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5.18 광주 대학살, 최초의 발포 명령자는 누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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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재 작성일15-06-11 23:46 조회6,4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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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불러서 "광수들"(북한 특수부대 600명)이 내려갔다는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광주는 부른다>(1986)라는 영화의 포스터이다. 포스터 속 인물은 김정일을 모델로 하고 있다.
누군가가 불렀기 때문에 북한의 광수들이 광주로 내려갔다는 뜻이다. 그럼 이제 밝혀야 한다.
5.18 광주 대학살에서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광수들이 총으로 살육하도록 유도하거나 명령했던,
즉 최초의 발포 명령자는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대중
이 세 사람 중의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광주는 부른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결국 최초의 발포 명령자는 바로 김대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광주 시민들에 대한 최초의 살상과 발포는 북한에서 내려간 광수들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그동안 은폐되어왔던 최초의 발포 명령자 및 이와 관련되어 방조하거나 부화뇌동하거나
특수임무에 종사했던 자들을 전원 색출하여 역사의 심판대 위에 모두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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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 <광주는 부른다>는 1929년 광주 학생의거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일견
1980년 5월의 광주사건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정일은 이미 영화와 관련된 저술을 썼을 정도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는 기법들을 구사하여 왔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광주는 부른다>에서도 일본 계엄군이 출현하며, 광주 시가지에서 1980년 5월의
계엄군과 광주 시민이 서로 대치하는 모습과 의도적으로 겹치는 장면이 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1980년 5월의 광주사건이
(북한의 입장에서 목적으로 했던) 미국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독립만세(즉 적화)를 부르고자 했던
것과 정치적 상징성이 수렴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면적인 접근이 아니라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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