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폭동반란, 남과 북의 연결고리(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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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5-07-26 18:12 조회5,6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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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반란, 남과 북의 연결고리
5.18폭동반란을 흔히들 남북 빨치산의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남한에서는 김대중을 정점으로 한 좌익 반 대한민국 세력이 광주 민중봉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최규하 정부를 압박하여 퇴진시킨 다음 김대중 세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음모가 진행 되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대남적화공작을 위한 대규모 북한특수군을 광주에 침투시켜, 남한 내의 무장봉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다음 북한 김일성에게 남조선 해방을 위한 지원군을 요청하면, 즉각 남침을 감행하여 대한민국 적화시킨다는 흉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1. 간첩 손성모와 광주 운동권 그리고 무등산 증심사
5.18 폭력시위 촉발에 불을 지핀 전남대총학생회장 박관현이 휴교령과 전국계엄하에서 도피은신 하였던 무등산장 부근의 식당이라고 했으니 당시에 간첩 손성모가 진을 친 증심사 입구 식당임이 틀림없다. (김대령 역사로서의 5.18 1권 249쪽)
거물간첩 김용규는 그의 저서 “소리 없는 전쟁”에서 1973년의 민청학련 사건 이후 간첩단이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공작할 목적으로 “구속자협의회”를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정말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및 그 가족들을 위한 “구속자협의회”가 있었으며, 그 회장이 윤한봉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던 구속자협의회는 그 음모가 드러날 듯하자 그 명칭을 “민주청년 협의회전남지부”로 바꾸었으며, 역칭 “전남민청협”이라고 불렀다. 그 구속자협의회와 전남민청협이 공식명칭이었고 그 별명이 광주운동권이었다. (역사로서의 5.18 제1권, 174쪽)
2. 폭동반란 5.18광주의 수수께끼- 未知의 무장시위대 (김대령의 역사로서의 5.18)
광주사태에는 광주운동권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5월의 민중봉기는 윤한봉이 민청협과 더불어 총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광주사태가 시작되자 윤한봉도 모르는 일이 전개되었다. 광주사태가 시작되자 운동권이 선봉에 섰는가? 아니다. 시민군 지휘자들은 광주운동권조차 누구인지 모르는 인물들이었다. 이것이 광주사태의 수수께끼다.
왜 광주사태에 즈음하여 간첩 손성모가 스님으로 위장하고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왕년의 빨치산들이 모여들어 활동하고 있었는가? 김대중이 훗날 북한으로 송환하여 준 바로 그 간첩이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가 기거하던 증심사 스님들이 총동원되어 광주사태를 선동하고 있었다. 손성모는 그 이름이 공개된 광주사태공작 간첩이었다. (역사로서의 5.18 제4권, 에피로그 264, 265, 266쪽)
3. 폭동반란 5.19광주 – 북한이 기획연출 하다 (지만원의 솔로몬 앞에 선 5.18)
“5.18은 북한이 기획연출 했다 – 전술과 전략이 없이 실행되는 작전은 없다. 우리 군과 경찰과 정보기관들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북한 책에는 시위전략 및 전술, 그리고 광주의 교훈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시위는 작전이고, 작전에는 전략과 전술이 있고, 전략과 전술은 극비사항이다. -중략- 그런데 그 극비의 전략 및 전술이 북한당국이 발간한 역사책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80년 5월의 서울시위와 광주시위에 대한 상황기록들을 보면 당시의 시위상황들이 북한 책에 기술되어 있는 시위전략 및 전술에 정확히 일치한다” (지만원의 솔로몬 앞에 선 5.18, 147쪽)
4. 간첩 손성모, 5.18폭동반란을 배후조종 하다
간첩 손성모는 5.18 훨씬 이전부터 광주 무등산에 소재한 사찰인 증심사에 진을 치고 활동하였음을 후에 그가 체포된 다음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증심사를 광주운동권에서 수시로 모임을 가졌었다는 기록들을 알 수 있다. 간첩 손성모와 광주운동권이 동시에 모여 무슨 모의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심사에서 활동했던 자들은 대부분이 위장된 승려였으며 광주운동권을 위해 적극 협조했다는 기록들이 있으니, 간첩 손성모가 바로 5.18 남한 주동세력을 배후조종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손성모는 광주운동권을 알고 조종했지만, 광주운동권은 대부분 손성모가 간첩인지 몰랐을 것이다.
5. 남북 빨치산의 합작품, 5.18폭동반란 – 이제 준엄한 심판을 받을 차례
김대령 박사의 “역사로서의 5.18”은 5.18광주에 나타난 무장시위대가 알 수 없는 외지인 정도로만 끝을 맺었고, 지만원 박사의 “솔로몬 앞에 선 5.18”에서 5.18광주에 나타났던 무장시위대는 분명 “북한특수군”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5.18을 폭동반란으로 알게 된 수 많은 국민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역적들의 범죄행각을 알면서도 가슴 속에 분노만 쌓여 있던 2015년에는, 드디어 지만원 박사에 의해 5.18북한군 개입을 당시에 침투된 북한특수군들의 면면을 추적하여 현재 사진과의 비교를을 통해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5.18광주 폭동반란에서 남한과 북한이 어떤 고리로 연결되었었는지를 기록에 의해 추적해 보았다. 그런데 지만원 박사의 시스템클럽과 500만 야전군은 5.18이 남북한 빨치산의 합작품이라는 주장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더 이상 비교될 수도 없을 엄청난 무기로 대한민국 반역집단 5.18세력과 북한 괴뢰집단의 철옹성 같은 35년 간의 왜곡날조 5.18역사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철퇴를 놓아 버렸다. 이제 저들 반역집단과 김일성 악마집단의 범죄행각에 대한 준엄한 심판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핵폭탄 폭발의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상.
2015. 7. 26.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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