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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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30 20:33 조회2,7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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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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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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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숨기고 싶은 [외지인 500명에 대한 환영행사] 기록한 5.18상황일지: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광주가 5월 22일 15:08에 북괴군 500여명을 위한 환영행사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33년 동안 유지돼 왔었다. 이 기록이 2013년 어느 날 다른 내용으로 슬쩍 변조돼 있었다. 네티즌이 이에 대한 부당함을 제기하자 잠시 원상으로 복귀시켜 놓더니 2021년 8월 다시 확인해 보니 15:08 상황기록 자체를 아예 삭제해 버렸다. 홈페이지에서는 사라졌지만 기념재단 석조 벽판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5월 22일 15:08 서울서 대학생 500여 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일지가 기록돼 있었고, 이는 돌판 기념물에도 새겨져 있다. 5.18에 외지청년 500여명이 개입했다는 정식 기록인 것이다. 그런데 2013년부터 5.18기념재단은 이 기록을 변조했다가 없앴다가 조작을 반복하더니 2022년에는 아예 기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5.18기념재단 상임이자 김양래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자기는 “광주가 외지인 500명을 위한 환영행사를 베풀었다는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아마도 전두환이 투입시킨 ‘편의대’(게릴라부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기록변조 행위가 얼마나 치사한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518기념재단의 홈페이지 “광주사태 타임라인” 즉 광주사태 시간표에는“5월 22일 15:08 서울서 대학생 500여 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글자가 기재돼 있었다. 이 기록은 전국적으로 회자돼온 ‘연고대생 600명’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기록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2013년 7월 14일, 한 네티즌이 “5월 22일 15:08 서울서 대학생 500여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 되어 있던 기록이 “5월 22일 15:08 시위도중 연행된 시민학생 등 800명 석방되어 도청도착”이라는 기록으로 슬쩍 바꾸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5.18기념재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최초 석방자는 800명이 아니라 불과 33명이었고, 이 최초석방자가 도청광장에 도착한 시각은 타임라인에 5월 23일 19시 40분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초 석방자 33명이 5월 23일에 도청광장에 왔는데 어떻게 800명이나 되는 석방자가 5월 22일 도청에 도착했다는 말이냐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말문이 막힌 5.18기념재단은 근거가 없다던 “서울서 대학생 500여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표현을 다시 원상복구 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8년 동안 원상복구된 상태로 이어져 오다가 2021년 6월 어느 날 확인해 보니 “5월 22일 15:08”이라는 난 전체가 아예 삭제돼 버리고 없다.
위의 시간표는 1980년부터 2013년 어느 날까지 30년 이상 유지돼 왔다.
그러던 것이 2013년 8월 어느 날 보니 “시위도중 연행된 시민 학생 등 800명 석방되어 도청 도착”으로 변조돼 있었다. 하디만 아래의 석판에는 지금도 원래의 기록이 보존돼 있다. 한 네티즌이 이의를 제기하자 즉시 원상대로 기록을 바꿔놓았다.
그러다 2021년 어느 날 보니 22일 15:08 난 자체가 삭제돼 버렸다.
2022.10.3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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