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제62광수 리을설 인민군 원수의 이력서(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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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재 작성일15-08-02 22:17 조회8,1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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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을설(李乙雪, Ri Ul Sol)
1921년 함경북도 청진시(김책시) 갑산군 출생
1931. 동북항일연군 제2군(軍) 제6사(師) 소년연(少年連) 전사(戰士) [김일성의 호위병]
1937. 보천보 전투에 전령병(傳令兵)으로 참가
1942.8. 동북항일연군 교도여(敎導旅)의 편성 이후 무전기 발보원(發報員)
1945년 이전, 빨치산 활동(김일성의 빨치산 동지)
1945년 광복 이후 귀국하여 김일성의 생활 부관, 호위대장을 지냄
연도미상. 소련군사아카데미 졸업
1948.8. 인민군 연대장
1950.7. 인민군 제4사단 참모장
1951.4. 인민군 제15사단 제3연대 연대장
1953. 인민군 소장, 소련레닌그라드군사대학 유학
연도미상. 내무성 호위국 국장
1962.10. 인민군 중장, 5군단장, 최고인민회의 제3기 대의원
1966.5. 인민군 제5집단군 참모장
1967.11. 최고인민회의 제4기 대의원
1968.3. 인민군 제1집단군 사령관
1970.11.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71. 인민군 부총참모장, 조선노동당 중앙호위국 국장
1972.2. 인민군 상장, 인민군 제5집단군 사령관
1972.12.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 '영웅' 칭호
1975.3. 함경남도 당 위원장
1979.8. 인민군 5군단장
1980.10.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1982.2.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
1982.4. 김일성훈장 수훈
1982.10. 호위사령부 사령관
1983.8. 평양방어사령부 사령관
1984.8. 조선노동당 중앙호위총국 국장
1985.4. 인민군 대장
1986.11.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
1990.4.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
1990.5. 국방위원회 위원
1992.4. 인민군 차수, '2중영웅' 칭호
1994.7. 김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1995. 금수산기념관 관장
1995.10. 인민군 원수
1996.2. 조선노동당 중앙호위사령부 사령관(호위사령관)
1997.4. '노력영웅' 칭호, 국기훈장 1급 수훈
1998.9.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
1998.9. 국방위원회 위원
2003.9.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2003.9. 국방위원회 위원 해임
2004. 호위사령관 해임
2009.4.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2010.9.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2011.12.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2012.2. 김정일훈장 수훈
2014.3.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2015.6.20.<대한민국 500만 야전군>에 의해 '제62광수' 칭호
[참고 사항] 장기간 비밀보안 업무에 종사해왔음. (1)1945년 소련 적군이 일본에 대해 최후 일전을 가할 때 일본군의 비행장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리을설이 상인으로 위장하고 정보 수집을 한 바가 있음; (2)1952년 여름 잠복한 한국의 특공부대가 당시 김일성이 있던 최고사령부 건물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였으나 이을설이 이를 발견하고 주변 산으로 옮겨 위기를 모면한 바가 있으며, 이 사건은 그 이후 '박헌영, 리승엽 간첩 반국가 집단 사건'으로 비화되었음; (3)1956년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하기 전날, 리을설이 당시 최창익 부총리의 수상한 거동을 적발하고 김일성에게 밀고하여 내부 반란을 제거하였으며, 그 이후 김일성이 소련파, 연안파 등을 숙청하는 투쟁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 (4)1968년 3월, 북한의 김창봉 인민군 대장과 허봉학 인민군 대장(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숙청하는 가운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 (5)2003년 룡천역 폭발 사고 당시 리을설이 적시에 수중의 정보망을 통해 의심스러운 정보를 확보하고 김정일이 탑승한 열차의 방향을 바꾸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가족 사항] 4명의 딸이 있으며, 그 중 2명은 외교관이고, 나머지 2명은 대외무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모두 장기간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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