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리아(김정일花)를 들고 찾아왔던 광수들(제91, 92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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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재 작성일15-07-13 22:16 조회7,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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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문사절, 김기남·최태복 비서 유력(2009년)
http://m.jabo.co.kr/a.html?uid=28916
이번에 포착된 확률이 매우 높은 잠재적 광수들(제91, 92, 93, 94광수)은
노숙자담요 님께서 얼머 전에 올려주셨던 최신 사진 중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되었습니다.
그것은 김양건(제92광수)의 세 번에 걸친 실수로 인해서 합리적으로 유추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세 번의 실수인가 하면, 그는 2009년 8월에 김기남(제91광수)과 함께
김대중의 장례식에 당시 표현에 의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화를 전달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였습니다. 추도사나 전언은 없었고 오직 김정일리아(김정일花)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김정일과 광수들의 "무언의 협박"을
만고역적 김대중 가문과 그와 연결되어 있는 정치 세력들에게 전한 것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참고 사항: 김기남(제91광수)은 김대중이 살아 있을 때에도 방문한 바가 있습니다]

[참고 사항] 김기남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한 노무현을 만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기남(제91광수)은 이명박도 만난 바가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은 그가 펴낸 회고록에서
김기남에게 "앞으로는 잘 하세요"라고 하며 어깨를 두 번 두들겼다고 적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참고 사항: 김기남과 김양건이 리희호를 그냥 지나칠 리는 물론 없습니다. 주성영 의원이
김대중 비자금 6조 원이 리희호에게 흘러들었갔다고 주장을 한 바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흐름 속에서 광주에 적용되는 아문법이 통과되었는데
해당 액수도 약 6조 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일시불일까요?]
김양건의 두 째 실수는 2014년 8월 김대중 사망 5주년을 기념하여 이번에는 김정은화(花)를 갖고
서울을 방문하여, 그가 5.18 광주 대학살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추론을 유발한 것이며, 결정적으로는 2014년 10월 인천을 최룡해, 황병서와 전격 방문하여
"대단히 이례적인 행동"을 보이며 여러 가지 추측을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김기남(제91광수)과 김양건(제92광수)는 항상 "2인 1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연일까요? 사회과학에서는 5가지 이상의 유사한 패턴이 관측되면
이를 일컬어 확률적으로 매우 높은 신빙성을 갖고 계속해서 그와 유사한 상황이
(주어진 조건이 동일하다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선 위의 사진 왼쪽 김기남(제91광수)은 1929년 함경남도 출생으로 알려져 있고, 중요한 사항은
1960년대 중반에 <노동신문사> 책임주필을 담당했으며, 1977년 12월에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977년 11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역임).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고, 모스크바 대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2년 12월 조선노동당 비서국 선전담당 비서가 되었으며,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장,
중앙위원회 위원, 그리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대남(對南) 공작의 화신입니다. 1980년 5.18 현장에 왔다면 그의 경력 루트 상에서 1950년
6.25를 전후하여 연계되었던 남조선노동당 인맥들(즉 국내 고정간첩들)과 접선하고
일본 조총련 <조선신보> 등의 기자들을 (여권을 위조한 상태로) 대거로 대동하고 당시
활약했던 광수들의 모습을 뒤에 숨어서 찍으며 그 이후 평양에 돌아가 자료를 취합하고 난 이후
예를 들면 <광주의 분노>(1982년 출판)와 같은 책들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참고 사항] 맨 오른쪽에 백낙청 씨의 모습이 보입니다. 김지하 씨께서 "깡통 빨갱이"라고 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3692.html

[참고 사항] 김기남은 물론 한때 만고역적 김대중의 정신을 계승했던 자의 옆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자는 김기남과 그 자가 김구를 지날 갈 때를 맞춰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참고 사항] 김기남(제91광수)이 위와 같이 광수들과 함께 있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김양건(제92광수)는 1938년 평안남도 출생으로 김일성종학대학 외문학부 프랑스문학을
전공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조선노동당 국제부 지도원 과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 7월 북한 국방위원회 참사(대외사업 담당), 2007년 5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2009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및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제91광수 김기남이 언론 담당 비서 출신으로 북한 선전선동부의 핵심 인사라고 한다면
제92광수 김양건은 대남 담당 비서 출신으로 북한 통일선전부의 핵심 인사입니다.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국내 간첩망을 발전 및 유지시키는 작업에 상기 2명 모두 업무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특히 김양건은 국방위원회 참사(대외사업 담당)을 했던 전력을
유추하여 보았을 때에 일정한 군사 경력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일견 그의
몸매와 눈빛에서 품어져 나오는 살기(殺氣)에서 다각적으로 느껴지는 바이기도 합니다.

노숙자담요 님께서 올려주신 사진들 속에 숨겨져 있는 인물들 중에서 제91광수와 제92광수가
저의 눈에 우선적으로 포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썬그라스를 착용하였고, 제91광수는
현장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양복 착용)을 하였으며, 제92광수는 매우 날렵한
몸매와 살기(殺氣)가 눈동자를 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이며, 매우 과감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위에서 합리적으로 유추하여 드린 바와 같이 언론담당
으로서 국제통이었던 김기남(제91광수)는 세련된 복장으로 "기자 행사"를 하였거나
조총련 <조선신보> 계통의 기자들 및 그의 직속 부하들(언론 담당)을 대동하고 활약을
하였을 것이며, 제91광수 옆에 총기를 든 자가 미필적고의에 의한 호위를 하는 중에


김기남(제91광수)



김양건(제92광수)
바로 뒤에서 제92광수가 밀착 경호를 하면서 5.18 광주 현장에서의 다른 광수들 및
고정 간첩들에게 제91광수와 제92광수는 "썬그라스 착용"을 한 2인 1조라는 것을 표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노숙자 담요님을 비롯한 애국지사 님들의 크로스체크
를 삼가 부탁드리며, 김기남(제91광수)과 김양건(제92광수)이 확증되면 그동안 김기남과
김양건을 아무런 이유없이 국내외에서 접선하고 접촉했던 모든 자들과 그들의 연계 세력들은
대한민국에 항적한 여적죄에 적용되어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또한 김정일과 김정은의 "기쁨조"와 "기쁨남"에 의해 포섭되어 평양에 자식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자, 그 중에서도 전현직 공직자와 언론인들은 향후 100% 애국정권이
재건되었을 때에 전원 색출하여 가차없이 숙청될 것임을 미리 알려두는 바입니다.!
특히 5.18 광주 대학살의 진실을 왜곡하는 국내 언론인들은 가중 처벌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46개 언론사 사장단 방북(2000.8.)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0
*포착된 제93광수(최태복), 제94광수도 곧 작업하여 내일 중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현재 해외 언론과 연계 작업을 하느라 조금 시간이 늦추어지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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