유를 거부한 이주성은 이를 모두 녹음했고, 저자는 녹음된 것을 녹취회사에 의뢰해 녹취했다.
이어서 이동욱은 이승만TV에는 혼자 10여 회에 걸쳐 출연하고, 펜앤마이크TV에는 정규재와 함께 출연하여 36개의 허위사실을 방송함으로써 2022년 7월 8일, 저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5.18진상조사위원회를 장악한 5.18유공자들은 광주에는 절대로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야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발포명령을 내려 광주학살을 주도했다는 결론을 내야 한다. 그런데 2020년 5월에 출범한 5.18진상조사위원회는 지금까지 이 두 가지 결론을 낼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법적으로 사기를 치다가 매우 창피하게도 소송까지 당하고 있다. 5.18 유공자 자식들이 장악하고, 김대중 시절로부터 물갈이한 경찰 조직이 이를 정상대로 수사한다면 이는 엄청난 횡재일 것이다.
2022.1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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