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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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31 21:58 조회3,0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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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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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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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18의 선전도구 조사천, 도청에서 계엄군이 사격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옥상을 점령한 무장한 괴집단이 70도 하향각도로 조준사격 해서 사망했다.
5.18이 북한 소행임을 증명하는 기록에 대해 5.18기념재단은 끝도 없이 조작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5.18단체에는 팩트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감성으로 비벼보려는 사기행각만 벌여왔다. 5.18단체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무기는 조사천-조천호 부자의 영정사진이다. 어린 꼬마 상주 조천호가 아버지 조사천의 영정 사진을 들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만 보면 사람들은 눈물부터 흘린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공수부대가 살인귀가 되어 이 가녀린 어린이로부터 아버지를 앗아갔다”는 것이다. 아버지 조사천이 민주화의 화신이 되어 트럭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들고 도청 앞으로 지나가는데 도청 앞 공수부대가 집단으로 발포를 하는 바람에 목에 총을 맞아 죽었다고 선전해왔다. 바로 이 사진과 이 설명이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공수부대를 욕했다. 그리고 공수부대에 발포명령을 내렸다는 전두환 대통령을 저주했다.
하지만 조사천은 도청 앞에서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도청 정문에서 10시 방향으로 꺾어진 금남로 빌딩 숲 속에서 총을 맞았다. 도청 방향의 금남로 입구에서 무려 300m나 떨어진 ‘가톨릭센터’(현 5.18역사기록관) 옥상을 점령한 무장괴한에 의해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 소총에 맞아 사망했다. 옥상에 있는 무장괴한은 장갑차를 타고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조사천을 70도 각도로 내려다보고 조준 사격을 가했다. 당시 계엄군은 M16 소총만 보유했다. 그리고 금남로 깊숙이 위치한 가톨릭센터를 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조사천은 5.18측 주장처럼 트럭을 타고 도청 앞으로 지나다가 도청 앞에 있는 계엄군이 쏜 총알로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도청 앞에서는 시선도 미치지 않고 사격선도 미치지 않는 머나 먼 곳에서 장갑차를 타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가다가 옥상에서 70도 각도로 내려다보고 조준한 카빈총에 의해 머리-턱-목-앞가슴 경로를 통과한 총알에 의해 사망했다. 모두가 거짓말인 것이다.
5.18자료를 총괄 관리하는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1980년부터 2013년까지 33년 동안 조사천의 ‘사망원인’ 난에 “카빈총상”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2013년 갑자기 ‘카빈’ 글자를 빼고 그냥 “총상”으로만 변조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도청 앞에서 계엄군에 의해 저격됐다고 조작했다.
의사의 검시 자료를 보면, 조사천의 총상 부위는 좌측 머리, 좌측 턱, 좌측 목 부위와 좌측 앞가슴이다. 좌측 머리와 좌측 턱을 부숴버린 총알이 턱밑 피부를 뚫고 나온 후 다시 좌측 앞가슴을 뚫고 그 가슴 속에 박힌 것이다. 당시 도청을 지키고 있던 제11공수와 7공수는 도청의 넓은 울타리 벽을 따라 강강술래 식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일부 병력이 정문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10만 인파로 로부터 공격을 받고, 장갑차가 지그재그 궤도를 그리며 쏜살같이 '공수대원들'을 향해 돌진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도 벅차했다.
2022. 110.3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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